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난다, 하늘이 높다- 김제 벽골제마을
마음이 난다, 하늘이 높다- 김제 벽골제마을
  • 이은지 기자
  • 승인 2020.11.02 08: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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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골제 제방은 연날리기 최적의 장소다
벽골제 제방은 연날리기 최적의 장소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끝이 없다. 넘실대는 황금빛 파도를 눈대중으로 넘는다. 
이다지도 광활하니 마음이 둥실둥실 높이 날 수밖에. 
맞닿은 경계를 가늠하는 일은 따뜻하니 아득했다.

 

●하늘을 가르는 바람의 이름은 사랑


한낮의 푸른 들판을 생각한다. 내 유년기의 기억은 바람결에 묻어나는 까칠한 풀 내음. 김제로 가는 기차 안에서 어린 날의 촉촉한 감각들을 상상했다. 김제역에서 벽골제마을까지는 차로 10분. 마을 어귀에 내리자 꿈희망여행의 특별한 시골 밥상이 한 상 가득 맞이한다. 지역 특산물을 이용해 마을 주민이 정성껏 차려 낸 한 끼다. 나물부터 사과잼까지 어느 하나 주민들의 손맛이 닿지 않은 것이 없다. 두둑하게 배를 채웠으니 신나게 뛰어놀아 볼까. 벽골제로 향한다.

백룡과 청룡이 전설을 품고 사는 벽골제
백룡과 청룡이 전설을 품고 사는 벽골제
연에 한 글자씩 빼곡하게 마음을 담는다
연에 한 글자씩 빼곡하게 마음을 담는다

벽골제는 물을 저장해 두었다가 부족할 때 사용할 수 있도록 마련한 수리시설이다. 광장에는 거대한 용 두 마리가 위용을 떨치고 있다. 홀린 듯이 다가가 품은 전설에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이곳에 살던 온후한 백룡과 포악한 청룡의 싸움으로 벽골제가 붕괴 위기에 처하고, 단야 낭자가 마을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바친다. 이에 감복한 청룡이 끝내 물러나 마을에는 평안이 찾아왔다고. 단야의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 매년 쌍룡놀이가 진행되는데, 전설과는 달리 쌍룡놀이는 단야가 살아나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된다.

남매의 소원이 바람을 만나 부풀어 오른다
남매의 소원이 바람을 만나 부풀어 오른다
한적하게 거닐기 좋은 벽골제
한적하게 거닐기 좋은 벽골제

높은 제방은 연을 날리기에 최적의 장소다. 가족들이 오순도순 모여 연에 빼곡히 소망을 적어 넣는다. ‘코로나19 빨리 끝나서 친구들과 뛰어놀게 해주세요’, ‘전교 1등은 내 것.’ 간결하면서도 간절하면서도 재치 있다. 아이들이 대롱대롱 매달린 소원을 등에 업고 제방 위로 올랐다. 여기저기서 “선생님 이것 보세요!” 외치는 아이들의 말소리가 가득했다. 이름표에 달린 이름을 부르며 칭찬 한 마디를 곁들이니 아이들은 금세 골목대장이 아닌 제방대장으로 돌변한다. 소원이 난다. 비로소 하늘이 더욱 높다. 하늘을 가르는 바람의 이름은 연, 어쩌면 사랑.

고구마 수확 체험. 어느새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고구마 수확 체험. 어느새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먹을 땐 이렇게 힘들 줄 몰랐지  


실컷 소화를 시킨 뒤 밥상 위 식재료들의 정체를 추적해 본다. 따사로운 햇볕이 공평하게 내려앉는 널따란 들판에 도착해 두 팔을 걷어붙인다. 오늘의 비장의 무기는 바로 장갑과 호미. 한 줄로 나란히 서서 밭고랑 사이를 쫄쫄 따라간다. 아이들이 수확하기 쉽게 미리 고구마 순을 제거한 덕에 밭은 황톳빛 속살을 드러내고 있었다.

