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갑수는 최갑수를 쓴다
최갑수는 최갑수를 쓴다
  • 강화송 기자
  • 승인 2020.05.01 16: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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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갑수 병이 창궐한다

최갑수 작가, 2000년에 여행기자 생활을 시작해 2006년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했다. 2020년을 맞이한 그의 감성은 무려 20년의 세월 동안 봄에 머물고 있다. 우리는 사랑 아니면 여행이겠지, 그의 글귀는 20대에게 여행이다. 스멀스멀 설레는 감정. 모든 여행 해시태그 앞, 그의 글귀가 설렘을 대신하는 이유기도 하다. 최갑수 작가를 지면에 소개한다는 것은 어쩌면 그의 책을 지면에 옮겨 적는 일과 다름없겠다. 작가로서 최갑수는 항상 최갑수를 적어 왔기 때문에. 


‘당신의 잠든 등을 열고 들어가고 싶었다. 가서 뼈처럼 눕고 싶었다. 거긴 따뜻할 것이고 당신의 숨소리로 고요할 것이고 한숨 자고 나오면 모든 일이 먼 옛날 지나간 파도처럼 여기질 테니.’ 최갑수 작가의 글귀는 가끔씩 쑥스럽고 창피해 스스로를 부정하게 만든다. 사랑에 빠진 것을 상대방에게 들켰을 때가 그렇듯, 우선은 부정하는 식. 사실은 그런 마음을 먼저 알아봐 줘 기뻤던 것인데…. 결국 그 공감은 참 오랫동안 곱씹을 거리가 된다.


최갑수 작가는 <트래비>의 수많은 출장을 다녀왔다. 그의 글을 에디팅하며 한동안 최갑수 병에 시달리기도 했다. 아무 글을 주어다가 감성적이게 만들려 노력했고, 모든 상황을 사랑에 빗대었다. 가만히 서 있던 나무는 당신을 위해 움직였고, 출장 중인 여행은 내게 무척 소중한 순간인 듯, 있는 척의 연속. 천소현 부편집장의 호된 만류 덕에 병세가 어느 정도 호전되니 의심이 솟구쳤다. 최갑수 작가의 글은 ‘척’이 아닐까? 그래서 속 시원하게 물었다. 작가님이 사랑을 그렇게 잘 아냐며.


인터뷰를 마치곤 수표로에 위치한 작은 백반집을 들렀다. 1만5,000원짜리 보쌈과 막걸리. 짜디짠 김치 양념을 툭툭 털어내며 현실을 던지는 그가 어른이란 결론은 진작 내린 상태다. 그러니까 ‘척’이 아니라 돌, 나무, 강물과 이야기하는, 그렇게 사랑을 배우고 공감하며 늙어 가는 최갑수 작가는 어른이란 결론.

