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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호상의 항공 이야기]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손뼉 칠 때 떠나기’

  • Editor. 유호상
  • 입력 2020.02.02 09: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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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난리가 났다. 항공사들 얘기다. 
보잉에서 만드는 737MAX라는 비행기가 문제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게 나랑 무슨 관계?’ 싶겠지만 아니다, 관계가 있다. 
당장 제주도와 가까운 중국, 동남아 등으로 가는 비행기의 발이 묶이고 있다.  

갓 태어난 737은 짜리몽땅하고, 엔진은 길고 가늘었다 ©Wikipedia
갓 태어난 737은 짜리몽땅하고, 엔진은 길고 가늘었다 ©Wikipedia

‘아니, 주차장에 웬 비행기가?’ 무심코 본 TV 뉴스에서는 차와 비행기가 뒤섞여 있었다. 도대체 어느 쪽이 불법주차(?)를 한 거야? 알고 보니 미국의 비행기 제작사인 보잉의 사내 주차장 풍경이었다. 737MAX의 결함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생산된 비행기의 재고가 늘자 더 이상 세워 둘 곳조차 없어 주차장까지 비행기가 꽉 들어찬 상황이 된 것이다. 이 모든 사태의 발단은 1년여 전 일어난 두 건의 비행기 추락 사고다. 인도네시아와 에티오피아 항공사의 여객기가 연이어 추락한 것. 사고 초반에만 해도 두 항공사의 부실한 안전 관리가 지탄을 받았다. 그런데 반전이 있었다. 추락한 기종은 737MAX라는 최신 기종인데 그 원인이 기체 결함으로 밝혀진 것. 게다가 보잉이 처음부터 이를 알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불 위에 기름까지 부어졌다.

737이 없는 항공여행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해졌다 ©유호상
737이 없는 항공여행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해졌다 ©유호상

●스타의 데뷔

우리에게 익숙한 737이 처음 승객을 태운 것은 1968년이다. 오늘날까지 무려 50여 년 넘게 전 세계 여객기 시장을 주도한 베스트셀러다. 그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간단히 말해 소규모 지방 공항에 적합한 비행기라는 콘셉트였다. 항공 여행이 막 활성화되던 1960~70년대 당시 미국의 주요 허브 공항과 달리, 소규모 지방 공항 시설은 열악했다. 활주로부터 짧았고, 큰 비행기를 위한 탑승교나 정비 시설을 갖춘 곳은 드물었다. 이때 보잉의 727이 등장했다. 엔진이 날개 밑이 아닌 동체 꼬리에 붙었고 꼬리날개는 T자 모양으로 되어 비행기 바닥이 지상에 낮게 만들어졌다. 덕분에 비행기는 더 짧은 활주로에서 이착륙을 할 수 있었고, 바닥이 낮아 승객이나 짐을 싣고 내릴 때도 별도의 시설이 필요 없었다. 이후 정비가 쉽도록 엔진을 다시 날개 밑에 달고, 동체 폭을 넓혀 객실을 넓히면서도 기존 727의 큰 장점, 즉 비교적 낮은 높이의 바닥을 유지한 모델이 나왔다. 그게 바로 737이었다. 보잉의 또 다른 히트작 747 점보기가 저렴한 비용으로 대량 운송을 실현한 항공교통의 ‘대동맥’이었다면 737은 각국의 지방 구석구석을 이어준 ‘모세혈관’이었다. 

땅에 닿지 않게 ‘눌린 모양’으로 유명한 737의 엔진이 737MAX에서 더 커졌다  ©Boeing
땅에 닿지 않게 ‘눌린 모양’으로 유명한 737의 엔진이 737MAX에서 더 커졌다 ©Boeing

●발목을 잡은 성공 비결

보잉 737은 어찌나 인기가 있었던지 한창때 보잉 공장의 라인에서는 14시간에 1대 꼴로 737이 쏟아져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시대는 바뀌어 갔다. 기술의 발달로 성능이 어느 정도 한계에 다다랐고, 2010년대 들어서는 장거리는 물론 단거리 비행기도 연비가 중요해졌다. 항공 여행의 활성화로 단거리 여객기의 운항이 급속히 늘었기 때문이다. 기름 적게 먹는 새 비행기가 필요했다. 하지만 새로 비행기를 만들려면 시간과 돈이 대책 없이 들어갔다. 보잉은 수를 썼다. 오늘날 비행기의 연비를 결정짓는 주 요인은 사실상 엔진이었다. 그러니 기존 비행기에 엔진만 바꿔 주면 되는 것이었다. 좋은 아이디어 아닌가? 


한데 문제가 생겼다. 엔진은 연비를 높이려면 내부에 달린 팬이 커야 하는데 이러다 보니 엔진 크기가 점점 커졌다. 하지만 737은 처음부터 기체가 낮게 설계돼 엔진이 커지면 땅에 닿는 곤란한 상황이 발생했다. 바퀴를 길게 달아도 문제가 다 해결되진 않았다. 그렇게 하면 바퀴를 접어 넣을 공간 때문에 완전히 새로 설계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엔진을 날개 앞으로 빼는 방법을 썼다. 하지만 이번에는 공기 역학이 바뀌면서 비행기가 하늘에서 뒤로 기우는 문제가 발생했다. 그래서 이를 바로잡아 주고자 소프트웨어를 써서 비행기가 머리를 앞으로 숙이게 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신-구 시스템이 충돌을 일으키면서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문제가 발생했다. 그것이 바로 앞서 말한 두 건의 추락 사고였다. 737맥스는 겉만 최신이었지 속은 ‘구닥다리’ 비행기였던 셈이다. 

결함 확인을 위해 생산이 중단된 737MAX ©Wikipedia
결함 확인을 위해 생산이 중단된 737MAX ©Wikipedia

이쯤 되면 보잉이 모든 비난을 뒤집어써도 ‘쌤통이다’ 싶겠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보잉을 이렇게 만든 것은 항공산업의 환경적 요인이 있기 때문이다. 항공사들의 입장에서 완전히 새로운 기종은 결코 반갑지만은 않은 존재다. 일단 조종사의 기종 훈련, 정비 체계 구축 등에 큰돈이 들어간다. 투자를 했으니 빨리 투입해 수익을 내야 하지만 새로운 기종의 개발, 테스트 과정은 늘 길고 지연돼서 목이 빠질 지경이다. 그러니 익숙하고 빨리 인도해 주는 기존 기종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보잉이 737을 단종하고 신기종을 개발하려던 찰나, 강력한 라이벌인 에어버스는 엔진만 교체한 A320neo라는 기종을 들이밀었고 보잉은 마음을 바꾸게 된다. 737맥스 악몽의 씨앗은 그렇게 여럿의 합작으로 잉태됐던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만약 이번 사태가 아니었다면, 다시 말해 737이 진작 단종되고 완전히 새로운 후속 기종이 뒤를 이었더라면? 아마도 737은 역사상 가장 성공한 최고의 기종으로 영원히 남았을 것이다. 이쯤에서 하나의 문구가 슬며시 떠오른다. ‘절정의 무대에서 내려올 때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누구나 공감하지만 실행은 결코 쉽지 않다는 그것. 지금 보니 737의 적은 자기 자신이었다. 자신의 성공 비결이 훗날 자신의 발목을 잡은 대표적인 경우다. 우리가 손뼉 칠 때 떠나야 할 또 하나의 이유다. 
 

*유호상은 어드벤처 액티비티를 즐기는 여행가이자 항공미디어 에디터로 활동 중이다.

글 유호상  에디터 트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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