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니끄’한 영감을 찾아서
‘류니끄’한 영감을 찾아서
  • 김예지 기자
  • 승인 2020.08.01 11: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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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태환 셰프
류태환 셰프
류태환 셰프

서울 신사동에서 레스토랑 ‘류니끄(RYUNIQUE)’를 운영하는 류태환 셰프는 최상의 재료를 찾아서 전국 구석구석을 여행 중이다. 은어가 제철인 어느 여름날. 여행길에 그가 터득한 레시피를 물었다.

2020년 개발한 메뉴 ‘광양 인스피레이션’. 광양의 붕장어와 황매실, 기정떡을 사용한다 Ⓟ김예지
2020년 개발한 메뉴 ‘광양 인스피레이션’. 광양의 붕장어와 황매실, 기정떡을 사용한다 Ⓟ김예지
포크 테린과 그린 칠리살사를 결합한 ‘노마드 스타일(2011)’  Ⓟ김예지
포크 테린과 그린 칠리살사를 결합한 ‘노마드 스타일(2011)’ Ⓟ김예지

 

‘류니끄’는 류태환의 ‘류’와 ‘유니크(Unique)’가 합쳐진 말인가.  

그렇다. 어머니가 직접 지어 주셨다.

어떻게 ‘류니끄’한가.

‘하이브리드 퀴진(Hybrid Cuisine)’을 선보인다. 일식과 프렌치를 결합한 레시피에 국내산 제철 재료를 사용한다.

퓨전이랑은 다른 개념인가.

크게 보면 퓨전에 속하겠지만 ‘근거’의 차이라 생각한다. 그냥 무언가를 섞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식재료를 언제 어디서 구했는지, 어떻게 영감을 받아서 이 요리가 탄생했는지 등등 확실한 레퍼런스가 있느냐가 중요하다.

예를 들자면.

올해 출시한 메뉴 ‘광양 인스피레이션(Gwangyang Inspiration)’은 광양에서 나는 붕장어와 매실, 기정떡을 사용해 만든다. 실제로 광양에서 사용하는 석쇠를 이용해 요리한다. 사과 먹인 돼지 항정살로 만든 ‘예산 인스피레이션(Yeasan Inspiration)’은 예산에서 영감을 받아 2016년에 탄생했다. 예산에서는 사과를 먹여 돼지를 키우고, 그 돼지에서 나는 분뇨를 다시 거름으로 쓰는 친환경 농법을 적용한다. 메뉴판에 재료뿐 아니라 연도와 지역 이름이 포함되는 일이 잦아졌다.

손님에게 일일이 설명하는 것이 일이겠다.

그래도 요즘은 수월한 편이다(웃음). 처음 레스토랑을 오픈했을 때만 해도 내 요리는 대중에게 너무도 생소했다. 일식이면 스시, 중식이면 탕수육처럼 1차원적인 해외 요리의 개념만이 존재하던 때였으니까. 레스토랑을 오픈하고 첫 2년간은 ‘이게 무슨 음식이냐’는 욕도 많이 먹었다. 그래서 스스로 요리를 정의하고 설명하기 위해서 ‘하이브리드 퀴진’이란 단어를 고안했고, 특허를 냈다.

31살이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레스토랑을 오픈했다. 자신이 있었나.

지금 생각해도 셰프로선 정말 어린 나이였다. 다만 그동안 기본을 잘 다져 왔다는 데 대한 확신이 있었다. 기존 요리를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새로운 요리를 만들어 내고 싶었다. ‘류니끄’하게.

오픈한 지 몇 년 되지 않아 ‘아시아 베스트 레스토랑 50’에 꼽혔다.

그 이후로 1년 동안 손님이 줄을 섰다. 그럴수록 부끄럽고, 나를 더 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왜 부끄러웠나.

성향이다. 늘 남들이 생각한 최대한의 것이 나에게는 최소한의 것이 되곤 한다. 칭찬에 그리 연연해하지 않는 편인 것 같다. 더 많은 사람들이 찾을수록, ‘진짜 요리’에 대한 궁금증이 깊어졌다. 

가을의 동해안. 깊은 바다에서 사는 해산물을 해풍에 말려서 먹는다. 가을 식재료인 감과 함께 말리는 것이 인상적이다
가을의 동해안. 깊은 바다에서 사는 해산물을 해풍에 말려서 먹는다. 가을 식재료인 감과 함께 말리는 것이 인상적이다

 

제철 재료를 찾아서 전국을 다니기 시작한 것도 그 때문인가.

