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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작가로 산다는 것

  • Editor. 박준
  • 입력 2020.05.01 18:57
  • 수정 2020.05.12 10: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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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코 사하라 사막
모로코 사하라 사막

●여행작가 또는 트래블라이터 

나는 좀체 나를 ‘여행작가’라고 부르지 않는다. 명함에도 ‘여행작가’라는 말은 없다. 내 생각은 중요하지 않다. 얼마 전 한 주간지에 원고를 주며 내 이름 옆에 ‘작가, 여행가’라 썼더니 알아서 ‘여행작가’라고 고친다. 내 뜻과 상관없이 나는 그냥 여행작가다. 언젠가 한 인터뷰에서 왜 나를 선택했느냐 물으니 기자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살고 싶은 것처럼 사는 분 같아서요.”
그녀는 내게서 무엇을 보았을까? 중앙일간지 기자에게도 좋아 보이는 게 여행작가일까? 뭐, 그 말이 딱히 진심이 아니란 건 안다. 진심이라면 부럽다 하지 말고 그냥 하면 되니까. 사람들은 처음 나를 보면 흔히 부럽다고 한다. 여행을 하고, 책을 쓰고, 돈을 번다. 무엇보다 자유로워 보인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여행작가의 모습이다. 흔쾌히 이렇다 말할 수 있으면 멋진 일 같다. 하지만 내 경험으론 그리 단순하지 않다.

공짜 여행이란 없다. 무엇이든 버려야 떠난다. 여행작가도 마찬가지다. 대개 월급을 포기해야 자유를 얻는다. 뭐, 일이란 게 다 그렇다면 딱히 할 말은 없다. 어쨌거나 나는 책을 팔아 집을 산 작가로 알려졌다. 지인들 기억에 강하게 남은 여행작가 박준의 모습이다. 정작 왕년의 베스트셀러 작가인 나는 나를 ‘여행작가’라 부르기를 주저한다. 한국에서 ‘여행작가’는 너무 가볍다. 여행작가란 말에는 사람들의 부질없는 바람만 가득하다. 내가 부럽다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한 달에 책을 몇 권이나 사는가? 10년, 15년 전보다 못한 원고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직업’으로서 여행작가에 관해선 그다지 할 이야기가 없는 이유다. 내 관심, 능력 밖 얘기다. 내가 아니더라도 직업으로서 여행작가 교육은 여기저기서 많이 한다. 말장난 같지만 나는 나를 여행작가 아닌 ‘트래블라이터(Tavel Writer)’라고 말하고 싶다. 내게 여행작가는 직업 아닌 삶의 방식이다. 직업이라 말하려면 영업을 하고 돈벌이를 열심히 해야 하는데 나는 여행작가로 돈벌이 할 생각이 애당초 없었다. 나는 여행을 하는 게 중요했지, 여행을 어떻게 파는가 하는 문제는 관심 밖이었다. 나는 그저 이런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집 사고 여행하고 입에 풀칠하고 살아온 게 감사하다. 부모님에게 경제적 도움을 전혀 못 드린 건 죄송하지만…. 


여행자는 세상의 온갖 경계를 넘는 이방인이다. 나는 이방인 여행자로서 내가 경험한 월경의 기록으로 책을 만들어 왔다. 글 쓰고 사진 찍는 트래블라이터의 경험을 통해 돈을 버는 직업인이 아니라 기록자, 창작자인 양, 대책 없이 살았다. 흔히 인생을 여행에 비유한다. 그럼 ‘트래블라이터’는 ‘인생라이터’ 아닌가? 인생의 기록이 누구에게나 필요하다면 트래블라이터의 삶의 방식은 낯선 이국에서 보낸 자신의 시간을 기록하고 표현한다. 세상에서 나를 기록해 줄 사람이 자기 자신 말고 누가 있으려나?
 
●여행은 삶 

원고료가 어떻건 나는 여행을 하고 글을 써 왔다. 지난해 여름에는 발칸반도를 3개월 가까이 둘러보았다. 세르비아의 베오그라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사라예보, 코소보처럼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나라의 도시를 종일 걸으며 그 여정을 틈틈이 페이스북에 썼다. 늘 그랬듯 돈 버는 것과는 상관없을, 그저 내 인생의 기록이다. 


