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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의 작은 이야기책

Historic Palace

  • Editor. 임한솔
  • 입력 2020.03.02 14:1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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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면 따분하고 알면 보석처럼 귀한 것이 궁전 여행이다. 
포르투갈에서 보물을 찾았다. 

Palácio da pena ©포르투갈관광청
Palácio da pena ©포르투갈관광청

편히 들어가 보겠습니다

이베리아반도를 양분하고 있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비슷하면서도 매우 다르다. 80일간의 여행 기간에서 5분의 1 정도를 포르투갈에서 보낸 것은, 두 나라가 자치하고 있는 면적 및 비율과 비슷하다. 즉, 포르투갈에 대한 나의 애정의 지분은 결코 작지 않다. 상징적이지만 아직도 왕이 있는 스페인과 달리 포르투갈의 군주제는 110년 전, 1910년 10월5일 혁명으로 막을 내렸다. 1,050년간 이어졌던 역사의 한 챕터의 그렇게 넘어갔다. 주인이 없어서인지 사진 촬영에도 너그러웠던 포르투갈의 궁전들. 그곳에서 찾아낸 과거의 이야기는 내 여행의 추억과도 겹쳐 있다. 
포르투갈 궁전 정보
홈페이지: www.palacioajuda.gov.pt  
전화: 351 213 637 095

ⓒ임한솔
ⓒ임한솔

●이렇게 기묘해도 되나요?   
신트라 페나 궁전 Palacio Nacional da Pena


신트라(Sintra)는 영국의 시인 바이런이 에덴동산이라고 극찬한 곳이다. 그런 신트라 여행의 대미를 장식하는 곳이 페나 궁전이다. 원래 수도원으로 지어졌던 페나 궁전은 1755년 리스본 대지진으로 폐허가 된 뒤 방치되었다. 1885년에야 여왕 마리아 2세의 남편인 페르디난트 2세가 현재의 모습으로 재건했고, 이후 왕실의 여름 별장으로 사용됐던 곳이다. 푸른빛의 아줄레주(Azulejo, 포르투갈의 독특한 타일 장식)로 장식된 페나 궁전의 외벽은 강렬한 원색의 조합이 인상적이었다. 마치 거인이 쌓은 레고성 같기도 한데, 그 거인의 이름은 독일 출신의 건축가 폰 에쉬붸게 남작이다. 페나 궁전은 그가 중세부터 근대까지 무어, 르네상스 리바이벌, 네오 마누엘 등 다양한 건축 양식을 쏟아 부은 결과다.


페나 궁전의 입구에서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은 포세이돈의 아들 트리톤의 조각상이다. 상반신은 인간, 하반신은 물고기인 그가 테라스 한 개를 통째로 짊어진 채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복잡한 외관 못지않게 내부 관람 동선도 미로 같다. 다양한 용도의 방마다 실제로 당시 왕족들이 사용했던 가구들이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다. 곳곳에서 보이는 이슬람 문양과 장식은 국토를 회복하는 과정에서 빈번하게 이슬람과 접촉하며 주고받았던 문화적 영향의 결과다. 그리고 그 문화 수용력의 최대치를 실험한 결과가 바로 지금 페나 궁전의 기괴하면서도 아름다운 모습이 아닐까. 

페나 궁전
주소: Estrada da Pena, 2710-609 Sintra
운영시간: 공원 10:00~18:00
입장료: 성인 14€, 청소년 12.5€

Queluz National Palace, Sintra ©Turismo Cascais
Queluz National Palace, Sintra ©Turismo Cascais

 

●베르사유와 아줄레주가 만나면 
켈루스 궁전 Palacio Nacional de Queluz

켈루스 궁전은 포르투갈의 베르사유 궁전이라 불린다. 건설 당시 대지진을 겪으면서 다양한 양식이 결합된 궁전으로 탄생했지만, 1934년에 대화재를 겪어서 원형은 대부분 소실되어 버렸다고. 하지만 이런 사실을 짐작도 못할 만큼 현재의 켈루스는 화려하다. 미로 같았던 페나 궁전과 다르게 켈루스 궁전은 로코코 양식에 맞게 우아하고 세련된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금으로 장식된 각 방에는 은은한 조명이 내려앉아 있었다. 대사의 방에는 의자 2개가 서로 마주 보며 쌍으로 배치되어 있다. 귀족과 사신들이 국왕 부부를 영접하던 곳이다.

