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숲에서 노닐다, 하롱베이
바다의 숲에서 노닐다, 하롱베이
  • 서진영
  • 승인 2020.02.03 09: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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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롱베이의 날씨는 좀 흐린가 싶다가도 이내 쨍하게 뜬 해가 자연의 색을 수채화 물감처럼 풀어놓곤 한다
하롱베이의 날씨는 좀 흐린가 싶다가도 이내 쨍하게 뜬 해가 자연의 색을 수채화 물감처럼 풀어놓곤 한다

한껏 게을러지고 싶었지만 마냥 너부러지고 싶진 않았다. 마침한 그런 곳을 가까이서 찾았다.
할롱, 할롱, 하롱베이. 그 이름을 노래처럼 흥얼거리며 바다의 숲, 하롱베이를 노닐었다.

닻을 올리자 영화 속 해적선에 오른 것만 같다
닻을 올리자 영화 속 해적선에 오른 것만 같다

●이유 있는 여유
  
가 보지도 않고 ‘뻔하지’라고 생각했다. 단체 여행객들이 무리 지어 이동하는 패키지 상품 이미지가 가득한 하롱베이(Ha Long Bay) 말이다. 석회암의 구릉 대지가 오랜 세월 비바람에 시달리고 바닷물에 침식되어 바다 위로 머리 내민 섬이 되었다. 섬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삐죽하게 솟은 기암까지, 그 수를 세어 보면 수천 개에 달한다는데 그 사이를 떠다니는 내내 헛웃음이 났다. 이 절경을 보고 변변한 수식어 하나 떠올리지 못하는 나는 무엇 때문에 하롱베이를 그리 만만히 봤단 말인가. 

바다를 마주하고 달콤 쌉싸래한 베트남식 커피 한 잔
바다를 마주하고 달콤 쌉싸래한 베트남식 커피 한 잔

와중에 누군가는 1,969개라며 어쩐지 믿어야 할 것 같은 구체적인 숫자를 주장했고, 누군가는 모르는 소리 하지 말라며 족히 3,000개는 넘을 것이라고 했다. 사실 그 말도 맞고, 이 말도 맞다. 하롱베이는 중국과의 국경에 인접한 베트남 북부의 통킹만 안쪽에 위치한 또 하나의 만으로 1962년 베트남에서 가장 먼저 역사, 문화, 과학 보존지역으로 지정된 ‘제1경승지’다. 면적은 무려 1,553km2나 되는데 하롱베이를 둘러싸고 있는 북쪽의 ‘바이투롱베이(Bai Tu Long Bay)’와 남쪽의 ‘란하베이(Lan Ha Bay)’에 이른다. 1994년, 중심 보존지역에 해당하는 434km2의 바다가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록되었다. ‘하롱베이 크루즈’라고 간판을 내건 크루즈 상품들은 대부분 하롱베이 중심 경로를 지난다. 

하롱베이 본연의 아름다움을 호젓하게 누릴 수 있는 란하베이
하롱베이 본연의 아름다움을 호젓하게 누릴 수 있는 란하베이

하롱베이를 찾는 여행자는 연중 100만 명이 넘는다는데, 이 말은 즉 하롱베이가 연중 ‘물 반, 크루즈 반’이라는 뜻이다. 실제 표현이 과하지 않다 싶을 정도로 무수한 크루즈들이 바다 위를 촘촘히 줄지어 떠다닌다. 그 모습이 장관이다. 하지만 최근 유네스코의 이름을 따라 하롱베이 중심 경로만을 고집하던 여행자들이 이제 조금씩 ‘바이투롱베이’와 ‘란하베이’에 눈을 반짝인다고 했다. 그동안 여행객들의 관심을 덜 받았던 덕분에 원시적 아름다움이 그대로 남아 있다니 솔깃할 수밖에 없겠다. 좀 더 청정한 하롱베이를 호젓하게 누리고 싶었던 이 뻔뻔한 여행자도 란하베이를 향해 닻을 올리는 ‘오키드 크루즈’를 택했다.