가수 이상은씨는, ‘삶은 여행’이라고 노래했지만, 내게 ‘여행은 삶’이다. 발칸 여정이 그랬듯 여행은 과정이 아니라 목적이다. ‘여행은 삶’은, 실제로 내가 쓰는 이메일 닉네임이다. 

“난 언제나 나를 순수하게 해주는 곳으로 가고 싶다.” 


생텍쥐페리는 이렇게 말했다. 내게 여행은 생텍쥐페리의 염원 같다. 하지만 염원과 현실은 다르다. 한 번은 뉴욕에서 불안증으로, 한 번은 발리에서 바이러스 감염으로 두어 번 죽을 것 같은 고비를 넘겼다. 하지만 뉴욕에 간 걸, 발리에 간 걸 후회하진 않는다. 나는 여기 아닌 낯선 그곳에 존재하는 게 좋았다. 늘 그랬다. 뉴욕에 사는 척, 방콕에 사는 척, 베를린에 사는 척, 런던에 사는 척, 파리에 사는 척, 리스본에 사는 척하며 나이를 먹었다. 내가 태어난 곳을 떠나 세상을 이리저리 떠도는 게 인생의 과업이라도 된 듯 살았다.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지만 그저 내딛고 또 내디뎠다. 힘겨운 일도 겪었지만 축복이라고 말할 시간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트래블라이터는 세계와의 경계를 끊임없이 확장시켜 가며 인생을 풍요롭게 만들어 가는 사람이다. 분주한 일상에서 벗어나 글을 쓰고, 사진을 찍는 일은 자기를 온전히 바라보는 시간이다.

누구나 트래블라이터가 되어 볼 이유다. 책을 출간한다는 말은 사적인 원고를 공적인 영역에서 보여 준다는 것이다. 뿌듯하지만 부담스럽다. 하지만 이런 경험은 특별하다. 글을 잘 쓰거나 못 쓰거나, 사진을 잘 찍거나 못 찍거나 하는 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나를 바라보는 시간을 갖는 일, 자기 안의 창의성을 발견하는 일. 그때 일상이 좀 더 풍요로워질 거라고 믿는다. 산다는 건 어쩌면 어두운 숲속에서 혼자 길을 걷는 것과 같다. 인생을 꽃피우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상황이 좋은 사람은 좋은 대로 나쁜 사람은 나쁜 대로 사는 게 답답하다. 그때 이런 기록은 더 의미 있다. 내게도, 당신에게도 떠나야 할 이유는 있다. 단, 나를 증명할 나만의 여행을 고민해야 한다. 여행작가를 꿈꾼다면 더욱 그렇다. 

‘Dance with your heart and your body will follow
Everything else is useless and hollow…’
‘심장으로 춤을 춰요. 그럼 당신 몸이 따라올 거예요
그 외 모든 건 쓸모없고 공허하니…’

미국 민요와 노르웨이의 뿌리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는 노르웨이카나 노래(Norwegicana Song)다. 곡을 만들고 부른 란디(Randi)는 노르웨이 남서쪽 바닷가 스타방에르에 산다. 내내 이 노래를 들으며 스타방에르에 가는 꿈을 꾸었다. 나는 언젠가 그녀를 정말로 만날 것 같다. 
나는 공항에서 밥 먹고 샤워하는 게 좋다. 인천공항에서 출국을 하면서도 굳이 라운지에 들러 샤워를 한다. 밥 먹고 샤워하겠다고 부러 한두 시간 일찍 간다. 내 여행은 인천공항 라운지에서부터 시작된다. 외국공항에서 하는 샤워는 더 즐겁다. 달랑 작은 배낭 하나 들고 여행하는 지구의 방랑자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지구의 방랑자라…, 아직도 이런 말에 혹하니 나는 여전히 철이 없다. 


피지에서 한국으로 돌아올 때다. 상공에서 적도를 지나던 순간을 기억한다. 그 순간을 기억하고 싶어 사무장에게 따로 부탁까지 했다. 
“비행기가 적도를 언제 통과하는지 알려 줄 수 있나요?”


그녀 표정으로 알겠다. 세상에, 이런 부탁을 하는 승객은 내가 처음이구나. 피지 난디공항을 떠난 지 정확히 3시간 25분 만에 1만1,582m 상공에서 나는 적도를 통과했다. 위도 0도, 이 선을 따라 4만 킬로미터를 가면 지구를 한 바퀴 돈다. 출발지인 피지 난디 시각 오후 2시5분, 도착지인 한국 시각 오전 11시5분에 지구 둘레 한가운데를 통과하며 적도와 지구를 느꼈다. 짜릿하다.


