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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타닉원정대 출정기, 솔티숲과 운곡습지

  • Editor. 천소현 기자
  • 입력 2020.02.03 09: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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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티닉원정대는 숲을 관찰하고 채집도 한다
보티닉원정대는 숲을 관찰하고 채집도 한다

사실 여행은 생태적인 행위다.
항상 이방인일 수밖에 없는 여행자는 말하자면 외래종이므로.
지역의 생태계를 교란하지 않는 방식으로 여행하기! 
그래서 보타닉원정대가 됐다. 무려 1호다.

동물들이 목을 축이는 곳
동물들이 목을 축이는 곳

●숲을 건너 마을로 
정읍 솔티달빛생태숲 
솔티마을

겨울비가 내장산 구석구석을 적시던 날, 정읍에 도착했다. 고즈넉한 내장산 조각 공원이 이번 원정대 탐험의 출발지였다. 내장산 북쪽 자락 숲속에 위치한 솔티마을(현 송죽마을)의 화전민들이 직접 발로 다져 만든 옛길을 걸어 볼 참이다. 옛사람들의 노고에 비하면 새로 놓인 내장생태탐방로마루길의 데크는 비단길이다. 그래서인지 솔티숲생태관광을 안내하는 김광열 에코매니저의 설명에서 ‘비단’이 튀어나왔다. 푸른 띠를 둘러 비단옷을 입은 듯 반짝거린다는 비단벌레가 살고 있지만 흔하게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당장 눈에 보이지 않기야, 그 유명한 내장산 애기단풍도 그렇고, 여름이면 지천에 흐드러진다는 진노랑상사화도 마찬가지니, 귀로는 그의 목격담을 담고, 두 눈에는 내장산과 내장호수의 풍경을 담았다.  이곳 정읍은 육지식물의 남방한계선과 북방한계선이 만나는 지역이라 식물종이 다양하다.

아직 주인을 찾지 못한 새집
아직 주인을 찾지 못한 새집
매장 전에 시신을 임기 보관했던 초분
매장 전에 시신을 임기 보관했던 초분

비가 좀 잦아들었다고 느낀 것은 편백나무 숲에 접어들었기 때문이었다. 보타닉원정대원에게 배포된 작은 에코백에서 루페(Lupe)를 꺼낼 시간이었다. 확대경을 대고 들여다본 나무껍질에서 중국의 계림을 보았다는 이를 시작으로 저마다 발견한 마이크로 풍경에 푹 빠져들어 버렸다. 꿈틀거리는 벌레들을 발견하는 재미에 지체된 이들을 다시 모아 흐릿한 ‘옛길’로 접어들었다.

솔티마을은 천주교 박해를 피해 생활하던 화전민터와 공소가 남아 있는 산골마을이다. 국립공원과 상수원보호구역에 위치해 있어서 벽돌 하나 올리는 것도 자유롭지 못했다니, 길이야 오죽했을까. 주민들이 오갔던 숲속에는 생활과 삶의 흔적이 남아 있다. 짚으로 만든 무덤인 ‘초분’이 솔티마을에서도 발견된다. 한국전쟁 동안 마을 주인들 사이에서도 일어났던 상잔의 아픔은, 은신처로 삼았던 바위 아래 구멍에 고여 있었다. 

숲속 생태체험장에 있는 비단벌레 전망대
숲속 생태체험장에 있는 비단벌레 전망대
전라북도 생태관광육성지원센터 박종석 센터장(오른쪽에서 세 번째)과솔티마을 주민들
전라북도 생태관광육성지원센터 박종석 센터장(오른쪽에서 세 번째)과 솔티마을 주민들

Eco-Village 
솔티마을

바람이 없어도 우리는 뜬다

비단벌레를 형상화한 전망대가 솟아 있는 솔티숲생태체험장에 도착했을 때, 다른 이들의 실패를 보다 못한 김광열 에코매니저가 나서서 연을 띄워 보였다. 바로 그거였다. 바람이 없으면 더 빨리 달리면 되는 것. 43세대, 90여 명의 솔티마을 주민들은 지금 스스로 바람을 일으켜 모범적인 생태마을로 뜨고 있는 중이다.

