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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시대, 회복의 시대 '예산'

  • Editor. 이수연
  • 입력 2020.09.0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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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많이, 더 알차게 꾸역꾸역 밀어 넣던 시대는 지나갔지만 덜 나가고, 덜 만나는 시대의 사람들은 다시 길을 떠난다. 어쨌거나 언택트. 덜 알려지고 덜 부대끼는 곳, 건강한 여행지를 찾아.
* <상실의 시대>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제목이다.

예산출렁다리 주탑에서 내려다본 모습
예산출렁다리 주탑에서 내려다본 모습

이 시대의 여행지라면 


국내에서 가장 긴 다리, 빼어난 경관의 느린 호수길, 형형색색의 음악분수로 작년 봄부터 점점 이름을 알리던 예산은 정부, 한국관광공사, 광역단체 합동 심사에서 ‘숨은 여행지 6선’, ‘야경관광지 100선’, ‘언택트 여행지 100선’에 꼽혀 모두가 조심하는 시대 새로운 여행지로 급부상했다.

치유의 숲을 걷는다. 푸른 숨을 들이마신다
치유의 숲을 걷는다. 푸른 숨을 들이마신다

●당신의 건강은 무사한가요
국립 예산 치유의 숲 


물 흐르는 소리를 따라 데크길을 걷는다. 차분한 목소리의 안내자가 안부를 묻는다. 나무 향이 짙은 센터에서 몸의 감각을 하나하나 느낀다. 통나무 명상은 몸을 편안하게 해주는 이완법으로, 몸의 각 부분에 통나무를 대고 누워 있는 것만으로도 어느 부분이 안 좋은지 알 수 있다. 휴일이면 침대 위에 널브러져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느라 굳었던 어깨도 호흡이 거듭될수록 바닥과 하나가 된다. 한결 가벼워진 몸으로 떠난 관모산, 용골산 자락엔 솔 향이 가득하고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톡, 톡 상수리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체력에 따라 230~1,285m의 ‘물길따라 힐링길’, ‘나무꾼 힐링길’, ‘치유의 숲 둘레길’, ‘명상길’, ‘바람맞이 힐링길’, ‘솔향기 숲길’을 사부작사부작 걸으면 된다. 

초보자도 쉽게 할 수 있는 통나무 명상
초보자도 쉽게 할 수 있는 통나무 명상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데크길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데크길

숲에서 돌아오면 도화차가 기다리고 있다. 뜨거운 물을 붓자 복숭아꽃이 수줍게 꽃잎을 펼친다. 처음엔 풀 향이, 그다음부터 은은한 체리향이 나는 도화차는 여름의 찻잔을 채운다. 가을에는 국화차나 구절초차, 봄엔 생강나무꽃차 등 계절에 맞는 차가 그 시기의 따스함을 안겨 준다. 국립 예산 치유의 숲에서는 프로그램에 따라 명상과 티 테라피뿐만 아니라 오일 테라피, 싱잉볼 명상, 체성분 분석, 온열반신욕, 맨발 걷기, 체조, 셀프카운슬링 등을 할 수 있다. 


국립 예산 치유의 숲 
주소: 충청남도 예산군 예산읍 치유숲길 203-31 


●완벽주의 예술가의 이상향
추사 김정희 선생 고택과 기념관


조선 후기 대표적인 서예가 추사(秋史) 김정희는 일생 동안 두 번, 자신의 작품을 모두 태워 버렸다. 골동품 시장에서 높은 가격으로 팔리는 그의 작품은 대부분 지인에게 줬던 서찰과 선물이라니, 그의 글을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가혹한 일이다. 다행히 그의 작품을 자연 속에서 바라볼 수 있는 곳이 있는데, 가문의 안녕과 복을 빌기 위한 원찰 화암사와 그 뒤쪽 오석산 암벽이다. 

추사고택의 안채와 사당
추사고택의 안채와 사당

추사가 존경했던 스승을 따라 화암사 뒤로 한참 올라가 새겼다는 글씨에는 젊은 그의 꿈과 이상향이 오롯이 담겨 있다. 오르내리는 길, 철조망을 품으며 자라난 나무는 추사 김정희가 스물다섯 살 무렵 연경(현재 베이징)에 다녀오며 가져와 고조부 묘소 앞에 심었다는 백송 씨앗과 대비된다. 백송은 우리나라에 몇 그루 없는 희귀한 수종으로 40년이 지나야 큰 껍질 조각을 떨구며 특유의 흰빛을 드러낸다. 추사가 심은 씨앗은 약 200여 년 동안 그 자리를 지키며 후손들의 보살핌을 받다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국가의 관리를 받고 있다. 

