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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발자국이 당신의 심장에 닿기를, 카자흐스탄 알마티

  • Editor. 김정흠
  • 입력 2019.11.04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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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알마티레이크는 알마티 주민들의 생명수 같은 존재다
빅알마티레이크는 알마티 주민들의 생명수 같은 존재다

끝없이 펼쳐진 황무지를 가로지르고, 높디높은 산을 넘고서야 비로소 당신의 심장에 발을 디뎠다. 세상 모든 곳에 당신의 품을 내어줬기에, 여기만큼은 조금 황량해도 괜찮다고 생각했던 걸까. 그러나 이제는 안다. 당신은 아름답지 않은 구석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여행자의 의식


여기는 카자흐스탄, 알마티(Almaty)다.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관문이자, 유라시아의 심장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곳. 수도를 옛 아스타나(Astana) 지역, 그러니까 누르술탄(NurSultan)으로 옮기기 전까지 카자흐스탄의 중심지였던 곳. 여전히 중앙아시아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는 카자흐스탄의 최대 도시. 아니, 이렇게 설명을 장황하게 하기엔 지금 내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이 너무도 소소하잖아. 오후 2시. 알마티의 가을볕을 마주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시간은 없었다. 

거리에 나서보기로 했다. 늘 그랬듯이. 이건 내게 있어 일종의 의식과도 같은 행위다. 그 장소에 서서히 나를 적응시키기 위한, 나만의 방식이랄까. 의식은 간단하다. 마주치는 이들에게 눈인사를 건네고, 주변을 둘러본다. 버스는 어디에서 탈 수 있는지, 숙소 앞 전철역에서는 어디로 갈 수 있는지 등등을 살핀다. 괜찮은 펍이 있으면 좋고, 아침을 즐길 수 있을 만한 카페까지 있다면 환영이다. 이렇게 두리번거리는 이유는 꽤 명확한데, 그곳의 분위기에 녹아들기 위함이다.

알마티의 중심지, 아르바트 거리는 늘 활기찬 모습이다
알마티의 중심지, 아르바트 거리는 늘 활기찬 모습이다

숙소 주변 정찰을 마친 뒤에는 조금 더 먼 곳에 도전하기도 한다. 그 지역 사람들이 자주 모이는 광장 같은 곳이라면 일단 1순위다. 그런 장소라면 쇼핑거리나 먹거리가 적당히 자리할 테고, 현지인의 삶을 더욱 가까이에서 만나 볼 수도 있으니까. 으리으리한 고층빌딩은 없어도 된다. 꼭 가봐야 할 랜드마크가 있더라도 일단은 제쳐 둔다. 사람 냄새를 맡을 수 있으면 충분하다. 알마티에서는 아르바트(Arbat) 거리가 제격이었다. 


알마티의 중심가 중 하나라는 아르바트 거리는 적당히 북적였다. 마침 주말 오후여서인지 그 여유를 즐기려는 이들이 거리를 메우고 있었다. 친구를 만나서 재잘거리는 학생들의 얼굴에도, 분수 사이를 오가는 아이들의 얼굴에도 미소가 가득했다. 한쪽에 자리를 잡은 화가들은 이러나저러나 붓끝에 집중하고 있었고, 문을 활짝 열어 둔 식당에서는 이제 막 점심 영업을 정리하는 직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문득, 이제야 조금씩 알마티에 녹아들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질뇨르 바자르. 흥정의 기술이 필요하다
질뇨르 바자르. 흥정의 기술이 필요하다

●흥정은 기본, 덤은 센스


“어디에서 왔어요? 자, 이거 먹어 봐요. 그냥 주는 거예요.” 시장에 들어서자 좌우로 도열해 있는 상인들이 손길을 내밀기 시작했다. 그중 한 명의 손에 이끌렸고,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견과류를 하나씩 시식하고야 말았다. ‘아, 이러면 왠지 사야 할 것 같은데.’ 아니나 다를까. 상인이 바구니를 들고 견과류를 가리키며 물었다. “이게 맛있어요? 저건 어때요? 다 맛있죠?” 그의 친절이 철저히 ‘상업적’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기꺼이 그의 호객 행위에 호응해 주기로 했다. 예상하지 못했던 지출 발생. 그래도 괜찮다. 그들은 그저 그들의 일을 했을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시장 2층에서 찾은 평화
시장 2층에서 찾은 평화

