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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봄의 맛있는 재발견

이우석의 놀고먹기

  • Editor. 이우석
  • 입력 2020.04.01 09: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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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창원을 다녀왔다. 
벚꽃이 피어나기 전에 미리 마중 가는 심정으로 볕 좋은 남해안 창원시 곳곳을 훑었다. 
역시 선입견의 거죽을 벗기고 나니 많은 것이 또렷이 보인다. 
달력이 아니라 눈으로도 봄이 보였다. 분명히.

움이 터 오기 시작하는 창원의 봄
움이 터 오기 시작하는 창원의 봄

●봄볕 물빛 고운 창원의 봄

역병이 창궐하고 있는 여전히 추운 나라지만 봄이 오고 있었다. 활짝 피어난 매화 가지를 몇 번이나 보았다. 때깔 고운 동백도 부지기수였다. 비가 그친 터라 마산 창동 골목을 많은 이들이 메웠고, 진해 속천항에서는 푸른 물빛을 즐기러 온 관광객이 나른한 봄날의 춘곤증을 미리 즐기고 있다.


“담주버터 (미더덕이) 나올끼라예.” 마산 진동면 이층 횟집에서 만난 아르바이트 학생은 확고한 표정으로 단정했다. 그렇지, 이것은 자연의 이치다. 아무리 물 밖 세상에 인색한 볕과 비바람이 널을 뛴다 해도 바다는 그나마 정직한 편이다.

마산 이층횟집 미더덕 회
마산 이층횟집 미더덕 회

미더덕이 뭔가. 왕벚보다 일찍 봄을 알리는 물속의 봄꽃이 아닌가. 생긴 것은 못났지만 향 좋은 꽃이다. 미더덕의 ‘미’자는 물(水)의 옛말에서 나온 것으로 물에 사는 더덕이란 뜻이다(미나리도 마찬가지). 홍어니 곰치(꼼치)니 웬만한 것을 다 덤덤하게 표현한 정약전이 <자산어보>에서 ‘거시기’같이 생겼다고 놀린(?) 바 있는 미더덕. 미더덕과 척삭동물이다. 평생 한곳에 붙어사는 해초강이지만 먼저 사람들이 찾아오기 때문에 괜찮다. 창원 마산합포구 진동면에서 전국 생산량의 70% 가까이가 난다. 미더덕을 깨물며 느낀 봄의 향기는 무척 좋다. 바다 내음의 긍정적 부분만 담았다. 멍게가 거친 바다라면 미더덕은 잔잔하고 투명한 바다의 향을 낸다. 

마산 다정식당 아귀수육
마산 다정식당 아귀수육
마산 다정식당 아귀찜
마산 다정식당 아귀찜

창원에서 서너 끼를 먹노라면 아귀나 복은 무조건 맛봐야 돌아오는 길에 가슴을 치지 않는다. 아귀집은 오동동 아귀 골목(사실은 ‘아구’라 해야 정감이 간다)에 많이 있지만, 창원 어느 곳에나 있다. 투실투실하고 꼬득한 아귀찜이 맵싸리한 양념을 뒤집어쓴 채 기다리고 있다. 뜨끈한 아귀탕이나 마산식으로 말린 아귀찜을 맛봐도 특별하다.

마산 남성복국
마산 남성복국

마산만은 전국에서도 복어가 많이 잡히는 곳이다. 일찌감치 복어집이 많이 생겼다. 오동동 복집 골목에는 75년 된 집도 있다. 광복하던 해 생긴 곳도 지금까지 남아 있다. ‘남성복집’이다(여성복에 배치되는 말이 아니다).

마산 반월동 서호통술
마산 반월동 서호통술

뜨끈한 국물로 해장하기 좋으니, 전날 밤 뭐라도 해야 한다. 통술집을 다녀가면 좋다. 통술이란 마산 특유의 술 문화로 원래 술만 ‘통’으로 주문하면 안주는 이것저것 알아서 푸짐하게 내오는 방식의 술집을 말한다. 지금은 기본 한 상에 얼마 하는 식으로 바뀌었다. 반월동 서호통술을 갔다. 갈치구이, 열기구이, 조개류, 생선회, 생선찜 등 서울에선 한 접시에 돈 만원 이상 받을 만한 안주가 접시째 줄줄이 상에 오른다. 국물류에 간단한 반찬까지 없는 게 없다. 어찌 이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다. 


