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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서정, 후난성 천저우

  • Editor. 최갑수
  • 입력 2019.12.02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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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산의 절경. 후난성 사람들은 망산의 풍경이 장가계보다 한 길 높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망산의 절경. 후난성 사람들은 망산의 풍경이 장가계보다 한 길 높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우리에게는 생소하지만, 후난성 천저우(郴州, 침주)는 중국인들에게는 장가계 못지않은 비경으로 여겨지는 곳이다. 기암괴석으로 가득한 망산을 걸었고 물안개 자욱한 동강호 앞에선 숨이 멎었다. 게다가, 맛있는 음식이 가득 찬 식탁까지. 내내 풍성했다.

배에 붉은 등을 켠 어부가 하루 일을 마치고 동강을 거슬러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
배에 붉은 등을 켠 어부가 하루 일을 마치고 동강을 거슬러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

음이온과 물안개라 

중국 후난성(湖南省, 호남성)에 자리한 천저우(郴州, 침주)에 다녀왔다. 후난성은 우리에게 그럭저럭 알려져 있지만 천저우는 꽤 낯선데, 광둥성(广东省, 광동성)과 접한 남부에 위치해 있다. 중국 내에서 텅스텐과 희토류의 매장량과 생산량이 가장 많고, 70여 종의 광물이 생산되어 ‘비철금속(非鐵金屬)의 도시’로 불린다고. 이 밖에는 알 수 있는 정보가 많지 않았다. 중국에서 음이온을 가장 많이 배출한다는 망산(莽山)국가산림공원과 동강호(東江湖)의 물안개가 유명하다는 것이 전부였다. 텅스텐과 희토류, 음이온과 물안개라…, 뭔가 연결이 되지는 않지만 일단 가 보자. 오전 11시15분에 출발하는 남방항공 CZ340편에 올랐다.

우뚝 솟은 봉우리로 가득한 망산. 1,000m가 넘는 봉우리가 150여 개나 있다 ©천저우여유관광국
우뚝 솟은 봉우리로 가득한 망산. 1,000m가 넘는 봉우리가 150여 개나 있다 ©천저우여유관광국

●망산
장가계 못지않은 비경


광저우(广州, 광주)국제공항에 도착하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천저우에는 오지 않겠지. 스마트폰 날씨앱을 켜 검색을 했는데 예보는 ‘비’였다. 다음날에는 번개 표시도 있었다. 그래도, 내일 아침 눈 뜨면 천저우는 개어 있을 거야. 여행자의 대책 없는 낙관.

산등성이를 지나는 잔도를 따라가며 망산의 풍경에 취할 수 있다
산등성이를 지나는 잔도를 따라가며 망산의 풍경에 취할 수 있다

천저우는 멀었다. 인천국제공항에서 광저우국제공항까지 약 3시간 반. 공항에서 버스를 타고 광저우고속전철역까지 1시간, 고속열차를 타고 천저우역까지 2시간. 고속열차에서 내려 다시 버스를 타고 1시간 반을 가야 했다. 역시 중국은 넓구나. 

망산을 찾은 관광객이 카메라로 망산의 아름다움을 담고 있다
망산을 찾은 관광객이 카메라로 망산의 아름다움을 담고 있다

다음날 아침, 호텔 창문 커튼을 젖히니 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괜찮아, 망산에 가면 개어 있겠지. 하지만 망산 입구에 도착하니 보슬비는 여전했다. 현지에서 여행사를 운영하는 이해연 실장이 우비를 나눠주며 말했다. “여기가 장가계 못지않게 아름다운 곳입니다. 아니, 장가계보다 훨씬 더 멋진 곳입니다. 앞으로 장가계보다 여기 망산이 훨씬 더 뜰 것입니다.” 그렇지만 앞이 보이지 않았다. 안개가 더욱 짙어졌다. 케이블카를 타고 트레킹 시작점으로 가는 도중에는 빗방울이 뿌리기 시작했다. 배낭에 카메라를 집어넣었다.


천저우의 ‘침'(郴)자는 ‘수풀 림’자에 ‘마을 읍’자가 붙어 만들어졌다. 그만큼 숲이 울창하고 아름답다는 뜻. 중국에서도 ‘숲의 도시’로 유명한 곳이 천저우고, 천저우의 수많은 숲 가운데서도 가장 경관이 아름다운 곳이 이곳 망산국가산림공원이다. 


