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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준씨 뭐가 그렇게 좋아요?

  • Editor. 임재운
  • 입력 2020.04.01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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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라는 여행은 쉬지 않고 계속되지만, 여행은 지치면 잠시 쉬어 가면 된다. 멈춰 선 여행자는 무엇을 바라보고, 무엇을 꿈꾸고 있을까? 
한 줄기 바람을 따라 제주 성산에 작은 공간을 연 사진작가 김병준씨를 만났다.

200번 넘게 가서 찍은 순간, 한라산 둘레길. ‘비밀의 숲(2020)’
200번 넘게 가서 찍은 순간, 한라산 둘레길. ‘비밀의 숲(2020)’

미리 보는 에필로그  
바람과 만나다 

미로 같은 돌담길, 아직 채 피지 않은 동백나무, 하얀 낙서로 가득한 무쏘, 초록 잎사귀에 반쯤 가려진 작은 건물, 입구 앞에 쓰인 특이한 이름 ‘조아가지구’. 설계부터 인테리어까지 김병준 작가 본인이 직접 꾸민 이 독특한 사진관 겸 갤러리는 그가 직접 모은 지구별 조각들로 가득했다. 드디어 그를 만나게 된 것이다! 

여자친구와 나는 여행을 준비 중이었다.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여행하는 게 가능할까?’ 이 물음의 답을 찾기 위한 여행이었다. 그 과정에서 김병준 작가와의 만남은 바람과의 만남이었다. ‘이게 정말 옳은 선택일까?’ 여행 전 망설이던 나의 등을 한 줄기 바람이 떠밀어 주었다. 여행의 문은 정말 쉽게 열렸다.

지금 나는 프리랜서 여행작가로 발리에서 글을 쓰고 사진을 찍고 있다. 여자친구는 예술 활동을 하며 6개월간 동남아에 머무는 중이다. 여행과 함께 내가 이루고 싶은 꿈을 이뤄 나갈 수 있을지 실험해 가는 과정이다. 이 여행의 끝에서 내가 김병준 작가처럼 프로 사진작가가 될 수 있을지 혹은 무엇이 될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카메라를 들고 나선 지금, 오늘 하루도 불어오는 바람이 참 기분 좋다. 우리 커플의 여행 이야기는 블로그 ‘시시한 것들에도 히히 웃는 히시 여행기’로 전하고 있다.  
블로그 @hisiworld

김병준 작가는 지금, 제주도에서 풍경을 찍고 있다. ‘높은 오름에서 바라본 일출(2019)’
김병준 작가는 지금, 제주도에서 풍경을 찍고 있다. ‘높은 오름에서 바라본 일출(2019)’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먼저 자기 소개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조아가지구’를 운영 중인 사진작가 김병준이라고 합니다. 저는 지금 제주도에 살면서 지구의 조각을 모으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지구의 조각이요?

제가 사진으로 담는 프레임 하나 하나를 조각이라고 부르고 있어요. 저는 제주도뿐만 아니라 제가 돌아다니는 세계 여행을 지구 여행이라고 표현해요.


-오, 그럼 지금까지 조각은 얼마나 모으셨나요?

사진가가 되면서 해외 촬영 겸 여행을 많이 했고, 2년 동안 유라시아 대륙 횡단을 하긴 했지만 다양한 나라를 가 보진 않아서 앞으로 갈 나라가 더 많아요. 열심히 여행하면서 더 많은 조각을 모으려 합니다. 지금은 더 멀리, 더 오래 여행하기 위해서 제주도에 머물고 있습니다.

오스트리아에서 마주한 풍경. ‘그림 속의 나(2018)’
오스트리아에서 마주한 풍경. ‘그림 속의 나(2018)’

-조각은 언제부터 모으기 시작했나요?

