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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의 신발을 벗기는, 완주 경천 싱그랭이 에코빌

전북생태관광_완주

  • Editor. 천소현 기자
  • 입력 2020.10.03 15: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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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보러 한양 가는 길에 이 마을에서 새 신을 갈아 신곤 했다는 옛 선비들의 마음을 알 것 같다. 맨발이어도 좋을 만큼 맑고 청정하다. 이쯤에서 신을 벗고 쉬어 가도 좋으리. 

싱그랭이 마을은 지천으로 피고 지는 야생화로 유명하다
싱그랭이 마을은 지천으로 피고 지는 야생화로 유명하다

●신을 벗으시오! 
경천 싱그랭이 에코빌


마을의 시작을 알려 주는 장승과 솟대를 지나 이제 싱그랭이 마을에 도착했음을 알려 주는 거대한 나무 한 그루. 싱그랭이 마을을 500년 동안 보호해 온 느티나무다. 동네에서 가장 큰 그늘을 찾아 모인 아주머니들이 멸치 대가리를 톡톡 따 내며 흉금을 털어 내고 있었다. 원님도 쉬어 갔다는 야외 쉼터를 중심으로 ㄷ자 대형을 이룬 것이 지난 6월에 오픈한 싱그랭이 체험관, 신선정(정자), 휴휴당(숙소), 싱그랭이 콩밭식당(가마솥 두부 요리전문점)이었다. 그 가운에 세워진 타일 조형물의 정체는 짚신. 그 이유는 홍성태 에코 매니저의 입에서 나왔다. 

마을의 나무들은 수백년 동안 매년 결실을 맺는다
마을의 나무들은 수백년 동안 매년 결실을 맺는다
상수리 열매
상수리 열매
마을의 보호수 느티나무
마을의 보호수 느티나무

마을의 본이름은 경천면 요동마을, 지금은 싱그랭이 에코빌이라고 불린다. “네? 신을 걸었다고요?” 싱그러움이 가득한 이름의 유래는 의외였다. 과거를 보러 가던 선비들이 이 마을에 이르러 잠시 휴식을 취하며 새 짚신으로 갈아 신고 헌 짚신을 걸어 두었다는, 마을 입구 장승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는 시무나무가 바로 그 신발 걸이였다고. 여기에 또 ‘썰’을 보태면 마을과 마을 사이 5리마다 심었던 나무가 오리나무였다면 시무나무(스무나무)는 20리마다 심었던 나무라고.

마을 입구에서 차례대로 맞아 주는 장승, 솟대, 시무나무
마을 입구에서 차례대로 맞아 주는 장승, 솟대, 시무나무

상상컨대 옛 선비들이 가장 좋아했던 휴식의 공간은 찬샘(마을 사람들은 ‘참삭구덕’이라고 부른다)이 아닐까. 절벽 아래 연중 차가운 물이 퐁퐁 솟아난다고 해서 지금도 마음 주민들의 전용 풀장으로 애용되는 곳이라고. 설명이 끝나기도 전에 신발을 벗지 않을 수 없었다.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얼얼하다. 

싱그랭이 에코빌에서 화암사로 이어지는 숲길의 초입. 맥문동 꽃이 절정이다
싱그랭이 에코빌에서 화암사로 이어지는 숲길의 초입. 맥문동 꽃이 절정이다

●사랑하면 보이나니 
연화공주정원 생태숲 


충분히 쉬었으니 발을 움직일 시간. 길은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딸(연화공주)의 병을 고치지 못해 애가 타던 신라 왕의 꿈속에 어느 날 부처님이 나타나 연꽃을 던져 주었다. 신하들을 시켜 전국을 헤맨 끝에 완주군 운주면 깊은 산봉우리에서 한겨울에 핀 연꽃을 찾아낼 수 있었고, 연화공주에게 먹였더니 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불심이 더 깊어진 왕은 연꽃이 있던 자리에 절이 세웠다.

