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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아는 이야기가 누군가의 베스트셀러가 되는 법

여행자 겸 독립출판물 제작자 방멘

  • Editor. 김예지 기자
  • 입력 2020.02.03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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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책방 소리소문
제주 책방 소리소문

잘나가는 화장품 기업의 마케터였던 방멘은 스스로 1인 독립출판사 대표가 됐다.
그때나 지금이나 제품을 세상에 내놓는 일은 크게 다르지 않지만 결국에 단단한 차이가 있다고 그는 말한다.

발리 스미냑
발리 스미냑

 

여행을 기록하는 사람 중에서도 그 기록을 세상에 꺼내는 사람은 많지 않잖아요. 방멘의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멋지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해요. 그런데 제가 여행 이야기를 세상에 꺼내게 된 계기는 사실 돈 때문이었어요(웃음). 좀 더 세련되게 말하자면 계속 여행을 하며 살 수 있는 삶의 구조를 만들고 싶어서였죠. 창작물을 내놓는 과정이라면 회사를 다닐 때 했던 일과 크게 다르지 않으니 가능할 것 같았고요.

화장품 기업의 마케터였다고 들었어요. 왜 그만두셨는지 물어 봐도 돼요?

본능적인 이유와 이성적인 이유가 있어요. 본능적인 것부터. 남미에 가고 싶어서요. 비행기만 24시간을 타야 하니 직장을 다니면서는 도저히 견적이 안 나오더라고요.

이성적인 이유는요?

‘할 만큼 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품 기획부터 출시까지 전 과정을 담당하는 브랜드 매니저로 일하는 동안 출시한 제품이 100개는 됐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머리가 좀 빠졌고 배앓이를 했으며 스트레스를 풀자고 마신 술 때문에 간도 부어 가고 있던 상태였죠. 퇴사 전 마지막으로 담당했던 제품 성과가 ‘빵’ 터졌는데, 다음에 그 이상의 어떠한 성과도 내지 못할 것 같은 강력한 예감이 들기도 했고요. 그래서 슬쩍 자리를 뺐죠(웃음). 

미얀마 바간
미얀마 바간
오스트리아 스타인나흐
오스트리아 스타인나흐
볼리비아 우유니
볼리비아 우유니

여행이 하고 싶어서 하던 일을 그만둘 정도면 원래부터 여행을 많이 좋아했나 봐요.

회사를 다니면서도 꾸준히 여행하는 편이었어요. 스트레스가 쌓이면 도망치듯 여행을 떠나곤 했는데 여행이 끝나면 또다시 제자리더라고요. 그때마다 이런 생각을 했죠. 여행하는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면 여행을 하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 하고.

그래서 정말로 남미에 갔어요?

인도에서 시작해서 남미 칠레까지 네 달간 여행하고 돌아왔어요. 이후 지금까지 31개국 정도 여행한 것 같아요.

여행 스타일은 어때요?

좀 촌스러워요(웃음). 여행지도 화려한 도시보다는 시골 분위기를 좋아해요. 골목골목을 여행하다 보면 이동 수단을 타며 움직일 때는 발견할 수 없는 여행지 속 일상을 발견할 수 있거든요. 여행 스타일이 이렇다 보니 보통 동행이 잘 없는 편이에요. 누가 골목만 가고 싶겠어요, ‘삐까번쩍’한 랜드마크에 가고 싶지.

랜드마크는 아예 가지 않는 편이에요?

물론 간 적이 있어요. 페루의 마추픽추나 볼리비아의 우유니 소금 사막에서도 크게 감동을 받지 못했다는 배부른 소리가 결론이지만요(웃음). 특히 현지 투어를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었던 우유니 소금 사막에서는 모든 여행자들이 천편일률적으로 여행을 경험한다는 사실이 그리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았어요. 그것보다는 오히려 우유니 마을에 목요일마다 서는 장에서 보내는 시간이 오롯한 제 여행 같았죠. 저 촌스러운 사람 맞죠? 소금 사막보다 동네 장이라니.

최근에 낸 책 제목이 <발리에선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다>던데. 진짜 아무 일도 없었나요?

네, 아무 일도 없었어요(웃음).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에 대한 오마주는 오로지 제목에만 해당되는 이야기에요. 드라마에서는 엄청난 일이 일어나는 반면 제 책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니까요. 제 여행 스타일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도 해요. 특별할 것 없는, 산책하듯 하는 여행이요. 

