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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만 가까워지고 싶은 '목포'

  • Editor. 곽서희 기자
  • 입력 2020.06.24 11: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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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달산을 타고 넘실거리는 목포 해상케이블카 Ⓒ목포 해상케이블카
유달산을 타고 넘실거리는 목포 해상케이블카 Ⓒ목포 해상케이블카

아따, 난중에 목포 한 번 다시 들르쇼. 겨울엔 또 색다른 매력이 있응께.
택시아저씨의 친근한 말투에 나도 모르게 
다음번 방문을 기약했다. 목포는 멀고도 가까웠다.

 

●숫자, 그 이상의 의미


지극히 촌스러웠다. 목포가 아니라 나 말이다. 국내여행을 제법 다녀봤지만, 해상 케이블카는 낯설었다. 클리셰하다는 이유로 왠지 피하곤 했던 날들이 있었다. 가장 클리셰한 게 가장 보편적이고, 보편적이라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을 너무 늦게 알았던 거다. 편협했던 사고를 반성하며 생애 처음으로 해상 케이블카에 올랐다. 

땅에서 바라본 목포 해상 케이블카 Ⓒ목포 해상케이블카
땅에서 바라본 목포 해상 케이블카 Ⓒ목포 해상케이블카

탑승하자마자 꽤나 훌륭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스쳤다. 이유는 숫자에 있다. 3.23km로 현존하는 국내 최장 길이이자, 155m의 최고 높이를 자랑한다는 그 수식어. 으레 그렇듯 모두들 최장과 최고라는 단어를 쉽게 사용하곤 하지만, 목포 해상 케이블카는 ‘찐’이다. 북항 승강장에서 유달산을 지나 고하도 승강장까지 왕복 소요시간만 약 40여분이 걸리니, 이 시간이야말로 제대로 된 증거인 셈이다. 게다가 주탑 중 5번 타워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케이블카 주탑이다. 155m의 압도적인 타워 높이는 프랑스 포마사와 새천년종합건설의 합작품이다. 

편도 소요시간만 20분, 케이블카 안에서의 시간은 느리면서도 빠르게 흐른다  Ⓒ목포 해상케이블카
편도 소요시간만 20분, 케이블카 안에서의 시간은 느리면서도 빠르게 흐른다 Ⓒ목포 해상케이블카

대게 숫자는 그저 숫자에 불과해서 피부결로 잘 와닿지 않는다. 뭐든 직접 경험해봐야 진하게 다가오는 법이다. 3.23km라는 숫자는 차창 너머로 끝도 없이 펼쳐진 기다란 케이블카 줄을 두 눈에 담았을 때에야 비로소 숫자 이상의 의미를 지니게 됐다. 북항 승강장에서 탑승해 유달산도 미처 도착하기 전, 코스의 끝이 도대체 어디쯤일지 모르겠다고 혼자 생각했던 순간에는 그 의미가 더 짙어졌다. 굽이굽이 물결치며 시원하게 뻗어있는 케이블카 줄을 보니 괜스레 마음이 흡족해졌다. 


다도해와 유달산, 목포대교를 비롯해 목포시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자 155m라는 높이를 한 번 더 실감했다. 오래된 버릇이 불쑥 나타난 순간이었다. 낯선 도시에 가면 제일 먼저 높은 곳에 올라가 그곳을 한눈에 담는, 아주 낡은 나의 버릇 말이다. 목포의 스케치는 케이블카 안에서 그려졌다. 비록 색칠도 채 안 된 상태였지만, 채색은 차근차근 해가면 될 일이었다. 


발 아래 세상으로부터 꽤 멀리 떨어져 목포를 관찰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제대로 뒷통수를 맞았다. 유달산 곁을 지날 때였다. 산 정자에서 한 노부부가 나를 향해 두 손을 흔들었다. 뜻밖의 환대였다. 너무도 반갑게 인사를 건넸기에 나도 모르게 팔을 양쪽으로 휘휘 저으면서 화답했다. 그 인사 하나로 전지적 관찰자 시점에서 1인칭 주인공 입장으로, 내 위치는 옮겨졌다. 목포는 멀었지만 가까웠다. 


