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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그늘 아래, 원주

  • Editor. 김선주 기자
  • 입력 2020.06.24 11:10
  • 수정 2020.06.24 11: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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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허브 팜 자작나무 길을 한 가족이 산책하고 있다
원주 허브 팜 자작나무 길을 한 가족이 산책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나무가 많다.
그래서 종이로 유명한가 보다.
나무 그늘 아래 여름날 원주를 여행했다.

 

●천년고찰로 가는 금강송길
구룡사


해발 1,288m의 명산 치악산에 안긴 천년고찰 구룡사, 사찰까지 차로 손쉽게 닿을 수 있지만 그러지 않았다. 매표소에서 구룡사까지 1km 정도인 산중 산책로를 즐기기 위해서였다. 구룡테마 탐방길이다. 느릿느릿 걸어도 30분 정도면 도착하는데 굳이 속도에 집착할 필요는 없었다. 게다가 이 길은 하늘로 쭉쭉 치솟은 금강송의 호위를 받을 수 있는 길 아니던가! 붉고 굵은 줄기가 하늘로 곧게 자라고 목질도 단단해 예부터 목재 중 으뜸으로 쳤던 소나무다. 기대했던 것보다 금강소나무가 빼곡하지는 않았지만, 거침없이 푸른 기운을 부풀려가는 초여름 산속에서 올곧게 뻗은 금강송의 자태는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후련하고 상쾌했다. 마침 엊그제 내린 비로 계곡 물소리도 경쾌했던 터라 휘파람이 절로 나왔다. 

치악산 기슭의 천년고찰 구룡사
치악산 기슭의 천년고찰 구룡사

산책로가 조금 가팔라지기 시작할 때쯤, 저 앞에 구룡사가 다소곳한 자태로 앉아 있었다. 사천왕문을 지나기 전 안내문을 보니, 구룡사는 1,300년 전쯤 ‘아홉 마리 용’이 살던 연못 자리에 스님이 용을 쫓아내고 세웠다. 스님과의 대결에서 진 아홉 마리 용 중 여덟 마리는 동해로 달아났고 한 마리는 근처 계곡 용소에서 일제 강점기까지 살다가 하늘로 도망갔다고 한다. 용 여덟 마리가 급히 도망가다가 구룡사 앞 치악산 자락에 여덟 개의 골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어디가 어딘지 정확히 세어보지는 못했다. 구룡사는 조선시대 때 기운이 쇠락했는데, 한 스님이 절을 지켜주던 거북이를 되살려야 된다고 조언해 그때부터 절 이름에 아홉 구가 아닌 거북이 구를 쓰게 됐다고 한다.

구룡 계곡
구룡 계곡
구룡사의 불자들
구룡사의 불자들

사천왕문을 지나 제법 가파른 계단을 오르니 보광루와 대웅전 등 경내 풍경이 차례로 반겼다.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구룡사는 호젓하고 운치가 깊었다. 이층누각 보광루는 천년고찰의 깊은 기운을 발산했다. 산사 풍경소리는 청량했으며, 미륵불은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첩첩 겹을 이루며 저 멀리 나가는 치악산 능선이 한눈에 들어왔다. 용들이 도망치다 만들어 낸 골짜기들일까…. 산이 절을 품은 게 아니라 구룡사가 치악산을 품은 것 같았다. 


●닥나무 자라는 한지 마을
원주한지테마파크


원주는 한지의 본고장으로 불린다. 세종실록지리지에 닥나무가 원주의 특산물로 기록돼 있고, 호저면 등 ‘닥나무 저’자가 들어간 지명이 지금도 남아 있다. 닥나무는 한지를 만드는 재료인데 지금도 원주 곳곳에서 많이 자라고 있다. 1950년대까지 15개 이상의 한지 공장이 원주에 있었다는데, 1970년대 들어 펄프로 생산할 수 있는 양지가 대량으로 들어오면서 급속도로 쇠퇴했다. 그러다 근래 들어 한지 산업을 되살리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펼쳐지면서 원주는 다시 한지의 본고장으로 비상하고 있다. 1999년부터 매년 원주한지문화제를 개최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한지테마파크의 닥공예 작품
한지테마파크의 닥공예 작품

원주한지테마파크는 한지의 본고장 원주를 체험하고 배울 수 있는 공간이다. 한지를 체험할 수 있는 여러 가지 프로그램이 운영되는 것은 물론 한지를 테마로 한 다양한 기획전시도 열린다. 한지의 역사와 제작 과정, 한지 공예, 한지 문화를 종합적으로 엿볼 수 있는 것은 물론이다. 테마파크 야외공원에 나가니, 아직 작지만 태어나 처음 보는 닥나무가 자라고 있어 호기심을 자극했다.