맞다. 그때부터 미친 사람처럼 여기저길 다녔으니까. 별도의 리서치팀도 꾸렸다.

‘진짜 요리’에 대한 물음표가 식재료에 꽂힌 이유는.

해외에서 요리 수행을 마치고 국내로 돌아왔을 때, 가장 난감했던 점이 적절한 식재료를 구하기 어렵다는 거였다. 정말 한국에 존재하지 않는 재료도 있지만, 지역마다 나오는 재료가 머릿속에 잘 그려지지 않았다. 프랑스로 치자면 디종의 머스타드, 브루고뉴의 와인, 코냑의 코냑 같은.

오랜 해외생활의 영향이 아닐까.

없지 않다. 한국 식재료로 예쁜 요리를 만들어 낼 순 있지만, 실제로 그 재료가 자라는 토질을 직접 경험하거나 흙의 냄새를 맡아 본 적이 없었으니까. 또 당시만 해도 지역마다 나는 제철 재료가 뚜렷하게 드러날 만큼 우리나라의 미식 개념이 그리 발달하지 않았던 때이기도 했다.

그럼 막상 어디로 갈지 막막했을 것 같은데. 목적지는 어떻게 정했나.

한국에도 지리적 표시제(GIS, Geographical Indication System)라는 게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무안은 양파, 해남은 고구마, 고흥은 유자 등등. 기후나 토질 등 환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지역 생산품을 알려주는 시스템이다. 아! 이거다 싶었다. 일요일 밤에 레스토랑을 닫고 당일치기든 뭐든, 일단 떠나고 봤다.

지금도 떠나나.

올해로 6년째다. 직접 찾아가 구한 재료를 직배송으로 공수해 온다. 구매하는 재료 양은 많지 않지만, 때마다 찾아가다 보니 양질의 생산자 네트워크도 자연히 늘었다.

빼놓지 않고 가는 곳이 있다면.

여름이면 봉화. 은어가 유명하다. 은어 철이 끝나고 가을쯤 되면 뒷산에 송이가 난다. 심한 일교차 때문에 ‘봉베리아’라고도 불리는 이곳에서 나는 송이는 작고 단단하고, 향이 엄청나다. 봄철엔 서천 마량포구라는 곳엘 간다. 600여 명밖에 살지 않는 이 작은 포구에서 어마어마한 일이 일어난다. 도미와 광어 같은 자연산 어종을 바다에서 쓸어 와서 늘어놓고는 고르는 거다. 여름이 넘어갈 땐 참소라, 농어, 가을엔 전어와 주꾸미…. 보석 같은 곳이다.

이쯤 되면 자체 GIS가 그려졌을 것 같다.

류니끄만의 지도가 점차 자리를 잡아 가고 있다. 부산은 고등어, 태안은 꽃게처럼 기본적인 특산물만 나타내 주는 GIS를 기반으로 하되, 숨어 있는 식재료를 찾아 하나하나 추가하는 식이다. 지도는 시즌마다 업데이트된다.

각지 제철 재료들로 채워진 류니끄 지도 Ⓟ김예지
각지 제철 재료들로 채워진 류니끄 지도 Ⓟ김예지
봉화에서는 한약을 먹여 키운 한약우를 구할 수 있다. 올레인산과 감칠맛이 풍부하다
봉화에서는 한약을 먹여 키운 한약우를 구할 수 있다. 올레인산과 감칠맛이 풍부하다
가을에 채취한 봉화 송이
가을에 채취한 봉화 송이

 

식재료를 구하는 일 외에 평소 여행을 자주 가는 편인가.

살면서 여행은 늘 따라다녔던 것 같다. 아버지 일 때문에 학창시절의 4년을 남해에서 보냈고, 군대 생활은 동해 임원항에서 지냈다. 제대하고 나서 요리를 배우러 일본 도쿄로 갔고, 시드니와 런던에서 수행을 계속했다.

수행을 과연 여행이라 할 수 있을까.

나에게 여행은 확실히 휴식을 위한 건 아니다. 그보다는 새로운 걸 알기 위한 행위다. 요리를 하게 된 것도, 또 하나 여행의 시작이었다.

아버지의 권유로 요리를 배우게 됐다고.

아버지는 늘 내가 최고가 되길 바랐고, 그래서 공부를 많이 시켰다. 그런데 나는 공부가 싫었다. 법관이나 변호사보다는 스토리를 만드는 예술에 관심이 많아서 영화감독을 꿈꿨었다.

그런데 어쩌다 요리를 배웠나.

