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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골짜기 원서동·계동

  • Editor. 박경호
  • 입력 2020.02.03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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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즈넉한 한옥을 따라 걸으면 
길을 따라 술술 풀어진 부모님의 추억과 
상점마다 문턱을 넘었던 내 설렘이 
하나의 시간으로 꿰어지는 곳.

내가 원서동에 가는 이유


서울 종로구 북촌 한옥마을과 창덕궁 사이에 위치한 원서동과 계동은 조선시대부터 구한말, 70년대, 현재까지의 모든 시간을 품고 있다. 창덕궁 비원의 서쪽이라는 뜻에서 유래한 원서동(院西洞)은 조선 왕실을 돌보던 나인과 중인, 하인들이 모여 살던 동네다. 근대에는 애국 계몽 운동의 일환으로 중앙고, 휘문고, 경기고 등 학교가 이 일대에 세워지며 훗날 독립운동의 주역들을 길러 낸 곳이기도 하다. 70~80년대에 도시 이주민의 급증으로 다세대 주택과 무허가 주택들에 밀려났던 한옥들은 1983년 북촌 보존 계획으로 겨우 일부가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하지만 서울의 유서 깊은 ‘올드타운’이 다시 주목을 받게 되자, 어느 때보다 빠르게 동네는 상업화되었다. 현재의 삼청동이 그렇다. 

실망감을 안고 여기서 그냥 발길을 돌렸다면, 이 이야기는 시작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인파를 피해 정독도서관 앞 언덕을 하나 넘었다. 북적북적함이 따라오지 못하고 뒤쳐졌다. 조금은 더 ‘동네’다운 풍경들이 펼쳐지는 곳, 이미 계동이고, 원서동이다. 이발소, 세탁소, 분식집 사이로 일찌감치 고개를 넘어온 사람들이 소박하게 공방과 숍을 운영하고 있다. 겨울에는 눈 쌓인 돌담길 아래 비질 자국이 남은 골목 풍경이 좋고, 봄이면 궁궐 담을 넘은 새소리가 들려오는 곳. 그렇게 원서동과 계동은 조선시대 한옥부터 현재의 공방까지 모든 시간이 여전히 어우러지고 있다. 그리고 원서동의 진짜 매력은 사람이다. 동네를 여러 번 찾아왔지만, 한 번도 푸대접을 받은 적이 없다.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있으면 오히려 누군가 다가와 ‘뭘 찍는 거요’, ‘예쁘게 찍어 주쇼’라며 관심을 보인다. 인사를 잘하면 동네 설명까지 들을 수 있다. 예의를 갖춰서 대하면 기꺼이 마음을 열어 주는 서울의 시골 같은 동네. 그래서 자꾸만 찾게 되는 원서동과 계동의 아지트들을 소개하지 않을 수 없다.

●시간 여행의 초입에서
원서공원

높은 도심과 창덕궁이 모두 보이는 원서공원에서 시간은 조선과 대한민국 그 사이 어딘가를 지나고 있다. 원서동 초입에 위치한 공원은 휘문고등학교가 있던 자리로, 현대그룹이 건물을 지으려 했으나 개발보다 보존을 중시한 동네 주민들의 반대로 공원이 될 수 있었다. 인근 직장인들에게는 잠시 쉬어 갈 쉼터이자 동네 탐방객들도 편하게 다리를 쉴 수 있는 곳이다. 

●시간을 달려서
원서동 돌담길

원서공원을 지나 창덕궁을 따라 이어진 돌담길을 걷다 보면 어느샌가 시간이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원서동은 조선 왕실을 모시던 나인, 중인, 하인들이 살던 곳으로 빨래터와 한옥, 궁중문화 연구소 등, 곳곳에서 전통의 향기를 느낄 수 있다. 외국인이나 관광객보다는 동네 주민, 공방 주인, 학생들이 오가는 일상적인 풍경이 돌담길을 따라 이어진다. 골목 안쪽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가 보자. 어느 골목에는 조선시대의 향기가, 다음 골목에는 아기자기한 전시품이, 또 다른 골목에는 어여쁜 꽃들이 피어 있다. 골목마다 다른 보석들이 있다.

