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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맞은 날

  • Editor. 손고은 기자
  • 입력 2020.04.20 09:55
  • 수정 2020.04.21 11: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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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정사의 봄. 3월 말, 노오란 꽃이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다
월정사의 봄. 3월 말, 노오란 꽃이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봄을 알아챈 건 이끼다. 
월동한 전나무는 이끼 덕분에 기지개를 켰다. 
어린 양들도 얼굴을 내밀었다. 
숲에는 여린 생기가 돌았다. 봄바람이 불었다. 

전나무 숲길은 약 900m에 달한다. 푸릇푸릇한 이끼가 전나무를 감싸며 봄을 알린다
전나무 숲길은 약 900m에 달한다. 푸릇푸릇한 이끼가 전나무를 감싸며 봄을 알린다

●2020년 봄날의 소원


불자가 아니더라도 월정사 주변으로는 언제나 사람이 모인다. 아무래도 전나무 숲길 때문인 것 같다. 월정사 입구 금강교 옆으로 뻗은 약 900m의 길은 전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광릉 국립수목원과 변산반도 국립공원 내소사 전나무 숲과 함께 3대 전나무 숲으로 꼽힌다. 추위에 강한 음수라 사시사철 푸르다. 푸른 잎 위로 하얀 눈이 쌓인 모습이 예뻐 겨울철 트레킹 코스로도 유명하다. 

월정사는 신라 불교의 꽃을 피운 사찰로 꼽힌다
월정사는 신라 불교의 꽃을 피운 사찰로 꼽힌다

이곳 1,700여 그루 전나무의 평균 수령은 80년을 훌쩍 넘는다. 그중 가장 연세가 지긋한 할아버지 전나무도 있는데, 2006년 10월23일 밤에 쓰러졌다. 이날 쓰러지기 전까지 할아버지 전나무는 약 600세였던 걸로 추정한다. 이후 할아버지 전나무는 ‘쓰러진 전나무’로 이름이 바뀌었다. 하지만 쓰러진 전나무의 생명력은 질기다. 성인보다 조금 높은 키의 밑동은 텅 빈 채로 땅에 푹 박혀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건강해 보인다. 그 옆으로 꺾인 통나무에는 파릇파릇한 이끼가 소생해 있다. 

돌탑을 세우며 소원을 빌어본다
돌탑을 세우며 소원을 빌어본다

쭉쭉 곧게 뻗은 전나무들은 빼곡히 하늘을 가려 그늘을 만들었다. 햇살은 그 틈을 사이사이 비집고 내려온다. 햇살 조명을 받은 자리에는 전나무로 만든 작품이 드문드문 무심하게 설치돼 있다. 그러나 나무로 만들어진 녀석들이 나무 사이에 자리해 있으니, 저게 그냥 쓰러진 나무인지 잘 다듬어진 작품인지는 자세히 봐야 눈치 챌 수 있다. 그저 꾹꾹 걷기만 해도 피톤치드로 머리가 맑아지는데 작품까지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숲속 전체가 거대한 갤러리 같다. 

2006년 전나무 숲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할아버지 전나무가 쓰러졌다
2006년 전나무 숲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할아버지 전나무가 쓰러졌다

월정사 전나무 숲길은 순환 길이다. 숲길이 끝나는 일주문 지점이 반환점이다. 금강교까지 다시 약 1km를 걸어야 한다. 그럼에도 숲길 산책은 느린 걸음으로도 1시간이면 충분하다. 길이 평평하고 경사가 완만해 무장애 길에 속한다. 산 전체가 불교 성지라는 오대산. 그중에서도 월정사는 신라 불교의 꽃을 피운 사찰이다. 적광전에 석가모니불을 모시고 있다. 적광전은 석가모니 부처를 모신 전각 대웅전과 같다.

마침 적광전에서는 주지스님이 기도 중이었는데, 괜한 방해가 될까 조용히 발길을 돌려 윤장대를 잡았다. 윤장대는 글을 모르는 사람이나 불경을 욀 시간이 없는 사람을 위한 것이다. 왼쪽으로 다섯 번쯤 돌리며 소원을 빌었다. 2020년 봄, 이날만큼은 융성한 국운을 빌었다. 


●양도 부지런히 산다


평균 해발고도가 700미터인 ‘해피 평창’에서는 옷깃을 자꾸 여몄다. 3월 말, 아직은 바람이 차가운 봄이었다. 하지만 어린 양들은 이미 두터운 옷을 벗어던지고 봄맞이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산책로 정상에서 내려다본 양떼목장 풍경
산책로 정상에서 내려다본 양떼목장 풍경

대관령 양떼목장에 지내는 300여 마리의 양들은 1년에 한 번 2~3월 사이에 두툼하게 자란 털을 깎는다. 동글동글한 털뭉치를 입은 양들이 자연초를 뜯어 먹는 풍경을 기대했건만 바리캉으로 맨들맨들 말끔하게 이발을 마친 양들은 목장 안에서 우적우적 건초를 씹고 있었다. 양들은 5월부터 9월까지 가축장에서 벗어나 방목한다. 아직은 춥지 아닐까? 아니, 걱정 말란다. 여전히 10센티 정도 길이의 털을 남겨뒀으니. 양은 피부가 약해 햇빛을 그대로 쬐이면 피부병에 걸릴 확률이 높아 여름에도 반드시 피부를 보호할 털이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했다. 푸릇푸릇한 풀을 뜯을 생각에 잠겼는지 양들의 눈빛이 반짝 설렌다. 

대관령 양떼목장에는 약 300여 마리의 양들이 관광객을 맞이한다. 입장료에는 건초주기 체험권이 포함돼 있다
대관령 양떼목장에는 약 300여 마리의 양들이 관광객을 맞이한다. 입장료에는 건초주기 체험권이 포함돼 있다

대관령 양떼목장은 관광을 목적으로 조성된 최초의 양목장이다. 1988년 대관령 산자락에 터를 잡았다. 대관령까지 접근성이 떨어졌던 시절이었다. 양떼목장은 열악한 인프라 속에서 10년 넘게 아주 천천히 다듬어졌다. 맑은 공기와 파란 하늘. 그 아래 초록 세상 속에 살고 있는 수 백 마리의 양. 이런 이국적인 풍경이 예뻐 입소문을 탔고 2004년부터 양떼목장은 애초의 계획처럼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유료 입장을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 양떼목장이 이국적으로 보이는 이유가 있다. 일단 국내에 양목장이 흔하지 않다. 가장 큰 이유는 양고기의 소비량이겠다. 돼지나 닭, 소 등에 비해 양고기를 유통할 만큼의 소비가 발생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운영 중인 양목장은 관광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들이라고. 접할 기회가 적으니 생경할 수밖에. 게다가 생각보다 양들의 엥겔지수가 높다. 하루에 양 한마리가 먹어 치우는 건초 양은 무려 3kg, 자연초는 7kg까지도 먹는데 이는 1마리가 풀밭 200평을 차지하는 수준이란다. 이제 보니 가만있는 아이가 없다. 관광객이 건네주는 건초를 받아먹거나 앉아서 끊임없이 입을 씰룩대며 되새김질을 하고 있다. 무척 부지런한 동물이다. 


대관령 양떼목장은 산책로도 깔끔하게 조성되어 있다. 오른쪽 길은 산책로1, 왼쪽 길은 산책로2다. 해발 920m 정상까지 찍고 한 바퀴 휙 돌아보는 데 한 시간이면 충분하다. 가볍게 걷고 나니 마음도 가볍다. 


글·사진 손고은 기자 koeun@travel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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