셰프란 직업에 대한 아버지의 시선이 남달랐다. 당시 우리나라에서 요리사는 사실 그렇게 좋은 직업이라 할 수 없었지만, 해외에선 이미 TV에 셰프가 등장하고 유명인이 되던 때였다. 우리나라에도 곧 그런 시대가 올 거라고 아버지는 예견했다. 공부가 싫다면 셰프, 대신 일류가 되라고 하셨다.

평소 요리에 아주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었나.

주방에도 잘 드나들지 않던 사람이었다(웃음). 처음 도쿄에 갔을 때만 해도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 요리를 배운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도전이었다. 서막에 불과했지만. 일본을 떠나 시드니에 갔을 땐 영어가 발목을 잡았다. 런던에서는 정말이지 전에 없던 혹독한 주방에서 일하며 버텨야 했다.

여행이라기엔 여전히 고통스럽게 들린다.

무언가를 이룰 땐 고통이 수반되지 않나. 그래도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새로움에 설레던 그 모든 과정은 여행이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청춘을 다 갈아 넣었다. 20대 중후반엔 여자친구도 사귀지 못했을 정도로. 내 생애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웃음).

홍주선 생산자가 계시는 ‘동양은어장’에서
홍주선 생산자가 계시는 ‘동양은어장’에서
장흥은 장흥삼합으로 유명하다. 산에서는 표고버섯, 들에서는 소, 바다에서는 키조개가 난다
장흥은 장흥삼합으로 유명하다. 산에서는 표고버섯, 들에서는 소, 바다에서는 키조개가 난다

 

바야흐로 셰프가 셀럽이 되는 시대다. 욕심이 있나

없다.

방송에도 종종 출연했던 걸로 아는데.

어디까지나 요리를 선보이고 싶은 맘에서였다. 카메라 앞에 서는 건 늘 어색하다.

그렇다기엔 맛을 음미하는 표정이 예사롭지 않더라. 유튜브 채널 ‘보이스 오브 셰프(Voice of Chef)’를 봤다. 별도의 제작팀이 있나.

JTBC 요리 프로그램 <쉘 위 치킨>에 출연할 때 만난 촬영감독과의 합이 워낙 잘 맞았다. 그 친구도 나처럼 뭔가 깊게 파고드는 걸 좋아했고, 식재료를 구하러 지방에 가는 족적을 진지하게 담아 보고 싶은 뜻이 맞아떨어졌다. 그렇게 ‘셰프의 언어’ 시리즈를 찍기 시작했다. 의령, 봉화, 서천 등을 담았던 시즌 1에 이어 시즌 2에서는 고흥, 완도 에피소드를 다뤘다. 맛 음미 장면은…. 자꾸 하다 보니 괜찮은 것 같다(웃음).

최근 ‘셰프의 언어’ 업로드가 뜸하더라.

코로나 때문에 주춤한 상태다. 대신 영화와 요리를 접목한 ‘시네마 푸드’ 시리즈에 좀 더 주력하고 있다.

앞으로 또 다른 시리즈 계획은 없나.

티(tea) 브랜드와의 컬래버레이션이 될 것 같다. 티와 페어링할 수 있는 음식 콘텐츠를 구상 중이다. 독특하고 재밌을 것 같다. 

류태환 셰프의 모든 메뉴에는 그만의 스토리가 담겼다
류태환 셰프의 모든 메뉴에는 그만의 스토리가 담겼다

*류태환 셰프는 제대 후 도쿄를 시작으로 시드니, 런던 등에서 온 20대를 요리 수행에 쏟아 부었다. 이후에 한국에 돌아와 2011년, 본인의 이름을 내건 레스토랑 ‘류니끄’를 열었다. 일식과 프렌치를 결합한 레시피에 우리나라 제철 재료를 사용한 ‘하이브리드 퀴진(Hybrid Cuisine)’은 점차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2015년 ‘아시아 베스트 레스토랑 50’에서 류니끄가 27위에 올랐고, 2018~2020년 ‘미슐랭 가이드 서울’ 플레이트(Plate)로 선정됐으며 2020년 프랑스 정부 주관의 미식 가이드 ‘라 리스트(La Lieste)’의 네이처(Nature) 부문에 꼽혔다. 미각뿐 아니라 시각과 청각으로, 류태환 셰프는 그만의 방식을 끊임없이 보여 주고 있다. 작년부터 유튜브 채널 ‘Voice of Chef’를 운영 중이다.

 

글 김예지 기자  사진제공 류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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