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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치게 좋았던 호짬에서의 시간

  • Editor. 곽서희 기자
  • 입력 2020.04.01 10:05
  • 수정 2020.04.01 10: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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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성한 도피처를 찾았다. 선라이즈 요가와 달빛 아래 수영. 
신선한 해산물까지 곁들이니 부족한 거라곤 시간뿐이다. 

그의 발걸음이 가벼울 것만 같다
그의 발걸음이 가벼울 것만 같다

●바다 향 섞인 작은 해변마을


일단은 소였다. 그게 시작이었다. 강아지처럼 마당에 나와 주인 곁에서 한가롭게 낮잠 자던 소 말이다. 다음은 들판이었다. 바람에 물결치는 초록빛 풀들이 끝없이 이어졌다. 마지막은 나무다. 길가에 삐죽삐죽 솟은 이름 모를 나무들이 쐐기를 박았다. 무슨 말인고 하니, 이 모든 것들이 ‘여기서부터 호짬’이라는 사실을 알리는 명백한 신호다.

진한 채도로 다가왔던 로비 풍경
진한 채도로 다가왔던 로비 풍경

베트남 호찌민에서 두 시간 반. 남동쪽 바다를 향해 버스를 타고 내려오면 차창 밖으로 사뭇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고층건물은 해변으로 대체되고 공기 중에는 바다 향이 섞인다. 오토바이와 카페가 호찌민의 대명사였다면, 싱그러움과 한적함은 호짬을 위한 형용사다. 호짬은 국내에선 아직 생소하지만 베트남에서는 이미 소식 빠른 여행객들이 점령에 나선 곳이다. 특히 호찌민에 거주하고 있는 한국인 교민들의 관심이 뜨겁다. 주말 근교여행지로 딱이라나. 도시에 머물다 보면 바다가 그리워지는 법이다. 굳이 호찌민에서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지 않아도 되니 시간과 비용 면에서도 경제적이다. 호찌민과 호짬을 한 번에 묶어 여행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단다. 도시에서의 관광과 해변에서의 휴양을 모두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일 테다. 기꺼이 욕심 좀 내 봐도 될 법하다. 

꽃과 나무와 풀이 멜리아 호짬 리조트를 감싼다
꽃과 나무와 풀이 멜리아 호짬 리조트를 감싼다

셔틀버스가 멈춰섰다. 동남아시아 여행에서 가장 설레는 순간이 있다면 바로 이때다. 버스 문이 열리고 리조트 풍경을 맞닥뜨리는 그 순간. 파랗기보단 새파랗고, 푸르기보단 푸르른 바다와 나무가 높은 해상도로 눈앞에 펼쳐진다. 세상의 채도가 족히 두 톤은 높아졌다. 이곳에서는 1분 1초가 아까워지겠군. 막연했던 직감은 틀리지 않았다. 

호짬 해변은 최고의 반찬이다
호짬 해변은 최고의 반찬이다

●우주를 유영하는 것처럼


자유는 모름지기 해야 할 일이 아무것도 없을 때 오는 거였던가. 호짬 여행에서 일정이라곤 오로지 ‘휴식’뿐이었다. 호캉스의 시작은 역시 수영이지. 옷을 훌훌 벗어 버리고 수영복으로 갈아입었다. 멜리아 호짬 리조트(Melia Ho Tram Beach Resort)의 레벨 풀 수영장은 아늑했다. 넓진 않아도 한적했다. 가볍게 물장구를 칠 때마다 유리병에 반쯤 담긴 물이 찰랑이는 소리가 났다. 참으로 호짬다웠다.

인생 감자튀김 앞에서 다이어트를 논하지 말라
인생 감자튀김 앞에서 다이어트를 논하지 말라

햇볕은 따뜻한데 땀은 나지 않았다. 호짬의 평균 기온은 28도다. 한낮의 뜨거움도 열기라기보다는 온기에 가깝다. 연간 강우량은 1,500mm에 못 미칠 정도다. 

유난히 호짬의 하늘이 맑고 온화했던 이유다. 수영을 하기엔, 그리고 호캉스를 즐기기엔 더없이 좋은 날씨다. 수영장에 왔으니 칵테일과 주스 한 잔은 마땅히 누려야 할 호사였다. 좋아, 오늘은 코코넛 주스로 정했다. 달콤한 한 모금에 휴양의 즐거움이 배가 됐다. 햇빛이 눈부셨지만 꿋꿋이 배영을 했다. 물 위에 떠 있으니 우주를 유영하는 것 같다. 우주는 못 가 봐도 수면 위론 떠오를 수 있으니까. 아쉬운 대로 괜찮은 대안이다. 