처음부터 사진작가로 시작하진 않았어요. 영남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한 후에는 전공을 살려 건축 회사에 취직했죠. 당시에 꿈과 현실에 대한 고민이 많았는데 나름 타협해서 해외 지부로 발령을 받아서 여행도 하고 일도 해야겠다 싶었어요. 그런데 입사하고 조금 지나서 해외 사업부가 없어졌어요. 갑자기 회사에 다녀야 할 이유가 없어지더라고요. 고민 끝에 하고 싶은 일을 해야겠다 싶어 2년간의 회사 생활을 정리하고 사진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퇴사하자마자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신청하고 카메라 하나 달랑 손에 들고 나갔어요. 재밌는 건 제가 원래 사진 실력이 별로였어요. 그래서 주변 사람들이 다 걱정했죠. 저도 사실 호주에 사진 찍을 기회가 있어서 간 건 아니고 막연하게 ‘일단 가서 해보면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마음으로 갔어요. 호주에 가서 낮에는 아르바이트하고 시간 날 때마다 길에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죠. 길 위에 사람이 보여서 사람을 찍기 시작했고, 그중에 가장 멋있는 사람을 골라 찍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저도 모르게 길 위에서 패션 트렌드를 찍는 직업을 갖게 되었죠.


-거리에서 사진가가 된 거네요?

제가 찍은 사진을 SNS에 올렸는데 그 사진을 보고 저를 인터뷰하신 분이 ‘스트리트 포토그래퍼’라고 소개하시더라고요. 그때 ‘아, 내가 이런 직업을 가지게 되었구나’ 하고 처음 알게 되었어요. 이후에 여러 패션 브랜드랑 계약을 맺고 사진을 찍게 되었어요. 해마다 2번, 3월, 9월에 뉴욕, 런던, 밀라노, 파리를 도는 패션 행사가 있어요. 그때 브랜드랑 계약을 맺고 가서 화보 촬영도 하고 여행도 같이 했었죠. 여행하면서 사진을 찍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에서 시작해서 여기까지 오게 된 거예요. 이렇게 3년간 사진가로 일하던 중에 여자친구를 만나게 되었고, 유라시아 대륙으로 떠났던 거죠.

폭풍을 뚫고 도착한 아이슬란드
폭풍을 뚫고 도착한 아이슬란드

-건물 입구에 낙서 가득한 무쏘 자동차가 있더라고요. 그걸 타고 떠나신 건가요?

네, 2년 동안 저 무쏘를 타고 유라시아 대륙 횡단을 했어요. 차 안에서 먹고 자고 하면서 차박 여행을 했어요. 다녀온 나라가 러시아부터 몽골, 우크라이나, 루마니아, 크로아티아 등 총 22개국 정도 되네요. 원래부터 이렇게 가야겠다, 계획된 여행은 아니었어요. 가지고 있던 무쏘를 캠핑카 업체에 맡겨서 170만원 예산으로 사람이 누울 수 있게만 간단히 개조했죠. 현금 400만원을 들고 나가서 돈이 다 떨어지면 들어오자 싶은 마음으로 나갔었죠. 그런데 여행을 하면서 사진도 찍고 글도 쓰고 이런저런 일을 하다 보니 여행을 계속할 수 있었네요.
 

-왜 차를 타고 유라시아 대륙 횡단을 시작했나요?

대학생 때부터 여행을 엄청 좋아했어요. 그래서 방학 때 바짝 돈을 벌고, 해외에 나가기를 반복하며 15개국 정도 여행을 다녔어요. 그때는 기차 타고, 버스 타고 여행을 다녔는데 창밖으로 보이는 멋진 풍경을 보고 멈추고 싶어도 멈출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언젠가는 ‘내가 멈추고 싶을 때 멈추는 여행을 하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고 그게 유라시아 자동차 횡단으로 이어진 거예요. 굉장히 막연한 꿈이었는데 꼭 하고 싶다는 강한 생각이 옛날부터 있어서 과감하게 떠나게 됐죠.
 

9개월을 달려 도착한 파리
9개월을 달려 도착한 파리

-유라시아 대륙 횡단이라, 쉬운 여행이 아니었을 것 같은데 걱정 같은 건 없었나요?

사실 출발할 때 자금이 넉넉지 않아서 돈이 언제 떨어질지 모르겠다는 불안함이 항상 있었어요. 아! 그리고, 저희가 사실 캠핑을 좋아했던 사람이 아니어서 러시아에서 했던 캠핑이 아마 첫 캠핑이었어요. 그래서 ‘얼어 죽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죠. 겨울에 러시아에서 여행을 시작했는데 러시아로 가는 배를 운영하시는 담당자가 저희한테 ‘겨울에 여행을 목적으로 횡단하는 사람은 처음 봤다’고 하더라고요. 실제로 너무 추워서 차에서 먹고 자는데 군대에서 했던 혹한기 훈련을 두 달 내내 하는 기분이었어요. 영하 22도는 기본이었고 제일 많이 떨어졌을 때는 영하 34도까지 떨어졌어요. 그 상황에서 시동도 켜지 않고 극동계용 침낭 하나 뒤집어쓰고 버텼죠. 이런 거 하나도 모르고 그냥 막연하게 ‘멈추고 싶을 때 멈추는 여행을 해야겠다’, 그 생각만 하고 떠났던 거예요. 
 