바위 위에 꽃이 피었다는 전설을 품고 있는 화암사
바위 위에 꽃이 피었다는 전설을 품고 있는 화암사

화암사(花岩寺), 즉 바위 위에 꽃이 피었다는 뜻이다. 그로부터 500년 후 요동마을에서 불명산 자락의 화암사로 이어지는 길에 연화공주정원이라는 이름이 생겼다. 한겨울에 연꽃을 찾는 심정으로 바라보니 야생화와 나무, 이끼까지 예사롭지 않다. 지금껏 숲을 잘 보존해 온 덕에 요동마을은 전라북도 12개 생태관광지 중 하나로 선정될 수 있었다. 

연화공주정원 생태숲
연화공주정원 생태숲

주차장에서 불과 2분만 걸어도 바로 숲이 천의 단계에서 가장 안정화된 상태인 극상림의 숲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연화공주정원 숲길의 자랑이기도 하다. “제가 어렸을 때는 나무들도 키가 작았는데, 지금은 숲이 정말 울창해졌어요.” 마을에서 나고 자란 홍성태 에코매니저가 해박한 지식 사이에서 추억을 뒤져 꺼냈다. 


밀식된 서어나무, 봉삼이라고도 부르는 백선, 단맛이 난다는 산수국, 땔감으로 최고라는 자귀나무 등 그의 설명이 다시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그 기세에 밀려 2개나 되는 폭포수 소리도 잘 들리지 않았다. 그 와중에도 눈을 돌려 숲에 가끔 출몰한다는 날다람쥐를 찾아봤지만 역시 귀하신 몸이다. 

폭포수처럼 설명을 쏟아내는 홍성태 에코 매니저
폭포수처럼 설명을 쏟아내는 홍성태 에코 매니저

모기에게 양껏 보시하며 화암사에 도착했다. 에코 매니저의 상세한 설명들은 20분 거리를 1시간으로 늘렸지만 신기하게도 지루하지 않았다. 하지만 국보 316호 극락전, 보물 662호 우화루를 앞에 두고 숨을 고를 시간이 필요했다. 그 틈을 타 홍성태 에코매니저가 지도앱을 열어 현 위치를 찍어 보라고 했다. 

생명의 힘을 전해 주는 고목들
생명의 힘을 전해 주는 고목들

“어! 하트네요!” 절을 둘러싼 등고선이 과연 하트 모양이다. 마을을 정말 사랑하는 사람만이 읽어 낼 수 있는 러브스토리다. 세월에 씻긴 단청을 덧입지 않고 민낯을 노출한 채 곱게 늙어 가고 있는 절집 화암사는 이미 자연의 일부였다. 국내 유일의 하앙식(下昻式) 지붕구조를 가진 화암사의 문화재적 가치는 다음 여행자의 몫으로 남겨 둔다. 사랑하면 보일 것이다. 무엇이 늙은 절집을 500년 동안 단단히 떠받치고 있는지를.

▶more++ 
완주의 전북 천리길

완주군에는 3개의 천리길 코스가 있다. 고종시 마실길(11km)은 웅장한 폭포와 소나무를 만날 수 있는 길, 운문골 마실길(6km)은 경천 편백숲과 물길이 조화를 이루는 길, 완주 편백숲길(6km)은 피톤치드가 넘실거리는 웅장한 숲을 관통하는 길이다. 
홈페이지: www.jb-ecotour.org

7월에 오픈한 싱그랭이 에코정원의 형태는 화암사를 닮았다
7월에 오픈한 싱그랭이 에코정원의 형태는 화암사를 닮았다

●뜻밖의 자연 플렉스 
싱그랭이 에코정원 


야생화에 대한 대접은 극과 극이다. 쓸모가 없다고 무시하거나 약효가 있다고 마구 캐거나, 관상용으로 뽑아 가 씨를 말리기도 한다. 마을의 귀한 ‘복수초’가 그렇게 사라져 버리지 않도록 만들어진 곳이 바로 싱그랭이 에코정원이다. 괜히 슬금슬금 야산을 헤매지 말고 이곳에서 마음에 드는 야생화를 구입하면 된다.

야생화를 캐 가지 말고 구입하라고 만든 온실이다
야생화를 캐 가지 말고 구입하라고 만든 온실이다

7월에 오픈한 온실에는 목수국, 댑싸리, 신경초 등이 키를 올리고 있었다. 두 개의 온실 중 하나는 씨를 뿌려 키워 내는 육묘장이고, 다른 쪽은 전시용 분재와 관상수, 판매용 야생화, 다육이들이 전시되어 있다. 