그 원천은 바로 시장이다. 마산어시장이 통술집의 심장이 되어 신선한 해물과 식자재를 값싸게 공급하는 덕이다. 통영 다찌집이나 진주 실비집, 전주 막걸리집 등이 통술집과 비슷한 시스템으로 운영한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오동동 통술 골목이 유명하지만, 신마산 반월동에도 따로 통술 거리를 두고 있다.

진해만의 푸른 봄바다
진해만의 푸른 봄바다

●나이 먹은 도시의 파릇함
푸른 봄(靑春)이라 부를까

늙은 도시는 개발이란 나이를 먹고 금세 허름해지지만, 창원은 오히려 ‘회춘’한 느낌이다. 100만명이 넘게 모여 사는 덕이다. 젊은 층으로부터 기운을 얻어 어려진다. 창원 용호동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과 진해 속천항, 마산 창동 등은 원도심과 낡은 어항의 주름을 활짝 펴고 한층 매끈해진 동안의 얼굴로 사람을 맞고 있다. 어딜 내놔도 꿀리지 않을 만큼 근사한 커피숍과 이색 레스토랑, 천혜의 바다를 든든한 배경으로 둔 바닷가 카페가 동선마다 있어 쉬어 가기에 좋다.

창원 용호동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
창원 용호동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은 창원 시민뿐 아니라 부산 등 인근에서 온 사람들, 멀리서 온 관광객, 출장자 모두에게 인기 높은 곳이다. 언뜻 보기에도 근사한 식당과 카페가 우뚝 솟은 아름드리나무 아래 즐비하다. 예쁜 가정집을 개조한 카페에서부터 레스토랑, 갤러리까지 있으니 창원 시민의 문화적 충전소가 되는 곳이다. 데이트를 즐기러 나온 젊은 커플들이 많다. 


멕시칸 음식으로 유명한 ‘토도스’를 갔다. 밖에 마련해 놓은 대기석부터 그 위세가 심상찮다. 정방형의 2변을 유리창으로 두른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으로 평일 점심이었지만 타코 등 요리를 즐기는 이들로 가득 찼다. “그래, 생선만 있는 게 아니었어.” 닭, 돼지, 소고기 등 다양한 재료와 소스를 맛있게 조리한 멕시칸 타코가 의외로 봄날의 입맛을 당긴다. 무료로 가져다 먹는 나초는 매콤한 칠리를 뿌려 더욱 맛나지만, 주 메뉴도 푸짐해 더 가져다 먹을 이유는 없다.

진해 속천항 카페 스위트랩 달달이
진해 속천항 카페 스위트랩 달달이
진해 속천항 카페 스위트랩 루프톱
진해 속천항 카페 스위트랩 루프톱

진해 속천항에는 최근 멋진 커피숍들이 많이도 생겼다. 도심과 가까워 바다를 보고 싶을 때 언제라도 다녀가면 되는 곳이라 강릉 안목항처럼 변모하고 있다. 어항이 내려다보이는 한 건물은 ‘달달이’를 파는 카페 ‘스위트랩’이다. 직접 빵과 디저트를 구워 파는데 맛도 보기에도 좋아 식후에 들러 쉬어 가기에 딱이다. 1, 2층도 좋지만 춥지 않다면 3층 루프톱에 올라 봄볕을 쬐면 된다. 딸기와 라즈베리 케이크를 들고 계단을 올랐다. 볕이 좋으니 봄으로 다가가는 계단이다. 옥상엔 바다를 바라보도록 비치체어와 아예 침대를 가져다 놓았다. 나른한 봄볕에 5분, 아니 1분 정도 살짜기 잠이라도 든다면, 그곳에서 파는 어떤 달달한 간식보다 달콤한 디저트가 될 듯하다.

