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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후 우리의 비행기 여행은?

  • Editor. 유호상
  • 입력 2020.08.01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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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유례없는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곳은 항공 여행 산업이다. 한창 활황이었던 미국의 주요 항공사 실적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약 90% 감소한 상태다. 


이번 코로나 사태는 항공 관련 산업에도 지각변동을 일으킬 게 분명하다. 국내 취항 주요 항공사들은 7월을 전후로 대부분 한국 운항을 재개하고 있다. 상황이 호전돼서라기보다 ‘언제까지 마냥 손 놓고 있을 수 없어서’에 가깝다. 그럼 앞으로의 비행기 여행은 어떻게 달라질까? 결론적으로 모든 절차는 느려지고 비싸지며 서비스는 다운그레이드된다고 보면 될 것 같다. 한마디로 여행자에게는 총체적 난국이다. 여행 한 번 다녀오면 한동안은 다시 나가고 싶은 생각이 안 들지도 모르겠다.

저기요, 승무원 맞나요? 에어아시아
저기요, 승무원 맞나요? 에어아시아

 

●새로 그리는 항공 여행 뉴 노멀

▶ 승객은 한 명씩 소독처리 
▶ 체온 높으면 탑승 불허
▶ 탑승권 대신 홍채 스캔 
▶ 소그룹 단위로 탑승 


우선 ‘짜증 지수’의 상승이다. 공항에서 더 긴 줄을 각오해야 한다. 여행자의 수 자체는 줄어들겠지만 사회적 거리 두기 및 건강검진 프로토콜이 공항 보안 검색의 일환이 되어 줄은 오히려 길어질 수 있다. 그나마 매사 신속한 우리와 달리 모든 게 느릿느릿 움직이는 해외 공항에서는 특히 스케줄 관리에 주의해야 한다. 또 공항에서부터 비행기 탑승까지의 절차는 최대한 비대면으로 진행된다. 서비스 카운터의 투명 가림막 설치는 기본이고 자동화된 키오스크에서 비대면 방식의 체크인 및 수하물 위탁까지 하게 된다. 홍콩공항의 경우 세계 최초로 승객 한 명 한 명 정성 들여 소독처리까지 해주는 자동 소독박스까지 등장했다. 

보잉의 기내 화장실 자동 자외선 소독시스템
보잉의 기내 화장실 자동 자외선 소독시스템

탑승 요건도 강화됐다. 체온이 일정 수치 이상이면 탑승을 불허한다. 이런 새로운 절차 때문에 얼굴 인식 기술의 활용이 늘어날 전망이다. 이미 작년부터 허브공항인 애틀랜타를 중심으로 여러 공항에서 승객 처리용 생체인식 시스템을 활용해 온 델타항공이 대표적 사례다. 다른 공항과 항공사에서도 이 시스템의 도입을 빠르게 늘릴 계획이다. 향후에는 기존 탑승권보다 얼굴이나 홍채를 이용한 생체인식 스캐너가 보편화할 것으로 보인다. 비행기 탑승 절차도 살짝 달라졌다. 10여 명의 소그룹 단위로 뒷자리부터 먼저 태우고 반대로 내릴 때는 앞에서부터 간격을 두고 먼저 내리게 한다. 벌써 내릴 때 뒷자리 승객들의 한숨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항공 여행의 암흑기

▶ 베개 등 사라지는 기내 어메니티
▶ 편의점 수준의 기내식 서비스 
▶ 얼굴 보기 힘들어진 승무원
▶ 이동 수단으로 전락한 탑승 경험 

 

다음은 ‘좌절 지수’의 상승이다. 서비스는 이미 하향 평준화라는 ‘암흑기’에 돌입했다. 대부분의 항공사에서 기내지 및 신문, 면세품 판매, 베개 제공(중·단거리) 등을 중단했다. 장거리 노선의 경우 담요나 베개는 비닐 포장 후 제한적으로 제공한다. 그뿐 아니다. 식음료 서비스의 간소화 및 패키지화는 승객에게 가장 좌절감을 안기는 부분이다. 다들 기대할 것 없다며 평가절하 하지만 비행기 여행에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이 기내식임은 부인할 수 없는 팩트 아니던가. 그런데 2시간 30분 미만의 노선에서는 식음료 서비스 자체가 사라졌다. 