오자마자 호스를 풀어 물을 뿌리기 바빴던 홍성태 에코 매니저가 이번에는 물기를 닦으며 온실 뒤 잡초밭에서 풀 한 움큼을 뜯어 왔다. 풀떼기를 손바닥에 찰싹찰싹 내리치며 “참외 냄새 나라, 참외 냄새 나라” 하고 외치니, 풀에서 정말로 참외 냄새가 났다. 이번에는 “수박 냄새 나라, 수박 냄새 나라”를 외치고 나니, 풀냄새가 수박으로 바뀌었다. 알고 보니 널리 통하는 이름은 ‘오이풀’이다. 이름만이라도 알고 싶었던 풀들이, 냄새까지 궁금해져 버린 작은 전환점이었다. 

자연으로 풍요로웠던 석부작 체험
자연으로 풍요로웠던 석부작 체험

에코정원에서 석부작 체험을 하는 것은 필연적이다. 온실은 바위 위에 꽃이 피었다는 전설을 품고 있는 화암사의 외관을 꼭 빼다 닮았고, 석부작 체험은 돌 위에 식물을 식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저 난석을 깔아 화산석을 세우고, 소엽풍란, 부처손, 응달고사리 등 식물을 골라 철사로 고정한 뒤 이끼를 덮고 물을 뿌리는 난이도 하(下)의 체험이지만, 만족도는 최상급. 섬(島) 같기도 하고, 산(山) 같기도 한 나만의 석부작을 완성하고 나니, 묘하게도 어떤 세상을 하나 얻은 기분이다. 

 

▶콩 심은 데 두부 난다 
콩밭식당 가마솥 두부 


두 번째 신발을 벗은 곳은 콩밭식당. 친환경 방식으로 제작한 두부요리 전문점이자 마을 기업이다. 정부 지원으로 시작한 콩 농사가 제법 잘 되었지만, 정부 수매량이 줄어들면서 판로가 마땅치 않아졌다. 고심 끝에 2010년 마을사업으로 ‘가마솥 부두’를 제조하기 시작했고, 친환경 제조법으로 환경부 인증까지 받았다.
 

화학간수 대신 해수를 정제한 천연간수를 사용했기 때문에 몽글몽글 뭉친 부두의 결이 조금 거칠어 보이지만 입 속에서는 더 부드럽고 고소하다. 흙에서 밥상까지, 두부 한 모의 생애는 마을 주인들의 통장을 제법 쏠쏠하게 채워 주고 있다. 완주 와일드푸드축제의 초석을 다진 시작 멤버로서의 자부심도 강하고 2013년부터 운영 중인 마을 식당도 이미 지역 맛집이다. 
전화: 010 3681 8554 

 

●AFTER TOUR
완주 경천 싱그랭이 에코빌

여행기자와 생태전문가의 시선이 만나는 여행 후, 애프터 투어

대담자 박종석 센터장(전북생태관광육성지원센터), 천소현 <트래비> 부편집장 

마을 곳곳에 야생화가 피고 진다
마을 곳곳에 야생화가 피고 진다

마을을 둘러싼 자연환경이 참 좋더라. 마을로 들어오는 길에 야생화 화단을 가꾸는 주민들의 노력도 인상적이다. 싱그랭이 에코빌이 생태관광지로 선정된 이유는 무엇인가?


생태관광지인 경천면은 완주의 북쪽 지역이자 대둔산 아래에 해당하고 자연환경보전지역에 가까운 곳이다. 이곳은 산악보다는 산촌에 가깝고, 하얀 눈발 속에서 꽃을 피우는 야생화로 유명한 ‘복수초’의 군락지다. 그런데 아는 사람들은 초봄에 이곳에 와서 복수초 씨앗을 캐어 가 버린다. 마을 주민들이 이 씨앗을 지키는 일의 중요성을 느끼게 되면서 생태관광지로의 방향성을 찾게 되었다. 차라리 숲은 그대로 놓아 두고 온실을 짓고 씨앗을 육묘(배양)해서 판매하면 훔쳐 가지 않을 뿐더러 마을에 소득창출도 가능하다는 제안을 드렸다. 주민들의 반응도 좋아서 온실 전문가의 자문을 얻어 진행하게 되었다. 9월부터 전문가의 온실 교육이 진행했는데 참여율도 높았다.  