한낮인지라 케이블카 내부가 따스했다. 3월부터 10월까지 하계 시즌에는 금요일과 토요일 기준 오후 10시까지 운행한다. 상당히 늦은 시간까지 이용할 수 있는 편이다. 낙조로 유달산과 다도해가 붉게 탈 무렵의 풍광은 어떨까. 그 시간엔 목포의 크고 작은 항구들도 노란빛을 받아 더 반짝이겠지. 목포의 야경은 또 어떤 모습일까. 일반 케이블카 대신 투명한 바닥으로 이루어져있는 크리스탈 캐빈을 탑승하면 감동이 배가 될 테다. 내가 보지 못하는 목포의 모습들을 점점 더 알고 싶고, 보고 싶어진다. 자꾸만 욕심이 생긴다. 때마침 케이블카 창문에 써있는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목포에 반해버렸다.’ 부끄럽게 마음을 간파 당했다. 

독특한 외관을 자랑하는 고하도 전망대
독특한 외관을 자랑하는 고하도 전망대

저건 영화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 나오는 성 아닌가. 고하도 승강장에 다다랐을 무렵, 웬 벽돌색의 독특한 건물이 눈에 띈다. 정체를 알아보기로 한다. 서둘러 하차해 그곳으로 향했다. 다행히 승강장에서부터 걷기 좋은 산책로가 마련돼있다. 한적하고 조용한 산책길은 단지 걷는 것만으로도 금방 기분이 상쾌해진다. 산책로는 가파른 길과 완만한 길로 나뉘어있다. 보행이 불편한 방문객들을 위한 따스한 배려다. 바다를 바라보며 천천히 걷다보면 길 끝에 그 미지의 성이 모습을 드러낸다. 성의 정체는 고하도 전망대로 밝혀졌다. 1층엔 카페가 있고, 꼭대기층에는 전망대가 있는 붉은색의 거대한 건물이다. 삐뚤빼뚤 독특한 외관을 배경으로 인증샷을 남겨본다. 어쩐지 목포에서는 새로운 경험의 연속이다. 놀랍고, 신기하다. 역시, 나에 비하면 목포는 분에 넘치게 세련됐다. 아무래도 그렇다. 

 

●영혼이 거쳐가는 산


유달산이 자꾸만 눈에 밟힌다. 케이블카에서 내려다봤지만 그걸로는 부족했다. 목포하면 떠오르는 노래 두 가지. <목포의 눈물>과 <목포는 항구다> 두 곡에는 모두 유달산이 등장한다. 하나는 고향을 그리워하는 노래고, 다른 하나는 사랑하는 님을 그리워하는 내용인데. 도대체 어떤 산이길래 그리움의 정서를 담은 곡조에 계속해서 등장하는 걸까. 궁금증을 참지 못해 발걸음을 돌렸다. 

유달산 조각공원의 조각품 중 마음을 끌었던 작품 Ⓒ목포 시청
유달산 조각공원의 조각품 중 마음을 끌었던 작품 Ⓒ목포 시청

고하도 전망대까지의 산책로가 생각보다 가팔랐나보다. 들뜬 마음으로 간만에 운동을 했더니, 각 잡고 등산을 하기에는 체력이 남아있지 않았다. 유달산은 가보고 싶고 등산은 부담스러웠던 찰나, 유달산 조각공원이 훌륭한 대안이 돼줬다. 이른바 ‘유달산 맛보기’에 최적화된 곳이다. 물론 저질체력의 게으른 여행자에게도 안성맞춤인 곳이다. 목포역에서 차로 5분도 채 걸리지 않아 접근성도 단연 훌륭하다. 

