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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를 일으킨 건 골목이다

이우석의 놀고먹기

  • Editor. 이우석
  • 입력 2020.09.01 08:45
  • 수정 2020.09.02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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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중심가는 옛 골목의 모습이 원형 그대로를 유지하며 남아 있다. 시민들은 골목 문화가 익숙한 나머지 ‘무슨 무슨 골목’이 자랑이다. 각각 저마다 테마가 있다.

 

대구는 골목의 도시다. 특히 젊은 여행자에게 근대골목투어는 신기한 경험이다 Ⓟ강화송
대구는 골목의 도시다. 특히 젊은 여행자에게 근대골목투어는 신기한 경험이다 Ⓟ강화송

●‘한양 가는 길’의 옆길에서 


서울에, 아니 대한민국에 골목길이 점점 줄어든다. “어릴 적 넓~게만 보이던 조~옵은 골목길이~” 015B의 노래 ‘혜화동’과는 반대다. 어릴 적 살던 곳을 가 봤더니 외려 길이 넓어졌다. 다닥다닥 붙은 집 사이로 소형차 한 대도 못 들어가던 골목이 혹등고래도 지날 만큼 널찍한 아파트 진입로가 되어 있다. 문득 그립다. 누군가 마주치면 머쓱해 인사라도 나눠야 할 것 같던 골목, 서너 발짝만 딛어도 양쪽을 오갈 수 있던 그 좁은 담장이 생각난다. 이럴 땐 대구를 한번 떠올려 본다. 

비행기 탱크도 만든다던 북성로 공구상 골목도 핫 플레이스로 바뀌고 있다 Ⓟ이승무
비행기 탱크도 만든다던 북성로 공구상 골목도 핫 플레이스로 바뀌고 있다 Ⓟ이승무

먼 옛날 전 지역이 습지였던 대구는 전형적인 분지 지형이다. 해발 1,000m가 넘는 팔공산과 비슬산, 도심을 지탱하는 앞산(대덕산) 등 웅장하고도 근사한 산세를 두고, 금호강, 신천 등 옹색하지 않은 하천 또한 유유히 흐른다. 그러나 대구를 일으킨 건 길이다. 신라 시절만 해도 변방이던 달구벌에 17세기 초 경상감영이 생겼고 19세기엔 근대문화가 빠르게 전파됐다. 

청라언덕으로 오르는 90 계단
청라언덕으로 오르는 90 계단
과거 대구는 대부분 습지였다. 남아메리카 대륙을 닮은 달성습지
과거 대구는 대부분 습지였다. 남아메리카 대륙을 닮은 달성습지

대구에는 이런저런 이름의 골목이 많다. 삼덕동 카페골목(근사한 커피숍이 많아서), 통신골목(이동통신사가 많아서), 야시골목(옷가게가 많아 여성들이 몰려서), 약전골목(한약상 거리에 위치해서), 구제골목(구제물건 파는 상점이 많다고), 양키골목(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제품의 유통가여서), 북성로 공구골목(공구상이 즐비해서), 떡전골목(떡집이 많아서), 진골목(긴골목이라서) 등이다. 전주 한옥마을 골목길과 길 폭은 닮았지만, 한옥은 별로 없다. 대신 길의 역사는 그보다 더 오래됐다. 예전 한양 땅에 과거 보러 떠나던 영남대로(동래~한양)가 남아 그대로 대한민국 3대 대도시의 골목이 됐다. 인천보다 인구는 약간 적지만 행정기관 코드 구분에 따라 법률상 3대 도시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중구에만 1,000여 개 골목이


이 한복판에 ‘시내’라 불리는 중구가 자리 잡고 있다. 다른 대도시에 비해 단일 도심 체제를 굳건하게 유지하고 있는 대구는 ‘시내’의 지위를 지키고 있는 원도심이 위풍도 당당하다. 대구역 네거리와 반월당 네거리를 중심으로 명덕 네거리, 태평 네거리, 종각 네거리, 대신 네거리, 신남 네거리, 삼덕 네거리, 동인 네거리, 달성 네거리, 내당 네거리, 서성 네거리 등으로 둘러싸인 ‘시내’는 말 그대로 사통팔달이다. 이 네모난 땅 안에 골목길이 이어진다. 중구에만 1,000여 개의 골목길이 있다고 한다. 길은 좁지만 유구한 역사와 문화의 향기가 서렸다.

이상화 고택으로 이어진 근대골목
이상화 고택으로 이어진 근대골목

도심엔 계산성당(사적 290호)을 비롯해 조선 태조 7년(1398년) 창건된 대구향교(문화재자료 1호), 1898년 건축된 대구·경북 최초의 개신교 교회인 제일교회(대구 무형문화재 30호), 1907년 세워진 서상돈(국채보상운동 주창자) 고택, 의료선교박물관,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로 나라 잃은 백성들의 마음을 대변한 시인 이상화 고택 등 문화유적들이 즐비하다.

조선시대 동래와 한양을 잇던 영남대로가 대구를 지났고, 그 길은 그대로 골목이 되어 남았다
조선시대 동래와 한양을 잇던 영남대로가 대구를 지났고, 그 길은 그대로 골목이 되어 남았다

또한 담배를 끊어 돈을 모으겠다고 나선 국채보상운동(요즘처럼 비싸면 충분히 갚을 수 있을 듯하다)을 기념하는 공원과 1960년 자유당 독재에 분연히 일어선 대구 지역 고교생들의 숭고한 뜻을 기리는 2·28기념 중앙공원, 국내 최고(最古) 토성으로 꼽히는 달성(사적 62호)과 조선 선조 34년 상주로부터 옮겨온 경상감영 등 공원이 많아 시민과 관광객의 휴식처가 되고 있다.