●최갑수 작가의 50문50답
인스타그램  @ssuchoi

01 출생년도_  1973년
02 출생지_  경남 김해
03 별명_  딱히 없지만 왕눈이
04 전공_  국어국문학
05 좌우명_  조금만 더 해보자. 그리고 가까이 오지 마라.
06 어렸을 적 장래희망_  항공기 조종사
07 주로 입는 옷 색깔_  검정
08 선호하는 주종_  와인, 정확히는 소비뇽 블랑
09 챙겨 먹는 영양제  있으면_ 먹고 없으면 안 먹는다. 요즘은 간혹 비타민D
10 좋아하는 음식 3가지_  군만두, 짜장면, 킷캣
11 감명 깊게 읽은 책 3권_  딱 3권이라니. 당장 떠오르는 책은 버트런드 러셀 <행복의 정복>, 후지와라 신야 책 속의 사진,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소설 말고)
12 생애 최고의 영화 3편_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동사서독>, <대부>. 대부 시리즈는 무려 6번째 정주행 중이다.
13 가장 좋아하는 작가_  후지와라 신야
14 지금껏 가장 오래 체류했던 장소_  라오스 루앙프라방
15 살면서 가장 잘했다고 생각하는 일_  사진을 찍게 된 일
16 가장 후회되는 순간_  사진을 찍게 된 것
17 의외로 집착하는 것_  아주 작은 것. 가령 치약을 짜는 법, 두루마리 휴지가 말려 있는 방향, 지갑의 돈이 같은 면으로 정리되었는지, 삼겹살의 살코기 방향이 같은지, 카톡 알림에 확인 메시지가 표시되었는지 등
18 무의식적인 습관_  좋아하는 음악이 나오면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린다.
19 아침에 눈 뜨면 가장 먼저 드는 생각_ 요즘은, 오늘 또 하루가 줄어들었구나. 뭐라도 쓰자.
20 새벽 2시와 오후 2시에 각각 주로 하는 일_  새벽 2시에는 잔다. 오후 2시에는 원고 마감이나 사진 리터치 등 작업 마무리
21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쏟는 일_  놀기 다음은 작업 다음은 잠
22 최근 가장 많이 검색한 검색어_  없다. 아, 넷플릭스 미드 추천
23 최근 가장 달라졌다고 느끼는 것_  체중과 통장 잔고. 체중은 관리 중이고 통장 잔고는 포기 단계다.
24 꼰대라고 느끼는 순간_  깜빡이 안 켜고 좌우회전 하는 사람들, 건널목 건너며 일단 정지 안하는 운전자들을 볼 때. 당장 내려 훈계하고 싶다.
25 한 번쯤은 해 보고 싶은 일탈_  취재차 여행을 갔는데 배터리를 깜빡하고 안 가져온 걸 깨닫고는 핑계 삼아 ‘에라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지’ 하며 놀고 싶다.
26 생애 첫 여행지_  중국 톈진, 대학교 4학년 때.
27 지금껏 다녀온 여행지 모두_  많이 다니진 못했다. 일본, 중국, 홍콩,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태국, 라오스, 미얀마,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베트남, 몽골, 인도, 카자흐스탄, 두바이, 카타르, 요르단, 미국, 브라질, 에콰도르, 호주, 터키, 영국, 아일랜드, 노르웨이,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체코, 슬로바키아, 스페인, 포르투갈,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이집트, 남아프리카공화국, 에티오피아. 뭐 이 정도?
28 가장 많이 간 여행지 5곳_  일본, 라오스, 홍콩, 베트남, 호주
29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지 5곳_  에티오피아, 남아공, 홍콩, 미얀마, 포르투갈
30 다신 가고 싶지 않은 여행지_  없다.
31 여행 중 가장 맛있게 먹었던 음식_  가리는 음식 없이 다 잘 먹는다. 기억에 남는 음식은 태즈매니아 캠핑카 여행을 할 당시 파이퍼스 강가의 캠핑장에서 노을을 바라보며 먹었던 와인과 스테이크. 직접 해 먹어서 더 맛있었다.
32 죽기 전에 가보고 싶은 곳_  남극, 세렝게티 그리고 뉴욕과 파리. 아직 못 가 봤다.
33 여행을 앞두고 걱정하는 것_  비행기 터뷸런스
34 여행갈 때 꼭 챙겨 가는 것 3가지_  카메라, 노트북 등 일과 관련한 장비. 비상약, 세면도구, 옷가지. 따로 챙겨가는 건 비상용 에스프레소 머신과 열화당 사진문고의 사진집 한 권 정도
35 사용 중인 카메라 기종_  후지 X-pro2 그리고 28, 35, 50, 80mm 렌즈. 출장에는 이중 2가지 렌즈를 골라 간다. 사진에 욕심이 나는 출장에는 후지 X100 시리즈 또는 X-T 시리즈 등 바디를 더 챙기기도 한다.
36 여행 기록법(노트, 어플 등)_  에버노트, 아이폰 메모 어플, 가상 키보드로 허벅지 두드리기
37 여행 중 가장 잘 잃어버리는 물건_  플러그, 충전 케이블 등. 잘 잃어버리는 스타일이 아니다. 카메라와 노트북을 제외하곤 잃어버려도 괜찮은 물건을 가지고 다니기 때문에 잃어버려도 체감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38 여행 후 가장 먼저 하는 일_  사진 백업을 한 번 더 하는 정도. 특별하게 하는 일은 없다. 다시 평범하게 일상으로 돌아간다.
39 매체 근무 및 기고 전력 모두_  대우그룹, <출판저널>, <굿데이>(스포츠신문), <프라이데이>에서 근무했다. 기고는 <트래비>, <론리플래닛> 등 여행 잡지.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신문>, <경향신문> 등 일간지. <에스콰이어>, <아레나> 등 남성지. <엘르>, <바자> 등 패션지. 하나은행, 국민은행 등 각종 사보
40 가장 어렵게 쓴 글_  아직 마감 안(?)하고 있는, <트래비>에 마감해야 하는 얼마 전 다녀온 일본 규슈 올레 기사
41 스스로 생각하는 본인의 대표 여행기_  <트래비>에 썼던 에티오피아 여행기. 후다닥 100매를 썼는데, 못 쓴 말이 많았다.
42 작가라고 불리게 된 결정적 계기_  2006년 펴년 첫 책 <당분간은 나를 위해서만>. 그전에는 기자였는데 책을 내고 기고를 시작하면서 작가라고 불렸다.
43 자주 쓰게 되는 단어 혹은 문장_  여행과 위로(여행이 당신을 위로할 것이다)
44 강연자로서 본인의 ‘말빨’을 평가한다면_  첫 강연을 생각하면 지금도 부끄럽다. 지금은 그럭저럭 들어줄 만한 수준. 점점 나아지고 있다는 것을 위안 삼고 있다.
45 흥미롭다고 생각하는 강의 주제_  프리랜서로 살아간다는 것. 프리랜서로 버틴다는 것
46 강의할 때마다 느끼는 감정_  체력을 더 키워야겠다.
47 여행작가로 살기 버거운 순간_  딱 요즘. 코로나 때문에 일이 없다
48 ㅇㅇ한 여행작가, 탐나는 수식어_  최갑수만의 스타일을 가진 여행작가
49 여행의 목적_  의뢰와 매출
50 글을 쓰는 이유_  내가 할 수 있는 일 가운데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 다른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방법. 돈을 벌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방법. 내가 지금까지 배운 도둑질

