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다녀간 듯 살며시, 두 군산
아니 다녀간 듯 살며시, 두 군산
  • 김선주 기자
  • 승인 2020.04.20 10: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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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봉은 해발 142m에 불과하지만 정상에 서면 대장도와 장자도 선유도 등고군산군도를 이루는 섬들이 서로 이어지며 쭉 뻗어 나가는 장관을 만날 수 있다
대장봉은 해발 142m에 불과하지만 정상에 서면 대장도와 장자도 선유도 등고군산군도를 이루는 섬들이 서로 이어지며 쭉 뻗어 나가는 장관을 만날 수 있다

아주 오래 전, 군산으로 불렸던 바다에는 섬들이 오밀조밀했다.
지금, 군산으로 불리는 도시에는 근대 역사의 흔적이 아련했다.
아니 다녀간 듯 살며시, 두 군산을 다녀왔다.

장자도의 표지판
장자도의 표지판

●옛 군산 섬들의 향연 


군산과 부안을 잇는 길이 33.9km의 새만금방조제, 2010년 8월 세계에서 가장 긴 방조제로 기네스에 오른 이 기다란 둑길의 거의 정중앙에서 선유도로 이어지는 길이 옆으로 샌다. 선유도는 한 때 군산도라 불렸다. 조선시대 수군 기지 역할을 했는데 수군기지가 지금의 군산으로 옮겨간 후 선유도로 불리게 됐다. 섬의 두 봉우리가 마치 두 신선이 바둑을 두고 있는 것 같다고 해서, 신선들이 놀다 갈 정도로 아름답다 해서 그랬단다. 이곳의 섬 무리들도 옛 군산의 섬 군락지라는 뜻으로 고군산군도라는 이름을 얻었다.

장자도에서 바라본대장도
장자도에서 바라본대장도

고군산군도는 10개의 유인도와 47개의 무인도로 이뤄졌다. 본래 육지와 떨어진 섬들이었지만 새만금방조제 사업으로 야미도와 신시도가 육지와 연결된 데 이어 2016년에는 신시도와 무녀도를 잇는 고군산대교가 개통돼 이제는 선유도, 장자도까지 자동차로 슁 내달릴 수 있다. 바닷길을 통해서만 찾을 수 있었던 시절의 낭만이 그립다면 말도·방축도·관리도 등 여전히 섬인 섬들을 유람선으로 만나면 그만이다. 

대장도 해안에서 해산물을 채취하는 사람들
대장도 해안에서 해산물을 채취하는 사람들

군산에서 새만금방조제 길로 접어들었다. 방조제 중간쯤에서 만나는 신시도에서 선유도 가는 표지판을 따라 우회전했다. 무녀도와 선유도를 거치니 장자도가 반겼다. 섬과 섬은 고군산대교, 선유대교, 장자대교가 이었다. 고군산대교는 우리나라 최초의 ‘1주탑 방식 현수교’로 유명하다더니 정말 주탑 한 개로 버티고 있는 모습이 독특했다. 바다를 끼고 달리다 바다 위로 오르고 다시 얄팍한 섬 산등성이를 넘는 재미에 도로가 끝나는 줄도 몰랐다. 고군산군도로 파고든 도로는 장자도 주차장에 다다라서야 멈췄다. 육지의 손길이 가장 깊숙이 닿은 고군산군도의 속살이었다.

장자도와 선유도를 잇는 장자교
장자도와 선유도를 잇는 장자교
대장도 가는 길에 만난 나무 조형
대장도 가는 길에 만난 나무 조형

●섬 아닌 섬, 어찌 마다할까


장자도는 선유도와 대장도를 양쪽에 끼고 있다. 개별의 섬이지만 다리와 길로 하나처럼 연결돼 있다. 고군산군도의 걷기여행길인 구불길 8코스의 무대가 이들 세 섬이다. 트레킹 좋아하는 이들은 대장도의 대장봉, 선유도의 선유봉 오르는 맛에 반하고, 오지 백패커들은 해가 지고 찾는 이들이 뜸해지면 대장봉 전망데크에서 아예 하룻밤 야영한다. 서로 함께 또 홀로 오밀조밀 바다 위에 떠 있는 고군산군도의 섬 군락을 조망할 수 있으니 해발 150m에도 미치지 못하는 봉우리에 오르는 수고쯤이야 마다할 리 없다.