-그렇게 추운 날씨에 여행을 다녔다니 정말 대단하네요.

몰랐기 때문에 갈 수 있었어요.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그러잖아요. 아마 그렇게 힘들 줄 알았으면 시작도 못 했을 거예요. 그런데 막상 가니까 정말 추웠지만 한 번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어요. 매 순간순간이 너무 좋았고, 멋있고, 행복했어요. 진짜 사랑하는 사람이랑 함께 가니까 (많이 다투기도 했지만) 그 순간을 함께한다는 게 너무 좋아서 ‘아 이 여행을 계속하고 싶다’ 생각했어요. 그래서 오만가지 업체에 다 연락해서 일 좀 달라고 메일도 보내보고 여행을 지속하기 위해 고군분투했었죠. 불법으로 설거지 아르바이트도 하고 그랬어요.

 

-행복했다는 이야기를 하셨는데 어떤 순간이 기억에 남나요?

사실 90퍼센트가 힘들었고 10퍼센트가 그렇게 행복했어요(웃음). 음, 매일 다른 아침을 맞이하는 게 정말 좋았어요. 솔직히 엄청 추웠지만 그게 제가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이었거든요. 내가 그렇게 바랐던 여행이었으니까 매 순간이, 그 아침이, 그렇게 느껴졌던 것 같아요. 앞에도 말했지만 혼자가 아니라 함께하는 사람, 그것도 사랑하는 사람이 함께 있었다는 게 또 달랐어요. 제가 대학생 때는 유럽에서 한국으로 오는 여정으로 여행을 했었는데. 이번에는 반대로 한국에서 유럽으로 가는 여정을 여자친구와 같이 하니 감회가 새로웠죠. 좋아하는 걸 혼자 보는 것과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보는 게 또 다르더라고요. 그래서 여행이 더 행복했고 더 계속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유라시아 횡단 중 겨울 아침마다 마주했던 풍경
유라시아 횡단 중 겨울 아침마다 마주했던 풍경

-이번엔 반대로 고생했던 기억은 없어요?

타이어 펑크는 말할 것도 없고 여행 초반에 차가 도랑에 자주 빠졌어요. 저 길로 가 보면 왠지 멋있는 풍경이 나올 것 같아서 갔는데 그게 길이 아니라 꽁꽁 얼어 있던 물웅덩이더라고요. 그게 갑자기 내려앉은 거죠. 물 위에 둥둥 떠 있던 셈이에요. 여자친구를 차에 놔두고        1시간 동안 뛰어가서 마을에 도움을 요청했어요. 말도 통하지 않는데 사진을 보여 주면서 도와 달라고 손짓 발짓을 다 했죠. 이 일 말고도 비포장도로가 많다 보니까 타이어가 빠져 버리기도 했어요. 평지였기에 다행이지 절벽이었으면 지금 이 인터뷰를 할 수도 없었을 거예요.    도랑에 빠진 분들을 도와주려고 내렸다가 차 키를 안에 둔 채로 문이 잠겨서 다시 그분들께 도움을 받은 적도 있고요. 길 가다가 목이 너무 말라서 눈을 녹여서 물을 마셔 본 적도 있어요. 

 

-제주도엔 어떻게 오게 되셨나요?

원래 저는 여행이 끝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2년 동안 무쏘를 타고 돌아다니는 동안 일이 계속 들어와서 충분히 지속 가능한 상황이었는데 그때 당시에 저도 모르게 조금 지쳤던 것 같아요. 뭔가 막연한 불안감도 있었고. 갑자기 더는 할 수 없겠다 싶더라고요. 그렇게 ‘한국에 돌아와서 뭐 하지?’ 고민하다 제주도에 사는 아는 형님과 같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고 이곳에 오게 되었어요. 사실 제주도는 언젠가는 한 번 살아 보고 싶었던 섬이었어요. 한국에 산다면 빌딩 사이에서 사는 답답한 생활은 더 이상 못할 것 같았고 자연이 가까운 제주도에서 살고 싶었어요. 