바다 위에서 반신욕이라니, 이런 호사가 없다
바다 위에서 반신욕이라니, 이런 호사가 없다

●바다의 숲으로 
가만히,깊숙이

14개의 객실, 탑승 인원은 30명 남짓이 최대치다. 수천 명의 승객을 싣는 초대형 크루즈에 비하면 앙증맞은 규모지만 모든 객실에 ‘바다의 숲’이라 불리는 하롱베이의 초록을 조망할 수 있는 통유리창과 발코니, 욕조까지 갖춘 최고급 크루즈였다. 객실 침대에 반쯤 누운 자세로 기대 통유리 창 너머의 비경을 보고 있으니 며칠이든 그렇게 꼼짝 않고 싶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재주만 있다면 그림으로 남기고 싶었다. 언젠가 우리 옛 화가들이 산수화를 그릴 때의 마음가짐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 서구의 풍경화가 그 풍경 자체를 바라보기 위해 그려졌다면, 우리의 옛 화가들은 그 속에 들어가 몸소 즐기고자 풍경을 표현했고 때문에 꼭 아바타로서의 인물을 체험의 모티브들 사이에 함께 그려 넣었다고 했다. 그것이 어떤 마음이었을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바다 위 매점에서 주전부리 흥정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바다 위 매점에서 주전부리 흥정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몽상을 깨운 것은 발코니 쪽에서 난 노크 소리다. 발코니 밖은 바다가 아니던가? 목을 빼고 밖을 보는데 작은 나룻배 한 척이 둥실둥실 몸짓한다. 말로만 듣던 바다 위 구멍가게, 인근 수상가옥에 사는 바닷사람들의 활동 시간이다. 결코 싼 가격은 아니었지만 이 또한 크루즈의 재미가 아니겠느냐는 듯 옆 객실 발코니에서 선뜻 값을 치른다. 재미난 구경에 몸을 움직였더니 그제야 또 어떤 풍경들이 펼쳐질지 궁금증이 생기고, 아바타로서의 본분을 다해야겠구나 하는 결심이 선다.

가까이 가면 갈수록 홀린 듯 카메라 셔터를 누르게 만드는 하롱베이의 원시 자연
가까이 가면 갈수록 홀린 듯 카메라 셔터를 누르게 만드는 하롱베이의 원시 자연

 

●따로 또 같이,
이로운 시간들

단순했다. ‘바다의 숲’에 둘러싸여 삼시 세끼를 먹고 그 사이사이 크루즈에서 준비한 다양한 즐길 거리를 누리기만 하면 됐다. 승객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는 캡틴이 “아침식사 후에는 베트남 고대 지역인 비엣하이 마을 투어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점심식사 후에는 동굴 탐험을 하고, 바다 수영을 할 수 있는 곳으로 이동합니다!”, “저녁을 먹기 전에 3층 선데크에서 크루즈 셰프와 함께 베트남 음식 만들기 쿠킹 클래스를 진행합니다!”, “저녁식사 후 오징어 낚시 체험을 하실 분들은 텐더보트로 오세요.” 끼니때마다 이후에 어떤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는지 알려준다. 즐길 권리는 오롯이 나의 몫, 어떤 강요도 없다. 꼼짝 않고 쉬기만 해도 좋겠다 싶은 생각이 들 때는 객실 또는 선데크에 남아 무료함이라는 최고의 호사를 즐기면 그뿐이다. 

