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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골이에게도 봄은 오고

  • Editor. 김민수
  • 입력 2020.03.02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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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 팽목항에서 하루 한 차례 맹골군도를 오가는 섬사랑 9호
진도 팽목항에서 하루 한 차례 맹골군도를 오가는 섬사랑 9호

봄이다. 봄소식은 남쪽에서 온다. 남쪽의 먼 섬들은 봄이 더 간절하다. 
뭍에 나가 살았던 주민들이 돌아와야 마을도, 섬 개들도 살 맛이 난다. 

 

●맹골도의 대장 개 맹골이

전남 진도군 맹골도는 먼 섬이다. 위도상으로 보면 추자도나 여서도보다 남쪽은 아니지만, 망망대해에 어깨 기댈 섬이라고는 곽도와 죽도가 고작이다. 그래서 겨우내 섬은 더욱 휑하니 비워졌다. 

맹골도 해안절벽에서 바라본 죽도. 여객선은 다른 섬들을 향해 떠나간다
맹골도 해안절벽에서 바라본 죽도. 여객선은 다른 섬들을 향해 떠나간다

처음 맹골도를 찾았을 때는 한겨울이었다. 역시나 섬은 적막했다. 텐트와 약간의 식량을 배낭에 넣어 간 것은 섬 주민들에게 잠자리나 식사 도움을 받기 어려우리라는 예상 때문이었다. 텐트 펼칠 장소를 찾아 헤매고 있을 때 커다란 개 몇 마리가 길을 막아섰다. 동네 불량배처럼 이방인을 응시했던 녀석들은 결국 지켜보겠다는 눈빛으로 길을 내주었다.

나름의 원칙과 영리함을 두루 겸비한 맹골이(본명은 곰이라고)
나름의 원칙과 영리함을 두루 겸비한 맹골이(본명은 곰이라고)

섬 능선에 설영을 하고 물을 구하기 위해 마을로 내려올 때마다 어김없이 부딪쳐야 하는 녀석들은 정말 성가시고 또 두려운 존재였다. 그중 한 마리가 섬을 탐방하는 동안 일정한 간격을 두고 따라붙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미리 알고 있다는 듯 숙영지까지 앞서 걷더니 사방에 부지런히 영역 표시도 했다. 처음에는 손도 못 대게 하며 경계하던 녀석이 먹다가 건네준 치즈 한 장에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결국, 한참의 실랑이 끝에 녀석과는 음식을 나눠 먹는 사이가 되고 우리의 신뢰는 점차 쌓여 갔다.

‘맹골이’. 녀석을 맹골이라 부르기로 했다. 맹골이는 마치 함께 캠핑 온 반려견이라도 된 것처럼 어울렸고 익숙하게 텐트 주위를 맴돌았다. 마을로 내려갈 때마다 맹골이는 호위하듯 곁에 붙어 있었고 길목을 지키는 개들은 투덜거리며 비켜났다. ‘저 인간에게 도대체 뭘 얻어먹은 거야.’

1987년 4월에 설립된 맹골도 교회. 쓸쓸한 모습이 섬을 닮아 간다
1987년 4월에 설립된 맹골도 교회. 쓸쓸한 모습이 섬을 닮아 간다

●풍요로운 봄 섬

봄이 되니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 섬으로 돌아왔다. 그중에는 맹골이 주인도 있었다. 맹골이의 본래 이름은 ‘곰’이었다. 여객선이 들어오는 시간이면 오지 않는 주인을 기다리며 선착장을 배회하던 섬 개들에게도 봄은 행복한 계절이다. 맹골도를 찾을 때마다 알아보고 함께 시간을 보냈던 맹골이의 심경에 변화가 일어난 듯했다. 숙영지를 찾는 일도 없었고 마을에서 마주칠 때도 무심히 지나쳐 가기 일쑤였다. 묘한 배신감에 휩싸여 있을 무렵, 주민 누군가가 그 까닭에 관해 이야기해 줬다. “암캐가 들어왔지라.” 수컷 일색이던 맹골도에 파란이 일었다. 동내 개들은 난리가 나고 정적으로부터 암컷을 지켜야 했던 맹골이는 미처 내게 신경 쓸 틈이 없었던 것이다.

맹골도에 암캐가 들어오자 수컷들의 위계질서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맹골도에 암캐가 들어오자 수컷들의 위계질서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꽃이 피지는 않았지만 섬은 생기를 얻었다. 겨우내 몸집을 불린 거북손은 속이 꽉 차게 살이 올랐고 돌김도 부스스 제법 숱이 많아졌다. 낚싯배를 몰고 바다로 나갔던 노인은 빈손으로 돌아왔다. “아직은 파도가 세드라고. 허탕을 몇 번 해야 봄이 오는 거시제.” 거북손 따는 것을 도와드렸더니 최옥래 할머님께서 점심을 차려 주셨다. 밥상에는 미역국과 달래 무침이 오르고 양푼 가득 삶은 거북손도 있었다. “맹골도 미역국이니께 언능 먹어 봐. 상품하고 남은 부스래기로 끓였지만 정말 맛난당께.” 고깃국처럼 뽀얗게 우러난 국물의 깊은 맛도 좋지만 꼬독꼬독한 미역의 식감은 일반 미역과는 차원이 달랐다. 