추사의 삶과 글씨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추사기념관
추사의 삶과 글씨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추사기념관

자신의 작품을 불태운 추사 김정희의 꼿꼿함은 집안의 내력일까. 그의 증조모인 화순옹주는 남편인 월성위 김한신이 젊은 나이에 작고하자 그날부터 식음을 전폐해 그 뒤를 따른다. 부왕 영조는 화순옹주를 만류했으나 끝내 세상을 떠난 딸에게 열녀정문을 내리지 않았고, 훗날 정조가 세웠다. 화순옹주는 조선시대 왕실 사람 중 유일하게 열녀문을 받은 여인이지만 그녀의 꼿꼿함은 아버지인 왕의 가슴에 못을 박았다. 절절한 사연은 어떻든 화순옹주와 월성위 김한신의 합장묘는 더없이 평화롭다.

지속적인 보호 관리를 받는 백송
지속적인 보호 관리를 받는 백송

월성위 김한신이 건립하고 추사 김정희가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추사고택은 여행자뿐만 아니라 제비에게도 개방했기 때문에 봄, 여름 처마 밑에서는 새끼 제비들이 울어댄다. 주련에 적힌 추사의 글을 보며 사랑채에 앉아 있으니 그의 생이 가슴에 새겨지는 듯하다. 10대부터 70대까지 변화를 거듭했다는 추사체에 담긴 이야기들 말이다.


추사 김정희 선생 고택 
주소: 충남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  
운영시간: 09:00~18:00


●직업 여행가, 보부상
내포보부상촌


코로나 시대에도 박스를 들고, 편지봉투나 비닐봉지를 들고 끊임없이 움직이는 이들이 있다. 이동이 어려운 사람들 대신 물건과 소식을 들고 마을과 마을, 나라와 나라 사이를 오가는 사람들. 오래전부터 이런 사람들은 존재했다. 

비 내리는 날 더 아늑해 보이는 보부상촌 주막
비 내리는 날 더 아늑해 보이는 보부상촌 주막
보부상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예산보 부상촌 박물관
보부상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예산보 부상촌 박물관

7월에 오픈한 예산 내포보부상촌은 보부상의 역사를 보존하고 널리 알리기 위해 조성된 체험형 전통 테마파크로, 박물관과 전수관뿐만 아니라 저잣거리, 체험마당, 보부상 놀이터, 물 놀이터, 숲속 놀이터, 숲속 동물원, 미디어관 등 각종 먹거리와 놀거리로 가득 찬 곳이다. 내포는 고려시대부터 물류의 중심으로 교통이 편리해 사대부 및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여 살았던 곳으로, 과거 교환경제의 주역이었던 보부상의 활약 무대였다.

조선시대의 직업여행가 보부상들이 ‘집 밖은 위험하다’는 오늘날의 유행어를 듣는다면 뭐라고 말할까? 진지하게 물어보고 싶다.

 

내포보부상촌 
주소: 충남 예산군 덕산면 온천단지 1로 55  

 

●음악과 색에 몸을 맡기고 출렁
예당호출렁다리 & 음악분수


5,000여 종의 생물들이 살아가는 너른 논밭의 젖줄이 되어 주는 예당저수지는 청정생태의 상징이었다. 길이 402m, 주탑 높이 64m로 국내에서 제일 긴 출렁다리와 느린 호수길을 두른 후에도 여전히 평화로운 곳이었다. 단, 낮에만.

음악과 빛의 향연 , 음악분수
음악과 빛의 향연 , 음악분수

밤에는 분위기가 사뭇 달라진다. 형형색색의 빛이 다리 위에서, 물줄기에 따라 음악에 맞춰 춤을 춘다. 최대 분사 높이 110m, 면적 1,536㎡의 음악분수에 현혹되어 멍하니 있다 보면 어느새 몸이 흔들거린다. 출렁다리에 몸이 흔들리는 거라고 핑계를 대도 괜찮다. 옆에도 앞에도 모든 사람들이 상기된 얼굴로 음악과 색에 몸을 맡기고 있을 테니. 혹여 주탑 위에서 ‘강남 스타일’에 맞춰 춤을 추는 사람을 발견해도 놀라지 말자. 몸의 건강을 헤아리고 마음과 정신을 가다듬은 후 여행 욕구까지 다독였다면 마지막은 카타르시스에 모두 맡겨도 되니까.  
 

예당호출렁다리 
주소: 충남 예산군 응봉면 후사리 39  
운영시간: 음악분수는 평일 주간 3~4회,야간 2~3회 가동(매월 첫째주 월요일 휴무)

 

글·사진 이수연(자연형)  에디터 천소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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