시장은 활발했다. 이 현대적인 분위기의 전통 시장은 10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한단다. 깔끔한 건물 내에 질서 있게 자리를 잡고 있어 ‘전통’이라는 단어와는 조금 거리가 있어 보였지만, 이곳에서 장사하는 상인들만큼은 아마 오래전의 모습 그대로일 테다. 흥정은 기본이고 덤은 센스, 상인과 손님 사이 대화만큼은 영락없이 전통 시장의 그것이었다. 과일과 견과류를 시작으로 각종 고기를 파는 정육 코너, 심지어 꽃과 화분을 파는 원예 코너도 있었다. 푸드 코트처럼 여러 먹거리를 파는 매대도 눈에 띄었는데, 카자흐스탄에 많다는 고려인들도 심심찮게 만나 볼 수 있었다. 잡채와 김밥, 김치와 고추장이라니. 여기가 카자흐스탄인지, 서울의 광장시장인지 헷갈리는 풍경. 

질뇨늬 바자르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견과류
질뇨늬 바자르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견과류

●뜻밖의 심쿵


시장이 훤히 내려다보일 것 같은 2층으로 도망했다. 몇 번의 호객 행위를 더 경험한 뒤였고, 한국인이라는 사실만으로 호기심을 보이는 이들도 있었다. 어느 작은 카페 구석이라면 평화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곳에서 안드레아(Andrey Yakimov)를 만났다. 그는 카자흐스탄 로컬 커피 로스터리 브랜드 ‘보울러 커피 로스터즈(Bowler Coffee Roasters)’의 질뇨늬 바자르(Zelenyy Bazar) 지점을 책임지는 바리스타다. “여기 좀 정신없죠? 그래도 재미있는 곳이에요.” 안드레아가 말했다. 커피 한 잔 값에는 그의 재미있는 이야기도 함께였나 보다. 

안드레아가 보내는 하트에 심장이 두근거릴 뻔했다
안드레아가 보내는 하트에 심장이 두근거릴 뻔했다

밀리터리 브로치를 만드는 공예가로 활동하다가 커피를 배워 정식 바리스타가 되었다는 그는 잡지에 소개된 적도 있다는 무용담으로 대화를 이어 나갔다. 그래도 커피를 내리기 시작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며. 그러기에는 커피가 너무 맛있는 게 아니냐며 칭찬을 건넸더니, 한참을 멋쩍어 하던 안드레아. 겸손을 보이는 법도 안다. “저는 제가 제일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일을 찾아서 하는 것뿐이에요.” 나는 그에게 엄지를 들어 응원했고, 그는 손으로 하트를 그리며 화답했다. 카자흐스탄에서 브로맨스를 느끼게 될 줄이야.

질뇨늬 바자르
주소: Жибек Жолы проспект, 53, Almaty
전화: +7 7272 73 62 82
영업시간: 화~일요일 09:00~19:00

▶진한 육즙의 추억, 샤슬릭

알마티 시내에서 동쪽으로 가 닿은 위구르족 마을. 낡아 보이기는 해도, 이 근방에서는 제일 그럴싸한 식당에 들어섰다. 양고기 굽는 향(이건 향이라고 해야 옳다)이 식당 주변을 뒤덮었다. 약간의 기다림 끝에 등장하는 중앙아시아 사람들과 위구르족이 즐겨 먹는다는 음식들, 그리고 양고기 샤슬릭(Шашлык, Shashlik,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즐겨 먹는 꼬치구이). 밖에서 맡았던 바로 그 향이 코끝을 간질이고, 침이 고였다. 지체 없이 꼬치에 꽂혀 운명을 기다리는 양고기를 하나씩 빼내었다. 곧이어 날카로운 포크가 양고기 쪽으로 돌진했고, 머지않아 입 안 구석구석 따끈한 육즙이 스며들었다. 아, 카자흐스탄. 마음에 든다.