●창덕궁을 품은
카페 회화나무

카페 회화나무는 사람들의 마음을 홀리는 전경을 가졌다. 시원하게 트인 유리창 너머로 창덕궁 담 안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그 창 앞에 앉아서 차를 마시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된다. 그 힐링을 돕는 것은 세계 곳곳에서 직접 모아 왔다는 어여쁜 잔에서 피어오르는 깊은 차향. 티백이 아닌 잎차를 우리는 과정은 조금 느리지만, 원서동에 잘 어울리는 시간의 속도다. 다양한 차종을 갖추고 있으며 같은 차종이라도 브랜드와 원산지에 따라 맛이 천차만별이다. 주인에게 문의하면 친절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주소: 서울시 종로구 창덕궁길 35
영업시간: 화~일요일 10:30~23:00
가격: 핸드드립커피 5,500원, 홍차 6,000원부터

●느린 동네에서 빠른 음식
버거뱅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동네에서 가장 빠르게 먹을 수 있는 메뉴는 버거다. 20년 전에 세워진 건축 설계 사무소를 리모델링한 버거뱅은 원서동에 어색함 없이 스며들었다. 시그니처 메뉴는 ‘더 버거뱅’. 식탁에 나오는 시간은 비교적 짧지만 음식을 준비하는 과정은 그렇지 않다.  매일 아침 직접 빵을 굽고, 소의 목심을 다져 패티를 만든다. 바삭하게 구워진 빵 사이에 육즙이 흐르는 패티가 찰떡처럼 안착되는 비결은 직접 만든 특제 소스다. 이 소스 하나로 베이컨의 짠맛을 잡고 상추의 싱싱한 식감은 더 살아나며 다른 모든 재료가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게 된다니, 마법의 소스가 아닌가.

주소: 서울시 종로구 창덕궁길 29
영업시간: 월~토요일 11:00~21:00, 일요일 휴무
가격: 더 버거뱅 9,000원, 버거 이탈리안 1만1,000원, 탄산세트 추가 4,000원

●응답하라 7080
계동길

북촌 보존 계획에 따라 80년대에 개발이 멈춰진 원서동과 계동에는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가게들이 남아있다. 아케이드와 쇼핑몰, 아파트 상가처럼 획일화된 상점들만 보다가 원서동의 작은 미용실, 길거리 음식, 목욕탕, 흑백사진관 사이를 거닐다 보면 감성이 다시 살아나는 느낌이다. 부모들에게는 추억이고, 자녀들에게는 새로운 경험이다. 함께 거니는 동안 서로의 마음도 어디선가 만나게 된다.

●근대 문화가 살아 숨 쉬는
중앙고등학교

구한말 북촌 일대에는 많은 근대 학교와 건축물이 들어섰다. 한옥촌 사이로 높이 솟은 중앙고등학교는 고풍스런 고딕 양식으로 주목을 끄는 곳이다. 한류의 시초가 된 드라마 <겨울연가>의 촬영지였기에 일본인 관광객들의 발길이 아직도 간간이 이어지고 있으며, 우리에게는 3·1운동을 논의한 역사적 장소(사적 제281~283호)로 기억해야 할 곳이다. 

주소: 서울시 종로구 창덕궁길 164
운영시간: 토요일만 외부인 개방
요금: 무료

●그 모습 고이 간직한
젠틀몬스터 북촌 플래그십스토어

과거 중앙 목욕탕이 있던 자리에 선글라스 브랜드 젠틀몬스터가 입점했다. 목욕탕을 허물지 않고 리모델링했다는 점에서 후한 점수를 주지 않을 수 없다. 건물 가운데 놓인 찜질방 기계와 욕조 위에 전시된 선글라스들이 묘하게 잘 어울리는 것은 왜일까. 이 선글라스를 쓰면 혹시 과거의 시간들이 더 선명하게 보이는 것은 아닌지, 호기심에 한 번 더 써 보게 된다. 

