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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LETTER] 기다림과 비워 두기

  • Editor. 천소현 기자
  • 입력 2020.07.01 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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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소현 팀장
<트래비> 부편집장 천소현

마지막 출장으로부터 고작 4개월이 흘렀을 뿐인데, 마치 4년이 흐른 것 같습니다. 다음 주에는, 다음 달에는, 그렇게 유예되어 온 기다림이 어느덧 하반기로 함께 넘어와 내년을 바라보는 중입니다. 조바심을 경계하는 비법은 출근길에 광화문 교보문고의 글판을 한 번씩 보는 겁니다. ‘씨앗처럼 정지하라, 꽃은 멈춤의 힘으로 피어난다(백무산, ‘정지의 힘’ 中).’


그래도 며칠 전에는 ‘실로 오랜만’에 관광버스를 탔습니다. 목적지도 ‘실로 오랜만’인 한국민속촌이었습니다. 이 조합이 이뤄진 이유는 장애인, 임산부, 영유아를 위해 준비된 여행이었기 때문입니다. 여행은 느렸습니다. 아기 엄마가 수유실에서 젖을 먹이는 시간, 문턱을 넘기 위해 휴대용 휠체어 슬로프를 접고 펴는 시간, 전동휠체어의 배터리를 충전하는 시간도 충분히 계산해 넣었으니까요. 사실 조금 긴장도 했었지만, 결론적으로 천천히 걷고, 자리를 양보하고, 기다려 주는 것이 함께 여행하는 법의 전부였습니다. 


느리게 걷고, 자주 멈추었던 여행은, 고스란히 여유로운 여행으로 돌아왔습니다. 역시 ‘실로 오랜만’에 아이스커피의 얼음이 다 녹을 때까지 나무 그늘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그저 기다림이면 충분한데, 익숙하지 않으니 자꾸 잊습니다. 우리 주변에 이동 약자들이 많고, 그들이 곧 여행 약자라는 사실을요. 학교 앞 속도 제한, 노약자석과 임산부석 비워 두기, 노약자 우선 탑승이 요구하는 행동 지침도, 기다림과 비워 두기가 전부입니다.


7월호에도 <트래비>는 여러 가지 여행을 제안했습니다. 서울 자전거 여행, 마포 걷기 여행, 섬으로 가는 캠핑, 현지인 추천 맛집 여행 등등이죠. 더 느리게 페달을 밟고, 더 천천히 걷고, 목적지의 수를 줄이셔도 좋습니다. 새로운 여행이 아닐지라도 분명 새롭게 느껴지실 겁니다. 정호승 시인은 말했습니다. ‘사람이 여행하는 곳은 사람의 마음뿐’이라고요. 사람의 마음을 여행하려면 어떤 속도로 가야 할까요. 일단 멈춤, 그리고 서행입니다. 
 

<트래비> 부편집장 천소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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