바이세이트 시장 Байсеит, Baiseit Market
주소: A351, Байсейіт

 

●때깔 고운 협곡


작은 언덕을 지나 시작된 협곡이 저기 지평선 멀리까지, 가늠할 수조차 없는 곳으로 뻗어 나가고 있었다. 지구의 변덕이 찢어낸 상처였다. 차린캐니언(Charyn Canyon)이라고 불리는 이곳엔 지면에서 150~300m 깊이로 패인 협곡이 무려 154km에 달하는 길이로 형성되어 있다니 대략 서울에서 대전까지 이런 협곡이 이어진다고 보면 되겠다. 지각 변동이 있었고, 그 자리에 강물이 흘러 지금의 모습이 된 것이다. 수억 단위를 우습게 넘나드는 게 지질학 이야기인데 여긴 고작 수천만 년 전에 생겨난 지형이라니. 아직 젊구나. 왠지 때깔이 곱다고 느껴지는 건 기분 탓만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푸르공이라고도 불리는 부한카 트럭이 차린캐니언 탐방객들의 발이 되어 준다
푸르공이라고도 불리는 부한카 트럭이 차린캐니언 탐방객들의 발이 되어 준다

국립공원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는 터라 모든 구간이 사람들에게 개방된 것은 아니었다. 미국의 그랜드캐니언이 그러하듯이, 차린캐니언의 주요 지점에도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고, 헬리콥터 투어도 있단다. 그러나 여행자에게 허락된 2.5km 길이의 트레킹 코스를 걷지 않을 수는 없다. 흙먼지 날리는 길을 따라 마냥 들어가기로 했다. 사실 그 속살을 들여다보는 게 제일 짜릿한 일이니까.


계단을 따라 내려온 길은 협곡 사이를 따라 쭉 이어졌다. 막상 왕복으로 이 길을 끝까지 다녀오자니 조금은 부담스러웠다. 저 멀리서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오는 부한카(буханка) 트럭 한 대가 보이기 전까지는. 사람들을 잔뜩 태우고 달리는 걸 보니 아마도 셔틀 같은 개념일 터였다. 좋아. 돌아오는 길엔 저걸 이용하면 되겠어. 그렇다면 여유가 생겼다. 


길은 지루할 틈이 없었다. 길에서 만난 여행자들이 적절히 상상력을 가미한 덕택이기도 했다. 그들의 이야기에 따르자면, 좁고 긴 이 협곡 위로는 날렵하게 생긴 우주선 두어 대가 레이저를 쏴대며 날아다닌다 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영화 <스타워즈>의 유명한 우주선 추격 장면처럼 말이다. 그들의 농을 듣고 있자니 화성이나 다른 외계 행성을 마주한다면 이런 느낌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딘가를 지그시 응시하는 마녀와 하늘로 고개를 치켜든 용도 있었다. 바위에 이름을 붙이는 건 여기도 마찬가지구나.

차린캐니언의 일부 구간에는 여전히 세찬 강물이 흐른다
차린캐니언의 일부 구간에는 여전히 세찬 강물이 흐른다

●여기가 신들이 노니는 곳일지도


다음날, 다시 시내를 벗어났다. 도시 외곽의 전형적인 풍경이 보이는가 싶더니 구불거리는 산간 도로에 진입했다. 좌우로 심하게 요동치는 차 안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빠르게 도착하기만을 바랄 뿐. 세르게이의 말에 따르면 무려 해발고도 2,500m 지점까지 올라가야 한단다. 알마티 중심지의 고도가 800~900m 정도임을 고려해도 약 1,700m를 차량으로 등반하는 셈이었다. 그것도 이렇게 구불거리는 도로를 따라서. 이렇게까지 해서 무슨 호수를 보겠다는 건가, 속으로 투덜대는 와중에 세르게이는 자신감이 넘쳤다. 정말 예쁜 곳이니까 조금만 더 참아 달라고. 시내를 벗어나고도 꼬박 1시간을 더 오르고서야 빅알마티레이크에 도착했다. 

