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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 길들지 않는 라오스

  • Editor. 이수연
  • 입력 2019.11.04 10: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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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강렬한 무위의 열망이 커질 때, 
비행기 표를 끊었다. 
기차도, 공장도, 심지어 서점도 없는 나라, 
현실에 길들지 않은 라오스를 향해.

주홍빛에 잠긴 루앙프라방
주홍빛에 잠긴 루앙프라방

●여행의 시작과 끝
비엔티안 VIENTIANE

세계에서 가장 조용한 수도 비엔티안은 라오스의 허리를 담당한다. 공항에서 내려 다른 도시로 이동할 때까지,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갈 때까지, 일정 시간을 보내야 하는 비엔티안은 라오스를 알아가기 좋은 곳이다.

빠뚜싸이는 낮보다 밤이 더 매혹적이다
빠뚜싸이는 낮보다 밤이 더 매혹적이다

11월 보름, 대규모의 축제가 열리는 곳이자 지폐에 사용될 정도로 라오스에서 신성하게 여겨지는 탓 루앙(That Luang)은 부처의 사리가 보존된 황금 탑이다. 라오스 사람들의 소원은 평생 한 번이라도 축제 때 탑돌이에 참여하는 것이라니, 라오스를 이야기할 때 탓 루앙을 빼놓을 수 없다. 탓 루앙을 짓고 수도를 비엔티안으로 옮긴 세타티랏 왕은 살아 있을 때 많은 업적을 이룬 덕에 황금 탑 앞에 편히 앉아 사람들로부터 꽃과 과일을 받았다. 


탓 루앙에서 라오스의 종교와 문화를 느꼈다면 라오스의 자존심은 ‘서 있는 활주로’ 빠뚜싸이(Patuxai)에서 마주할 수 있다. 미국 정부가 공항을 건설하라고 지원한 시멘트를 빼돌려 만든 빠뚜싸이는 2차 세계대전과 프랑스 독립전쟁으로 사망한 사람들을 추모하는 라오스의 독립문이다. 지금은 여행자들이 느긋하게 비엔티안의 밤을 만끽하는 곳이다.

  

라오스 사람들 삶의 모습을 마주할 수 있는 왓 씨므앙
라오스 사람들 삶의 모습을 마주할 수 있는 왓 씨므앙

순수하고 소박한 라오스 사람들을 마주하려 왓 씨므앙(Wat Si Muang)으로 갔다. 마침 한 가족이 새로 산 오토바이와 자신들을 실로 연결하고 승려로부터 축복을 받고 있었다. 오토바이를 가져온 이들, 서로의 팔에 실을 묶어 주는 이들의 표정에도 맑은 행복이 어려 있다. 비엔티안의 어머니 사원인 왓 씨므앙에서 소원을 빌면 잘 이루어진다고. 단, 무언가 약속을 걸고 그것을 지켰을 경우에만 해당된다. 어떤 간절한 소원도 노력과 포기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걸까. 무엇을 걸고 무엇을 이루어야 하나, 삶을 채운 것들을 하나씩 저울 위에 올려 본다.


●경건하고 우아하게
루앙프라방 LUANG PRABANG

루앙프라방의 아침은 주홍


고풍스러운 천년 왕국의 자취, 프랑스 식민지 시절부터 이어진 문물과 음식, 라오스만의 자연과 여유. 이 모든 것이 한데 어우러진 루앙프라방에는 80여 개의 사원과 프랑스 콜로니얼 건물이 있다.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탁발은 승려보다 낮은 자세로 경건하게 해야 한다
탁발은 승려보다 낮은 자세로 경건하게 해야 한다

루앙프라방의 아침은 주홍 물결로 시작된다. 동트기 전부터 맨발로 무릎을 꿇고 앉은 여인의 굳게 다문 입과 고집스러운 눈빛에서 구경하는 여행자들에 대한 완고한 거부가 느껴진다. 그녀의 눈매는 주홍색 가사를 입은 승려들이 다가오자 부드럽게 풀리고, 바구니의 음식은 발우로 옮겨진다. 또 다른 여인은 쑥스러운 듯 웃다가 주홍 행렬 앞에서 빳빳하게 긴장한다. 주홍색 물결도 소소하게 흔들린다. 동자승들은 음식 앞에서 감정을 감추지 못하지만, 행렬의 맨 앞에 선 나이 든 승려는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발우에 음식을 받는다. 


