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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질 무렵 로맨틱 리스본

Romantic Lisbon

  • Editor. 김준희
  • 입력 2020.03.02 14: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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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에 잘한 일 두 가지를 꼽으라면 
첫 번째는 아내와 결혼한 것,
두 번째는 리스본으로 신혼여행을 다녀온 것이다.

A View from Miradouro Porta do Sol ©포르투갈관광청
A View from Miradouro Porta do Sol ©포르투갈관광청

7개의 언덕마다 빛나던 그것 
리스본과 로마의 공통점은 7개의 언덕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로마와 리스본의 풍경이 그토록 다른 이유는, 탁 트인 바다 풍경 때문이다. 매일 조금씩 다른 얼굴의 일몰이, 항상 그녀의 오른쪽 뺨으로 떨어지는 그 시간이 영원히 반복되었으면 했던 여행. 역시 다녀오길 잘했어! 리스본 허니문. 
 

●무르익은 와인 한 병
포르타스 두 솔 전망대 Miradouro das Portas do Sol

드넓게 펼쳐진 붉은색 지붕과 넘실대는 강물 위로 황금빛 석양이 드리워질 때쯤 28번 트램을 타고 그녀와 함께 포르타스 두 솔 전망대에 올랐다. 리스본을 구성하는 5개의 지구 중 알파마 지구에 있는 포르타스 두 솔은 가장 석양이 아름다운 곳으로 꼽힌다. 리스본의 전경을 배경으로 나를 바라보던 그녀는 노을빛에 물들어 한층 더 사랑스러워 보였다.

파스텔 빛 가옥 너머로 테주강이 내려다보이는 바(bar) ‘비스타스(Vistas)’의 야외 테라스에 자리를 잡았다. 붉은 노을을 배경 삼아 기울이던 포르투 와인이 어찌나 달콤하던지. 노을을 바라보며 와인 한 잔을 기울이는 영화 속 로망을 실현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멀리 광장에서 버스커들의 음악이 들려왔고, 우리는 말 없이 잔잔한 음악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내 어깨에 기댄 작은 머리 위에 나도 살짝 머리를 뉘었다. 그렇게 한동안 저물어 가는 노을을 바라보았다.

Lisboa ©Turismo Lisboa
Lisboa ©Turismo Lisboa

●카메라가 없어도 좋아
알칸타라 전망대 Miradouro de Sao Pedro de Alcantara

여행 둘째 날, 붉은 지붕 위로 내리쬐던 석양이 잦아들 때쯤 그녀의 손을 잡고 올라간 곳이 있다. 알칸타라 전망대에는 조명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나란히 벤치에 앉아 석양을 바라보는 시간, 둘 다 말도 잊은 채 조용히 흘러가는 시간에 순종했다. 사진은 찍지 않았다. 가끔은 마음에만 담아 두어도 충분한 풍경이 있는데, 알칸타라 전망대의 노을이 꼭 그랬다.

그날의 아름다운 노을은 로맨틱한 저녁을 위한 가장 완벽한 전채요리이기도 했다. 알칸타라 전망대에서 파두가 울려 퍼지는 레스토랑이 즐비한 골목까지는 걸어서 5분여밖에 걸리지 않는다. 노을과 파두, 포르투갈 요리까지 일석삼조의 밤이었다. 참고로 알칸타라 전망대는 영화 <리스본행 야간열차>에도 등장한다. 

Lisboa ©Carlos Gil

●세상 모든 일몰은 그녀와
상 조르제성 Castelo de Sao Jorge

택시를 부르자던 그녀의 선택은 신의 한 수였다. 리스본의 가장 높은 언덕 위에, 제일 오래전 자리 잡은 상 조르제성까지는 좁고 굽이진 언덕길이 계속됐다. 성벽 위에 오르니 리스본 시내의 모든 전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었다.

구불구불 이어진 성벽을 따라 걷는 동안, 시시각각 변하는 풍경에 맞춰 노을의 색이 다채롭게 눈을 간지럽혔다. 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성벽에 앉아 노을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시간이 너무나도 짧게 느껴졌다.

