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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슬아슬했던 호찌민의 밤

  • Editor. 곽서희 기자
  • 입력 2020.04.01 10:08
  • 수정 2020.04.01 10: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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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바이 바퀴가 굴러간다.
마음에 진한 자국이 남았다. 

어둑해지는 호찌민의 밤, 미키는 나의 유일한 등대였다
어둑해지는 호찌민의 밤, 미키는 나의 유일한 등대였다

●끈적하고 아찔했던 저녁


미키, 그녀의 이름이었다. 미키마우스 할 때 그 ‘미키’라고, 퍽 외우기 쉬운 이름 아니냐며 그녀는 해맑게 웃어 보였다. 난, 그렇게 그녀의 미소에 완전히 속았다. 

오후 다섯 시. 분노의 질주가 시작됐다. 베트남 호찌민 시내는 소리로 가득했다. 빵, 빵빵, 때때로 빠앙. 2초 간격으로 클랙슨은 쉴 틈 없이 울렸다. 배기통에서는 덜덜거리는 불안정한 소리가 났다. 매연으로 탁하고 매캐해진 공기는 애교였다. 도대체 몇 대의 오토바이가 있는지 가늠도 안 되는 도로 위에서 미키는 거침없었다. 일방통행 길을 역행했고 4차선 도로의 차선도 세 개씩 훌쩍훌쩍 넘나들었다. 아니, 사실상 차선과 신호등은 있으나 마나일 정도였다. 미키뿐만 아니었다. 거의 모든 운전자들이 그랬다. 정지 신호는 가볍게 무시됐다. 사거리에선 오토바이들끼리 마구잡이로 뒤엉켰다. 오토바이 투어라고 했을 때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헵번이 스쿠터를 타고 한가롭게 로마 골목을 누비던 장면을 생각했는데. 웬걸, 이건 목숨만 건져도 땡큐다. 

미키와 나의 거리는 딱 5cm. 한 뼘도 채 안 되는 좁은 공간에서 의지할 거라곤 그녀의 허리춤밖에 없었다. 돌멩이라도 바퀴에 걸리는 때면 더 그랬다. 본의 아니게 끈적한 상황이 자꾸만 연출됐다. 문제는 옆 차선의 오토바이와도 한 뼘 거리란 사실이다. 무릎과 무릎이 스치는 건 부지기수. 옆 운전자의 숨결까지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을 정도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그렇게 따지면 여기선 도대체 얼마나 많은 인연을 맺었는지!

다른 운전자들과의 간격이 좁아도 지나치게 좁은 탓에 허벅지엔 힘이 들어가고 몸은 자꾸만 움츠러들었다. 살갗이 닿지 않게 하려는 나름의 배려이자 방어였다. 호찌민 사람인지 아닌지 구별하기 위해서는 무릎을 보면 된다는 미키의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코너를 돌다 벽면과 가까워지기라도 하면 으, 무릎이 남아나지 않을 터였다. 혼돈 속에서도 목적지는 있었다. 골목골목 숨겨진 호찌민의 로컬 맛집과 카페가 투어의 핵심이었다. 노란색 간판의 쌀국수집 앞에 오토바이를 주차한 미키는 크게 ‘하하’ 웃었다. 미소가 아니라 박장대소였다. 헬멧에 눌려 땀에 흠뻑 젖은 내 앞머리가 웃음의 근원지였다. 더워서가 아니라 긴장해서라는 걸 나도, 그녀도, 모두가 알았다. 

그녀의 바구니엔 맛있는 음식이 잔뜩 담겼다
그녀의 바구니엔 맛있는 음식이 잔뜩 담겼다

●찰칵 대신 훌쩍


오토바이는 베트남의 카메라다. 생애 중요한 순간들, 혹은 사사로운 일상들은 모두 오토바이에 기록된다. 찰칵 대신 훌쩍, 올라타면 그만이다. 두근거리는 첫 데이트 때도, 막내아들의 초등학교 졸업식에도 오토바이는 빠질 수 없다. 실제로 베트남에서 일가족 5명이 한 오토바이에 타고 가는 모습은 결코 놀라운 광경이 아니다. 사람들은 오토바이에서 밥도 먹고 낮잠도 잔다. 때로는 나무 그늘 아래 세워 두고 책을 읽기도 한다. 등하교와 출퇴근은 말할 것도 없다. 베트남 사람들이 자신의 오토바이에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는 이유다. 

마스크는 오염된 공기를 막는 방패다. 호찌민 사람들에겐 필수품이다
마스크는 오염된 공기를 막는 방패다. 호찌민 사람들에겐 필수품이다

사실 베트남은 오토바이 많기로 세계 4등이다. 가뜩이나 그런데 베트남에서도 오토바이 수가 가장 많은 도시가 바로 여기, 호찌민이다. 그토록 빽빽했던 도로가 이해가 된다. 2018년 기준 약 850만대의 오토바이가 베트남 교통부에 등록돼 있지만 미키는 900만대를 진작에 돌파했을 거라고 했다. 호찌민시 인구가 860만이니, 이 도시의 사람들은 누구나 오토바이를 한 대씩 갖고 있단 얘기다. 