●최갑수의 드리블 

여행 가지 못하는 여행작가. 잘 지내고 있나?

일이 없다. 방법이 있나, 일상을 지키고 있다. 1일 3매, 1만보, 1병.

정확히?

아침마다 1만보씩 걷는다. 원고지 3매 분량의 글을 쓴다. 그리고 1병을 마신다. 막걸리, 소주, 맥주, 와인, 다 좋다. 주종 상관없이.

특별한 이유라도?

최근 2년 동안 슬럼프에 빠졌었다. 긴 시간 쌓아 온 루틴이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체중은 무려 6kg나 불었다. 원래의 몸무게로 되돌아가려고 노력 중이다. 이거 봐라(핸드폰을 보여 주며), 최근에는 이렇게 식단도 적어가며 지키고 있다.

아침엔 샌드위치, 점심엔 가지구이.

솔직히 저녁에는 1병에 어울리는 맛있는 것을 먹는다.

아, 그래서…. 솔직히 ‘관리’하는 사람의 외형은 아니다.

말을 참 예쁘게 하는 편인 것 같다.

인터뷰를 준비하며 과거 인터뷰를 모두 찾아봤다. 후드 집업과 비니, 검은 티 혹은 검은 셔츠에 캡모자. 오늘도 딱 그런데, 우연인가?

혹시 같은 옷을 매일 입는다는 생각을 하는 건지? 그건 아니다. 나와 출장 다녀온 사람들은 모두가 다 안다. 한 번 옷을 살 때 같은 옷을 몇 벌씩 사는 편이다. 예를 들면 유니클로 검은 티셔츠 5개, 후드 5개. 신발은 나이키 에어포스만 신는다. 집에 3켤레가 더 있다. 정리하면 같은 옷을 매번 입는 게 아니라, 같은 옷이 많은 거다, 진짜로.

유니클로?

아니, 요즘은 탑텐.

모자는? 매번 모자를 쓰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오늘은 해가 참 밝은 것 같다.

시인 출신이고, 등단 작가다. 여행작가로서 월등감을 느끼나?

전혀. 먼저 나의 정체성이 ‘여행’ 작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작가다. 구체적으로는 생계형 작가.