원주 허브팜
허브팜의 다양한 식물들
허브팜의 다양한 식물들

●푸르고 싱그럽다 자작나무길
원주 허브팜


언젠가 겨울철 자작나무 숲속에 들었을 때, 언젠가 꼭 여름날 자작나무도 만나보겠노라 다짐했었다. 그만큼 아름다웠고 그래서 다른 계절의 모습이 궁금했었다. 원주 허브팜(Herb Farm)에서 다른 계절의 자작나무 숲에 들었다. 1만7,000㎡ 면적에 1,000여 종의 식물과 나무가 자라는 식물원이다. 연과 수련이 연못을 채웠고 야생화와 자생식물이 빼곡했다. 로즈마리, 라벤더, 캐모마일, 제라늄 같은 허브는 아티쵸크, 폭스글로브, 차이브 같은 생소한 식물 앞에서 너무 반가웠다.

아기자기한 맛이 큰 원주 허브팜
아기자기한 맛이 큰 원주 허브팜

향긋한 허브 향에 취해 산책로를 걷다보니 자작나무가 양쪽에 주르륵 늘어선 일직선 자작나무 길이 나왔다. 하얀 줄기에 아직은 연두색에 가까운 어린 나뭇잎을 매단 자작나무가 더없이 푸르고 싱그러웠다.

뮤지엄 산의 미로 같은 통로
뮤지엄 산의 미로 같은 통로

●산에 핀 공간·예술·자연
Museum SAN


뮤지엄 산(Museum SAN)을 잘 몰랐을 때는 이곳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아치형 빨간 조형물만 주목했다. 그게 다가 아니었다. 웰컴센터부터 플라워가든, 워터가든, 뮤지엄 본관, 스톤가든, 제임스터렐관, 명상관까지 뮤지엄 산의 모든 구성 요소들은 주변의 자연과 어우러져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다가왔다. SAN(산)은 Space(공간), Art(예술), Nature(자연)의 앞 자를 딴 이름이다. 그야말로 예술과 자연을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이자, 그 자체로 온전한 산이기도 하다.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타다오(Ando Tadao)의 설계로 공사를 시작해 빛과 공간의 예술가 제임스 터렐(James Turrel)의 작품을 마지막으로 2013년 5월 개관했다. ‘소통을 위한 단절(Disconnect to connect)’을 슬로건으로 자연 속에서 건축과 예술의 조화를 이루고자 했다고 한다. 안도 타다오가 2005년 이곳 부지를 방문했을 때 다짐했다던 ‘도시의 번잡함에서 벗어난 아름다운 산과 자연으로 둘러싸인 아늑함’이 밀려왔다.

야외 테라스 카페는 탁 트인 조망감이 물씬하다
야외 테라스 카페는 탁 트인 조망감이 물씬하다

웰컴센터를 나와 플라워가든으로 들어서니 붉은 패랭이꽃밭 위에서 로봇 모양 같기도 하고 바람개비 같기도 한 빨간 조형물이 두 손을 벌렸다. 곧이어 180그루의 자작나무가 양옆에서 안내했다. 여름날 자작나무는 어디서든 싱그럽다. 워터가든은 아치형 빨간 조형물 덕분인지 사람들로 북적였다. 이곳에서 보니 뮤지엄 본관은 마치 물 위에 떠 있는 듯 호젓한 분위기가 물씬했다.

뮤지엄 산의 종이 갤러리
뮤지엄 산의 종이 갤러리

뮤지엄 본관의 종이갤러리(Paper Gallery)는 종이의 역사와 유물, 공예품을 전시하고 있는데, 한지의 본고장 원주와 잘 어울렸다. 매년 두 번의 기획전과 상설전이 열리는 청조갤러리는 차분하게 미술작품을 감상하기에 좋았다. 건물 안 통로는 미로 같기도 해서 살짝 길을 잃기도 했는데, 삼각형 하늘이 불쑥 나오기도 하고 햇볕이 벽에 작품을 그리기도 해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그 또한 작품으로 다가와 기꺼이 즐겼다. 야외의 스톤가든은 우리나라 고분을 모티브로 만들어졌다는데, 돌로 이뤄진 9개의 스톤마운드는 영락없이 고분 모양이었다. 겨울이면 곡선만 남긴 채 새하얀 눈으로 뒤덮여 그 또한 장관이라고! 

뮤지엄 산의 상징격인 워터가든의 빨간 조형물
뮤지엄 산의 상징격인 워터가든의 빨간 조형물

빛과 공간의 예술가인 제임스 터렐의 대표 작품 5개가 전시된 제임스터렐관, 그리고 안도 타다오가 뮤지엄 산 개관 5주년을 기념해 완성한 명상관까지 만났어야 뮤지엄 산의 진면목을 느낄 수 있었을 텐데, 다음 기회로 미뤘다. 언제든 몇 번이든 누구와 함께든 다시 올 가치는 충분하므로 조바심은 느껴지지 않았다. 


글·사진 김선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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