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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호상의 항공 이야기] 비행기 창밖 풍경은 내가 보는 그대로일까?

  • Editor. 유호상
  • 입력 2020.11.01 17: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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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신체적 능력은 개개로 보면 기계보다 못하다. 반면 전체적 조합으로 보면 그 효율성에서 인간을 따라올 존재가 없다. 문제는 신체가 받아들이는 정보를 해석하는 인간의 사고에 있다. 믿고 싶은 대로 믿고, 보고 싶은 대로 보기가 쉽기 때문이다.

심지어 밖이 보이지 않아도 계기로 조종이 가능하다
심지어 밖이 보이지 않아도 계기로 조종이 가능하다 ©유호상

●말로만 듣던 버티고 체험


그날은 강남에 있는 한 도서관을 향하고 있었다. 아시다시피 강남은 구획이 반듯한 곳이라 길을 찾기도 수월하다. 게다가 오래전 한 번 와 본 곳이라 대략 위치가 어디쯤인지도 알고 있었다. 지하철역에서 내려 도서관으로 걸어가면서 상세한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 휴대폰 앱의 지도를 켰다. 그런데 휴대폰의 상태가 어딘가 이상했다. 현재 내 위치가 도서관이 있는 블록의 길 건너 반대편으로 표시되고 있는 것이었다.

혹시 몰라 지도 앱 대신 내비게이션 앱으로 확인했는데, 여전히 똑같은 오류가 났다. 마지막 수단으로 휴대폰 전원을 껐다 다시 켜 봤지만 휴대폰의 상태는 여전했다. GPS에 오류가 있는 듯했다. ‘왜 하필 지금…’ 휴대폰을 끄고 그냥 직접 찾기로 했다. 처음부터 길 찾기를 다시 시작하기로 하고 우선 지하철역이 있는 대로변으로 나왔다.

‘이럴 수가!’ 뭔가 잘못된 것을 알아챈 것은 바로 이때였다. 알고 보니 휴대폰의 위치 정보가 잘못된 게 아니라 무엇에 홀린 듯 처음부터 내가 완전히 반대로 생각하고 있었음을 깨달은 것이다. 소름 돋는 점은 조금 전까지 단 한순간도 나는 나 자신이 착각하고 있을 가능성은 생각조차 않고 무조건 휴대폰 오류일 것이라고만 생각했다는 점이었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버티고(Vertigo)* 현상 때 나오는 실수였다. 많은 항공기 조종사들은 본인의 감각과 기계의 정보가 상충할 때 기계보다는 자신의 판단을 믿으려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버티고(vertigo) 현상 | 위치와 운동의 착각에 의한 균형 감각의 상실 혹은 신체의 평형이 흐트러져 감각의 부조화를 느끼는 상태.

비행 시뮬레이터를 통해 실제와 똑같은 비행 실습 중
비행 시뮬레이터를 통해 실제와 똑같은 비행 실습 중 ©유호상

●한편 하늘에서는?


‘띵동’, 벨 소리에 잠을 깨 창밖을 내려다보니 아래는 바다다. 가는 주름처럼 보이는 파도, 점처럼 보이는 배들. 어느새 비행기가 많이 내려온 듯하다. 바다가 손에 닿을 듯 가깝게 느껴진다. ‘이제 착륙도 얼마 안 남았구나’ 싶던 순간…. 아니 이럴 수가, 점처럼 보였던 배들은 거대한 유조선이었다. 알고 보니 아직 다 내려온 게 아니었다. 이 정도 높이라면 적어도 1,500m 정도일 텐데 그건 123층짜리 롯데타워 3개 높이에 해당하는 ‘고공’이었다. 생각해 보면 이뿐만이 아니다. 비행기가 구름을 지날 때도 저만치 떠 있는 구름이 생각 외로 빨리 지나지 않는 느낌이 든다. 이때 우리가 창밖으로 보는 구름도 사실 그렇게 가까이 있는 것은 아니다. 거리 감각, 공간 감각이 흐트러져 일종의 착시현상이 생기기 때문이다. 


또 다른 경우로, 비행기가 선회할 때가 있다. 창밖 풍경을 봤을 때는 기체가 옆으로 꽤 기운 것 같은데 테이블 위 음료를 담은 컵이 쏟아질까 걱정돼 보면 생각보다 기울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이는 비행기가 양력과 중력, 원심력이 동시에 작용하며 상쇄돼 우리가 그 기울기를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과거의 사례를 보면 밤에는 심지어 비행기가 극도로 심하게 기울어도 승객들은 이를 잘 알아채지 못한다고 한다. 


하늘에서는 이처럼 착시현상 혹은 감각의 마비 현상이 발생하는데, 이는 주변의 지표와 자신을 시각적으로 비교할 만한 대상이 없기 때문이다. 특정한 상황에서는 흔히 계기비행이라고 하는 항공기의 계기에 의존해서 조종해야 하는 이유다. 조종사가 착륙할 때 활주로에 접근할 때 역시 순간적으로 공간 감각에 혼란이 올 수 있다. 그래서 사실 비행기가 이착륙할 때는 다양한 기술이 보조하고 있다. 그렇다고 꼭 첨단 기술만 쓰이는 것은 아니다. PAPI(Precision Approach Path Indicator)라는 유도등의 경우, 비행기의 적정 착륙 고도를 조종사에게 시각적으로 알려주는 장비다. 높낮이에 따라 등의 빨강 불빛이 보이는 정도를 달리해서 비행기의 활주로 진입각도(높이)를 알 수 있게 해 주는 원리다. 간단한 장비지만 효과적이고 반짝이는 아이디어다.

착륙때 높낮이 정보를 주는 PAPI 유도등 ©Wikipedia
착륙때 높낮이 정보를 주는 PAPI 유도등 ©Wikipedia

●인생 비행이라면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라는 사실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는 않는다. 그 점을 보완하기 위해 우리는 기술의 도움을 받아 왔고, 시간이 흐를수록 비행기도 점차 첨단화 되고 있다. 그런데 정작 위급한 상황에서는 기계를 믿지 않고 자신의 감각을 더 믿는 것은 아이러니다. 이는 비단 비행기를 탈 때만 벌어지는 일은 아닌 듯하다. 감각의 마비와 착각으로 자신의 인생 비행이 위험한 상황에 처했을 때 자신을 얼마나 객관적으로 볼 수 있을지도 한 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유호상은 어드벤처 액티비티를 즐기는 여행가이자 항공미디어 에디터로 활동 중이다.
인스타그램 oxenholm

 

글 유호상  에디터 천소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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