마을의 자랑, 주민들이 재배한 모싯잎을 마을기업 ‘솔티애떡’에서 전량 수매한다
마을의 자랑, 주민들이 재배한 모싯잎을 마을기업 ‘솔티애떡’에서 전량 수매한다
두레밥상에 오른 돼지갈비 시래기 된장찜
두레밥상에 오른 돼지갈비 시래기 된장찜

숲을 벗어나자 마을이었고, 마을회관 두레 밥상에서 그 주역들을 만났다. 셰프들과 협업한 ‘솔티마을 돼지두레상’은 푸짐한 돼지갈비 시래기 된장찜, 모시밥, 배추전 등으로 근사하게 꾸려졌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울력으로 크고 작은 일들을 해결해 오다 보니, 생태관광에 대한 관심도 여느 마음보다 높은 편이다.

여러 마을참여기업이 있지만, 그 중심에 ‘솔티애떡’이 있다. 끼니를 챙기지 못할 정도로 가난했던 다섯 형제는, 먼저 외지로 나가 떡 만드는 기술을 배운 맏형 김용철씨를 따라 모두 떡 만들기를 배웠고, 각지에서 나름 떡집을 운영하며 자리를 잡았었다. 하지만 다섯 형제가 모두 15년 전 고향으로 돌아온 이유에는, 마을을 위해 뭔가 하고 싶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었다.

솔티숲 에코투어의 마무리는 채집한 것을 한데 모아 보기
솔티숲 에코투어의 마무리는 채집한 것을 한데 모아 보기

주민들이 재배하는 연간 50톤의 모싯잎을 솔티애떡은 시중가보다 높게 전량 수매한다. 마을 수익금의 일부는 고령의 노인들에게 연금으로 지급된다. 가난한 오형제를 품어 주셨던 마을 어르신들이다. 배가 부른데도 집어 든 떡마다 ‘맛있다!’를 연발했듯, 솔티마을이 그랬다.

‘새랑나무랑’ 모이 주기 체험
‘새랑나무랑’ 모이 주기 체험

체험학습장 ‘새랑나무랑’에서 만난 공작, 비둘기, 꿩, 닭, 앵무새들은 익숙한 이름과 달리 이국적이고 매혹적인 모습이었고, 떡 만들기, 도예, 정원 가꾸기(꽃담원), 모시수확 등 다양한 체험을 늘려가며 마을은 달려왔다. 이제 막 생태관광의 이름으로 비상하려는 솔티마을의 모든 활력과 울력이, 초록 초록했다.  

고창 고인돌유적지
고창 고인돌유적지
고창 고인돌유적지와 운곡저수지 사이가 운곡람사르 습지다
고창 고인돌유적지와 운곡저수지 사이가 운곡람사르 습지다

●낮은 곳에서 산다는 것
고창 운곡람사르 습지 
호암마을 

1호 원정대의 위엄이란 이런 것이다. 아직 개통 전인 람사르 운곡습지 탐방열차에 올랐다. 이곳의 보호종인 수달 모양의 전기차는 운곡저수지 북쪽에 새로 생긴 탐방안내소(친환경 주차장)에서 출발해 운곡습지생태공원 앞에 탐방객들을 내려놓았다.

여기서부터는 원정대답게 걷는다. 최종 목적지는 습지 너머 남쪽의 고인돌유적지 탐방안내소. 운곡저수지를 포위하고 있는 여러 봉우리를 넘나드는 4개의 탐방 코스 중 가장 짧은 1코스(3.6km)를 선택한 이유 혹은 핑계는, 우리의 목적이 습지탐방에 있다는 것이다. 물은 낮은 데로 흘러 고이지 않는가. 길은 평탄했고, 젖은 길에는 어김없이 데크가 등장했다. 계단식 논으로 개간되어 경작에 이용되던 습지는 1980년대 초 운곡저수지를 이용하게 되면서 주민들이 이주해 나가자 30년 넘게 폐경작지로 방치됐다. 자연의 치유능력은 놀라운 것이어서 빠르게 생태계를 회복해 나갔고, 2011년 람사르(Ramsar)의 인정을 받았다.

