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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의 새로운 중심 '발릭파판'

Balikpapan, the Gateway to New Capital

  • Editor. 김예지 기자
  • 입력 2020.04.01 10:30
  • 수정 2020.04.01 10:3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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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릭파판 멜라와이 해변(Pantai Melawai). 청량하다
발릭파판 멜라와이 해변(Pantai Melawai). 청량하다

자바섬을 떠나 보르네오섬으로 가는 길. 인도네시아의 중심은 서서히 옮겨 가는 중이었다. 지난해 인도네시아 정부는 새로운 행정수도로 보르네오섬의 동칼리만탄주를 지정했다. 자카르타의 인구 포화에 따른 교통 체증과 공해, 잦은 홍수와 지반 침하 등이 주요 이유다. 본격적인 수도 이전 시점이 2024년이라니, 지금으로부터 4~5년 뒤면 이름조차 생소한 이곳에 적잖은 무게가 실릴 거란 말이다. 동칼리만탄주의 항구도시, 발릭파판을 여행하기로 한 데는 그 정도의 확신이 있었다.


스포일러는 전무했다. 최근 인도네시아 국영 석유회사가 39억7,000만 달러 규모의 정유개발 프로젝트를 최종 확정했고, 그 프로젝트에 한국 대기업이 공사 수주에 성공했다는 산업 뉴스 외엔 별다른 정보가 없는 상태. 인근 땅값이 이미 많이 올랐다는 현지인들 사이의 ‘썰’만이 나돌 뿐이었다. 그렇다면 확신할 수 있는 것 또 하나, 아직은 ‘여행지’가 아니란 사실. 날것의 자연이 기다리고 있다.

멜라와이 해변. 낮이면 배가 뜨고, 밤이면 주변 해변 레스토랑이 붐빈다
멜라와이 해변. 낮이면 배가 뜨고, 밤이면 주변 해변 레스토랑이 붐빈다

●발릭파판을 정의하는 방식


발릭파판에서의 오후는 비교적 한적하게 흘렀다. 시내 쇼핑몰에서도, 레스토랑에서도 기다리는 일은 드물었다. 우두둑, 한바탕 소낙비가 내리고 난 후. 게 요리로 두둑하게 채운 배도 꺼뜨릴 겸 슬렁슬렁 길을 나섰다. 낯선 동네와 친해지는 데 시장만 한 곳도 없다.  

발릭파판 전통시장은 작지만 알차고, 구경하기에 재밌다
발릭파판 전통시장은 작지만 알차고, 구경하기에 재밌다
뒤쪽에 바다를 낀 시장에서는 덕분에 싱싱한 해산물을 저렴하게 구할 수 있다
뒤쪽에 바다를 낀 시장에서는 덕분에 싱싱한 해산물을 저렴하게 구할 수 있다

비릿한 바다 내음이 콧속을 파고들며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다름 아닌 생선코너다. 발릭파판 전통시장(Pasar Klandasan)은 바다 바로 앞에 자리하고 있었다. 1983년부터 운영돼 왔다는 이곳은 종합시장이다. 갓 잡아 올린 해산물 외에도 고기와 채소, 과일, 생필품과 옷, 보석 가게까지 오밀조밀 모여 있다. 바나나 세상 같은 청과상과 형형색색 터번을 모아 놓은 옷집도 1시간이면 충분히 둘러볼 수 있는 거리에 있었다. “발릭파판에선 한 다리 건너면 다 알죠(웃음).” 발릭파판 출신의 가이드 프란체스카가 발릭파판을 정의하는 방식. “정유 산업이 큰 곳이라 지금도 외지인들이 많긴 하지만…. 수도가 되면 어떻게 변할지 사실 지금으로선 상상이 잘 안 가요.” 여행자라고 그 미래를 선뜻 상상할 수 있겠냐마는, 적어도 이 모든 수수함이 사라지진 않길 바랄 뿐이었다. 

발릭파판 전통시장(Pasar Klandasan)
주소: Jl. Jenderal Sudirman No. 9, Klandasan Ulu, Balikpapan Kota, Kota Balikpapan, Kalimantan Timur
운영시간: 매일 05:00~18:00

빽빽한 맹그로브 나무 사이를 탐험했던 시간
빽빽한 맹그로브 나무 사이를 탐험했던 시간

말갛게 갠 하늘은 보트를 타기에 최적이었다. 시장 구경 후 도심을 살짝 벗어나 도착한 곳은 맹그로브 숲. 선착장에는 이미 4~5명씩 짝을 지은 사람들이 구명조끼를 입고 배를 기다리고 있었다. 맹그로브 센터 그라하 인다(Mangrove Center Graha Indah)는 인공적으로 조성된 맹그로브 숲이다. 2001년, 환경주의자 아구스 베이(Agus Bei)가 도시 환경을 위해 맹그로브 나무를 심은 것이 시작이라고. 이후 몇몇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으로 프로젝트를 계속한 결과 현재 약 150만 평방미터에 이르는 강변에 40여 종, 1만5,000그루의 맹그로브 나무가 살고 있다. 환경 보호의 상징, 야생 동물의 서식지, 그리고 일반 방문객들에게 개방된 맹그로브 센터는 발릭파판의 명소라는 타이틀까지 얻었다. 