라오스 남자들은 어린 시절 3개월에서 1년가량 승려로 살아간다. 우리나라에서 ‘군대 다녀왔느냐, 어느 부대 소속이었냐’처럼 ‘어느 절에 있었느냐’가 중요하다고. 


시주의 끝에 작은 아이가 있다. 아이가 내민 비닐봉지 안으로 승려들이 시주받은 음식을 툭, 툭 떨군다. 아이는 여행자들이 아닌 승려들의 자비로 가난을 달랜다. 새벽 탁발에서 받은 음식만으로 하루의 식사를 해결한다는 그들의 나눔에 시주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 문득 부끄럽게 느껴진다. 진정한 무욕과 무소유를 마주하자 살면서 덕지덕지 붙었던 욕심도 쓱 사라지는 것 같다. 


탁발(Tak Bat)은 이벤트나 축제가 아니라 라오스 사람들의 생활이자 경건한 풍습이다. 누구나 참여 또는 참관할 수 있지만 조용한 그 시간을 존중해야 한다. 여행자들이 그들의 삶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란쌍 왕족을 위한 사원이었던 왓 씨앙통
란쌍 왕족을 위한 사원이었던 왓 씨앙통

그 새는 어디로 갔을까


동이 트고 골목이 밝아 오면 아침 시장으로 간다. 각양각색의 식재료에 눈의 휘둥그레지고 큼지막한 물고기, 고깃덩어리에 놀란다. 두꺼비 구이와 쥐 구이에서는 시선을 뗄 수가 없다. 탁발로 하루를 맞이하는 라오스의 아침 시장에는 분주한 활기가 가득하다. 


80여 개의 사원 중에 꼭 가 봐야 할 사원을 하나 꼽으라면 누구나 제일 먼저 이야기할 만한 곳이 왓 씨앙통(Wat Xieng Thong)이다. 씨앙통은 루앙프라방의 옛 이름으로 ‘황금 도시의 사원’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름에 알맞게 규모, 완성도, 역사성, 예술성 등 여러 면에서 최고로 꼽히는 사원이다. 붉은 벽에 색색의 유리로 장식된 영롱한 생명의 나무, 부처 탄생 2,500주년을 기념하는 유리 모자이크, 와불상과 고전적인 건축 양식도 아름답지만 씨싸왕웡 왕의 운구차가 있는 장례법당에서 한참을 서성이게 된다. 씨싸왕웡은 죽은 뒤 왕을 상징하는 머리 7개의 나가가 장식된 12m의 화려한 운구차에 실렸지만, 그의 아들 왓타나는 라오스 공산당인 빠텟라오에게 체포되어 동굴 속에서 굶어 죽었다. 오래된 역사책의 이야기인가 싶지만, 고작 1975년의 일. 지금과 비교하면 40여 년 전의 라오스는 혁명과 격동의 시대였다. 천년의 화려함은 덧없이 져 버렸지만, 라오스 사람들은 지금 더없이 평화롭다. 운구차 뒤쪽에 비를 기원하거나 평화를 원하는 부처상들이 유독 차가워 보이는 까닭은 그 때문일까. 아등바등 쥐고 있던 삶을 돌아본다.    

루앙프라방에 어둠이 내려앉으면 야시장이 빛을 발한다
루앙프라방에 어둠이 내려앉으면 야시장이 빛을 발한다

푸시(Phou Si) 전망대에 오르는 길, 얼기설기 만든 작은 바구니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니 꼬마 아이가 어설픈 한국어로 말을 건넨다. “방생!” 방생? 바구니 안에는 작은 새가 있다. 신성한 산, 푸시 정상의 황금 탑(That Chomsi)에는 여행자들이 저마다 좋은 자리를 잡고 일몰을 기다린다. 루앙프라방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새를 하늘로 날리거나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차츰차츰 메콩강과 주변이 주홍빛으로 물든다. 문장을 고쳐 써야 할까. 루앙프라방의 아침과 저녁은 주홍색이다, 라고.