망산은 높이 1,902m로 지리산(1,915m)과 비슷하다. 광둥성과 경계를 이룬다. 망산에는 1,000m 이상의 봉우리가 천 개가 넘는다고 하는데, 이는 중국 특유의 과장일 뿐, 사실은 150여 개 정도다. 하지만 이도 많은 숫자다. 가장 높은 봉우리가 천남제일봉이다. 


트레킹 코스는 두 가지. 여행자들이 손쉽게 찾을 수 있는 코스는 ‘천태산 코스’로 중남제일협곡과 뾰족하게 솟은 봉우리인 금변신주(110m) 등을 관망할 수 있다.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또 다른 코스는 ‘장군채 코스’다. 설송이 많은 300여 미터의 협곡에 위치하고 있는데 흙길과 나무계단, 일반계단이 이어진다. 천태산 코스보다는 다소 어렵고 2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망산 서문 앞에 자리한 절
망산 서문 앞에 자리한 절

케이블카에 내려 잔도(험한 벼랑 같은 곳에 선반처럼 달아서 낸 길)를 따라 걷는다. 길은 평탄하다. 안개인지 비구름인지가 가득 몰려 왔다. 앞 사람의 배낭이 간신히 보일 정도다. 바람이 불어 안개가 날리면 멀리서나마 희미하게 봉우리들이 보인다. 잔도 아래로는 까마득한 낭떠러지. 팔뚝에 소름이 돋는다. “설악산과 비슷한 풍경이겠군요.” 이렇게 말하니 이해연 실장이 웃으며 이렇게 답한다. “어떻게 설악산과 비교합니까. 설악산보다 훨씬 크고 더 멋집니다. 그나저나 안개 때문에 망산의 풍경을 제대로 보여 드리지 못해 너무 아쉽습니다.” 이 실장의 말과 눈빛에서 커다란 아쉬움이 그대로 전해진다. “다시 오라는 뜻이겠지요. 다시 오게 되면 제대로 보겠습니다.” 

절 앞을 지키는 사자상
절 앞을 지키는 사자상

안개가 걷히면서 살짝살짝 보이는 망산의 풍경만으로도 그 아름다움이 어느 정도나마 가늠이 된다. 발아래에는 뾰족뾰족한 봉우리들이 가득하다. 그 사이로 짙게 피어오르는 운무는 구름을 탄 손오공이 된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망산은 산림률이 99.5%로 원시림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음이온도 마음껏 마실 수 있다. 망산의 숲에서는 1cm3당 10만 개가 넘는 음이온이 뿜어져 나온다. 망산을 찾는 중국인 방문객 80% 이상이 산림욕을 하며 이 음이온을 흡수하기 위해 온다고 한다.

동강에서 만난 어부
동강에서 만난 어부

●동강호
투망 노인의 위로


후난성만 해도 남한 면적의 두 배가 넘는다. 천저우는 경상북도 크기다. 이 도시에 연간 2,000만 명의 여행객들이 찾아온다. 그리고 여행객 중 열에 아홉은 동강과 동강호를 찾는다. 중국은 관광지를 역사와 문화적 가치에 따라 1A~5A 등급으로 나눈다. 최고 등급은 5A 등급. 장가계와 진시황병마용, 만리장성 등이 5A 등급에 속해 있다. 동강과 동강호 역시 5A 등급. 얼마나 아름다운지 대충 짐작이 간다. 특히 동강호는 후난성에서 유일하게 국가5A 등급과 국가급풍경명승구, 국가생태여유시범구, 국가삼림공원, 국가습지공원, 국가수리풍경구 등 6개의 국가 자격을 한꺼번에 받은 풍경구다.

동강호를 유람하는 유람선. 1986년 완공된 동강댐이 동강을 호수로 만들었다
동강호를 유람하는 유람선. 1986년 완공된 동강댐이 동강을 호수로 만들었다

동강과 동강호의 자랑은 물안개. 동강을 막은 동강댐은 1976년 시공해 1986년 완성했다. 이렇게 중국에서 13번째로 넓은 인공호인 동강호가 만들어졌다. 댐높이 157m인 동강호댐은 완공 당시 아시아 1위, 세계 2위의 위용을 자랑했다. 지금도 동강수력발전소의 발전량은 50만kw에 달한다. 화중지역에 전기를 공급하고 있다.