생계형 작가?

글로 돈을 버는 직업, 그것이 생계형 작가다. 사람들에게 공감할 만한 것을 내 경험 속에서 찾아 적는다.

그것이 여행인가?

내 작업은 ‘위로’라는 큰 테두리 안에서 쓰여 왔다. 여행은 그 위로를 건네는 좋은 방법 중 하나다.

그렇다면 최고의 위로는 무엇일까?

2015년, <우리는 사랑 아니면 여행이겠지>란 책을 펴냈다. 그땐 사랑과 여행이 최고의 ‘위로’라고 생각했다. 2019년, <밤의 공항에서>라는 책을 펴내면서는 생각이 달라졌다. 최고의 위로는 ‘나와 똑같이 아파하는 사람을 보고 있는 것’이더라. 과거에는 ‘괜찮아, 잘될 거야’라며 독자를 위로했다. 지금은 ‘나도 아프다. 나도 외롭고, 나도 힘들다. 안 그런 척할 뿐이지’라며 위로하는 것이다. 공감, 아마도 최고의 위로는 공감이 아닐까 생각한다.

주로 사랑에 관련된 문구를 적어 낸다. 사랑이란 주제는 너무 한정적이지 않은가?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살다 보니 사랑은 한정적이지 않더라. 50년이라는 세월 동안 사랑을 배웠다, 물론 앞으로도 배울 것이고. 처음에는 남녀간의 사랑만이 사랑인 줄 알았는데 아이들을 만나며 새로운 사랑을 배우게 됐다. 아마도 점차 인류애적인 사랑을 알게 되겠지.

최갑수는 감성적인 작가로 알려져 있다. <우리는 사랑 아니면 여행이겠지> 같은 문구. 책보다 책 속의 어느 문장이 주로 소비되는 것 같다.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글귀를 쓸 때 감성적이지만 감정 과잉을 경계한다. 화려하지만 담백한 느낌, 편안한 감정이 드는 글귀를 적으려고 한다.

혹자는 느끼하다고 평하기도 하는데.

어떤 부분은 당연히 느끼하게 읽힐 수 있다. 나는 생계형 작가다. 책을 내면 어느 정도 팔려야 생계가 유지된다. 팔릴 만한 요소를 책 속에 넣어야 하고, 출판사의 의견도 적절하게 반영해야 한다. 내가 원하는 것만 할 수 없다는 뜻이다. 나만의 확실한 경계를 그어 놓고 판단할 뿐이다.

경계는 어떻게 판단하나?

나의 글을 읽게 될 독자층을 생각한다. 그들이 쓰는 언어, 그들의 느끼는 감성. 그 테두리 안에서 판단한다. 독자층에 맞는 워딩과 표현.

지금까지 수많은 책을 펴냈는데, 그중 그 경계에 가장 근접해 아슬아슬했던 글귀는 무엇인가?

2017년, <사랑보다도 더 사랑한다는 말이 있다면>의 제목. 책의 제목을 출판사에서 정해 줬다. 드라마 <하백의 신부>에서 남주혁이 신세경에게 낭독해 준 바로 그 책이다.

처음 출판을 계획했을 당시, 수많은 출판사로부터 거절당했다고 들었다.

출판사 3곳 정도에서 퇴짜를 맞았을 거다. 당시 책 시장은 대부분 ‘죽기 전에 가봐야 할 30곳’ 같은 가이드북이 주류를 이뤘다. 그러니 다들 ‘가이드북 형식으로 내는 것은 어떻겠냐’라는 제안뿐이었다. 다행스럽게도 당시 갓 입사한 초보 에디터 한 명이 책을 같이 만들어 보고 싶다는 연락을 주었다. 20~30대에게 해주고 싶은 나의 이야기를 마음껏 써 달라고 하더라. 그렇게 출판을 하게 되었다.

당시 최갑수를 거절한 에디터들에게 한마디.

‘뭐,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겠지’라고 생각한다. 이해한다. 책은 제작비가 들어가기 때문에 안정적인 방향으로 가고 싶었을 것이다.

당시 최갑수를 픽업한 에디터는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나?