운곡습지에는 총 864종의 생물이 서식하고 있다. 조류관찰대, 생태둠벙, 생태연못을 지나는 동안, 시간이 부족하다며 총총거렸는데, 종점인 고인돌유적지에 도착하고 보니 민망한 일이었다. 수천년 전 청동기시대부터 그 자리를 지켜 온 거석의 정령들이 보기에 얼마나 한심한 일이었을까. 무심하게 흩어져 있는 고조선 조상님들의 무덤 사이를 빠져나올 때 조심스러웠다. 이 땅속에 켜켜이 묻힌 것은 흙과 돌이 아니라 역사이고, 저 물속에 고여 있는 것도 하나하나 소중한 생명이므로. 

폐경작지로 방치된 30년 동안 자연은 습지의 생태계를 복원해 냈다. 864종의 생물들이 습지에 살고 있다
폐경작지로 방치된 30년 동안 자연은 습지의 생태계를 복원해 냈다. 864종의 생물들이 습지에 살고 있다
곧 운영을 시작할 탐방열차
곧 운영을 시작할 탐방열차
동양 최대 크기의 고인돌
동양 최대 크기의 고인돌

Eco-Village 호암마을

51년을 걸어온 마음 꽃길 


낮은 곳에는 물만 흐르는 것이 아니다. 운곡습지를 둘러싼 6개의 마을 중 하나인 호암마을에서, 자신을 숙여 가장 낮은 곳으로 온 이를 만났다. 1968년 이탈리아에 있던 25살의 강칼라 수녀가 스스로 원해서 파견된 곳이 바로 대한민국 산간 오지 중의 오지, 한센인들이 모여 살았던 동혜원(지금의 호암마을)이었다.

51년째 호암마을에서 봉사 중인 강칼라 수녀님
51년째 호암마을에서 봉사 중인 강칼라 수녀님

육체의 고통뿐 아니라 가난과 소외까지 겪어야 했던 환자들의 곁을 지켜 온 지가 올해로 51년째 접어들었다. “7살쯤에 TV에서 한국전쟁 뉴스를 봤어요. 저들을 돕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죠.” 여전히 직접 운전을 해서 광주의 병원까지 환자를 데리고 간다는 수녀님을 출발 전에 잠시 만날 수 있었다. 한센인이 줄면서 동혜원의 이름은 흐릿해지고, 후손들과 이주민들이 함께 이룬 48가구(70여 명) 호암마을이 선명해졌다. 그리고 강칼라 수녀의 소임은 더 넓어졌다.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호암마을 공터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호암마을 공터
방문자들을 맞아 주고 배웅도 하는 예수상
방문자들을 맞아 주고 배웅도 하는 예수상

호암마을을 생태관광지, 체험마을로서 홍보하기 위해 자신을 아끼지 않는다. 쏟아지는 카메라 세례와 질문들을 웃으며 받아내는 그녀 뒤에는 환자들이 곱은 손으로 돌을 하나씩 날라서 지었다는 성당이 우뚝 서 있었다.

방문자센터로 안내해 주는 마을 초입의 꽃길
방문자센터로 안내해 주는 마을 초입의 꽃길
한센인들이 손수 만든 기도실과 십자가
한센인들이 손수 만든 기도실과 십자가

방문객이 많은 마을에는 개인뿐 아니라 단체도 수용할 수 있는 숙박시설과 주방, 기도시설, 공터 등이 갖춰져 있다. 도자기를 구워 판매하기도 하고, 리마인드 웨딩도 열어 준다. 지금 조성 중인 마을 앞 연못에 백련이 가득 피어오르면, 연잎을 이용한 마을 밥상 메뉴도 선보일 예정이다. 꽃길만 걸으라는 듯, 마을 초입 도로에 꽃그림이 그려져 있다. 그 길을 되돌아 나오며 마음이 그렇게 밝고 따뜻할 수가 없었다.  

보타닉원정대란?
전라북도가 지정한 12개 생태관광지에서 숲과 자연의 길을 걸으며 식물의 연대기와 생물 다양성을 교감하는 생태체험 프로그램이다. 인근 마을 주민 중에서 선발된 에코매니저가 안내, 체험, 해설 등을 담당한다. 전북 14개 시·군에 약 60명의 에코매니저가 활동 중이다. 
전라북도 생태관광육성지원센터 www.jb-ecotour.org 

 

글·사진 천소현 기자 
취재협조 전라북도 생태관광육성지원센터 063 224 1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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