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여행, 두 개의 방식
하나의 여행, 두 개의 방식
  • 강화송 기자
  • 승인 2020.09.01 08: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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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riEarth 29살 동갑내기, 진상욱 & 서정하

같은 시간, 같은 공간을 여행했지만
그들은 서로의 다른 방식으로 얽혀 있다.

최고의 여행 메이트 , 정하와 상욱
최고의 여행 메이트 , 정하와 상욱

CuriEarth 
29살 동갑내기, 진상욱 & 서정하

 
메일을 한 통 받았다. ‘여행을 통해 이루게 된 저희의 꿈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29살 정하와 29살 상욱. 나이보다 닮아 있는 두 사람은 서로를 사랑한다. 그리고 무려 500일 동안 세계를 여행했다. 29개국, 96개 도시. 긴 시간 동안 30개의 나라, 100개의 도시를 채우지 못한 이유는 종종 어디선가 머물렀기 때문이다. 상욱의 시선으로 담은 사진에 정하는 그림을 그리며 한없이 머물렀다. 그들은 자신을 큐리어뜨(CuriEarth)라고 소개했다. 아직도 지구가 궁금한, 그런 팀이란다. 인스타그램 curi_earth

 

▶큐리어뜨 여행루트
중국 → 베트남 → 태국 → 미얀마 → 네팔 → 요르단 → 체코 → 네덜란드 → 영국 → 포르투갈 → 스페인 → 독일 → 크로아티아 → 보스니아 → 몬테네그로 →  알바니아 → 그리스 → 터키 → 케냐 → 탄자니아 → 잠비아 → 보츠와나 →  남아공 → 아르헨티나 → 칠레 → 볼리비아 → 페루 → 멕시코 → 미국

*본 인터뷰는 정하의 시점으로 진행됩니다.

몬스터
몬스터

큐리어뜨?
우리의 팀명이다. 호기심(Curious)과 지구(Earth)의 합성어. 그러니까 여행을 의미하는 셈이다.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러브스토리를 알아야겠다. 어떻게 만나게 된 건지.

영어학원에서 처음 만났다. 그것도 조교(정하)와 팀원(상욱)으로. 일종의 ‘난 선생(?)이고 넌 학생이야’ 느낌. 처음에는 아주 평범한 조교와 학생 사이였는데, 개인 면담을 진행하며 일(?)이 터졌다.

무슨 일이냐.
당시 상욱이 그랬다. 자신의 가장 큰 꿈이 세계일주라고. 나도 최갑수 작가의 <우리는 사랑 아니면 여행이겠지>라는 제목처럼 인생이 꾸며지길 꿈꾸고 있을 때다. 비슷한 가치관을 가졌으니 당연히 대화가 잘 통하더라. 그러다 어느 날 상욱이 그랬다. “같이 아프리카 여행 가요!”

대답은?
“네”라고 했으니, 지금 옆에 있지 않겠나. 그렇게 1년 뒤, 정말 아프리카를 다녀왔다.

미얀마 바간에서의 눈부셨던 일출
미얀마 바간에서의 눈부셨던 일출

커플 세계여행, 떠나기 쉽지 않았을 텐데, 주변의 반대는 없었나.
아무래도 가족들이 많이 걱정했다. PPT에 여행 계획, 이유, 목적을 빼곡하게 담아 결코 가벼운 결정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줬다. 서로에 대한 확신이 컸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 같다. 상욱은 고민하고 있던 나의 방아쇠를 당겨 준 사람인 셈이다.
 

그렇게 떠난 여행에서 탄생한 작품들이라 그런지 동화처럼 순수한 느낌이다. 작품 활동을 염두에 두고 떠난 여행이었나.
아니다. 여행 초기에는 소비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 작은 목표였다. 큐리어뜨의 슬로건은 ‘모든 사람이 자신만의 꿈을 가지고 살았으면 좋겠다’다. 여행 초기에는 이 슬로건을 토대로 사람들의 꿈에 대한 인터뷰를 모으기 시작했다.
 

여행 중 가장 힘든 순간이었던 네 팔 트레킹, 최종 목적지었던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에서
여행 중 가장 힘든 순간이었던 네 팔 트레킹, 최종 목적지었던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에서

거창한 프로젝트다.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야 했을 텐데.
말은 거창한데, 그저 누군가에게 꿈을 묻고, 그 꿈을 다시 각인시켜 주는 것뿐이다. 현실을 살다 보면 꿈은 잊혀 가니까. 그래서 초기에는 카우치 서핑을 주로 했다. 카우치 서핑은 소파를 의미하는 카우치(Couch)와 서핑(Surfing)의 합성어다. 로컬들 집에 머무르며 로컬 문화를 아주 가까이서 마주할 수 있다. 장기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정말 추천한다.