●골목부터 물들이는 가을


계산오거리 이상화 고택에서 보통 골목 투어를 시작한다. 고택 맞은편에는 서상돈 선생의 옛집이 있다. 하늘 높이 치솟은 주상복합 빌딩 아래 단층 한옥들은 수평과 수직, 현대와 과거가 공존하는 대구의 역사와 문화를 상징한다. 조금 더 걷다 보면 ‘영남대로’ 구간이 나온다. 떡전골목 염매시장에서 약전골목, 그리고 진골목으로 이어진다.

북성로 공구상가의 변신 , 수창맨션
북성로 공구상가의 변신 , 수창맨션

대개 골목길은 옛 도시의 흔적이라 현대인이 살기엔 불편하다. 하지만 대구에서는 지금도 새로 생겨나는(테마가 부여되는) 골목이 있을 정도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중앙로 건너 골목들은 약동하는 젊음의 현장이다. 찌짐(지짐이)과 막걸리, 맥주와 와인 등 즐길거리가 넘쳐나는 열정의 도시에서 가을날의 휴식을 만끽할 수 있다. 

예로부터 다양한 모임이 많았던 대구는 이제 커피 문화의 중심도시가 됐다
예로부터 다양한 모임이 많았던 대구는 이제 커피 문화의 중심도시가 됐다

대구 골목길 투어에선 가을을 더욱 풍요롭게 즐길 수 있는 커피 한 잔을 곁들여도 좋다. 대구는 커피의 도시로 소문났다. 로컬 브랜드 ‘커피명가’의 인기는 대형 프랜차이즈 체인을 넘어선다. 만촌동 커피명가 로스팅 창고 옆 2층 건물 ‘라핀카’를 찾아보면 그 엄청난 위세에 당장 주눅이 들고 만다. 


팔공산이며 수성못, 삼덕동 등에도 근사한 카페가 많다. 유교색 짙은 도시의 차 문화가 근대에 들어서 커피로 바뀌었다. 근대기 문인과 예술인들이 모였다는 ‘미도다방’도 여전히 문을 열고 있다.

 

맥주도 시원하다. 수많은 프랜차이즈 치킨 브랜드가 태동한 도시이니 당연한 얘기일지 모르겠지만, 대구에는 맥주 한잔 즐길 만한 곳이 널렸다. 매년 치맥 페스티벌이 열리는 곳이다(올해는 개최하지 못했다). 육개장, 무침회, 찜갈비 등 매운 음식이 많은 ‘스파이 시(市)’라 목 넘김 좋은 맥주 한 잔에 더욱 끌린다.


대구 가을의 ‘색’을 더욱 또렷하게 보고 싶다면 달성군을 찾으면 된다. 구불구불한 다람재에 올라서면 비슬산(1084m)의 너른 품에 안긴 도동서원과 굽이치는 낙동강이 ‘그림’을 연출한다. 소수서원, 도산서원, 병산서원, 옥산서원과 함께 조선 5대 서원으로 꼽는 도동서원의 가을은 유별나게 아름답다. 샛노란 은행잎과 퍽 어울린다.


대구의 어느 골목에서 마주친 가을은 마치 오랜만에 만난 동무처럼 반갑다. 반색하고 얼싸안기엔 좁은 골목만 한 장소가 없다.  


●대구 어디서 먹을까 


대구는 붉은 음식의 고장이다. 가을 단풍을 닮은 새빨간 음식이 많다. 특히 육개장이 유명하다. 대구 육개장은 대파와 무를 많이 넣어 시원하다. 달성공원 인근 옛집식당과 앞산 아래 ‘양정화네 앞산 온천골’식당, ‘벙글벙글 식당’ 등 육개장 잘하는 집이 많다.

옛집식당 육개장
옛집식당 육개장
납작만두
납작만두

주전부리와 카페는 골목투어의 휴게소 역할을 한다. 맛있는 빵으로 인기를 끄는 ‘레이지모닝(동대구역 앞)’에선 어지러울 만큼 달달한 크루아상과 마들렌 등에 쌉싸래한 커피 한 잔을 즐길 수 있다. 웅장한 대형 커피점 ‘카페 편(수성못)’에는 하늘 계단 등 포토존이 있어 여행을 인증숏으로 남기기에 딱이다. 정통 터키식 모래 커피를 파는 ‘모래에 빠진 커피콩:쿰(수성못)’에서는 생소한 추출과 제조 과정을 눈으로 즐기고 진한 향의 커피 한 모금에 아픈 다리를 쉬어 갈 수 있다. 이외에도 ‘사택’, ‘카페 류’, ‘사운즈커피’, ‘티클래스’ 등 이름난 대구의 카페가 SNS 안에도 가득하니 시애틀처럼 ‘잠 못 이룰 밤’이 보장된다.

 

‘저세상’ 유머 코드와 황당한 상황극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이우석 소장은 지난 연말 오랜 신문사 기자 생활을 마치고 ‘이우석놀고먹기연구소’를 열었다. 신나게 연구 중이다

글·사진 이우석 놀고먹기연구소장   에디터 천소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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