엽서북 '보딩패스'의 엽서를 시험 출력해 색감을 보는 작업
엽서북 '보딩패스'의 엽서를 시험 출력해 색감을 보는 작업

이번엔 여행자 방멘이 아닌 ‘출판사 방’ 대표님께 물을게요. SNS를 활용한 온라인 콘텐츠나 전자책 출판도 가능했을 텐데, 왜 종이책이에요?

서점에서 책 냄새를 맡으면 저는 발끝이 저릿해지는 듯한 설렘을 느껴요. 전자책이 나왔어도 여전히 종이책이 유통되는 건 저 같은 설렘을 간직한 사람들이 있어서가 아닐까 싶어요. SNS나 온라인 콘텐츠가 대세라고는 하지만 문화에서 어느 한 영역만이 단독적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책이 영화가 되기도 하고 그 영화 안에서 음악이 주목 받기도 하는 것처럼요.

그래도 종이책이 예전만큼의 파급력을 잃은 건 아닐까요.

제 생각은 좀 달라요. 예전에는 기성 출판만이 존재했다면 이젠 독립출판이 가능한 시대가 왔으니까요. 예전과는 다른 형식의 새로운 출판 세상이 열린 거죠. 누구나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길이 더 다양해지고, 다양한 장르의 책을 향유하는 소비층도 분명 늘고 있다고 봐요. 모두에게 베스트셀러이진 않아도 누군가에겐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죠.

제품을 출시하는 과정과 스스로 책을 내는 과정이 비슷하다고 하셨는데. 다른 점이 있다면요?

콘셉트를 잡는 것부터 제품을 제작하고 유통하는 과정으로 볼 때 크게 다르지 않아요. 그러나 작지만 단단한 차이가 있죠. 예전엔 제가 담당하는 제품들에 회사의 이름을 달았지만, 지금은 제가 만든 창작물에 제 이름을 달아 세상에 내놓는다는 점에서요. 

인쇄소에서 감리 보던 날
인쇄소에서 감리 보던 날

독립출판, 욕심은 나지만 막상 막막해요.

먼저 여행을 다녀와요(웃음). 단 목적이 있는 만큼 편하지만은 않겠지요. 여행에서 겪는 에피소드나 감정들을 잊지 않도록 하나하나 기록해야 하니까요.

여행에서 돌아오면 가장 먼저 뭐부터 해요?

어떠한 콘셉트로 책을 펴낼지 고민해요. 가령 저의 첫 책인 <출근 대신, 여행>은 퇴사라는 키워드로 시작해서 여행하며 살겠다는 결심으로 끝나는 시놉시스가 콘셉트였어요. 매우 진심인 상황이었죠(웃음).

책 제작 말고 또 신경 써야 할 게 있을까요?

판매 증진을 위한 전략도 세워야 해요. 책과 어울릴 만한 굿즈 같은 거요. 저는 책갈피, 엽서 세트, 노트, 스티커를 만들기로 하고 관련 업체들에 연락해 샘플을 받아 본 뒤 제작에 들어갔어요.

책 인쇄 부수는 어떻게 결정했어요?

우선 인쇄소에서 견적을 받고 표지와 내지의 종이 재질과 그램 수를 정하고 나서 부수를 결정해요. 부수는 많이 할수록 인쇄 값이 저렴해지는데, 많이 찍으면 다 못 팔까 봐 걱정이 되기도 해서 적잖이 망설였던 것 같아요.

이제 거의 다 온… 거겠죠?

이제부터가 시작이죠! 책과 굿즈 제작이 어느 정도 준비되고 나면 펀딩 플랫폼에 선보여요. 그야말로 좌불안석이죠(웃음). 펀딩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쉬지 않아요. ‘도서’로 인정받기 위한 ISBN(국제표준도서번호. 책의 바코드 역할을 한다)을 발급 받고 가제본도 만들고. 그렇게 책과 굿즈의 사양과 수량이 모두 결정되면 최종 제작에 들어가요.

포장도 직접 해요?

와, 이때가 진짜 힘들었어요! 책이 구겨지지 않도록 봉투에 넣고 엽서와 스티커를 싸고 노트도 넣고…. 가내수공업이 따로 없었다니까요. 첫 책을 배송할 때는 설 연휴가 겹치는 바람에 택배 픽업 서비스가 안 되서 우체국까지 책을 끌고 간 적도 있어요.

그야말로 독립출판이네요.