켈루스 궁전과 관련해서 대표적인 인물은 포르투갈의 23대 군주인 도나 마리아 1세 여왕이다. 남편이 죽고, 2년 뒤 장남까지 잃은 그녀는 나폴레옹의 침략을 피해 수도를 브라질로 옮기는 등 고초를 많이 겪은 비운의 여왕이다. 

©임한솔
©임한솔

밖으로 나와서야 비로소 포르투갈의 베르사유 궁전이라 불렸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정성스레 가꾼 정원에서 바라본 켈루스 궁전의 모습은 우아했다. 하얀 파사드 좌우로 뻗은 통로는 백조를 연상시킨다. 여기에 더해진 포르투갈만의 아름다움이 있으니, 바로 아줄레주다. 포르투갈 전역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장식이지만, 아줄레주로 만든 수로, 다리, 벽 등등, 이곳만큼 아줄레주를 아낌없이 그리고 아름답게 사용한 곳은 없었다. 

켈루스 궁전
주소: Largo Palacio de Queluz, 2745-191 Queluz  
운영시간: 09:00~18:00
입장료: 성인 10€, 청소년 8.5€

©임한솔
©임한솔

●마지막과 시작의 만남
아주다 궁전 Palacio  Nacional  da  Ajuda

아주다 궁전은 포르투갈 근대사의 중요한 현장이다. 주인공은 입구에 동상으로 서 있는 카를루스 1세다. 지금의 아주다 궁전을 완성한 그는 포르투갈 군주 중 드물게 암살로 생을 마친 인물이다.

때는 1908년, 장소는 코메르시우 광장, 시작하는 음향은 5발의 총성이다. 광장을 행진 중이던 왕의 가족에게 공화당 지지자가 총격을 가하면서 카를루스 1세는 현장에서 사망했고, 후계자인 장남 루이스 필리프도 20분 뒤 사망하고 말았다. 충격에 빠진 포르투갈 왕실은 서둘러 왕위를 차남 마누엘에게 계승했는데, 그가 바로 포르투갈의 마지막 왕, 마누엘 2세다.

후대인들은 그를 ‘오 제즈벤투라두(o Desventurado)’라고 불렀는데, ‘불행한 자’라는 뜻이다. 이유가 있다. 18세에 갑자기 왕위에 오른 마누엘 2세는 여러 당권파에 밀려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고, 군주제를 반대하던 공화당의 세력이 커지면서 마침내 혁명을 맞이하게 되었다. 포르투갈어로 아주다(Ajuda)는 도움을 뜻하지만 그를 도울 세력은 없었던 것. 1910년 왕족들이 모두 망명할 때까지 궁을 지킨 것은 카를루스 1세의 모친이자 당시 왕태후였던 마리아 피아였다고. 

©임한솔
©임한솔

아주다 궁전은 나폴레옹의 침략과 재정적인 이유로 여러 번 건축이 중단되었다가 재개되는 과정에서 계속 설계가 수정된 건물이다. 그런 연유로 내부 공간과 인테리어는 더 개성이 넘치고, 포르투갈 마지막 왕족들의 삶과 애절한 스토리까지 엿볼 수 있으니, 그냥 지나치기 아까운 곳이다. 

아주다 궁전
주소: Largo Ajuda, 1349-021 Lisboa  
운영시간: 10:00~18:00  
입장료: 5€

 

*역사를 전공한 임한솔씨는 80일간 이베리아반도를 여행한 적이 있었다. 그렇게 발로 역사책을 읽어 가는 중에 발견한 가장 풍성한 이야기 보따리는 역시 궁전이었다. 

글·사진 임한솔  에디터 천소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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