맹그로브 센터에서 나와 마주친 동네 꼬마들. 기도 전에 하트를 날린다
맹그로브 센터에서 나와 마주친 동네 꼬마들. 기도 전에 하트를 날린다

강 위의 여정은 상쾌했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공기가 피부를 쓸었다. 맹그로브 센터가 하루에만 흡수하는 이산화탄소량이 6,000톤이라는 얘길 들어서일까. 평소보다 숨이 더 깊이 쉬어지는 듯했다. “저기, 저기 봐요!” 배를 탄 지 반시간쯤 지났을까, 사공의 눈과 목소리가 한껏 커졌다. 그의 손가락 끝을 따라 돌린 시선에 녀석이 포착됐다. “긴코 원숭이(Bekantan, 코주부원숭이라고도 불림)에요. 주로 먹이를 구하러 이른 아침이나 늦은 오후에 나타나죠. 운 좋게 만났네요.” 나무와 나무 사이를 옮겨 타는 원숭이의 몸놀림이 보통이 아니다. 녀석이 완전히 자취를 감출 때까지, 배는 멈췄고 동공은 바빴다.


출발 지점으로 다시 돌아왔을 땐 어느새 저녁. 어스름이 진 주변 모스크에서는 묵직한 노래가 흘러나왔다. 기도 시간이다. 때맞춰 기도실에 모인 아이들이 손가락 하트를 날리며 떠나는 발길을 붙든다. 알록달록한 히잡 사이로 거리낌 없이 웃어 보이던 얼굴들. 어쩌면 그렇게 발릭파판을 정의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맹그로브 센터 그라하 인다(Mangrove Center Graha Indah)
주소: Batu Ampar, Balikpapan Utara, Balikpapan City, East Kalimantan 76127
운영시간: 매일 06:00~18:00
전화: +62 813 5037 1500
홈페이지: www.mangrovecenter-graha.com
요금: 보트 1시간 30만Rp

삼보자 레스타리는 멸종 위기의 오랑우탄을 보호하고 있다
삼보자 레스타리는 멸종 위기의 오랑우탄을 보호하고 있다

 

●첫 만남이 그리도 강렬했던 데는


아침 일찍부터 길을 나섰건만. 녹록치가 않았다. 발릭파판에서 위쪽으로 2~3시간, 삼보자(Samboja) 지역에 가까워질수록 비포장도로가 굽이굽이 이어졌다. 이외 상세한 과정이 잘 기억나지 않는 건 다음 장면이 그토록 강렬했기 때문일 것이다. 수풀 속에 웅크리고 앉은 생명체를 처음 발견했을 때의 그 충격이란. 갈색 털 코트를 입은 것 같은 그는 서서히 고개를 들고 등을 편 다음 나뭇가지에 호기롭게 매달렸다. 정말로, 오랑우탄이었다. 

삼보자 레스타리에서 오랑우탄은 속박되지 않으면서도 안전하다
삼보자 레스타리에서 오랑우탄은 속박되지 않으면서도 안전하다

“동물원이 아닙니다.” 가이드의 목소리에 유독 힘이 실렸다. 먹이를 주는 것은 물론이고, 모방 성향이 강한 오랑우탄 앞에서 음식을 먹는 것도 금물이란다. 이곳에선 동물을 가두거나 조련하는 일도 없다. “야생에 가까운 환경과 의료, 최소한의 교육만 제공하고 있어요. 숲과 습지를 보호하는 동시에 지역 주민들에게 일자리도 제공하죠.” 삼보자 레스타리(Samboja Lestari)는 1991년 설립된 보르네오 오랑우탄 생존 재단(BOSF, Borneo Orangutan Survival Foundation)이 산림개발과 사냥 등으로 야생에서 살아남지 못한 오랑우탄들을 구조하기 위해 만든 열대우림이다. 현재 122마리의 오랑우탄과 62마리의 선베어를 보호하고 있다. 동물을 결국 다시 야생으로 돌려보낸다는 목표 또한 동물원과는 다른 점이다.

선베어 역시 식사 시간을 제외하곤 자유롭게 숲을 거닌다
선베어 역시 식사 시간을 제외하곤 자유롭게 숲을 거닌다

보르네오섬과 수마트라섬에만 서식하는 오랑우탄은 현재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 “로미오는 여전히 우울증을 겪고 있어요. 부장(Bujang, 독신 남자라는 뜻)은 자신이 오랑우탄이 아닌 사람이라고 알고 있죠. 실제로 암컷 오랑우탄이 아닌 여자 사람을 좋아한답니다.” 이곳 오랑우탄들은 대개 집을 잃거나, 서커스단에서 일한 경험 등 사람에 의한 아픈 기억을 갖고 있다. 그 트라우마로 인해 대부분이 여전히 야생에 돌아가기 힘든 상태라고. “사람처럼 기쁨, 슬픔, 화 등의 감정을 느낄 수 있어요. 스트레스와 무력감도요.” 아무리 이름을 불러 봐도 로미오는 멍하니 한곳만을 응시했다. 어딘가 불안한 듯 두리번거리던 부장은 수풀 속으로 쏙 사라졌다.