동강의 안개는 이 동강댐이 만들어지면서 생겨나기 시작했다. 댐에서 방류되는 물은 일년 내내 8~10도 사이의 수온을 유지하는데, 기후의 영향을 받아 매년 5월에서 10월까지 아침 해뜨기 전후 2시간, 해지기 전후 2시간 동안 짙은 안개를 피워 올린다. 안개가 점차 유명세를 타며 ‘중화기경(中华奇景)’이라 불렸고 중국 각지에서 수많은 여행객들이 오직 이 안개를 보기 위해 찾아들었다. 안개는 동강댐에서 하류로 10km에 걸쳐 볼 수 있다. 


유람선을 타도 된다. 산기슭에 자리 잡은 동강호 관광촌 유람선 터미널에서 시작해 38km를 달린다. 용경협곡(龍景峽谷) 사이를 여유롭게 달리며 뱃놀이를 즐긴다. 구불구불 이어지는 뱃길 양편으로는 가파른 절벽을 세운 협곡이 서 있다. 

동강호 유람선을 타면 두솔도 동굴에 닿는다. 기괴한 석순과 종유석으로 가득하다
동강호 유람선을 타면 두솔도 동굴에 닿는다. 기괴한 석순과 종유석으로 가득하다

약 30분 정도 유람선을 타고 가면 두솔도에 닿는다. 배에서 내린 사람들을 따라가다 보면 두솔도 동굴 입구가 나타난다. 수십만 년 전에 만들어진 석회암 동굴로 중국 드라마 <서유기>의 무대가 됐다고 한다. 탐방로를 따라 한 바퀴 도는 데 40분 정도가 걸린다.


동굴 관람을 끝내고 다시 유람선을 타고 동강의 물안개를 보기 위해 탐방로를 찾았다. 때맞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일정 내내 날씨가 궂다. 그나마 오히려 이런 풍경도 운치가 있다. 짙은 구름이 강의 정취를 더한다. 흔한 표현이지만 한 폭의 수묵화 같다.   

그물을 던지는 동강의 어부
그물을 던지는 동강의 어부

탐방로를 따라가다 보니 노인이 투망을 던진다. 그물이 수면 위로 넓게 퍼지며 떨어진다. 지금까지 잡지나 TV에서 보던 광경이다. 신선이 살 만한 풍경이란 어쩌면 이런 풍경을 두고 말하는 것인지도 모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천저우에서의 일정 내내 날씨가 좋지 않았지만 이 한 장면으로 큰 위로를 삼는다.


●비천산
하늘에 뜬 작은 계림


동강이 빚어낸 또 다른 절경이 비천산이다. 4A급 국가관광지이자 국가지질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백악기에 만들어졌다. 붉은색의 모래가 퇴적되어 만들어진 사암 사이로 강물이 흘러들면서 기본 모양을 빚었고 빗물에 의해 오래 침식하면서 지금의 모양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지금도 만들어지고 있다. 비천산은 ‘하늘로 날아오르는 산’이라는 뜻. 붉은색 용이 몸을 트는 듯한 형상이라 이런 이름이 붙었다. 명나라 때의 유명한 지리학자인 서하객이 비천산을 ‘한 치의 땅도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고 단 하나의 산도 기이하지 않은 데가 없다’고 극찬했다고. ‘작은 계림’으로도 불린다.

붉은 사암으로 빚어진 비천산
붉은 사암으로 빚어진 비천산

산이지만 산이 아니다. 언덕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평지를 따라 걷다 보면 붉은색 암벽이 펼쳐진다. 비에 젖어 더욱 번들거린다. 탐방로를 따라가다 보면 발아래 수십 미터 벼랑이 송곳으로 파 놓은 듯 이어진다. 산 전체가 거대한 카르스트 지형의 바위산이다. 축구장 수백 개를 이어붙인 크기라고 한다. 모두 둘러보려면 한 시간 정도는 잡아야 한다.