지금까지 나온 대부분의 책을 거의 그 에디터와 함께 했다. 당시 막내에서 시작했는데 지금은 출판사 편집장이 되었더라. 같이 늙어 간다는 느낌이 들어 좋다. 프리랜서에겐 소중한 동질감.

지난해 사진 전문 갤러리 ‘류가헌’에서 여행작가 중 처음으로 사진전을 했다.

맞다. 스스로에게 정말 중요한 행사였다. 나는 시인으로 시작해, 무려 14년간 프리랜서 작가로 살아왔다. 그 오랜 세월 동안 마음 한편에는 항상 ‘시를 못 쓴다’라는 죄책감을 지니고 있었다. 사진전을 하며, 내가 그동안 찍어 온 사진들을 천천히 돌아봤다. 그동안 나도 모르는 사이 시를 쓰고 있었더라. 내가 발걸음이 멈추고, 셔터를 눌렀던 모든 곳이 시였구나. 죄책감이 덜어졌다.

전시회를 찾았던 사람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첫 독자가 아이의 엄마가 돼서 왔더라. 반가웠다. 그녀가 말하길 나의 글이 자신과 같이 늙어 가는 것이 좋다고 하더라. 최갑수도 나와 함께 늙고 있구나, 힘들어하는구나. 본인과 작가가 같이 변하는 것이, 또 그런 변화가 문장에서 느껴지는 것이 너무 좋다고 말하더라. 작가로서 정말 행복했다. 누군가에게 위로를 건네는 순간들.

나도 전시회 갔었다.

아…, 잘했다.

최갑수의 문장을 읽고 있으면 섹시한 남성미가 느껴진다. 글만큼 섹시한 편인가?

어느 날 EBS <세계테마기행> 섭외가 들어왔다. 홍대 근처에서 방송작가와 첫 미팅을 하러 나갔는데 그러더라. ‘어휴, 작가님 글만 읽었을 때는 목도 가늘고, 손도 길고, 얼굴도 하얗고…. 그럴 줄 알았어요.’ 콘셉트를 급히 바꿔야겠다더니 촬영 가서 애벌레 먹고, 모심고, 참치 잡고…. <세계테마기행> 촬영 가서 <도전 지구탐험대> 찍고 왔다. 이상하게 그 뒤로 그런 날것들만 들어오더라. 캄보디아 대나무 열차 타기 뭐 이런 거. 전시회, 미술관 좋아한다.

한때 채식주의자 생활을 했다고, 어떤 철학이 있는 건가?

철학은 없고, 몸이 안 좋아서 했었다. 한 4년 전인가, 1년 동안 밀가루와 고기를 끊었다. 취재를 갈 때는 아몬드를 가져가서 식사 대신 먹었다.

도움이 됐나?

당시 한의사가 나의 몸에 대해 말하길 ‘폐도 낙엽처럼 말라 있고 심장에 열도 많다’라고 했다. 스스로 위기감을 느껴 의사의 조언대로 밀가루와 고기를 아예 끊어 버렸다. 발 달린 것은 다 끊었다. 신기하게 일주일 만에 3kg 정도가 빠지더라. 2달 정도 채식을 유지하니 고기 생각이 아예 안 났다. 정육 식당에 가면 피비린내가 나서 도저히 못 먹겠더라. 근데 밀가루는 정말 먹고 싶더라. 밀가루는 지독하게 참았다. 그렇게 채식을 한 지 1년, 17kg 빠졌다.

술은?

와인만 먹었다.

채식주의를 끝내게 된 계기는?

몸이 다시 괜찮아진 것 같아서…. 채식주의자가 된 지 1년 되던 날, 곱창을 먹었다.

왜 하필 곱창.

채식주의자가 되기로 결심했을 때 곱창을 못 먹고 고기를 끊었다. 그래서 가장 먹고 싶었다. 곱창을 먹은 다음 날, 배가 아파서 데굴데굴 굴렀다. 한 4일 정도 지나니까 몸이 고기를 기억하더라.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 

본인과 함께 취재했던 이에게 제보를 받았다. 여행에 상상을 곁들인다던데.