성의 역사는 기원전 7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로마인들이 터전을 잡고, 11세기에는 포르투갈을 정복한 무어인들이 성을 축조했다. 대항해 시대의 전성기와 스페인 점령기를 거친 후 1371년에 포르투갈 캐서린 공주와 영국 찰스 왕세자가 결혼할 당시 양국이 우호협정을 맺으면서, 영국의 수호성인 세인트 조지에게 성을 헌정한 것이 현재 성 이름의 유래다. 그런 통 큰 결혼 선물이 없으면 어떠하랴. 오랫동안 노을을 바라봐 온 성벽처럼, 우리가 보았던 노을을 20년, 30년 후에도 함께 보자며 손가락을 걸었다.

Cabo da Roca, Sintra ©AndreCarvalho

●다시없을 특별한 증명서
로카곶 Cabo da Roca

리스본 여정의 마지막 날, 세상의 끝을 향해 차를 몰았다. 유라시아 대륙의 최서단이라는 로카곶까지는 차로 1시간 정도가 걸렸다. 사랑하는 사람과 세상의 끝까지 가 본다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경험은 아니니까. 우리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로카곶에 도착했다. 신트라-카스카이스 국립공원(Sintra-Cascais Natural Park)에 속하는 해안가를 따라 수려한 절경이 펼쳐져 있었고 수평선 너머로 붉은 태양이 가라앉고 있었다.

그 장엄한 광경을 잠시 말을 잊은 채 바라보았다. 북대서양을 맞아 선 해발 150m 높이의 절벽에 옛 성은 사라지고 등대만이 땅끝을 지키고 있었다. 빛으로 부서지는 파도를 바라보다 그녀의 귓가에 조그맣게 사랑을 속삭였고, 잠시 주위를 둘러보고는 용기를 내어 더 크게 사랑한다 외쳤다. 그래도 괜찮았다. 대서양의 바람이 둘만의 이야기를 소중하게 지켜 주었으니까. 돌아오기 전 관광사무소에 들렀다. 11유로를 내니 세상의 끝에 도달했다는 증명서를 발급해 주었다. 우리의 이름이 새겨진 다시없을 특별한 사랑의 증명이었다.

Monumento dos Descobrimentos ©Turismo Lisboa

●새록새록 발견하는 사랑
발견기념비 Padrao dos Descobrimentos

모자이크 타일로 대형 나침판이 새겨진 광장(Rosa dos Ventos)에 나란히 서서 발견기념비를 올려다보았다. 1960년 항해왕 엔리케의 사후 500주년을 기념해 엔리케왕을 포함한 33인의 포르투갈 탐험가를 새긴 기념비인데, 당장이라도 바다로 나갈 듯 생생한 모습이다.

전망대로 앞서 가던 그녀가 갑자기 탄성을 내뱉었다. 제로니무스 수도원, 4월25일 다리, 벨렘탑(Torre de Belem, 벨렘은 ‘베들레헴’을 뜻한다)까지, 리스본의 랜드마크가 한눈에 들어오는 환상적인 풍경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반전을 위해 좁은 엘리베이터와 계단으로 세심하게 각본을 짜둔 듯했다. 뉘엿뉘엿 수평선을 향해 가던 해가 아쉬운 듯 벨렘탑 꼭대기에서 잠시 숨을 돌리던 사이, 조막만 한 손으로 셔터를 누르던 그녀의 얼굴에 노을이 비쳤다. 순간 나도 모르게 카메라를 들었다. 뷰파인더 속 그녀를 보는 순간 다시 한번 사랑에 빠졌다. 

 

*번역가로 일하는 김준희씨는 모두가 이해하는 언어로 여행을 풀어내기 위해 문장을 다듬는 중이다. 가장 날카로운 독자, 아내의 평가가 그를 더 단련시킨다고. 

글 김준희  사진제공 포르투갈관광청  에디터 천소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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