우리의 첫 만남이 왜 그리도 인상적이었던가. 그 이유는 ‘오랑우탄이 왜 오랑우탄인가’에 대한 답을 알고 나서야 좀 더 명확해졌다. 인도네시아어로 오랑(Orang)은 ‘숲’, 우탄(Utan)은 ‘사람’, 즉 오랑우탄은 ‘숲 속의 사람’이란 뜻이다. “암컷 오랑우탄의 임신 기간이 9개월이라는 것도, 하루에 2kg 정도의 음식을 섭취한다는 것도. 오랑우탄은 사람과 비슷한 부분이 정말 많아요.” 간식으로는 아이스크림과 감자 칩도 즐겨 먹는다나. 그 일말의 익숙함이 결정적 단서였던 것이다.  

삼보자 레스타리(Samboja Lestari)
주소: Jl Balikpapan Handil Km. 44 Samboja, Kutai Kartanegara, Esat Kalimantan 75273
전화: +62 821 5133 3773
이메일: sambojalodge@orangutan.or.id

삼보자 롯지에서 운영하는 투어 프로그램
운영시간: 08:00~12:00/ 13:00~17:00 
요금: 삼보자 레스타리 투어(점심 포함) 성인 50만Rp, 어린이 25만Rp

사방이 온통 초록인 경험
방킬라이 언덕 Bangkirai Hills

삼보자 지역에 있는 또 하나의 열대우림으로, 방킬라이 나무로 가득하다. 레스토랑, 미팅룸, 수영장, 캠핑장 등 시설을 갖추고 있지만 그중 여행객들에게 가장 인기인 코스는 총 64m 길이의 ‘캐노피 브리지(Canopy Bridge)’. 다섯 그루의 방킬라이 나무에 연결된 지상 30m 높이의 다리를 건너는 동안 사방이 온통 초록인 경험을 할 수 있다. 발릭파판 시내에서는 차로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주소: Karya Merdeka, Semboja, Kutai Kartanegara Regency, East Kalimantan 75271
전화:+62 823 4341 2905

▶HOTEL

포포인츠 바이 쉐라톤 발릭파판 
Four Points by Sheraton Balikpapan

화려하진 않지만 필요한 건 모두 살뜰하게 갖춘 3.5성급 호텔이다. 발릭파판 공항에서 차로 5분 이내 거리에 있어 비즈니스 투숙객도 꽤 많은 편이다. 대형 쇼핑몰인 플라자 발릭파판(Plaza Balikpapn)까지도 차로 10분이면 갈 수 있다. 

주소: Jalan Pelita No.19, Sepinggan Raya, Balikpapan Selatan, Balikpapan
홈페이지: www.marriott.com/hotels/travel/bpnfp-four-points-balikpapan
전화: +62 542 852 5888

 

▶RESTAURANT & CAFE

단디토 레스토랑 Dandito Restaurant
2001년 만두로 사업을 시작한 단디토는 10번 넘게 메뉴를 바꾸며 고심한 끝에 마침내 ‘게’ 요리로 대박이 났다. 양념한 게 요리를 메인으로 깔라마리(오징어) 튀김, 모닝글로리 등 현지 음식을 선보인다. 주인장에게 들은 레시피의 비법은 ‘맛있는 건 일단 다 넣고 보기’. 그렇게 탄생한 게 양념 소스는 적당히 매콤하고 진득해 중독성이 있다. 주인장의 아들 ‘단디(Dandi)’의 이름을 딴 단디토는 발릭파판을 시작으로 스미냑, 반둥에도 진출해 있다.

주소: Jl. Marsma R. Iswahyudi No.70, Gn. Bahagia, Kecamatan Balikpapan Selatan, Kota Balikpapan, Kalimantan Timur 76114
영업시간: 매일 06:00~22:00
전화: +62 811 532 368

노님 커피 Anonim Kopi
발릭파판에서 커피 맛으로 손꼽히는 카페다. 직접 로스팅한 커피와 각종 티를 우려 낸 라떼, 색이 고운 목테일 등을 판매한다. 아노님 커피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창가자리에서 내다보는 전망이다. 높은 언덕 위에 위치해 있어, 현지인들 사이에서 일몰 데이트 명소로 인기다.  

주소: East Kalimantan, Balikpapan City, Balikpapan Tengah, Sumber Rejo 76114 
영업시간: 월~금요일 16:00~23:00, 토~일요일 16:00~00:00
전화: +62 853 3272 7248

 

글 김예지 기자 사진 이성균 기자
취재협조 한-아세안센터 www.aseankore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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