언어 장벽은 없었나.
영어학원에서 시작된 사랑답게, 다행히 문제는 없었다.
 

소년의 기억
소년의 기억
바다이불
바다이불

그럼 지금의 작품은 언제쯤 탄생하게 된 것인가.
여행 중반부, 크로아티아에서 탄생했다. 아니 정확히는 알바니아겠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그림을 전공하진 않았지만, 성인이 된 뒤에도 꾸준히 웹툰, 그림일기를 몰래몰래 그려 왔다. 당시 상욱은 드론에 빠져 있었다. 매일 드론을 날려 사진을 찍고 영상을 담았다. 돌아보니 서로 같은 팀이지만, 좋아하는 일을 각자 하고 있었더라. 그래서 알바니아에서 피자를 먹다가 아이패드를 들고, 상욱이 크로아티아에서 찍은 드론 사진에 밑그림을 그려 봤다. 그저 예시로 보여 주기 위해 그린 밑그림인데, 상욱이 그러더라. “야 이거 대박이다.” 그렇게 탄생한 그림이 바로 <별빛 바다 속으로>다.

여행이 끝나 갈 무렵, 아르헨티나 엘 칼라파테 숙소 뒤 잔디밭에서
여행이 끝나 갈 무렵, 아르헨티나 엘 칼라파테 숙소 뒤 잔디밭에서

꿈같은 작품이다.
푸른 바다에 햇빛이 부서지며 일렁이는데, 그 모습이 마치 별빛 같았다. 조금 색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면 세상의 모든 것이 특별하게 다가오는 것 같다. 드론으로 1차적인 시야의 확장을, 이에 그림을 더해서 2차적인 시야의 확장을 담아 냈다. 사진과 그림의 경계를 허물며 만들어진 새로운 상상력의 세계, 우리의 작품을 그렇게 소개하고 싶다.

'윤식당 2 ' 촬영지였던 테네리페섬 가라치코. 일행 덕분에 배낭을 멘 사진을 남길 수 있었다
'윤식당 2' 촬영지였던 테네리페섬 가라치코. 일행 덕분에 배낭을 멘 사진을 남길 수 있었다

유독 크로아티아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 많은 것 같다.
크로아티아에 특히 애정이 깊다. 3개월 정도를 머물렀다.

경비가 꽤나 들었겠다.
총 여행 경비는 대략 1인당 600만원을 잡고 출발했다. 여행이 길어지면서 들어 놨던 적금을 깨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비를 정말 아껴 쓴 편이다. 크로아티아에 도착해서부터는 현지에서 돈 벌 궁리를 했다. 여행을 지속하는 데 필요한 돈인 만큼 여행의 울타리에서 돈을 벌 수 있는 일들을 찾기 시작했다. 해답은 ‘콘텐츠’였다. 크로아티아에 있는 여행회사에 직접 연락해 드론 촬영을 의뢰받기 시작했다. 거짓말처럼 일이 들어오더라. 덕분에 여행은 여행대로 무료로 즐길 수 있었고, 영상을 대가로 한 보상까지 받을 수 있었다. 이 무렵부터 우리가 처음 만났던 영어학원의 SNS에 올라갈 콘텐츠도 납품하기 시작했다. 꿈에 그리던 디지털 노마드 생활의 시작이었다. 아, ‘워크어웨이(Workaway)’을 했던 추억도 빼놓을 수 없다.

페루 워크 어웨이 중 촬영을 위해 찾은 산 속
페루 워크 어웨이 중 촬영을 위해 찾은 산 속

워크어웨이? 조금 낯선 단어다.
워크어웨이는 ‘떠나서 일한다’라는 뜻이다. 여행지에서 노동력을 제공해 주고 숙식을 그 대가로 받을 수 있는 플랫폼이다. 덕분에 터키에서는 2개월 정도를 살았다. 당시 워크어웨이 했던 집이 보트투어와 카페를 겸업했었다. 상욱은 보트투어 영상을, 나는 카페 메뉴판 그림을 그려 주었다(이때 상욱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한숨이 너무 깊은데.
터키에서 워크어웨이로 지냈던 집이 정말 허름했다. 밥은 매일같이 채식 식단이었고 집은 너무 외져서 시내까지는 자전거 없이 갈 엄두도 못 낼 지경이었다.

