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유호상의 항공 이야기] 이불 밖은 원래 위험해

  • Editor. 유호상
  • 입력 2020.04.01 09: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직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비행 공포증에 시달린다. 
뉴스에 비행기 추락 사고라도 뜨는 날에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비행기에 비상용 낙하산을 달면 안 될까?’

낙하산을 쓸 수 없는 이착륙 때의 위험 확률이 가장 높다 ⓒHosangYou
낙하산을 쓸 수 없는 이착륙 때의 위험 확률이 가장 높다 ⓒHosangYou

●댓츠 굿 아이디어?

오래전 미국의 A 자동차 회사는 고민에 빠졌다. 자사의 주력 차종 부품 문제로 운전자가 사망하는 사고가 생겼고 유족은 거액의 손해배상을 청구한 상태였던 것. 사소한 듯했지만 부품의 결함으로 동일한 사고가 날 수 있었다. 문제는 이 부품의 설계를 바꾸는 것이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 것. 결론은 어떻게 됐을까? 이 회사는 소송과 배상금으로 막대한 비용을 지출했지만 결함 부품을 그대로 쓰기로 했다. 이유는, 부품 개선을 위해 설계와 생산 설비를 교체하는 비용이 워낙 컸기 때문이다. 오히려 지출이 커도 발생확률은 낮은 차량 결함 사고 및 소송 대응에 비용을 쓰는 편이 차라리 낫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여기서 기업 윤리, 뭐 이런 걸 따지려는 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세상 이치가 일어날 확률과 그 효율성을 기반으로 움직이기 마련이라는 점이다. 


비행기를 타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이런 생각을 해봤음 직하다. 비행 중 심각한 문제라도 생겼을 때 대책 없이 추락하지 않도록 비행기에 낙하산을 달면 어떨까(혹시라도 개별 승객들에게 낙하산을 지급하자는 얘기를 하는 사람은 없겠지)? 그런데 이런 생각을 구체적으로 그려 본 사람이 있었다! 실제로 몇 년 전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타타렌코((Vladimir Tatarenko)라는 발명가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이런 아이디어를 컴퓨터 애니메이션으로 선보였다. 비행기가 하늘을 날다 고장을 일으키자 모듈식 객실이 분리된다. 곧 낙하산이 펴지고 승객이 탄 객실은 안전하게 착륙한다. 마지막 착륙 순간에는 충격을 흡수해 주는 부이(Buoy)까지 펼쳐지는 치밀함을 보여 준다. 매우 그럴싸한 아이디어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정작 이 영상을 보고 드는 느낌은 ‘이 발명가가 진심으로 이걸 만들 생각으로 했을까?’였다. 어쩌면 그저 사람들의 관심과 조회 수를 노린 이벤트가 아니었을까. 왜냐면 조금만 ‘업계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어떤 항공기 제작사, 항공 운항사도 관심을 갖지 않을 내용임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차라리 낙하 체험을 즐기기 위한 레저용 비행기라면 대박을 칠지도 모르겠다. 

경비행기용 낙하산은 이미 실용화되었다  ⓒWikipedia
경비행기용 낙하산은 이미 실용화되었다  ⓒWikipedia

●노노, 현실은 달라요 

늘 그렇듯 우선 돈 문제다. 어떤 산업이든 표준 시스템이라는 게 있기 마련이다. 아무리 훌륭한 아이디어라 해도 공항이나 화물 등 각종 관련 서비스, 시설과의 연계가 중요하다. 단순히 비행기 형태만 바꿀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이다. 어마어마한 돈이 들어가는 일이다.


관건은 ‘이 돈을 투입할 만큼의 가치가 있는가’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역시나 이건 그럴 가치조차 없다. 비행기가 추락하는 경우는 대개 이착륙 과정이다. 이륙 후 3분, 착륙 전 8분이라는 일명 ‘마의 11분’이라는 말이 괜히 생긴 게 아니다. 이때는 무용지물이다. 비행기가 순항 중에는 어떨까? 이때는 고장으로 사고 날 일 자체가 거의 없다. 아주 간혹 있을 수 있지만, 이 경우는 조종사의 판단 착오, 실수가 대부분이다. 또는 충돌, 폭발처럼 그 어떤 조처도 할 수 없는 경우다. 다시 말해 설령 이런 아이디어가 실현된다 해도 객실을 분리하고 낙하산을 펼칠 기회가 사실상 없다는 얘기다. 승객이 몇 명에 불과하며 작고 단순한 경비행기의 경우 비상용 낙하산이 장착된 경우가 있긴 하다. 하지만 이 역시 항상 효과를 보는 게 아니다. 실제로 몇 해 전 국내에서 있었던 경비행기 추락 사고를 보면, 회전하면서 추락하는 통에 장착된 낙하산을 펼쳐 보지도 못했다. 


효율성의 문제도 있다. 기술과 비용 문제가 해결된다고 하더라도, 거대한 여객기를 매달 낙하산은 어디에 보관할 것인가? 한 번이나 쓸지 알 수 없는 낙하산을 비행기에 구겨 넣기 위해 정작 우리의 소중한 캐리어는 내려놓을 것인가? 복잡해진 비행기 구조물의 내구성은 또 어떻게 할 것인가? 이건 마치 길 가다 건물에서 벽돌 떨어질지 모르니 늘 헬멧을 쓰고 걷자는 것과 다르지 않다. 또는 교통사고가 두려워 자동차 충돌사고시 밖으로 탈출할 수 있는 전투기 사출좌석 같은 것을 만들어 달자는 생각과 같다.


지난 수십년간 비행기의 안전도는 비약적으로 발전해 왔다. 비행기가 자동차 여행보다 안전하다는 통계가 말해 주듯 생각해 보면 자동차 여행도 역시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차를 몰며 잘 가다가도 문득 중앙선 너머 차가 내게 돌진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등줄기가 오싹해진다. 비단 비행기 여행 얘기만은 아닌 것이다. 낮은 확률의 어떤 불안 요소에 집착해 노심초사하기보다는 생각의 방향을 바꿔 보는 게 어떨까? 

여객기용 낙하산 아이디어가 나왔지만, 현실성은 미지수 ⓒYouTubeCaptured_VladimirTatarenko
여객기용 낙하산 아이디어가 나왔지만, 현실성은 미지수 ⓒYouTubeCaptured_VladimirTatarenko

*유호상은 어드벤처 액티비티를 즐기는 여행가이자 항공미디어 에디터로 활동 중이다.
인스타그램 oxenholm
 
글 유호상  에디터 천소현 기자

저작권자 © 트래비 매거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최신기사
트래비 레터 요즘 여행을 알아서 쏙쏙
구독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