작품 뒤로 목포 시가지가 넓게 펼쳐져 있다 Ⓒ목포 시청
작품 뒤로 목포 시가지가 넓게 펼쳐져 있다 Ⓒ목포 시청

유달산 자락 이등바위 아래, 유달산 조각공원이 호젓이 자리해있다. 국내 최초의 야외조각공원인 사실은 차치하고서라도, 국제조감 심포지엄을 통해 작품성을 인정받은 조각품들이 다수 전시돼있어 방문해볼 가치가 충분하다. 가벼운 마음으로 공원 내 산책로를 따라 설렁설렁 걸으니, 곳곳에 재밌는 조각들이 눈요깃거리가 돼준다. 걸어가는 사람 모형, 수풀 사이의 사슴 조각, 허공을 응시하는 남자의 얼굴 조형 등 작품들이 생각지 못한 곳에서 불쑥 나타나곤 한다. 작품들은 멋진 포토존이 되기도 한다. 사진을 한 컷 남겼다. 거대한 야외갤러리에 있는 듯하다. 여러모로 훌륭한 산책 동반자들이다. 조각품 주변으로는 희귀수목을 비롯해 은행나무와 벚나무 등 관상수가 심어져있다. 이렇게 공기가 달콤한 갤러리는 또 처음이다. 

향기로운 꽃 사이에 고고히 서있는 사슴 조각
향기로운 꽃 사이에 고고히 서있는 사슴 조각

공원을 오르고 올랐다. 탁 트인 시야가 한 번 더 눈을 즐겁게 한다. 목포시가지와 영산호, 고하도, 갓바위까지 한 눈에 들어온다. 유달산의 다른 이름은 영달산이다. 예부터 영혼이 거쳐가는 곳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유달산 자락에 서서 목포시와 다도해를 굽어보니 과연 이름값 한 번 제대로 한다. 고고한 영혼이 잠시 쉬었다가 훌쩍 떠날 것만 같은 풍경이다. 목포를 대표하는 두 노래가 다시 생각났다. 이제서야 애달픈 가사에 공감할 수 있게 됐다. 이런 산이라면, 그래, 몇 번이고 그리워지겠다. 


●자연이 선물한 조각품


버섯 같기도 하고, 찌그러진 오이 같기도 하다. 옆에서 보니 홈이 움푹움푹 파인 게, 달 표면과도 닮았다. 깊숙한 바다에 사는 이름 모를 해양생물도 떠오른다. 아하, 한 걸음 떨어져 면밀히 살펴보니 정체를 알았다. 삿갓을 쓴 사람의 형상이다. 

갓을 쓴 사람의 형상을 닮았다는 목포 갓바위 Ⓒ한국관광공사
갓을 쓴 사람의 형상을 닮았다는 목포 갓바위 Ⓒ한국관광공사

천연기념물 제500호로 지정된 목포 갓바위는 자연이 남긴 조각이다. 과거 화산재가 쌓여서 생성된 응회암과 응회질 퇴적암류들이 오랜 시간동안 풍화작용을 거쳐 지금의 갓바위가 됐다. 거기에 파도도 한 몫 했다. 긴 세월동안 파도가 부딪혀 수면과 맞닿은 바위 아랫부분이 침식작용으로 깎여나가게 됐다. 유달산 조각공원에서 인간이 만든 예술조각품을 감상할 수 있었다면, 여기선 자연이 빚은 조각을 즐길 수 있는 셈이다. 

갓바위로 향하는 길, 고즈넉한 풍광이 마음을 평화롭게 해준다
갓바위로 향하는 길, 고즈넉한 풍광이 마음을 평화롭게 해준다

갓바위는 우뚝 솟은 두 개의 바위로 이루어져있다. 하나는 크고, 다른 하나는 조금 작다. 8m짜리는 아버지 바위, 6m짜리는 아들 바위라고 불린다. 오래 전부터 구전돼 내려오는 전설 때문이다. 내용은 이렇다. 병든 아버지를 제대로 봉양하지 못한 아들은 돌아가신 아버지를 양지바른 곳에 모시려다 실수로 관을 바다에 빠트린다. 아들은 불효를 저질러 차마 하늘을 바라볼 수 없어 갓을 쓰고 자리를 지키다가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다. 먼 훗날 그 자리에 두 개의 바위가 솟았다. 


갓바위는 지금 이 순간에도 모양이 변하고 있다. 바람이 불고, 파도가 치고, 공기와 햇살이 존재하는 한, 갓바위의 형태는 계속해서 바뀌게 될 거다. 세월이 지나면 갓바위 주변의 해안지형도 갓바위와 유사한 모습의 형태로 변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또 다른 제2의, 제3의 갓바위가 조각될 날이 기다려진다. 첫 관람객은 내가 되었으면 한다. 

 

글·사진 곽서희 기자 seohee@travel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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