시원한 물이 퐁퐁 솟는 찬샘
시원한 물이 퐁퐁 솟는 찬샘

에코정원은 유리온실이라, 처음엔 자연에 와서 왜 또 온실을 방문해야 하나 싶었는데, 야생화 자원 보호와 관련되어 있다니 이해가 된다. 자원이 좋다고 다 관광지가 되는 것은 아닌데, 콩 수매가 잘 안 되니 ‘그냥 우리가 두부를 만들어 팔자’며 시작했다는 마을 기업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 마을 전체가 한마음인 느낌을 받았다.


생태관광을 구성하는 몇 가지 중요한 요소가 있는데, 생태자원 자체의 우수성뿐 아니라 이를 기반으로 한 프로그램의 실행력도 중요하다. 완주의 경우 환경부의 저탄소 프로그램 인증을 포함해서 주민들의 공동체 활동이 어느 시군보다 높게 나타났다. 특히, 에코 매니저*로서 주어진 역할이나 활동이 우수하고 책임감이 높다는 점에서 우수 지역으로 평가받고 있다.  

선비들이 벗어 놓은 짚신일까
선비들이 벗어 놓은 짚신일까

방문한 날이 폭염에 소나기까지, 쾌적한 조건이 아니었는데, 에코 매니저의 열정이 대단하셨다. 특히 유리온실에서 석부작 체험을 이끌어 가시는 과정은 정말 많이 생각하고 준비하신 것 같아 박수가 절로 나왔다. 생태관광 사업이 마을과 주민들에게 가져온 내적인 변화가 있을 것 같다.

마을의 숲을 함께 걸어 보았을 때, 안내를 맡았던 홍성태 사무국장님의 태도에서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 궁금하다. 그 무더위와 몸을 뒤덮은 땀 냄새에도 싫다는 표정 한 번 볼 수 없었다. 볕에 그을린 구릿빛 얼굴로 조금이라도 더 알리고 싶어서 걷던 내내 설명하던 그 모습 말이다. 생태관광지로서 마을에 대한 자신감이자 대단한 동기부여다. 그 정도면 누가 시켜서 할 수 없는 일이다. 스스로 가치를 찾아가고 있는 것으로 해석한다. 아닌가? (웃음)  

 

6월에 오픈한 싱그랭이 체험관
6월에 오픈한 싱그랭이 체험관

번듯한 마을 체험관도 생기고, 푸릇푸릇한 에코정원도 오픈했다. 이제 본격적인 가동만 남은 건가? 여행자는 식사, 숙박, 쇼핑, 체험 등을 원하게 마련인데, 그런 욕구도 생태적으로 풀어내야 할 것 같다. 싱그랭이 에코빌의 다음 단계가 무엇인가?

올해 초 공동체 회의를 통해 마을의 미래를 함께 고민하는 자리를 가졌다. 큰 틀의 어려움은 넘어섰고 이제 본격적인 시작의 느낌을 받았다.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유리온실과 싱그랭이숲의 조성이 제대로 꽃을 피울 것인가이다. 여행자를 위한 서비스는 함께 고민해야 할 과제다. 생태관광에서도 다양한 서비스가 필요한데, 말씀하신 것처럼 일반 여행과 다른 요소나 형태가 동반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석부작 체험에서 돌을 고정하기 위해 글루건처럼 반환경적인 제품을 사용하지 않고 식물 본드처럼 순환성을 갖는 제품을 사용하는 것이다. 높은 단계의 고민은 친환경 침구류의 사용, 세제와 같은 것으로부터 자연스럽게 멀어지거나 대체할 수 있는 숙박 서비스란 어떤 것일까, 하는 것들이다. 그런 단계에 이를 수 있도록 함께 고민하는 중이다.   


*에코 매니저는 전북 생태관광지에서 환경 보전과 안내, 체험, 해설 등의 지속적 운영을 담당하는 ‘생태활동가’를 뜻한다.  


글 천소현 기자  사진 김민수(아볼타)  취재협조 전라북도생태관광지원육성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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