몇 년 전 방콕 카오산 로드에서 여행사를 하는 친구가 말했다. 요즘 여행사를 찾는 손님 대부분은 엑셀로 여행 계획을 짜 온다고. 모두가 베스트 여행 계획을 세우려고 남들 여행 계획을 힐끔거린다. 모두가 검증된 모범답안을 찾아 여행 계획을 세운다. 그러다 보니 모두의 여행은 비슷해진다. 남의 경험을 카피하는 게 여행은 아닐 텐데, 내 여행이 남과 다를 바가 없다면 여행의 의미가 뭘까? 어쩌면 현실과 다른 시간을 꿈꾸는 게 여행 아닌가? 내가 한 여행이 나 자신이다. 여행을 가서 본 것이 나 자신이다. 여행을 가서 내가 한 행동이 나 자신이다. 가이드북 코스만 따라다니면, 여행작가가 소개하는 ‘죽기 전에’ 운운하는 가이드만 따라가다 보면 내 여행과 다른 사람의 여행이 크게 다르지 않다. 내가 죽기 전에 꼭 해야 할 일을 남이 정해 주는 건 난센스다. 남과 같다면 나는 과연 어디에 있는 걸까? 나는 누구인가? 베스트 여행 계획이란 있을 수 없는 이유다. 인터넷 때문에 안전이나 편리만큼 ‘날것의 여행’을 고민하지 않으면 '나만의 여행'을 하는 게 어려운 시대다. 여행하며 글 쓰는 사람으로선 고민은 더 깊어진다. 

 

●여행이 나를 데려가 주겠지

2020년 봄, 느닷없이 코로나 시대가 열렸다. 세계로 가는 하늘 길은 거의 막혔다. 믿기지 않은 현실이다. 코로나로 인해 지난 2월 진작 초청받은 미국 출장이 취소되었고, 일간지와 주간지 연재 또한 중단되었다. 지구의 방랑자인 척 살아온 나는 어디도 갈 수 없게 되자 바이크를 샀다. 일정대로라면 미국으로 출국했어야 할 날에 나는 411CC 매뉴얼 바이크를 사서 그날로 완도에서 제주 가는 페리에 몸을 실었다. 코로나 덕분에 몇 년 전부터 꿈꾸던 일, 한 가지를 이루게 됐다. 내 바이크로 제주 달리기. 


무작정 제주로 내려와 2주일 동안 달리는 게 숙명이라도 된 듯 그저 달렸다. 매일 목적지를 대충 정하고, 대충 방향을 잡고, 도로에서 벗어나 좁은 길을 이리저리 달렸다. 때로는 1차선 도로, 때로는 비포장도로, 때로는 한라산 중턱의 울퉁불퉁한 산길을 달렸다. 때로는 오름에 오르려고, 때로는 해질녘 한라산을 보러, 때로는 어두운 바다를 보러 갔다. 자빠지고, 엉덩방아 찧고, 여기저기 긁히고, 왼쪽 엄지는 부은 채 눈만 뜨면 홀린 듯 바이크를 탔다. 바이크를 타면서 만나는 제주의 풍광은 찬란하다. 바람을 맞기에 더 진하게 그 찰나의 순간에 존재한다. 달리는 데 집중할 뿐이고 그 단순한 행위에 평화롭다. 


제주에서 신세 진 후배 집 돌담 너머는 귤밭이고 그 앞으론 산방산이 보였다. 매일 아침, 테라스로 나가 앉으면 볼가에 와 닿는 햇살은 따뜻하고 새들은 경연이라도 하듯 삐익이익, 짹짹, 뾰오뾰오로오 낭랑하게 지저귄다. 제주는 여전히 아름답다. 하루는 일기예보를 보니 며칠간 큰비가 내린단다. 서울로 돌아갈 때다. 다음날 새벽 5시15분, 서귀포 후배 집을 나선 지 15시간 25분 만인 저녁 8시40분, 서울 집에 도착했다. 제주에서 배를 타고 완도에 내린 후 완도에서부터 집까지 500km를 오는 데 10시간 30분이 걸렸다. 아무 계획 없이, 아무 준비 없이, 매뉴얼 바이크 초보 주제에 무모하게 달리고 달려 하루에 남한을 가로질렀다. 코로나로 인해 온갖 일정과 계획이 취소되는 와중에 기억에 남을 작은 모험 한 가지를 엉겁결에 마쳤다. 이러지 않았으면 바이크 연습한다고 일주일, 헬멧이니 재킷이니 안전 장구 고른다고 일주일, 남한 종단 라이딩 계획 세운다고 일주일을 보낼 게 뻔했다. 결국 참 잘했다. 