몽덕도 일출은 먼 섬 여행자에게 주어진 선물이다
몽덕도 일출은 먼 섬 여행자에게 주어진 선물이다

봄이 되니 모든 것이 풍요롭다. 산에는 봄나물이 지천이고 바다도 기다렸던 만큼 보따리를 풀어낼 작정이다. 먼 섬에는 사람과 자연의 경계가 없다. 네것 내것 없이 함께 나누고 필요한 만큼 가져다 쓴다. 맹골이가 배웅이라도 할 것처럼 선착장까지 따라왔다. 그리고는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그곳에 남아 있었다. 오만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역시 사랑보다는 의리였어!’ ‘표정이 어두워 보였는데 혹시 차인 걸까?’  

맹골도 찾아가기 
진도에서 팽목-맹골 사이를 오가는 배편 섬사랑 9호가 매일 오전   9시에 출발한다. 소요시간은 3시간 30분. 출항 여부를 미리 확인하자. 
요금: 편도 1만3,600원
전화: 해광운수 061 283 9915


●맹골도 PLUS 
가 볼 만한 곳

▼맹골도 주변 여행지  

맹골도 옆 죽도
대나무가 많아 죽도 혹은 대섬으로 불렸다. 맹골도를 바라보고 오른쪽에 있는 섬으로 13세대 주민 수는 20명이 채 못 된다. 진도 팽목항에서 출항하는 여객선은 맹골군도에 이르러 곽도, 맹골도, 죽도에 기항한다. 낚시 배를 빌려 타면 세 개의 섬을 두루 오갈 수 있다. 선착장 부근에 마을이 있고, 섬 능선에 오르면 서쪽 해안으로 마치 굴업도의 개머리언덕을 연상시키는 길게 돌출된 곶과 넓은 초지가 펼쳐진다. 북동해안에는 ‘참새바위’로 불리는 전형적인 해식주가 있어 주변의 해식애와 함께 빼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맹골군도를 지키는 죽도등대
죽도등대는 1907년 세워졌으며 해방 무렵 폭격으로 파괴된 후 몇 번의 개축을 거쳐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인천과 목포항 등에서 동중국해나 제주를 오가는 화물선은 맹골군도 부근을 지나게 되는데 등대는 그 길목에서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과거에는 유인등대로 섬주민의 애환과 함께하였지만, 2007년 지킴이들이 떠나고 무인등대로 남겨지게 되었다. 안개가 심할 때 배에 신호를 전달하던 종탑과 어우러져 아련한 시절의 정서로 남아 있다.

미역섬 곽도
미역 곽(藿)자를 써서 이름 그대로 미역섬이다. 맹골도의 왼편에 자리하고 있으며 맹골군도의 유인도 중 그 크기가 가장 작다. 할머니 세 분만이 상주하고 있으며 임산부를 비롯한 여성들에게 좋은 자연산 미역이 많이 채취되는 곳이라 ‘여자의 섬’으로도 불린다. 섬 전체가 깎아지르는 듯한 암석 해안을 두르고 있고, 몇 안 되는 가옥들이 섬 능선의 평지, 돌담을 사이에 두고 비좁게 들어서 있다. 섬으로 가는 길은 매우 불편하지만, 낚시 포인트로 유명해 사계절 많은 낚시꾼이 찾아 든다.

 

▼맹골도 봄날의 먹거리  

임금님 드시던 돌미역
예로부터 임금님에게 진상되었던 최상품 미역으로 일명 ‘조도각’으로 불린다. 7~8월 일정 기간만 채취해 자연 해풍으로 건조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맹골군도의 자연산 돌미역은 거친 파도를 맞으며 자생하기 때문에 식감이 꼬들꼬들하며 끓인 후에도 흐물거리지 않는다. 맹골군도에 주소를 두고 있는 사람만 미역을 채취할 자격이 있는데, 이들은 정월이면 한데 모여 썰물에 드러난 바위를 청소해서, 미역이 잘 붙도록 ‘갯닦이’ 작업을 한다. 그런 정성 덕에 맹골군도산 자연산 돌미역은 한 뭇(20장)에 60만~90만원을 호가한다.

‘이불’이라 불리는 돌김
맹골군도의 돌김은 상품으로 만들었을 때 이불처럼 두껍고 커서 덮을 수 있다고 하여 ‘이불김’으로 불린다. 갯바위 등에 자생하는 돌김은 썰물 때 채취해 엮은 발에 사각 모양으로 널어 말린다. 주로 겨울에서 이른 봄에 수확하며 섬 주민들은 국에 넣어 끓여 먹기도 한다. 고소하고 달짝지근한 맛이 나는 것이 특징이며 일반 재래김보다 식감이 있고 구우면 바삭하다.

굵고 찰진 거북손
섬사람들은 ‘보찰’이나 ‘공룡발톱’으로 부르기도 한다. 바닷가 갯바위 틈새에 군락을 이뤄 자생하며 해안에서 멀리 떨어질수록 알이 굵다. 칼이나 꼬챙이를 사용해 뿌리부터 채취해야 하며 주로 삶아 먹거나 알맹이를 내어 무침 반찬으로 상에 올린다. 통통한 몸통의 껍질을 제거하면 속살이 나오는데 식감은 찰지며 부드럽고 전복과 소라의 중간 정도의 맛이다. 

 

글·사진 김민수(아볼타)  에디터 천소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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