장거리 노선도 삭막해졌다. 이코노미석에서 기내식은 완전히 일회용 용기에 패키지화된 형태로 단출하게 제공된다. 비행기 여행 아니, 정확히는 기내식이 그립거든 그냥 마트에 가서 맛있는 것들을 사다 비슷하게 차려 먹자. 그게 일등석 메뉴보다 나을 판이다. 물과 음료는 제공하나 따뜻한 음료나 주류는 언감생심이다. 

당분간 승무원 보기 힘들어질 듯. 카타르항공
당분간 승무원 보기 힘들어질 듯. 카타르항공

비즈니스석의 경우, 이보다는 조금 낫다. 특히 대형 항공사들은 따뜻한 음식 등을 여전히 제공하지만, 예전의 코스 요리 서비스를 떠올리면 안 된다. 개별 포장된 메뉴들을 종이박스 혹은 트레이 하나에 모아 툭 던져 주는 수준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비즈니스석의 상징과도 같던, 우아한 와인잔에 담긴 웰컴 드링크는 당분간 잊어야 할 것 같다. 서비스가 다운그레이드됐으니 가격이라도 좀 내려가려나 싶었다면 어림없는 소리! 하긴 엄청난 손실을 보고 있는 항공사들에 이것은 비용 만회의 ‘명분 있는’ 작은 몸부림(?)으로 봐줘야 할지도.


우리나라를 비롯해서 아시아 항공사들의 경쟁력이 저하됐다는 농담도 나오고 있다. 승객과 승무원들 모두 마스크 착용이 의무화됐기 때문. 미모의 객실 승무원들로 인해 선호도가 높았던 항공사들도 이제 승무원의 얼굴과 옷을 마스크와 방호복(?)으로 중무장시켰다. 응대는커녕 얼굴조차 최대한 마주치지 않는 시스템을 구상 중이다. 간단한 간식이나 필요한 것들은 승객 스스로 챙겨야 하며, 심지어 미국에서는 기내에서 먹을 음식을 승객이 직접 들고 탈 것도 권장한다. 당분간 비행기 여행은 즐기는 대상이 아닌 그냥 이동 수단으로서만 봐야 할 것 같다. 단, 현재의 조치는 우선 코로나19가 아직 완전히 통제되지 않는 올 하반기까지 한시적이다. 이보다는 이번 사태 이후의 장기적인 변화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항공기의 기내 좌석은 이렇게 변할지도
항공기의 기내 좌석은 이렇게 변할지도

●항공 산업의 장기적 전망

▶ 안전을 흔드는 재정난 
▶ 초대형기에서 중소형기로 변경 
▶ 좌석은 귀해지고, 요금은 오르고
▶ 항균 소재의 시트, 격리 기능 시트 등장 

 

우선 항공 업계의 재편이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는 전 세계 항공 여행의 완전한 회복까지 최소 3년에서 최대 5년까지도 걸릴 수 있다고 예상한다. 항공사들의 생존이 위협받는 시기가 된 것이다. 이는 안전한 항공 여행에도 나쁜 소식이다. 일반적으로 재정난이 심한 항공사는 위험하다. 항공기의 정비나 훈련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직원들의 사기가 저하되어 그만큼 안전도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또 하나 슬픈 소식은 더 앞당겨진 초대형기 시대의 종말이다. 가뜩이나 ‘돈 먹는 하마’로 인기가 식은 보잉 747, 에어버스 A380 같은 초대형기들은 말 그대로 ‘살처분’되고 있다. 이제는 연비를 올려 비행거리가 늘어난 중소형 기종들이 그 자리를 넘보는 추세다. 넉넉한 공간과 묵직하고 안정된 비행감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고 아쉬워하는 것은 그저 감상적인 불평일까? 더 현실적인 걱정은 대형기의 부재로 향후 줄어든 좌석 수만큼 항공권 구하기가 치열해질 수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항공권 가격이 올라갈 건수 하나가 또 예약됐다는 뜻이다.  


말 나온 김에 여행자들의 관심인 항공료에 대해 생각해 보자. 앞으로 항공료가 1.5~2배가 된다는 흉흉한 소문도 돌았다. 원칙적으로 보면 근거 없는 소리는 아니다. 


