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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때제때 비우기

  • Editor. 강화송 기자
  • 입력 2020.10.03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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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것보다 비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
프랑스 어느 습지에서 배운 에디터의 처절한 이야기. 

아픈 배, 배 타기 


때는 2018년 10월, 프랑스 취재 중에 일어난 일이다. 브리에르 지역 자연공원은 프랑스에서 두 번째로 큰 습지다. 말도 있고 오리도 있고 거위도 있고. 이곳에선 샬렁스(Chalands)를 타야 한다는 게 가이드의 주장이었다. 샬렁스는 지역 전통 거룻배다. 거룻배는 돛이 없는 작은 배를 뜻한다. 총면적이 490km2에 달하는 습지, 그러니까 노를 저어 다니려면 참 시간이 오래도 걸리겠지만 취재 중이니 최대한 웃으며 배에 오른다, 배가 많이 아픈 상태로. 만약 배가 이대로 출발하면 1시간을 참아야 하는 것이고 배가 이대로 출발했으니 1시간을 참게 된 것이다.

채우기 전 비우기 


샬렁스는 노를 저어야 앞으로 나간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노를 저으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배가 흔들거린다. 배가 앞으로 나갈수록 (나의) 배가 혼란스러워진다. 목이 마르면 물이 보이고 배가 고프면 음식이 보인다. 배가 아프니 배가 보였으면 다행인데, 어느 습지에서 나타난 염소가 볼일을 본다. 거위 한 쌍은 오붓하게 마주 보고 볼일을 본다. 말은 뛰면서 볼일을 보고 토끼는 자면서 볼일을 본다. 특히 소, 갑작스럽지만 프랑스 습지에서 왜 소의 배설이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지목되는지 깨달았다.

 

본론으로 돌아와 프랑스에서, 브르타뉴에서, 브리에르 지역 자연공원에서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지만 실제로 정말 많은 배설물(이라고 적고 똥이라고 말한다)이 그곳에 있었다. 그 광경은 나의 심금을 울렸다. 야 너도 할 수 있어. 곧 터질 것만 같은 긴급상황을 취재에 동행한 이들에게 혹시 들키지는 않을까, 애써 태연한 척 그리고 풍경을 즐기는 척했다. 거룻배에 앉아 그저 예쁘다며 행복해하는 이들과 나의 속 사정을 계속 확인하지 않는 가이드가 원망스럽다. 여행에서 소외되기 시작한 것이다.

 

가이드 눈치를 슬금슬금 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마침 가이드가 몸을 살살 꼬며 앉아 있는 것이다. 그래서 확신했다. 가이드도 배가 아팠던 것이다. 속삭였다. 배가 많이 아픈데 사방에서 살아 있는 것들이 똥을 싸대니 더 배가 아프고 그래서 내가 지금 그렇고 그런 상태다. 솔직히 말할 수 있었던 계기가 용기는 아니었고, 다급한 속 사정은 더더욱 아니었고 그저 가이드에게 느낀 동질감이라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그렇게 쏟아 냈지만(말을) 이미 배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 버렸다(오해할까 봐서. 타는 배가). 배가 아픈 한 사람과 배가 아플지도 모르는 한 사람을 태운 배는 그렇게 1시간 동안 습지를 헤매고 나서야 선착장에 도착했다. 배에 내려 곧장 화장실로 뛰어가는데 분명 가이드는 스트레칭을 하는 듯했다. 아주 잠깐, 뛰어가는 동안 조금의 배신감을 느끼며 수치스러웠지만 곧 세상의 모든 것을 용서할 수 있을 만큼 자비로운 상태가 되었다. 역시 일체의 속박에서 해탈하게 되면 열반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완전한 평안, 완전한 평화.

<트래비>의 필자는 자신의 경험을 적는다. 이건 분명한 사실이다. <트래비>의 필자는 진실만 적는다. 이건 글쎄. ‘아주 약간의 거짓을 섞어 경험, 그러니까 사실을 적는다’라는 표현이 맞을 거 같다(맞나요? 편집장님). 중요한 포인트는 ‘거짓이 진실처럼 보이면 안 된다는 것’이고 ‘진실은 거짓처럼 보일 수 있게 적는 것’이 재미적 요소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사실은 배가 아팠다는 것이고 재미를 위해 진실을 거짓처럼 보이게 만든 부분은 브리에르 지역 자연공원에는 사방이 배설물이라는 사실이고 이 여행을 통해 얻은 교훈은 ‘제때제때 먹는 것보다 제때제때 비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품격이 넘쳐흐르는 <트래비> 지면에 이런 우스운 이야기를 실을 수 있는 이유는 지금이 우리의 여행을 비울 제때이기 때문이다. 다 비우고 나면 뭐든 다시 먹겠지. 점점 배고파지는 것 같지만 그것도 과정이라고 생각하며, 그렇게 비우는 중이다. 

 

글·사진 강화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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