무엇을 응시하든 그의 두 눈동자엔 반짝이는 것들로 가득할 것이다
무엇을 응시하든 그의 두 눈동자엔 반짝이는 것들로 가득할 것이다

점심은 리조트 내 식당 브리자(Breeza)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감자튀김은 수영하고 나서 먹는 감자튀김일 거란 생각에 확신이 더해졌다. 구운 새우는 향부터 고소했고 톡톡 터지는 식감이 훌륭했다. 곁들여진 샐러드에서는 오렌지 맛이 났다. 무엇보다 눈이 즐거웠다. 식사 중에도 쏟아지는 햇빛과 새파란 바다를 마음껏 볼 수 있었다. 리조트 앞에 펼쳐진 500m 길이의 호짬 비치는 오롯이 투숙객들의 것이다. 미국의 한 TV 프로그램에선 호짬 비치가 푸꾸옥의 바이다이 비치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깨끗한 해변 중 하나로 소개되기도 했다는데. 파도가 거세지 않아 바다수영을 즐기는 투숙객들이 많다는 호텔리어의 말에 잠잠해졌던 수영 욕구가 다시 일렁이기 시작했다.


●Q 대신 O가 되더라도


새벽 여섯 시, 숨이 가빠 온다. 동터 오는 바다를 배경으로 한 마리의 전갈이 됐다. 이어지는 나비 자세에 고관절은 뻐근해진다. 하늘은 빨갛게 물들고 파도 소리는 그 자체로 훌륭한 배경음악이 된다. 멜리아 호짬의 선라이즈 요가 프로그램 체험기다.


일주일에 세 번, 투숙객들은 새벽녘 해변으로 모인다. 요가 클래스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누가 그 새벽에 요가를 하러 가겠어, 싶지만 이래 봬도 리조트 최고 인기 액티비티다. 나만 해도 그렇다. 잠과 맞바꿀 가치가 있겠다는 생각에 한국에서도 안 하던 요가를 강행했다. 뭐, 결과는 처참했다. Q여야 할 몸은 O가 되고, O였어야 하는 다리는 C로 꼬부라졌다. 시험이었다면 D?에도 못 미칠 성적이었다. 

나는 하지 못한 걸 해변의 이름 모를 그녀는 해냈다. 그녀에게 A+를!
나는 하지 못한 걸 해변의 이름 모를 그녀는 해냈다. 그녀에게 A+를!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따뜻하게 등을 데워 주는 아침 햇살을 맞으며 온몸의 근육들을 일깨우니 평화로움이 이루 말할 수 없다. 그간 너무 많은 소통 속에 있었다. SNS나 일상에서도. 원하든, 원하지 않든, 끊임없이 누군가와 연결되곤 했다. 오프라인이고픈 욕구는 이곳, 호짬에서 완전히 충족됐다. 오로지 나 자신하고만 연결된 느낌이 어쩐지 외롭지가 않다.


바다에선 썰물 때를 틈타 조개잡이가 한창이었다. 떠오르는 태양을 배경으로 챙모자를 쓴 조개잡이 아저씨는 카우보이 같았다. 카우보이가 미국 서부지역을 개척했다면, 아저씨는 호짬 바다를 개척하고 있는 셈이다. 그물을 한 번 올릴 때마다 수십 마리의 조개들이 걸려 나왔다. 물이 조금씩 밀려오고 있었다. 발목에 찰랑거렸던 바닷물은 허벅지까지 닿았다. 그렇게 또 하루가 시작된다는 의미였다. 


그렇게 뜬 해는 낮잠 두 번, 산책 한 번에 금세 졌다. 어느덧 오후 일곱 시. 곧 하늘은 다시 보랏빛으로 변할 터였다. 초승달은 야자수와 한 쌍이었다. 여기에 음악까지 있으면 너무 비현실적이니까. 지금도 넘치게 좋다고 달뜬 마음 가라앉히려 했는데. 거짓말처럼 야외 바에서 3인조 밴드가 노래를 연주한다. 음표 하나하나가 파도에 부딪혀 바스라진다. 부디 밀려가지 않기를. 새벽이 되려면 한참 남았고 마음은 밤새 둥둥 표류할 예정이니, 부표는 필요 없다. 그냥 실컷 취해야겠다.  

 

▶Place
몽키 파고다
몽키 파고다에서 원숭이들과 노닥거리는 시간은 오후 두 시쯤이 좋겠다. 호짬에서는 원숭이들마저 순박하고 착하다. 물건을 훔치는 등 관광객들을 괴롭히는 버릇없는 행동은 (아직까진) 찾아볼 수 없다. 아침에는 수백 마리의 원숭이들이 간식을 먹으러 산에서 내려온다고 하니, 더 많은 원숭이를 보고 싶다면 좀 더 부지런을 떨어 봐도 되겠다.

▶Hotel
멜리아 호짬 비치 리조트 Melia Ho Tram Beach Resort

멜리아 호짬 비치 리조트는 지난해 4월21일 문을 열었다. 오픈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이 따끈따끈한 리조트는 현재 호짬 지역에 있는 호텔 중 유일무이한 인터내셔널 브랜드다. 단연 가장 최근에 지어진 리조트이기도 하다. 매일 호찌민에서 호짬까지 무료 셔틀버스를 왕복 운행한다. 사전에 예약만 하면 이용할 수 있다. 한국인 직원이 상주하고 있어 의사소통에도 어려움이 없다. 

주소: Coastal Road, Ho Tram Beach, Phuoc Thuan Xuyen Moc, Ba Ria-Vung Tau
전화: +84 254 3789 000  
홈페이지: www.melia.com

 

글·사진 곽서희 기자 
취재협조 멜리아 호짬 리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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