맞다. 가끔은 있을 법한 일들을 덧붙여 적는다. 여행작가는 독자에게 여행을 가고 싶게 만드는, 동경을 불어넣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말했듯 어딘가에는 항상 볼 만한 무엇인가가 있다. 그것을 상상해 허구로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주어진 상황에 몰입하는 것이다. 약간의 묘사를 더 하는 것이지, 허구적인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보통 불행하다. 행복했던 기억을 되짚어 봐라. 정말 몇 없는 기억이지만 결국 그것 때문에 살아가는 것 아니겠나. 여행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거 천소현(트래비 부편집장)의 제보인가.

맞다. 이것도 함께 전해 들었다. 다른 잡지에 비교해 여행잡지의 글 수준이 떨어진다 평가했다고.

그 부분은 스스로 돌아봐야 한다. ‘서울은 한국의 수도다, 목포는 항구다’ 이런 이야기들의 나열은 누구나 적을 수 있다. 취재에서 느꼈던 날씨, 감정, 냄새, 오감은 어디로 간 것인가. 좀 더 세밀한 이야기를 기자들이 적을 수 있도록 편집장의 데스킹이 필요할 것 같다.

수년간 세계 곳곳을 취재했다. 취재라는 것은 찍는 것인가, 적는 것인가?

둘 다. 하지만 찍는 것에 조금 더 집중하는 편이다. 나는 보통 원고의 60% 이상을 취재하며 완성한다. 차량으로 이동하며 허벅지에 적어 내는 등의 나름의 방식을 터득했기 때문이다.

마감은 좀 늦던데. 흠.    

<트래비>의 출장을 정말 많이 다녀왔다. 에디팅을 하며 거의 모든 원고를 읽어 봤다. 최갑수의 문장은 특별하다. 쓰다 만다. 예를 들면 에티오피아는 참 좋았다, 햇빛 그리고 사랑. 이런 식의 문장들. 그렇게 쓰는 이유가 있는 것인가?

궁금 그리고 사랑. 여운을 남기는 것이 내 스타일인 것 같다. 반응이 좋아 그렇게 쓰다 보니 그렇게 됐다. 최갑수는 최갑수만의 방식으로 문장을 드리블하는 것뿐이다.

그게 너무 좋다. 어떻게 하면 본인만의 스타일을 만들 수 있을까?

연습 그리고 연습.

작가로서 다양한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여행기를 잘 쓰는 방법’, ‘여행 사진을 잘 찍는 방법’은 정말 있는 것인가?

분명히 있다. 일단 쓰고 찍게 만드는 것. 이것저것 해보고 싶은 거 다 쓰고, 찍을 수 있게 격려하는 것이 1단계. 거기에 전문가의 조언이 곁들여지면 분명 방법이 보인다.

정말 지옥으로 가는 길은 부사로 덮여 있다고 생각하는가?

확실히 부사에 의존한 글쓰기는 쉽다. 깊은 생각을 하지 않게 된다. 그래서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글쓰기가 익숙하지 않다면, 부사와 오감을 동원해 쉽게라도 써 보는 것이 중요하다.

갑자기 궁금한데 지인들 모임 자리에서 ‘나 여기도 가 봤어’ 하고 자랑하는 여행지가 있나?

에티오피아, 남아프리카 공화국, 갈라파고스 등. 그냥 가기 힘든 데는 다 자랑하고 보는 편이다. 사람 다 똑같다.

여행잡지를 직접 창간하고 싶다는 생각은?

작년에 무크지(책과 잡지의 성격을 동시에 지닌 부정기간행물)를 하나 만들었다. 포르투갈, 홍콩, 미얀마 등의 내용을 담아 64p로 구성했다. 제목은 본 보야지(Bon Voyage). 200부 만들어서 독립서점에서 모두 팔았다.

최갑수가 생각하는 글 잘 쓰는 작가는?

소설과 에세이는 김연수 작가. 음식에 관련한 글은 박찬일 셰프. 여행은 역시 무라카미 하루키.

한국 여행작가는?

사실 한국 여행기를 잘 안 읽는다.

본인 것만 읽는 건가. 그렇다.

살며 가장 성공한 일은?

뭐가 성공인지 뭐가 실패인지 잘 모르겠다.