대장봉 오르는 길은 호젓한 산책길이기도 하다
대장봉 오르는 길은 호젓한 산책길이기도 하다

대장도 대장봉부터 오르기로 결정했다. 대장봉 중턱에는 기다란 바위가 삐죽 솟아 있는데 사람들은 할매바위라고 부른다. ‘자신의 뒷바라지 덕분에 과거에 급제한 남편이 그 은혜는 알지 못한 채 첩을 데리고 돌아오는 모습에 화가 난 아내가 돌로 굳어 할매바위가 됐다’고 한다.

이 바위를 보면서 사랑을 약속하면 이뤄지고 배반하면 돌이 된다는 말이 나돌고 있어서인지 한 연인은 두 손을 꼭 잡은 채 바위를 바라봤다. 약속할 일도 배반할 일도 없는 입장이라 씩 웃고 등산길에 올랐다. 가파르지만 나무 계단으로 잘 정비된 오른쪽 길 대신, 봉우리를 나선형으로 휘감아 오르는 왼쪽의 완만하지만 긴 코스를 택했다. 고작 해발 142m이니 등산이랄 것도 없다 만만히 여기고, 장자도마트에서 달랑 생수 한 병 사들고 오른 만용은 결코 과하지 않았다. 잠깐의 숨 가쁨과 한 동안의 다리 뻑적지근함만 참아내면 됐으니 말이다. 빨간 꽃잎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동백나무와, 잎도 나기 전 꽃부터 피워낸 붉은 진달래가 겨울의 끝자락과 봄의 초입에서 만나는 듯 했다.

채 20분도 되지 않았던 등반 시간에 비하면 정상이 선사한 조망감은 과하게 아름다웠고 시원했다. 대장도·장자도·선유도·무녀도가 왔던 길을 되돌아 도로를 달리고 산을 넘고 다리를 건너 뻗어 나갔고, 드넓은 서해바다는 그 모두를 포근하게 안았다. 오르다 본 ‘아니온 듯 다녀가시라’는 당부대로 살며시 정상의 순간을 즐겼다. 

선유도 바닷바람을 맞은 바람개비가 힘차게 돌고 있다
선유도 바닷바람을 맞은 바람개비가 힘차게 돌고 있다

●선유도에서 그야말로 신선놀음


고군산군도의 중심 섬 선유도는 굳이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단박에 알아챌 수 있었다. 초입에 산신령 조각상이 구름을 탄 채 떡 하니 외지인들을 맞아서였다. 얼마나 아름답기에 신선이 놀고 갈 정도라고 했을까. 신선놀음 할 거리는 많았다. 명사십리 해안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초승달 모양으로 완만하게 굽은 해변은 실제로는 1.5km로, 십리(4km)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호젓한 분위기와 멋들어진 풍경은 백리 이상이지 싶었다. 서해안 해안이 대부분 갯벌 해변인 데 비해 선유도해수욕장은 고운 모래해변이고, 완만하게 바다로 흘러가서인지 어린아이들도 마음 놓고 즐겼다. 산책 중인 연인과 가족들로 해변이 한창 정감 어릴 때, 해변 한쪽 끝에 우뚝 솟은 건물에서 꺄~~아 즐거운 비명이 터졌다. 선유도 바다 위를 나는 짚라인, 두 명이 공중에서 활강하며 비명을 멈추지 않았다. 다음 신선놀음으로 짚라인이 어떨까 따져보다 관뒀다. 