물론 제가 저를 믿을 수 없는 분야는 남에게 부탁하기도 해요. 표지, 내지 디자인이나 문장의 교정, 교열 등은 주변 지인 중 현업으로 그 일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 맡겨요. 공짜는 아니고요(웃음).

'출근 대신, 여행' 출간 기념 사진전에서. 필름과 책이 꽤나 잘 어울려 한 컷
'출근 대신, 여행' 출간 기념 사진전에서. 필름과 책이 꽤나 잘 어울려 한 컷

서점에서도 방멘의 책을 봤어요.

유통은 직접 발로 뛰었어요. 동네 책방, 독립 서점들에 메일로 입점제안서를 넣고 OK를 주는 책방에 입고했는데 첫 입고 때는 되도록이면 직접 인사드리느라 제주도까지 간 적도 있답니다. 그렇게 거래 책방들의 숫자가 늘면서 교보문고, 알라딘, 예스24와도 계약하게 됐고 파주 출판단지 쪽 물류창고와도 관계를 트고…. 이렇게 말하고 나니 제가 뭔가 대단하고도 멋진 일을 해낸 것 같네요(웃음).

이쯤에서 전(前) 마케터, 현(現) 독립출판사 대표로서 브랜딩 노하우 하나 전수하면 딱 깔끔할 것 같아요.

‘일관성’과 ‘연결성’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일관성 있는 주제로 창작물을 만들어 가는 동시에, 각기 다른 창작물들이 서로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도록 하는 거죠. 저는 늘 두 가지를 생각해요. 방멘이라는 사람이 지금껏 만들어 온 것과 앞으로 만들 것. 창작자와 창작물이 결국 하나로 연상될 때 독자들의 공감도 얻어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막막한 예비 독립출판러들에게 응원의 한 말씀!

나의 이야기는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이라는 자신감을 가지고 선택을 밀고 나갔으면 좋겠어요. 요즘엔 독립출판물 시장이 커져서 관련 클래스도 많으니 맞는 것을 찾아 배워 보는 것도 추천합니다. 우리는 해 보지 않으면 어떠한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으니까요.

'발리에선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다' 펀딩 타이틀 이미지. 발리에서 찍은 사진이 그대로 표지가 됐다
'발리에선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다' 펀딩 타이틀 이미지. 발리에서 찍은 사진이 그대로 표지가 됐다

현재 준비 중인 프로젝트가 있나요?

다음 책을 위해 여행을 하고 있어요. 지금은 인도 남부 고아주의 아람볼(Arambol)이라는 곳에 있습니다. 지명이 생소하실 텐데, 뭄바이에서 기차로 12시간 정도 달려야 닿을 수 있는 곳이에요.

또 인도에 가셨군요.

이번이 네 번째예요. 올 때마다 영감을 주는 나라죠. 역시나 이번에도 인도에 와서 많은 영감을 받았고, 다양한 형태의 여행에도 도전해 봤어요. 그러는 동안 한국에서 반가운 제안들을 많이 받았어요.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면 한동안 즐겁게 바쁠 것 같아요.

방멘의 세 번째 책은 언제쯤 볼 수 있을까요?

올해 출간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가제를 <트래비>에서 최초로 공개할게요! <불행에서 여행으로, 남인도로 인도하다>입니다. 아직 정확한 일정은 잡지 않았지만 여행 책 만들기 클래스를 마음 맞는 동네 책방과 소소하게 진행할 예정이에요.

마무리는 조금 거창하게, 앞으로의 목표나 비전이 있나요?

목표나 비전은 너무나도 거창한 말 같아요. 회사 조회 때나 나오는 그런 단어요(웃음). 바람이라면, 계속 여행하며 살 수 있는 지속가능한 여행자가 되고 싶어요. 

 

*방멘은 2017년 화장품 대기업의 마케터 직을 그만두고 네 달간 인도와 남미 등을 여행한 뒤 2018년 11월 여행 관련 서적 독립출판사 ‘출판사 방’을 세웠다. 이후 2019년 1월 <출근 대신, 여행>을 펴냈고 그해 5월 엄지사진관 엽서북 <보딩패스> 제작, 10월에는 두 번째 책 <발리에선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다>를 출간했다. 방멘의 창작물이 가진 공통점이라면 주로 특별하지 않은 보통의 이야기로 채워진다는 점. 공감이라는 힘을 만나 꽤 근사해진다는 점이다. 인스타그램 bangmenbang

 

글 김예지 기자  사진제공 방멘(방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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