여행업계는 원고료가 짜다. 대접받지 못하는 여행작가 후배들이 정당한 대우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솔직히 말하면 없지 않을까. 이제 누구나 글을 쓰고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수요보다 공급이 더 많은 시장이다. 최근에 독립서점에 갔더니 여행 에세이가 너무 많아 이젠 받지 않는다더라. 좋은 대접을 받기 위해서는 스스로 차별화된 전문성을 키워야 한다.

글은 주로 언제 쓰나? 새벽.

아침형 인간인가?

일종의 습관이다. 1999년, <스포츠신문>에서 기자 생활을 하고 있을 당시에는 신문이 가판에 깔렸다. 마감을 맞추기 위해서는 새벽 6시에 출근을 해야 했다. 당시 일산에서 살고 있었으니 집에서 새벽 4시에 일어나 씻고 출근하는 일정이었다. 그러다 보니 새벽에 글을 쓰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프리랜서가 되어서도 꾸준히 루틴을 이어오는 이유는 모든 세상이 잠들어 있고 나 혼자만 깨어있는 듯한 기분이 참 좋아서다. 요즘은 새벽 3시30분에 일어나 4시부터 6시30분까지 글을 쓴다. 그리고 만보를 걸으며 아침을 맞이한다.

정말 어려울 텐데.

프리랜서에게는 루틴이 전부다. 요즘 2006년부터 프리랜서를 시작해 지금까지 쌓인 노하우를 책으로 정리하고 있다.

지금 시기에 프리랜서를 추천하나.

꼭 붙어 있어라. 지금은 아니다.

어떤 작가로 기억되고 싶은가? 성공한 작가.

성공은 부인가?

부 그리고 글과 사진. 그러니까 그냥 최갑수 작가만의 스타일을 가진 작가. 원고를 청탁 받을 때 ‘이 글은 작가님이 가장 잘 쓰실 거 같아서요’라는 말이 가장 좋다.  

<트래비>는 창간 15주년을 맞았다. 대단하다.

앞으로 얼마나 더 보는가?

냉정하게 잡지 전체가 10년 안에 사라질 거라고 본다. CD와 LP가 사라졌다. 하지만 음악은 여전하다. 잡지도 마찬가지다. 종이는 사라지겠지만 <트래비>란 콘텐츠는 계속해서 남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최갑수는 시인, 여행작가, 생의 탐색가, 길의 몽상가. 오랫동안 여행작가로 일하고 생활하고 있다. 그러니까 여행을 다니고 글을 쓰고 사진을 찍는 것이 일이다. 그래서 이번 생이 약간은 다행스럽고 행복하다고 여기고 있다. “여행이란 뭐죠?” 하고 묻는 이들에게는 “위로 아닐까요”라고 대답한다. 지금까지 쓴 여행에 관한 혹은 생에 관한 책들 <내가 나를 사랑하는 일, 당신이 당신을 사랑하는 일>, <우리는 사랑 아니면 여행이겠지>, <밤의 공항에서> 등은 모두 위로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저서
2019,     밤의 공항에서 | 보다북스
2017,     사랑보다 더 사랑한다는 말이 있다면 | 예담출판사
2015,     우리는 사랑 아니면 여행이겠지 | 예담출판사
2015,     맛있다 제주! | 덴스토리
2015,     안녕, 나의 모든 순간들 | 인디고(글담)
2015,     위로였으면 좋겠다 | 꿈의지도
2014,     이 길 끝에 네가 서 있다면 좋을 텐데 | 달
2013,     내가 나를 사랑하는 일, 당신이 당신을 사랑하는 일 | 예담
2012,     사랑을 알 때까지 걸어가라 | 상상출판
2012,     당신에게, 여행 | 꿈의지도
2011,     행복이 오지 않으면 만나러 가야지 | 예담
2010,     잘 지내나요, 내 인생 | 나무수
2009, 목요일의 루앙프라방 | 예담
2008, 구름 그림자와 함께 시속 3KM | 상상공방
2007, 당분간은 나를 위해서만 | 예담
2000, 단 한 번의 사랑 | 문학동네

 

인터뷰·사진 강화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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