제주에서 서울로 올라와 며칠 쉬는 동안 바이크를 점검하고, 부츠와 장갑을 사고 임진각과 강화 교동도에 다녀왔다. 남으로 더 이상 달릴 수 없는 곳에서 출발해 북으로, 서쪽으로 더 달릴 수 없는 곳에 이르렀다. 내 식대로 대충 남한의 서쪽 끝, 남쪽 끝, 북쪽 끝을 바이크 타고 찍은 셈이었으니 이제 동쪽 끝으로 갈 일만 남았다. 제주에서 바이크 타고 서울에 가려 했을 때 참 까마득했는데 막상 마치고 나니 한국은 참 작다. 제주 바이크 여행, 그리고 바이크로 남한 종단이란 꿈을 이루니 다른 꿈 한 가지가 성큼 다가왔다. 그건 달리고 달려도, 하루 종일 달려도 끝나지 않을 길을 바이크로 달리기. 유라시아 횡단이다. 바이크를 타고 서울에서 런던까지 가고 싶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까지 거리는 9,289km. 그럼 완도에서 서울까지 거리를 열아홉 번 달리면 모스크바에 도착한다. 바이크로 유라시아 횡단을 한다는 게 어떤 걸지 이제 대충 감이 온다.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겠지’.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말한다. 여행이, 바이크가 나를 데려다 주겠지. 바람처럼 나를 태워 가겠지.


바이크 산 지 이제 3주가 좀 지났을 뿐인데 주행거리는 3,000km를 넘겼다. 코로나 덕분에 참 열심히 탔다. 며칠 전 친구가 물었다. 비행기를 탈 수 없는 지금 같은 상황이 답답하지 않냐고?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물리적 이동만이 여행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바이크를 탈 수 있어 할 수 있는 말이었다. 내 바이크 이름은 히말라얀이다. 이름 그대로 히말라야를 달리라고 만들어진 바이크다. 히말라얀 없는 2020년 봄은 상상만으로 숨 막힌다. 히말라얀을 타면 어디로든 갈 수 있다. 코로나 시대의 봄날, 1만5,000원으로 할 수 있는 가장 값진 일은, 히말라얀에 기름 넣고 300km 달리기. 


달리면 차가운 공기 속에 자유가 흩날린다. 다치지 않기 위해 몸과 마음을 통제하고, 집중하고, 바이크와 호흡하며 넓게 봐야 하는 찰나의 시간이 흘러간다. 소중하지만 두려운 시간, 가슴 벅차지만 때로 쓸쓸한 시간이다. 인생은 한 번뿐이고 순식간에 흘러간다. 그 시간을 조금이라도 늦추려고 달린다. 길을 달리는 건, 순간을 사는 일, 사고 나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현실 속에 존재하는 일이다. 사고로 죽고 싶진 않으니 매 순간 깨어 있어야 한다. 길에 미친놈처럼 달리는 이유다. 내게는 최고의 여행이다. 이런 모험이 나를 살아 있게 한다.  

여행은 삶, H120cm, 철, 2019, 이승연
여행은 삶, H120cm, 철, 2019, 이승연

 

한 예술가는 나를 이렇게 표현했다. 
“여행가인 그는 온 세상을 다 가고 싶다. 
거북이와 코끼리가 떠받든 지구에 앉아 
그는 빙긋 웃는다. 
우주의 별이 촘촘히 박힌 바이크 바퀴를 
후광으로 가졌지만 ‘여행은 삶’이란 그는 
늘 현실과 이상 사이를 헤맨다. 
그의 저울이 심하게 기울어진 이유다. 
요동치는 저울을 매단 채 그는 지금도 
지구 어딘가를 떠돈다.”


글·사진 박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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