아이슬란드의 폭포. ‘달콤함 악마의 목구멍(2018)’
아이슬란드의 폭포. ‘달콤함 악마의 목구멍(2018)’

-‘조아가지구’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처음에는 제 개인 사무실을 만들려고 빌렸어요. 그러다 보니 공간이 굉장히 외진 곳에 있어요. 주변엔 그 흔한 카페 하나 없구요.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아서 돌담길도 그렇고 동네가 굉장히 예뻐요. 막상 제 사무실 인테리어를 직접 하다 보니까 뭔가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아,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면 좋을 텐데 하다 보니 기본 틀만 빼고는 처음 계획과 완전 다르게 만들어졌어요.
 

-직접 만드는 데 힘든 일은 없었나요?

계약금을 넣고 한 일주일 지난 후부터 태풍이 세 번을 방문했어요. 비가 억수같이 오니까 그동안 보이지 않던 물 새는 게 보이더라고요. 전기공사도 안 돼서 불도 들어오지 않는 이 작은 창고에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어요. 계약금을 포기하고 그냥 그만둘까 이런 생각도 엄청 했어요. 제가 건축 전문가가 아니다 보니 그라인더로 쇠를 자르다가 손도 크게 다치고 고생을 많이 했어요. 솔직히 너무 힘들었어요. 제가 좀 안다고 생각했는데 실전이랑 지식은 다르더라고요. 모르는 게 많아서 80일 동안 주변 사람들에게 많이 묻고 유튜브도 보고 배우면서 했어요.
 

-그렇게 고생하면서 만든 ‘조아가지구’는 어떤 공간인가요?

‘조아가지구’라는 이름은 지구가 좋아서, 지구의 조각을 전시하는 곳이라는 의미가 있어요. 갤러리 겸 사진관으로 쓰고 있고, 더 나아가서는 여행 강연도 하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복합 문화공간이죠. 그런데 누구는 ‘병준이 하고 싶은 거 다 해’ 공간이라고 하더라고요(웃음). 오픈 후 첫 번째 전시 주제는 ‘겨울’이었고, 두 번째로는 ‘바라던 바다’를 주제로 봄 전시를 준비 중이에요. 제가 직접 보았던 여러 바다에 대한 경험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3~4개월에 한 번씩 주제를 바꿀 예정인데, 섬이라는 주제로 단체전도 구상하고 있어요. 공간 한편에 암실이 있는데 제주도를 방문하는 여행자들에게 필름 카메라를 대여하고 직접 암실에서 현상할 수 있도록 알려주는 프로그램도 있어요. ‘당신의 순간’이라고, 갤러리 안에서 디지털 흑백사진 촬영을 하기도 하고, 일몰 출사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어요. 
 

-‘조아가지구’엔 어떤 사람이 찾아왔으면 싶나요?

여행자일 때 저는 스스로를 떠도는 바람이라고 생각하고 살았어요. 여행이 끝나고 나니 바람이 잠시 멈춘 거잖아요. 신기한 건 바람이 멈추고 나니 누군가가 또 바람이 돼서 저에게 와 주더라고요. 지금은 그런 바람을 기다리는 맛에 살고 있습니다. 더 많은 분들이 바람이 되어서 ‘조아가지구’에 와 주셨으면 좋겠어요. 바람이 많이 들를 수 있도록 여러 프로그램도 고민하고 이 공간을 알리려 노력하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조아가지구’를 찾아오는 분들께 한마디 해주시죠.

언제든 바람처럼 오시면 따스하게 맞이하겠습니다. 설령 태풍이 불더라도! 

지구의 조각을 모으는 
사진가 김병준 

‘무쏘 타고 세계 커플 여행’으로 유명한 인플루언서 겸 사진가인 김병준 작가는 오랜 ‘여행살이’를 잠시 멈추고 제주도에 머물고 있다. 지난해 연말 성산읍에 갤러리 겸 사진관 ‘조아가지구’를 오픈해 자신의 여행 사진들을 전시하면서 여행자들을 맞이하고 있다. 유라시아 횡단을 가능하게 해 주었던 그 유명한 무쏘의 실물도 마당에서 영접할 수 있다. 

조아가지구
주소: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난산로41번길 39-2 
영업시간: 매일 10:00~17:00(매주 수요일 휴무)

 

글 임재운 사진제공 김병준 에디터 천소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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