자전거를 타고 섬마을 구경을 한 후엔 지친 다리를 잠시 물가에 내주고 쉬어 간다
자전거를 타고 섬마을 구경을 한 후엔 지친 다리를 잠시 물가에 내주고 쉬어 간다

크루즈에 체크인할 때 선물 받은 삿갓 모양의 베트남 전통 모자 ‘농(non)’를 쓰고 채비를 한다. 오전에는 텐더보트를 타고 깟바섬(Cat Ba Island) 비엣하이 마을(Viet Hai village)에 닿아 섬마을 논밭 사이를 자전거로 가르며 베트남의 전원을 마주하고, 오후에는 카약에 올라 초록빛 바닷물을 갈라 본다. 맘이 동했는지 누군가 목을 가다듬고 울림통 좋게 노래를 부른다. 기꺼이 손뼉 치며 흥을 돋우는 사람들 표정이 훈훈하다.

우리네 옛 농촌 풍경과 닮아 있어 더욱 친숙한 비엣하이 마을
우리네 옛 농촌 풍경과 닮아 있어 더욱 친숙한 비엣하이 마을

신선놀음도 노곤해지는 순간이 있게 마련이다. 그때부터는 한 배에서도 제각각의 시간들이 생긴다. 누군가는 객실에서 조용히 반신욕을 즐기고, 누군가는 바다를 욕탕 삼아 과감히 뛰어든다. 출출했는데 마침 잘 됐다 하고는 셰프와 함께하는 스프링롤 만들기 쿠킹 클래스에 참여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준비된 즐길 거리를 건너뛰고 조용히 석양을 바라보며 베트남식 커피 한 잔에 피로를 삭이는 이가 있다. 함께해서 즐거운 시간이 있고, 떨어져 오붓한 시간이 있는 법이다. 그렇게 서로에게 이로운 시간을 만끽하는 크루즈의 낮과 밤이 두 번을 번갈아 지나갔다. 


며칠이면 익숙해져 ‘이것도 지겹다’ 투정을 부리게 될까? 하선을 앞두고 칵테일 한 잔에 아쉬움을 달래려는데 누군가 혼잣말처럼 “그런데 하롱베이가 강이었나?” 하고 운을 뗀다. 삽시간에 ‘맞다, 아니다’ 찬반이 나뉜다. 이럴 때는 목소리가 큰 사람이 유리하다. 뭍을 떠난 텐더보트가 크루즈에 줄을 댈 때까지만 해도 뱃멀미 걱정을 하던 이들이 정작 크루즈 위에서 이틀 밤을 보내고도 바다임을 의심한다. 그만큼 파도가 이렇다 할 요동 없이 눈앞에서 자란자란했다는 뜻이다. 캐리어에 쑤셔 넣어두었던 겨울옷을 주섬주섬 꺼내는 동안 짧아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다시 찾을 이유를 남기고 떠날 수 있어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돌아갈 짐을 꾸렸다. 

‘하롱베이의 아침’을 즐기는 방법
‘하롱베이의 아침’은 하롱베이 럭셔리 크루즈에서 이틀 밤을 만끽하고, 하노이 도심에서 베트남 현지 문화도 즐길 수 있는 총 4박 5일 일정의 베트남 여행상품이다. 기존의 하롱베이 크루즈는 대부분 하노이에서 4시간 거리의 뚜언쩌우(Tuan Chau) 선착장을 이용하는데, ‘하롱베이의 아침’은 하노이에서 2시간 거리의 하이퐁(Haiphong) 항구에서 출항하는 펠리칸 그룹의 럭셔리 타입 ‘오키드 크루즈’에 탑승하여 하롱베이 남쪽 400여 개의 크고 작은 섬들로 이루어진 란하베이를 이틀간 유람한다. 전 객실에서 바깥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큰 창과 발코니를 갖춘 오키드 크루즈는 하노이 도심에서 이동 시간을 최소화한데다 하롱베이에 비해 덜 알려진 란하베이를 항해하는 만큼 더 쾌적한 환경에서 더 호젓하게 즐길 수 있는 크루즈다. 
www.bestraveli.com


글·사진 서진영 에디터 강화송 기자
취재협조 베스트레블인터내셔널 02 730 6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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