주소: 서울시 종로구 계동길 92
영업시간: 11:00~20:00

●자연을 닮은
공,감도 

원서동에는 낮은 한옥과 돌담길, 그 사이를 걷는 풍요로운 시간을 영감의 원동력으로 삼는 작은 공방과 디자이너, 아티스트들이 부쩍 많다. ‘공,감도’의 이자혜 공방장도 한 뼘 더 큰 여유를 찾아 원서동에 자리를 잡았다. 손으로 직접 빚은 그릇, 화병, 귀걸이 등의 액세서리를 판매하는데, 직접 사용하기도 좋지만 정성을 담은 선물로도 제격이다. 외지인처럼 공간만 사용하고 가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과의 접촉을 위해 도자기 클래스도 운영하고, 다른 공방과 함께 플리 마켓도 열고 있으니, 원서동을 담은 작은 그릇 같은 곳이다.

주소: 서울시 종로구 창덕궁길 35
영업시간: 매일 10:00~19:00
가격: 자기 귀걸이 2만원부터

●전통문화를 지키는
북촌 단청 공방

서울시가 한옥 장인들을 위해 내어준 공간으로 지금은  북촌(北村) 김익홍, 개금장 백태남 선생의 자녀인 김도래가 운영하고 있다. 전통 단청, 회화, 도금, 옷칠 등 선조들의 지혜가 담긴 불교 미술 기법들을 직접 보고 이해하기에 좋은 곳. 또 단청 안료를 사용해서 직접 액세서리를 만들어 보는 체험도 가능해서 관광객들이 어렵지 않게 문턱을 넘고 있다. 궁궐 해설사들의 깊이 있는 강의도 종종 열린다니, 오색빛깔 매력이 빛나는 곳이다. 

주소: 서울 종로구 창덕궁 5길 4
운영시간: 화~토요일 12:00~18:00
요금: 무료, 단청 액세서리 체험 1만원(예약 필수)

 

●저렴하고 든든한 길거리 음식

계동에는 유서 깊은 학교가 많다. 중앙고등학교, 풍문여자고등학교, 덕성여자고등학교, 계동초등학교 등 7개나 된다. 등하교 시간마다 골목길을 꽉 채우는 학생들의 발걸음을 더욱 활기차게 하는 것은 다정한 분식점들이다. 약간의 쌈짓돈으로 배부른 동네 구경을 할 수 있다. 

미미당
길거리 음식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호떡과 어묵, 떡꼬치를 파는 곳이다. 인기 메뉴인 녹차 호떡은 겉은 바삭바삭한데 속은 쫄깃쫄깃하고, 녹차 반죽으로 만들어서인지 건강도 챙긴 느낌이다. 호떡만 구매했는데 떡꼬치와 어묵 국물을 덤으로 주신 것은 혼자만의 행운이었을까. 
주소: 서울시 종로구 계동길 100
가격: 호떡 1,500원, 떡꼬치 1,000원

삼청동 명품 떡볶이
추억의 컵 떡볶이를 다시 만날 수 있는 곳. 모양도 맛도 추억 속 그대로다. 다 큰 어른이라 길거리가 부담스럽다면 점포 안에 앉을 수 있는 자리가 있으니 안심하시길.  
주소: 서울시 종로구 계동길 67
가격: 컵 떡볶이 2,000원

왕짱구 식당
35년째 같은 자리다. 대표 메뉴는 맛탕. 달달하고 부드럽고 고소하다. 졸업생들이 이 맛탕을 먹기 위해 일부러 찻아 오기도 한다. 분식 외에 김치찌개, 순두부 등 백반 메뉴도 갖추고 있으니 식사와 디저트 맛탕을 한꺼번에 노려 봐도 좋다. 
주소: 서울시 종로구 계동길 83
가격: 맛탕 1,500원, 찌개류(순두부찌개, 김치찌개, 된장찌개)6,000원

▶원서동·계동 가는 길
지하철 3호선 안국역 3번 출구로 나와 창덕궁 방향으로 직진하다 보면 왼편에 궁궐의 돌담길을 따라 들어가는 길이 보인다. 그 길로 들어서면 이미 원서동이다.
 

글·사진 박경호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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