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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다페스트에서 나는 왜 그렇게 울었을까

  • Editor. 김예지 기자
  • 입력 2020.11.01 17: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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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지만 그대로 추억하기로 한다. 
실연을 당하지도 않았고 울보도 아니었다. 

●먹먹한 밤의 기억 


종종 뜬금없는 질문을 하는 편이다. 얼마 전 지인에게 살면서 마음이 가장 먹먹했던 때를 물었다. 그리고 되돌아온 그의 질문에 나도 모르게 말해 버리고 말았다. 헝가리 부다페스트. 팽팽하게 꿰어진 기억들 속에서 참을 만큼 참았다는 듯, 실밥처럼 툭 튀어 올랐다. 그동안 그 기억을 제대로 꺼내지 않았던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첫째, 너무 좋아서. 둘째, 꺼내면 닳을까 봐. 셋째, 곧 다시 갈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셋 중에 둘은 현실성이 희박해진 이 시점에 결단을 내려야 했다. 언제 갈지 모르니 꺼내 놓기라도 하지 않으면 잃어버릴 것 같았다. 

 

더 이상 쓰지 않는 노트북에서 주섬주섬 사진을 뒤졌다. 한참의 기다림 끝에(부팅만 10분이 걸렸다) 부다페스트 폴더를 열었다. 정황상 날이 그리 맑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파일명의 순서로 본다면 도착한 첫날 지하철을 타고 성 이슈트반 대성당(Szent Istvan Bazilika)으로 향했다. 성당 주변을 거닐다가 새빨간 냄비에 담겨 나온 굴라시를 구멍이 송송 난 빵에 곁들여 먹으며 육개장을 떠올린 기억이 어렴풋이 스친다. 다뉴브강의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는 어부의 요새(Halaszbastya)에 올라 한참을 응시했다. 도시도 나도 평온했다.    

 

사건은 밤이었다. 부다페스트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었던 유람선을 탔다. 주변엔 대부분 유럽 사람들이었다. 다리가 내 허리춤까지 올라오는 장신의 이탈리아 커플, 푸근한 인상의 벨기에 중년 부부가 있었다. 그 속에서 나는 울었다. 것도 온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아주 세차게. 점점 가속을 내는 배 위에서 긴 파마머리와 밤바람과 눈물이 한데 눅진하게 버무려졌다. “Are you OK?” 벨기에 아저씨가 조심스레 물어 왔다. 롱다리 이탈리아 커플도 흠칫 놀란 기세였다. 쪽팔린데. 그보다는 쏟아 내느라 바빴다. 지금도 퍽 이해가 가질 않는 울음이다.

●행여 일요일의 분위기에 


그 영화 때문은 아니었을까. 부다페스트 여행을 앞두고 <글루미 선데이>를 봤다. 영화의 배경은 1930년대. 부다페스트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자보와 일로나는 연인 사이다. 둘의 관계는 피아니스트 안드라스가 그들의 레스토랑에서 일하게 되면서부터 변하기 시작한다. 일로나에게 반한 안드라스는 ‘글루미 선데이’라는 곡을 작곡해 그녀에게 선물하고, 일로나 역시 안드라스에게 끌린다. 그 사실을 모르지 않은 자보는 일로나를 잃는 대신 합의 하에 삼각관계를 택한다. 한 여자는 동시에 두 남자를 사랑하고 두 남자는 동시에 한 여자를 사랑한다.

 

대중의 인기를 얻은 글루미 선데이는 연이은 자살 사건과 연루되며 저주의 곡으로 불리게 된다. 이건 비단 영화 속에서만이 아니라 현실 속 이야기이기도 했다. 실제로 글루미 선데이는 1933년 레조 세레스라는 작곡가에 의해 만들어졌는데, 곡이 라디오에 방송된 후 수많은 사람들이 자살을 시도했다고 전해진다. 이 곡을 연주하던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차례로 죽는 일까지 벌어지며 글루미 선데이에는 자살을 부르는 노래라는 낙인이 찍혔다. BBC를 비롯해 여러 방송국이 금지곡으로 지정했고, 작곡가 레조 세레스 역시 1968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노래와 죽음의 연관성에 대해서는 어떤 것도 확실치 않다.

 

●볼살과는 달리 살아남은 추억


다시 밤, 다뉴브강. 환하게 불이 켜진 다리 밑을 지나며 그 노래를 떠올렸는지는 정확치 않다. 정말로 영화 때문이었는지, 지금은 잊은 또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혹은 부다페스트의 야경이 그토록 생경해서였다고 짐작하기도 했는데, 심하게 기쁠 때 눈물이 나고 격하게 좌절할 때 오히려 웃음이 나는 경험을 한 뒤의 일이다. 이후로 여행과 출장 사이를 오가며 수많은 도시를 다녔다. 때로는 한 곳에 꽤 오래 머물렀다. 그러고 보면 부다페스트에서는 고작 3일이었다. 이젠 이렇게 까마득하기까지 한데. 기간과 감정은 좀처럼 비례하지 않는다. 부다페스트가 그렇게나 아름다웠다.

펑펑 울고 난 다음날 찍힌 사진 속의 나는 눈이 좀 부은 채로 환하게 웃고 있다. 지금보다 볼살이 좀 통통하게 오른, 앳된 모습이다. 그러니까 그 볼살들이 야금야금 사라지는 동안에도 부다페스트의 밤은 내 어딘가에 남아 있었던 거다. 돌이켜 보면 그때만큼 충격적인 야경은 다신 보지 못했고, 그때만큼 의아한 울음은 다시없었으며, 두 남자의 흠모를 동시에 받는 일 따위는 쉬이 일어나지 않았다. 지난 일요일, 간만에 글루미 선데이를 찾아 들었다. 그때 왜 그렇게 울었는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다만 살면서 가장 먹먹하고도 행복했던 순간이었던 것만은 맞다. 한바탕 꺼내 봤지만 다행히 닳지는 않은 것 같다. 너무 좋다. 곧 다시 갈 거라 믿고 있다. 

 

글·사진 김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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