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리고의 여행의 순간] 적절한 어둠이 찾아오는 순간
[로드리고의 여행의 순간] 적절한 어둠이 찾아오는 순간
  • 박 로드리고 세희
  • 승인 2019.12.02 09: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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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베니스
이탈리아 베니스

좋은 사진을 얻고 싶은 여행자에게
좋은 장비보다도 필요한 건 지구력일지 모른다.

카메라에는 빛을 다루기 위한 버튼이 많다. 조리개 수치를 2.8, 4, 5.6 등으로 조절하는 것은 렌즈에 난 구멍의 크기를 달리해 받아들이는 빛의 양을 조절하기 위함이고, 셔터스피드를 1/60, 1/500, 1/1000 등으로 바꾸는 것 또한 이미지 센서가 빛을 받아들이는 시간을 정하기 위해서다. ISO 수치는 빛에 반응하는 이미지 센서의 민감도를 의미한다. 수십 년 전에 만들어진 필름 카메라와 최신식 디지털 카메라가 같은 이치로 조작되는 것을 보면,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빛을 다루는 일이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빛만큼 중요하지만 쉽게 간과하는 것이 있다. 그림자다. 빛이 있으면 반드시 그림자가 존재하고, 고로 빛을 다루는 일이란 그림자를 다루는 일과 같다. 사진은 밝음과 어둠의 조화로 빚어내는 이미지 예술이다. 스마트 폰으로 간단하게 혹은 전문가용 도구로 정교하게, 어떤 식에서든 노출(Exposure)과 대비(Contrasrt), 밝은 영역(Highlights)과 어두운 영역(Shadows)을 조절하는 것은 후보정의 가장 중요하면서도 강력한 기능이다. 과거 필름 기술 개발의 핵심은 밝고 어두움의 폭을 얼마나 많이 담을 수 있느냐에 있었고, 그 기조는 여전히 지금의 디지털 시대에도 이어지고 있다. 밝은 곳은 더 밝게, 어두운 곳은 더 어둡게 만들어 사람의 실제 눈에 가까운 계조 범위를 만드는 HDR(High Dynamic Range) 기술과 더불어 최근 카메라에는 최대치의 계조 범위를 기록하기 위해 데이터를 압축해 저장하는 로그(Log) 기능이 탑재되고 있다. 빛과 그림자는 개발자들에게도 늘 화두다.

몽골 고비사막 가는 길
몽골 고비사막 가는 길

사진가의 화두는 빛을 살피는 일이다. 상업적인 촬영 현장에서는 대형 조명 기기를 사용해 빛을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아이러닉하게도, 빛을 밝히는 조명 장비보다 빛을 차단하고 줄이기 위한 장비가 더 많이 동원된다. 때때로 조명을 아예 켜지 않고 두꺼운 광목천이나 종이로 빛의 양을 줄이는 것 또한 그림자를 만들어 내기 위한 시도다.

굳이 애쓰지 않아도 감각적이고 본능적으로 반응하게 되는 빛과는 달리, 그림자는 의식적으로 관찰하지 않으면 잘 인지되지 않는다. 빛을 찾아내는 일은 충분히 어렵지만, 그림자를 관찰하는 일은 더욱더 어렵다. 의식적으로 어둠을 찾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까닭이다. 


일일이 조명을 설치할 수도 없는 여행에서 사진가는 그저 인물이나 풍경에 닿는 명암을 세심하게 관찰할 수밖에 없다. 해가 뜨고 지는 시간을 기다리며 피사체를 가장 아름답게 비추는 빛과 그림자의 조화를 예측해야 한다. 이때 ‘빛의 마법사’라 불리는 렘브란트의 그림을 떠올려 보면 이해가 쉽다. 렘브란트가 화폭에 구현한 빛은 그림자에 둘러싸여 있어 오롯이 부각되고, 덕분에 인물이 마치 그림 밖으로 튀어 나온 듯한 입체감이 살아 있다. 렘브란트가 붓으로 명암을 연출했다면 카메라를 든 여행자는 발걸음을 옮길 수 있다. 최상의 위치를 잡았다면, 기다림의 시간이다. 좋은 사진을 얻고 싶은 여행자에게 좋은 장비보다도 필요한 건 지구력일지 모른다. 예민하게 빛을 읽어 내는 관찰력과 진득하게 기다릴 줄 아는 인내력을 지닌 사람에게 찰나의 순간은 찾아오기 때문이다. 결정적인 어둠이 드리우는 것이다.

*연재를 마칩니다
원고를 쓰며 스스로 배운 시간들이었습니다. 저 또한 여전히 사진을 공부하는 한 사람에 지나지 않으니까요. 귀한 지면을 허락해 준 <트래비>와 독자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연재는 마치지만, 로드리고의 여행은 계속됩니다. 

 

*박 로드리고 세희는 영화와 드라마, 다큐멘터리를 넘나드는 촬영감독이다. 틈틈이 여행을 하며 사진을 찍는다. <트래비>를 통해 여행사진을 찍는 기술보다는, 여행의 순간을 포착하는 태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글 ㆍ사진 박 로드리고 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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