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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복의 CCBB] 자고 나면 1달러 팁, 그만합시다

  • Editor. 장영복
  • 입력 2019.12.02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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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끈 여행사 대표
신발끈 여행사 대표
장영복

한 산악인이 히말라야 8,000m급 14개 봉우리를 모두 올라 여성으로는 세계 최초 14좌 완등이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그러나 이후 14개 봉우리 중 마지막 정상인 칸첸중가에서 찍은 사진이 산의 정상이 아닌 곳에서 찍은 것이라는 논란이 일었고, 아직도 히말라야 등정 기록에는 팬딩(Pending, 보류 중)으로 기록돼 있다. 


많은 전문가 중에는 이 큰 사건의 시작이 아이러니하게도 사소한 ‘팁’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정상에 올랐을 때 세르파가 받을 팁은 정상에 오르지 못했을 때의 팁에 비해 10배 이상 차이가 나는데, 정상에 오르지 못할 상황에서 세르파가 다른 곳을 정상이라고 속였다는 것이다. 팁을 많이 받기 위해 속였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팁을 약간의 부과적인 돈이라고 생각하고 사소하게 여기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이처럼 큰 사건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을 만큼 사실상 팁은 사소하지 않다. 


팁이라는 말을 듣는다면 많은 한국인들이 호텔에서 자고 난 뒤 베개에 놓는 1달러를 떠올릴 수 있다. 많은 한국인 여행자들, 심지어 대부분의 여행 관계자들도 베개에 1달러를 놓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하지만 이는 사실 전 세계에서 한국 여행자들만 하는 행동이다. 일본에서 넘어온 문화이고, 우리도 불문율처럼 하고 있지만 일본에서조차 이미 사라진 시대착오적인 행동이다.


정작 팁을 만든 서양인들은 호텔비에 서비스 차지가 포함돼 있어 매일 밤 의무적으로 지불하지 않는다. 며칠 밤을 머물렀을 때 약간의 수고비를 놓는 정도다. 미국 레스토랑이나 태국 골프장 등은 팁이 사실상 월급에 가까워 거의 의무적으로 지불해야 하지만, 계산서나 호텔 서비스 차지에 팁이 포함된 경우 의무사항이 아니라 선택사항이다.


팁은 18세기 영국의 한 술집에서 유래됐다는 말도 있다. 빠르고 좋은 서비스를 원한다면 돈을 내라고 요구하는 ‘To Insure Promptness’라는 종이가 벽에 붙어있었는데 이것의 앞 글자를 따서 ‘Tip’이 되었다는 것이다. 세계 모든 나라에 팁 문화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관광지 대부분에는 팁 문화가 있다. 


사실 팁 문화의 필요성과 공정성에는 의문이 든다. 민주주의의 대표 국가라고 하는 미국에서 종업원들이 임금을 거의 받지 못하고 팁으로 돈을 버는 경우가 있는 것도 아이러니하다. 팁 대신 제대로 된 월급을 받게 하는 것이 더 민주적일지 모른다. 팁 문화는 현재 옳다 그르다를 확실하게 말할 수 없고, 한쪽으로 결론이 난다 해도 자리 잡은 문화를 바꾸는 것은 당장에 불가능하다. 현재 나라마다 존재하는 각기 다른 팁 문화를 존중하고 따르는 것이 여행자로서 최선의 자세일 것이다.


그렇다면 팁을 얼마나 주어야 할 것인가. 에베레스트 정상을 오른 한 재미 교포는 정상까지 등반할 때 자신에게 약간이라도 도움을 주었던 사람들에게 1,000달러씩 팁을 주었다고 한다. 반면에 어느 한국의 여행자는 하루 수 백 달러가 넘는 고급 호텔에 머물고 매일 수 천 달러 상당의 쇼핑을 하면서도 호텔 벨보이에게는 1달러 팁을 주기도 한다.(뉴욕의 호텔에서는 짐 하나당 5달러 팁이 적정한 팁이다.)


팁을 무조건 많이 내라는 말이 아니다. 팁이 자신이 도움을 받은 만큼, 감사한 만큼 팁을 주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30년 전에도 1달러, 2019년에도 1달러는 말이 되지 않는다. 이는 한국 일상생활에서 팁이 일반적이지 않아 낯설고, 제대로 된 팁 문화 가이드라인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이 때문인지 한국에서는 팁 문화가 일부 잘못된 형태로 변형돼 나타나기도 한다. 일식집에서 주문을 할 때 생선의 좋은 부위를 달라고 팁을 주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팁이란 좋은 서비스를 받은 후 이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인데, 서비스를 받기 전에 주는 돈은 사실상 뇌물에 가깝다. 


또한 팁이 어쩔 수 없이 지불해야 하는 비용으로 인식돼 금액이 정해져있다면, 서비스 정도에 상관 없이 정확히 정해진 금액만 내는 상황도 종종 발생한다. 예를 들어 20명의 한국인 패키지 여행객들에게 가이드팁으로 30달러를 제안을 하면 20명 전원이 정확히 30달러를 지급하고 더 내거나 덜 내는 사람은 없는 식이다. 자본주의적 산물인 팁을 사회주의적으로 일률적으로 지불하는 문화, 팁과 뇌물을 구분하지 못하는 문화, 절약과 근면만 있고 여유와 배려가 없는 여행자, OECD 국가이자 1인당 GDP 3만 달러의 국민들에게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이다. 팁은 무조건 1달러이고, 매일 아침 호텔방에 1달러를 두어야 한다는 말도 안 되는 공식 때문에 인천공항에서 너도나도 1달러를 환전하는 모습이 이제는 줄어들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글 장영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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