달뜨는 비오리
달뜨는 비오리

진동 인근에도 호젓한 마산만 바다를 바라보는 해변 카페 ‘달뜨는 비오리’가 있다. 원래 펜션을 하던 집인데 한옥 2채를 개조해 근사한 커피숍으로 바꿔 놓았다. 외부도 좋지만 내부 공간도 편안하다. ‘쉼’은 내부에서, ‘구경’은 바깥에서 하면 좋을 듯하다. 로빈슨 크루소가 살았을 섬을 닮은 깜찍한 해변, 그 앞에 펼쳐진 옥색 봄 바다. 그리고 카페에서 새어 나오는 구수한 커피향은 떠나온 수고를 단숨에 희열로 바꾸기에 충분하다.


창원의 봄은 물밑으로, 들판으로 동시에 밀려들고 있다. 봄은 담장을 타넘어 꽃을 틔우고 식탁에 올라 미소의 꽃을 피운다. 도다리쑥국 국물에 섞인 봄의 향기는 당연히 남쪽에서 불어온 것이다. 역병과 불안을 날려 버릴 그런 훈풍이 틀림없으렷다.  

 

●‘마창진’이라고 아시려나?


창원은 천혜의 청정자연에 더한 역사 문화가 오롯이 잘 지켜져 오고 있는 곳이다. 특히 근현대사의 중심지역으로 무게감이 큰 지역이다. 그뿐일까. ‘곳간에서 인심 나고 밥상에서 예술이 난다’고 맛 좋은 음식문화에 예술적 향기마저 짙게 뱄다. 거품을 걷어 내기 위해 먼저 알아 둘 창원시의 통합과정은 이렇다. 1955년에는 마산시와 진해시, 그리고 창원군이 있었다. 처음엔 세 도시의 헤게모니 싸움에 창원은 가장 불리한 형국이었다. 일제강점기가 시작되던 1910년에는 마산부로 출범해 융성한 항구도시 마산과, 역시 그 즈음 일제에 의해 건설된 군항 진해시. 그리고 논밭 농사를 짓던 너른 평원 분지의 창원이 있었을 뿐이었다. 

진해
진해

하지만 1973년 국가 정책으로 개발을 시작한 창원이 1980년대 들어 그야말로 ‘벌떡 일어서’면서 흐름이 바뀌었다.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 마산 상권의 주요 소비층이 되면서 ‘창원 출신’이란 이들이 많아졌다. 급기야 2010년엔 창원으로 마창진을 통합해 버렸다. 초창기 잡음도 많았지만 사실 ‘0551’(DDD 지역번호)을 쓰던 두 도시와 군 가족이 많이 살던 진해는 유기적으로 잘 맞았다. 지금은 전국 어떤 통합 도시보다 화학적 결합이 잘 이뤄진 전례로 평가받고 있다.

마산 어시장 ©트래비
마산 어시장 ©트래비

▶inform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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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은 수도권에서 거리로는 멀지만 KTX고속열차가 관내 3곳(창원역, 창원중앙역, 마산역)이나 정차하는 편의성을 보유하고 있다. 역에서 공유차량이나 렌터카를 연계하면 바로 여행을 떠날 수 있다. 버스와 택시 등 대중교통도 광역시 급 수준을 자랑한다.
 
STAY  
숙소는 주로 마산과 창원 시내에 몰려 있다. 마산에는 창동과 어시장 인근에 깔끔한 관광호텔과 게스트하우스가 많고 창원은 상남동과 도심 쪽에 비즈니스 호텔이 널렸다. 특히 시내 유일한 5성급 호텔인 그랜드 머큐어 앰배서더 창원은 다양한 객실과 편의시설을 구비해 숙박에 방점을 두는 여행객에게 딱이다. 창원컨벤션센터(CECO)와 쇼핑몰이 함께 들어서 있어 이동 편의성이나 주변 환경도 좋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우석의 놀고먹기
‘저세상’ 유머 코드와 황당한 상황극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이우석 소장은 지난 연말 오랜 신문사 기자 생활을 마치고 ‘이우석놀고먹기연구소’를 열었다. 신나게 연구 중이다. 

 

글·사진 이우석  에디터 트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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