거의 갇혀서 지낸 수준 아니냐.
2주 정도 지나니까 호스트가 자전거를 줬다. 받자마자 상욱이 도저히 못 참겠다며 도망쳐 나오듯 시내로 달리더라. 시내로 향해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케밥집이다. 세상을 다 가진 맛이더라. 역시 시장이 반찬이더라. 그렇게 허겁지겁 케밥을 먹고 있다가 신기하게도 케밥집 주인의 딸과 급속도로 친해지게 되었다. 어느 날 초대를 받아 그 집을 가봤더니 집이 너무 좋더라.
 

많이 비교됐겠다.
그래서 사실 한 번 도망친 적이 있다. 워크어웨이를 하며 머문 터키 집에서 자다가 손가락만 한 바퀴벌레를 봤다. 그때 이성의 끈이 끊어졌다. 곧장 시내에 있는 호텔로 향했는데, 하루 자고 다시 돌아왔다.

왜 돌아갔나.
같이 일하던 친구들과 정이 들어서 작별인사는 꼭 해야겠더라. 주인에게 사정이 생겨 나가야겠다고 얘기한 후 예정보다 일주일 앞당겨 나갔다. 그 후 터키를 둘러보다 아프리카로 향했다.

갑자기?
탄자니아에서 만날 사람이 있었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알게 된 부부다. 그들은 탄자니아에서 미혼모 자녀를 돌보는 봉사를 하고 있었다. 곧장 그들의 선행에 합류해 ‘Be Curious Do it’이라는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했다.

어떤 프로젝트였나.
슬럼가 초등학교를 찾아 아이들의 꿈을 찾아 주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당장 실행해야 할 것들을 일깨워주는 프로젝트였다. ‘할 수 있어’라는 한마디에 아이들이 미소 짓더라. 도움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프리카에서 기억에 남는 작품은 없나.
<케냐의 얼굴>, 이건 처음으로 기획부터 사진, 그림까지 스스로 해낸 작품이다. 그래서 특별히 애정이 간다.

카레를 요리하는 남자
카레를 요리하는 남자
별빛 바다 속으로
별빛 바다 속으로

안 싸웠나.
돈 때문에 많이 싸웠다. 상욱은 항상 ‘쓰자’ 주의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식의 소비들. 나(정하)는 최대한 아끼자는 주의다. 아낄 수 있는 곳에서 아껴야만 여행을 지속할 수 있으니까. 뭐 둘 다 정답은 없는 듯하다. 상욱의 소비 덕분에 남긴 추억도 있었을 테고, 나(정하)의 소비로 여행을 지속할 수 있었던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콘텐츠 내용을 회의하면서도 참 많이 싸웠다. 상욱은 주로 기획을 하고 시작을 한다. 한 번 어느 것에 꽂히면 누구도 막을 수가 없다. 하지만 흥미가 떨어져 버리면 쳐다도 안 본다. 나(정하)는 프로젝트를 정리하고, 유지시키는 편이다. 이 문제로 몇 번 싸우다 보니 알겠더라, 결국 서로 다르다는 것을.

500 일의 여행을 마치고 인천공항에서 찍은 마지막 사진
500 일의 여행을 마치고 인천공항에서 찍은 마지막 사진

여행 중 다름을 느껴 버린 관계, 여행에서 돌아온 지금은 어떤가.
함께라고 해서 같을 필요는 없는 것 같다. 그렇게 되면 서로에게 맞추려고만 노력하게 되더라. 각자의 목표를 정하고 서로 이루기 위해 노력하면 된다. 가끔 서로 지친 기색이 보인다면 토닥이고 잡아 주며, 그렇게 조화를 이루면 된다. 우리, 그러니까 큐리어뜨(CuriEarth)의 작품이 그러하다. 우리의 작품은 사진에 그림을 더한다. 그림은 사진을 해치지 않고 사진은 그림을 해치지 않는다. 같은 시간, 같은 곳을 여행했지만 서로 다른 방식으로 표현한다. 결국 ‘우리’라는 것이 그런 게 아닐까. 하나의 여행, 2개의 방식이지만 결국 같은 이름의 작품이 된. 

케냐의 얼굴
케냐의 얼굴
도시의 기억
도시의 기억
언더 더 씨
언더 더 씨
지붕 테트리스
지붕 테트리스

글 강화송 기자  사진제공 서정하, 진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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