꽝시폭포에는 어떤 인위적인 흐름도 없다
꽝시폭포에는 어떤 인위적인 흐름도 없다

알록달록한 옥색 시간 


루앙프라방에 간다면 빼놓을 수 없는 곳, 꽝시폭포(Kuang Si Waterfall)는 소수민족 마을인 몽족 마을을 지나 한 시간 정도 달리면 금세 도착한다. 야생 곰 보호소에서 유유자적 노는 검은 곰들에게 인사를 하고 조금만 오르면 이내 탄성이 절로 나온다. 옥색 물이 계단식으로 흐르는 자연 그대로의 풀장에선 전 세계에서 몰려든 사람들이 각자의 시간을 즐긴다. 그들의 표정엔 여유가 만연하다. 물속으로 들어가 옥빛 풍경의 일부가 되거나 쏟아지는 물줄기 사이로 발을 담그거나 거대한 폭포를 마냥 바라보거나 입구에서 미리 사 온 바게트 샌드위치를 먹거나, 어떤 일을 하더라도 인위적이지 않은 자연의 손길에 마음마저 은은한 옥색으로 물든다.

 

●어디로 흘러가든 자유롭게
방비엥 VANG VIENG

그냥 몸을 맡기면 되니까

 
코끼리 동굴(영어로는 천사 동굴) 탐 쌍(Tham xang)과 물 동굴 탐 남(Tham nam)은 방비엥을 맛보기에 적합하다. 웅장한 코끼리와 환상적인 천사는 없지만 자그마한 바위와 동굴 끝 하늘에서 쏟아지는 빛이 있다. 튜브를 탄 채로 어두운 동굴에 떠 있는 우리에겐 미약하지만 헤드랜턴의 빛과 손에 잡을 줄이 있다. 


이제 진짜 물 위에서 유유히 흘러가 볼까. 카약에 올라 노를 잡는다. 쏭강은 잔잔하고 주변의 수려한 경관은 넋을 잃게 한다. 그대로 풍경의 일부가 되어도 좋으련만, 긴장의 끈을 풀 수는 없다. 다른 카약이 다가와 우리를 앞지르는 순간 물벼락을 맞기 때문이다. 그래, 가장 느리게 물벼락 좀 맞으며 가면 어떤가. 그저 흘러가면 되는 것을. 

버기카를 탈 때 필요한 건 열린 마음. 도로는 차만의 공간이 아니다
버기카를 탈 때 필요한 건 열린 마음. 도로는 차만의 공간이 아니다

물을 따라 내려온 곳에선 땅과 공중의 액티비티가 시작된다. 버기카는 운전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도 몰 수 있지만, 막상 도로로 나서면 예상치 못한 어려움을 마주한다. 도로 곳곳에 퍼질러진 소똥이다. 소똥만 있는 게 아니다. 소, 염소, 돼지도 도로를 드나든다. 만약 이 상황을 VR 체험으로 만든다면 냄새와 위험도 감수해야 하겠지만 정작 그 어떤 가상현실도 라오스의 이 자유를 온전히 담지는 못할 것이다. 도로 안팎으로 흘러가는 라오스 사람들의 일상은 덤이다.

블루 라군에서 다이빙을 시도하는 여행객들
블루 라군에서 다이빙을 시도하는 여행객들

마지막 액티비티는 다시 물로 돌아간다. 블루라군(Blue Lagoon)은 유명세에 비해 폭이 좁은 작은 개울에 불과하지만 탐 푸 캄(Tham phu kham) 동굴 앞에 형성된 연옥빛 라군(석호)은 색과 2~3m의 깊이만으로도 여행자들을 홀린다. 특히 나무 위에서의 다이빙은 담력훈련처럼 용기가 필요해 주변 사람들의 환호 속에서 이루어지고, 블루라군 다리에는 다이빙을 구경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물에 들어가는 순간, 땀과 먼지, 피로까지 싹 가신다. 


액티비티 후에는 요란한 파티를 즐길 수도 있지만, 현지인처럼 얼음을 넣은 비어라오를 찰랑거리며 차분히 강변을 바라보기만 해도 좋다. 내려놓고 비우고 나니 자유가 차올랐다고 얘기해도 될까. 새로운 여행은 언제나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은 나를 발견하게 한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온 라오스에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라오항공 LAO AIRLINES

라오항공은 인천-비엔티안 직항노선을 주 5회(월·화·목·금·토요일) 운영하고 있다. 정시 출발 세계 1위를 차지한 바 있는 라오항공은 라오스의 국영항공사로, 인천국제공항공사가 선정한 ‘2018년 올해의 항공사’로 꼽히기도 했다. 루앙프라방 등 6개 지역으로 국내선을 운항하고 있다. 
 www.laoairlines.com

 

글·사진 이수연(자연형) 에디터 트래비
취재협조 라오항공 www.laoairlin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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