비천산을 찾은 관광객들. 산이지만 언덕 수준이다
비천산을 찾은 관광객들. 산이지만 언덕 수준이다
비천산 사찰을 찾은 관광객이 켜놓은 향
비천산 사찰을 찾은 관광객이 켜놓은 향

탐방로 한 끝에 자그마한 절이 있다. 재물신을 모셔 놓았다. 이 실장이 향을 피우고 두 손을 모으고 기도를 올린다. 정성들여 기도를 올리던 이 실장이 휴대폰을 제단에 댄다. 제단에는 QR코드가 큼지막하게 박혀 있다. “시주한 거예요. 중국 절에서는 시주도 이걸로 합니다.” 뭘 그리 간절히 기도했냐고 물어보니 “천저우가 대박나길 기도했다”고 답한다. “대박날 것 같아요. 이렇게 좋은 곳이 많은데 한국에 제대로 알려지기만 하면 사람들이 몰려들겠는데요.” 인사치레가 아니고 진심이다.


▶중국에서 연어회를 먹다니! 

뭐니 뭐니 해도 중국 여행의 가장 큰 즐거움은 먹는 일인데 후난성의 요리는 아직 낯설다. 이번 여행에서 천저우 인근 지역을 다니며 다양한 음식을 맛보았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음식은 연어회다. 중국에서는 몸에 좋지 않다고 생각해 날음식을 잘 먹지 않으며 고기는 물론 채소도 익혀 먹는다. 천저우에서 먹는 연어회는 민물연어로 크기는 일반 연어와 비슷하고 몸 색깔이 선명한 분홍빛이다. 노르웨이산 양식 연어에 비해 두께가 반 정도로 얇지만 식감은 훨씬 쫄깃하고 맛은 크게 다르지 않으며 고추냉이를 푼 간장에 찍어 먹는다. 연어탕은 장어탕과 맛이 비슷하며 기름기가 많고 구수한 맛이 진하다.

후난 요리는 은근히 맵고 짜다. 풍성한 오리고기 볶음, 돼지고기 절임, 야채볶음, 두부조림 등 주안판(빙글빙글 돌아가는 원형 식탁)을 가득 채운 요리는 우리나라 사람 입맛에 잘 맞아 함께 여행을 한 일행들이 끼니마다 맛있다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중국 3대 요리로 쓰촨·광둥·상하이 요리를 꼽지만 후난 요리도 이에 뒤지지 않는다.


후난 요리의 독특한 점은 상에 밥 대신 삶은 소면이 오르는데 우리가 흔히 먹는 국수와 같다. 양념 없이 삶기만 한 소면이 대접에 가득 담겨 나오고 젓가락으로 국수를 건져내 요리와 함께 먹는다. 중국에 여러 차례 와 봤지만 처음 대하는 광경이었다.


소면은 맵고 짠 후난 요리의 간을 맞추는 용도다. 후난성은 이모작이 가능해 쌀이 풍부한 반면 밀가루가 귀하다 보니 손님이 왔을 때 밀가루로 만든 국수를 내는 전통이 만들어졌고 이후 국수가 대중화되면서 일반적인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언제나 여행을 하면서 깨닫는 것은 어떤 곳이든 그곳만의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과 방식이 있다는 것이다. 천저우에서 연어회를 먹고 소면을 먹는 것도 이와 다르지 않다. 사는 것도 마찬가지 아닐까. 북유럽에는 북유럽의 삶의 방식이 있고, 동남아시아에는 동남아시아의 삶의 방식이 있다. 틀리지 않고 다를 뿐이다. 

천저우 여성온천
천저우 여성온천
천저우 여성온천
천저우 여성온천

▶AROUND 

광저우(광주)국제공항으로 들어가야 한다. 천저우까지는 중국의 고속철 ‘가오톄(高鐵)’를 타고 이동하면 편하다. 기차표를 끊을 때는 여권이 반드시 필요하다. 아직 한국 관광객들이 많은 곳이 아니라서 표지판이나 안내판 등에 한글 표기가 적거나 있어도 어색한데, 조만간 개선될 예정이라고. 참고로 천저우 여성(汝城)온천은 수질이나 시설이 일본의 온천 못지않다. 섭씨 98도의 펄펄 끓는 물이 솟아난다. 최근 개발되어 시설도 깨끗하다.


글·사진 최갑수  에디터 천소현 기자
취재협조 인차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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