코로나 사태로 항공사의 수익은 끊겼지만, 지출 요인은 되레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장이란 곳은 수요공급 및 경쟁 논리를 따르는 법. 어느 항공사 하나가 일방적으로 높은 가격을 부르기는 힘들다. 오히려 여행 수요가 어느 정도 살아나기 시작하면, 정상가 이하의 프로모션 가격도 기대할 수는 있다. 현재로서는 누구도 확언할 수 없으나 적어도 당장은 걱정만큼 크게 오를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하지만 항공사들 역시 수익을 확보해야 하는 이상 궁극적으로는 손실 비용이 항공권 가격으로 어떻게든 녹아들어 갈 것이다. 예를 들어 사회적 거리 두기의 하나로 일부 항공사에서 시행하는 중간 좌석 비우기. 이렇게 하면 비행기의 최대 좌석 용량이 62%로 줄어든다. IATA에 따르면 이는 업계 평균 손익분기 수준인 77%보다도 훨씬 낮다. 탑승 인원이 이렇게 줄면 항공료는 43~54% 정도로 올려야 한다. 항공사가 승객을 3분의 2만 태우고 가려면 무엇으로든 그 손실을 메꿔야 한다. 수하물 비용을 포함한 잡다한 부가수수료의 증가 역시 빤히 보인다. 장기적으로 보면 전반적인 가격대가 이전만큼 내려가지 않고 높게 형성될 수 있다. 


노심초사하는 건 항공사뿐만이 아니다. 항공기 제작사도 마찬가지다. 전 세계 항공사에서 새로운 주문은커녕 기존 주문까지 취소하고 있다. 보잉의 경우, 항공 여행 침체를 막기 위해 상당히 적극적이다. 기내에서는 대체로 악취가 없다. 이유는 공기의 흐름이 앞뒤가 아닌 위에서 아래로 자주 교체되기 때문인데, 여기에 바이러스 및 박테리아 등을 사실상 완전히 걸러 주는 병원 수술실 급 헤파(HEPA) 필터까지 설치돼 있다. 보잉은 기내 전염 위험이 딱히 더 큰 것은 아니라는 점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자체 연구소 및 계열사에서 기내 소독에 관한 여러 방법을 개발 중이다. 휴대용 자외선 살균기는 물론 더 근본적으로 승객이 기내 화장실 문을 닫고 나가면 자동으로 전체 화장실이 자외선 소독되는 스마트한 시스템도 선보일 예정이다. 항균 소재의 시트, 격리 기능이 추가된 시트 등도 향후 일반화될 전망이다.

‘비즈니스석’ 기내식 맞습니다! 영국항공
‘비즈니스석’ 기내식 맞습니다! 영국항공

●그 끝은 언제쯤?


중세 유럽의 흑사병부터 스페인 독감 등 이전에도 무시무시한 역병은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좀 달랐다. 질병 자체보다도 전 세계가 그물망처럼 묶여서 하나가 된 터라 팬데믹은 세계 경제를 일순 마비시켰다. 하지만 세상만사 늘 그렇듯 모든 게 절망적으로만 생각할 건 아니다.

다닥다닥 붙은 닭장 같던 기내 좌석도, 변기만큼이나 세균 수가 많다는 기내 트레이의 청결도도 다시 한 번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또 우후죽순처럼 늘어나는 저비용항공사 등 빠른 속도로 확장되던 항공 산업 역시 한번 숨 돌리고 효율적인 구조로 재편되는 계기가 될 것 같다. 더 중요한 것은 공항 시설의 자동화 같은 하드웨어부터 출입국 및 질병 관리 등의 소프트웨어까지 앞으로 또 발생할지 모를 팬데믹에 대처할 역량이 키워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상외로 길어진 코로나는 여전히 잠재적 위협 요소다. 하지만 각국 정부, 항공사, 제작사 등 모두가 초반의 충격에서 벗어나 슬슬 이 ‘뉴노멀’ 시대에 적응해 가는 모양새다. 홍역을 한 번 치렀으니 이젠 면역이 생겨날 차례다.   

 

글 유호상  에디터 천소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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