차린캐니언은 수천만 년간 이 일대를 흐르는 강이 깎아낸 절경이다
차린캐니언은 수천만 년간 이 일대를 흐르는 강이 깎아낸 절경이다

호수는 중앙아시아와 중국 동부 지역에서 신성시하는 티엔샨을 배경으로 영롱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옥빛이라는 이야기가 절로 나올 정도로 비현실적인 색을 품은 호수였다. 옛날에 있었던 지진이 만들어 낸 풍경이란다. 둘레만 해도 3km, 깊이는 40m에 이를 정도로 거대한 호수가 산속 한가운데에 있다니. 만년설이 쌓인 산꼭대기에서부터 흐르는 물이 한데 모여 만들어 낸 작품이었다. 

빅알마티레이크 풍경은 정말이지 비현실적이다
빅알마티레이크 풍경은 정말이지 비현실적이다

비탈을 따라 내려갔다. 가까이에 다가가도 그 색깔이 그대로일지 궁금했다. ‘아니, 정말 말이 안 되는 색깔이잖아.’ 세르게이에게 30분만 둘러보고 돌아가겠다고 했던 게 무색해졌다. 이쪽에서도, 저쪽에서도 마냥 호수를 감상했다. 이 바위 위에도, 저 바위 위에도 올랐다. 마음에 드는 바위 하나에 걸터앉아 넋을 놓아 보기도 했다. 되돌아가는 길이 쉽지 않을 걸 알면서도 굳이 물가까지 내려가 손끝을 적셨다. 


‘그림 같다’는 표현이 진부할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이 풍경을 어디에 비해야 할지 지금도 감이 잘 오지 않는다. 집으로 돌아와 그때 당시에 파노라마로 찍은 사진을 보고 있자니, 미술관의 한쪽 벽을 장식하고 있는 거대한 유화를 보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래, 현실 세계에서는 여태껏 볼 수 없었던 풍경이라고 할 수밖에. 

 

▶travel info ALMATY

 

©에어아스타나
©에어아스타나

AIRLINE
인천에서 알마티까지는 약 6시간 30분. 카자흐스탄을 대표하는 항공사 에어아스타나(KC)가 인천과 알마티를 주 5회 운항한다. 아시아나항공 역시 알마티에 주 4회 취항하는데, 지난 2014년부터 두 항공사가 공동운항 협약을 체결했다. 에어아스타나는 환승객을 대상으로 스톱오버 홀리데이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공항-호텔 간 픽업 서비스는 물론, 1박에 한해 숙박 요금을 1달러로 할인해 주는 등의 서비스다.
 
TIME
지역별로 시차가 다르다. 알마티, 누르술탄 등이 속한 카자흐스탄 동부는 한국보다 3시간 느리다. 악퇴베주 등이 포함된 카자흐스탄 서부는 한국보다 4시간 느리다.
 
VISA
관광 목적으로 입국하는 한국인은 30일간 무비자 혜택을 받는다.
 
CURRENCY
카자흐스탄 화폐 ‘텡게(KZT)’는 원화로는 직접 환전이 쉽지 않다. 달러 혹은 유로를 활용해 현지에서 텡게로 환전하면 된다. 1텡게 당 3원 수준이다.

FOOD
알마티에서는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흔히 즐기는 음식을 두루 맛볼 수 있다. 고기를 꼬치에 꽂아 굽는 샤슬릭을 비롯해 만두를 넣고 끓인 몌니(Пельмени, Pelmeni), 절인 청어 요리인 세료드카(Selyodka), 유목민들이 즐겨 먹는다는 빵 레펴쉬카(Lepyoshka) 등등 다양한 먹거리를 어디서든 쉽게 접할 수 있다. 고려인들의 한식, 신장 위구르족의 전통 음식들도 만나 보자.

ACCOMMODATION
알마티 시내에는 깔끔하면서도 합리적인 요금에 서비스를 제공하는 호텔이 많다. 더블 트리 바이 힐튼은 시내 여행을 즐기기에 적합한 위치에 있다. 차린캐니언에서는 에코 파크 투어리스트 리조트가 방갈로와 유르트 등의 시설을 갖추고 투숙객을 맞이한다. 차린캐니언 너머로 쏟아지는 별을 구경하는 것은 이곳에서만 누릴 수 있는 특전.

 

글·사진 김정흠 에디터 김예지 기자
취재협조 에어아스타나 www.airastan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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