선유도해변의 게 조형물
선유도해변의 게 조형물

두 신선이 바둑을 두는 모습을 닮았다는 망주봉의 두 봉우리는 반대편 해변에 우뚝 선 채 바다를 내려다보았다. 너른 바다와 잔잔한 해변, 우뚝한 바위 봉우리가 그려내는 풍경 역시 신선이 참 좋아했을 것 같았다. 해변을 걷다 보면, 조금 전 들렀던 대장도가 인근 가마우지 섬과 겹쳐져 마치 사람이 바다 위에 누워 있는 형상을 만드는데, 여기서 바라보는 낙조가 선유팔경 중 하나로 꼽힌다. 누워있는 사람의 입 부분으로 태양이 떨어질 때 소원을 빌면 아이를 잉태하거나 복을 받는다는 설화가 있어서인지, 유독 그 언저리에 사람들이 많았다.


선유도해수욕장 건너편에는 몽돌해수욕장도 있고 천사의 날개가 그려진 벽도 있다는데, 걸어서 갈 엄두를 내지는 못했다. 그냥 망주봉 아래 전망 좋은 자리에서 봄볕 쬐는 신선놀음이나 하자 마음먹었더니, 옆으로 한 가족이 여보란 듯 자전거로 줄줄이 내달렸다. 자전거 타는 신선도 괜찮겠다, 다음을 기약했다. 

군산시내의 신흥동 일본가옥
군산시내의 신흥동 일본가옥

●지금 군산은 시간여행 중


옛 군산 고군산군도 여행의 테마가 자연이었다면 지금 군산의 여행테마는 시간이었다. 군산은 일제강점기 수탈의 역사와 이에 대한 항거의 흔적이 아련하지만 또렷하게 새겨 있는 도시다. 근대역사박물관부터 호남관세박물관, 근대미술관, 근대건축관까지 당시를 기억하는 시설은 물론 뜬다리부두, 해망굴, 동국사, 신흥동 일본식가옥까지 근대역사의 생생한 현장도 숱하다.  먼저 기초 지식을 쌓은 뒤 시간여행을 시작하면 좋겠구나 싶어 근대역사박물관을 점찍었지만 코로나19 탓에 문을 닫아 어쩔 수 없었다. 야외를 중심으로 기본 코스를 찾는 수밖에…. 

'8월의 크리스마스' 촬영지인초원사진관
'8월의 크리스마스' 촬영지인 초원사진관
우리나라 유일의 일본식 사찰인 동국사 내부
우리나라 유일의 일본식 사찰인 동국사 내부

동국사에서 시작했다. 1909년 일본 승려가 창건한 뒤 일제강점기 내내 일본인 승려들이 운영했던 사찰이다. 우리나라에 일본 사찰이라니, 되새기니 속이 쓰렸지만 어찌됐건 지금은 우리나라 유일의 일본식 사찰로서 역사를 말하고 있었다.

동국사에서 5분 정도 걸으니 우리식 건물이 아닌 게 딱 봐도 시간여행 목적지였다. 군산 근대역사 체험공간이다. 부지 5,920㎡에 여미랑 같은 숙박체험관과 근대역사교육관 등을 조성해 1930년대 근대 군산의 생활모습을 복원했다. 이 일대는 일제강점기 쌀 수탈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한 일본인들이 집단으로 거주한 곳이었다고 한다.

신흥동 일본식가옥도 그곳에서 멀지 않았다. 일제강점기에 군산에서 소규모 농장을 운영했던 일본인이 건립한 일본식 2층 목조 가옥이다. 기역자 모양으로 붙은 건물 두 채와 일본식 정원이 당시 일본인 지주의 생활상을 엿보여줬다. 이곳에서 영화 <장군의 아들>과 <타짜>를 촬영하기도 했단다.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남자 주인공(한석규)이 운영했던 초원사진관과 군산을 대표하는 빵집 이성당도 지척이어서 시간여행 발걸음은 계속 이어졌다.

빵집 성지인 이성당
빵집 성지인 이성당

 

글·사진 김선주 기자 vagrant@travel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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