여기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다른 이유는 다 제쳐두고, 무엇보다도 ‘돈’이다. 오토바이 한 대의 평균 가격은 200만원이 채 안 된다. 반면 자동차는 최소 20배 이상. 월 평균소득이 28만원 정도인 베트남 사람들에게 오토바이는 최적의 선택지가 될 수밖에 없다. 이동이 편하다는 장점도 있다. 호찌민에서 오토바이가 가지 못할 곳은 없다. 누군가 두 발로 땀 흘리며 걷고 있다면, 그는 높은 확률로 관광객이다. 물론 주차가 편하다는 점도 큰 이유다. 길이 좁고 공간이 협소한 호찌민 시내에서 자동차가 주차할 공간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고 대중교통을 이용하자니, 그마저 여의치 않다. 아직 호찌민에는 버스를 제외한 다른 대중교통 수단이 없다. 지하철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지만, 과연 언제쯤 완공될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고 했다. 지하철이 다니기 시작하면 오토바이가 지금보다 줄어들게 될까. 괜스레 아쉬워졌다. 

뜻밖의 눈싸움, 내가 졌다
뜻밖의 눈싸움, 내가 졌다

●웰컴, 다음을 기약하며


긴장이 풀어지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을까. 그날 밤 오토바이 투어로 방문한 모든 식당과 카페에서는 주문도 하기 전에 똑같은 차가 나왔다. 시원하고 향긋한 차였다. 별 뜻은 없다고 했다. 그저 ‘웰컴’이라는 의미 외에는. 덥고 습한 먼 나라에서 뜻밖의 위로는 이럴 때 얻게 되는 것이다. 

빠르고 바쁜 호찌민에서 차 한 모금의 여유는 정말 소중하다
빠르고 바쁜 호찌민에서 차 한 모금의 여유는 정말 소중하다

네 번째 카페로 이동할 때쯤이었나 보다. 북적이는 오토바이들이 더 이상 낯설지 않았다. 주제넘게도, 약간의 질서를 읽어 냈다. 도로 위 유일한 신호는 고갯짓이었다. 양해를 구하는 고갯짓 한 번이면 모든 게 오케이다. 먼저 가도 되겠냐는 물음, 급하니 얼른 지나가라는 재촉, 갑자기 끼어들면 어쩌냐는 나무람. 전부 고개를 가로세로로 휘젓는 걸로 충분했다. 무질서 속 묘한 질서였다. 마지막 식당을 방문하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제야 이 뜨거운 도시에 대한 대략적인 스케치가 가능해졌다. 오토바이 뒷자리에서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는 대담함까지 생겼다. 그러나 반대편에서 달려오는 오토바이 탑승자와 어깨가 부딪혔을 때는 또다시 식은땀이 등줄기로 흘렀다. 


그래, 인정하기로 했다. 웰컴, 그 환영의 인사에도 난 여전히 촌스러운 이방인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적응력 높은 여행자이기도 했다. 다음번 방문엔 이 낯선 풍경에 좀 더 능숙해져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옆 차선 운전자의 축축했던 무릎이 이상하게 그리워진다.  


▶Place

사이공 강변 | 오토바이가 많이 다니긴 하지만, 사실 호찌민에는 걷기 좋은 거리도 많다. 대표적으로 사이공 강변이 그렇다. 선선한 강바람을 맞으며 산책하기 딱이다. 한국 돈 1,000원도 안 되는 저렴한 가격으로 수상버스 탑승도 가능하다. 

중앙우체국 | 노트르담 성당 근처에 자리한 호찌민 중앙우체국. 프랑스 식민지 시대에 지어진 오래된 건축물이자 베트남에서 가장 규모가 큰 우체국이다. 샛노란 외관은 햇빛을 받으면 금색으로 빛난다. 내부는 유럽의 어느 기차역을 연상시킨다. 아치형 천장과 굵직한 기둥이 인상적이다. 추억을 담은 엽서를 부치는 여행객들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Hotel
인사이드바이멜리아 사이공센트럴 호텔
INNSiDE by Melia Saigon Central

인사이드바이멜리아 사이공센트럴 호텔의 위치는 별 다섯 개로도 부족하다. 40년 된 호찌민 전통시장 한가운데 자리해 있어 로컬 느낌을 듬뿍 받을 수 있다. 통일궁, 호찌민 시청 등 주요 관광지와도 모두 도보 10~15분 거리다. 호텔 근처에 일식, 한식, 현지식 등 다양한 음식을 판매하는 식당이 많아 입맛대로 골라가기 좋다. 루프톱 수영장은 이 호텔의 자랑거리다.

주소: 129-131 Ton That Dam street District 1, Ho Chi Minh City
전화: +84 28 2222 1111
홈페이지: www.melia.com

 

글·사진 곽서희 기자  에디터 천소현 기자 
취재협조 인사이드바이멜리아 사이공센트럴 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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