아이가 호미질에 여념이 없다
아이가 호미질에 여념이 없다

힘껏 호미를 내리찍는다. 아이들의 덩치를 닮은 구덩이가 툭툭 모습을 드러낸다. 인생사 운이 중요하다는 진리를 고구마 밭에서 깨달을 줄이야. 아무리 캐도 작은 고구마밖에 없다는 아우성이 요동치는 가운데 몇 명은 묵묵히 흙을 파낸다. 녀석들의 바구니는 제 팔뚝만 한 커다란 고구마가 이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직접 캐니 작지만 보람 있다
직접 캐니 작지만 보람 있다

하나도 못 캔 아이는 어느새 입이 삐죽 튀어나와 느릿느릿 호미질을 해 본다. 전략을 바꿨는지 엉덩이를 옮겨 다른 곳을 파기 시작한다. “여기 조금만 더 파 보면 고구마가 나올 것 같은데?” 슬쩍 운을 뗐더니 금세 제자리로 돌아와 수확에 몰두한다. 이윽고 첫 고구마가 나타나고, 가지각색의 조리법이 노동요처럼 울려 퍼졌다.

표고버섯 수확 체험
표고버섯 수확 체험

풀풀 날리는 황톳빛 입자를 온몸에 입고 이제는 다소 눅눅한 농장으로 향한다. 물기를 가득 머금은 표고버섯과의 만남이었다. 본격적인 버섯 채취에 앞서 배지를 만들어 본다. 배지는 버섯이 쑥쑥 자랄 수 있는 일종의 토양이다. 과정은 간단하다. 둥근 원기둥 모양의 비닐에 톱밥과 종균을 눌러 담으면 완성. 하나둘 머리를 맞대고 작은 손으로 쓸어 담다 보니 어느새 비닐이 불룩하다. 물만 주어도 알아서 쑥쑥 자란다니, 버섯이 머리를 들이미는 기특한 모습을 지켜보며 추억도 무럭무럭 자라날 테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우리 민족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아리랑을 불렀다. 일제강점기 당시 일제는 군량미를 확보하기 위해 김제 평야에 손을 뻗었고, 소설가 조정래는 장편소설 <아리랑>을 통해 민초들이 겪어야 했던 수난과 저항의 역사를 고스란히 풀어냈다.

안중근 의사의 거사 장면을 재현한 아리랑 문학마을의 하얼빈역
안중근 의사의 거사 장면을 재현한 아리랑 문학마을의 하얼빈역

아리랑문학마을은 소설 속 일제 수탈 기관을 그대로 재현한 곳이다. 입구에 위치한 아리랑문학관에서는 <아리랑> 집필 과정과 일제 수탈 역사를 살펴볼 수 있으며, 조금 더 깊숙이 발걸음을 옮기면 거대한 하얼빈역이 나온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는 모습을 고스란히 동상으로 옮겨 놓았다. 마을 위원장의 생생한 설명도 곁들여진다. 이토 히로부미의 얼굴을 정확히 구분할 방법이 없었던 안중근 의사는 그로 추정되는 인물과 뒤따르는 일본인 모두에게 총을 쐈다고. 숙연함도 잠시 아이들의 시선이 역 앞 기찻길로 향한다. 하나둘 기차 위에 올라타 증기기관차 소리를 흉내 낸다. 기찻길에 서 있던 막내가 언니, 오빠의 장난에 부리나케 달려가 엄마 품에 안겼다.

연못의 물고기를 관찰하는 아이들
연못의 물고기를 관찰하는 아이들

한바탕 보물찾기 뒤 여기저기서 용을 쓰는 소리가 들려왔다. 한 아이가 친구를 태우고 제 키의 두 배는 족히 되는 인력거를 영차영차 끌었고, 또 다른 아이는 작은 감옥에 스스로 수감돼 목에 칼을 찼다. 마냥 가볍지는 않은지 도와달라는 외침에 제법 힘이 들어간다. 이처럼 아리랑문학관에는 일제강점기 당시 시대상을 반영한 다양한 체험 소품들이 구비돼 있다. 무거운 인력거와 칼만큼이나 묵직한 역사가 무게감 있게 쌓인다.

부안 변산반도 채석강
부안 변산반도 채석강

버스를 타고 조금 더 멀리 떠나 볼까? 전주에서 온 손님들을 위해 부안 채석강으로 향한다. 내륙에서는 보지 못할 바다 풍경을 선물하기 위해서다. 수만 권의 책이 겹겹이 쌓여 있는 듯한 경관은 어른들의 시선을 빼앗았지만, 역시 아이들은 아이들이다.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풍경보다는 눈앞에 꼬물꼬물 기어 다니는 작은 게와 술래잡기하기에 여념이 없다.

하늘하늘 코스모스가 가을을 알린다
하늘하늘 코스모스가 가을을 알린다

●맛만 좋으면 그만


손재주는 꼼꼼함과 비상한 상상력에서 비롯된다. 어느덧 마지막 날. 든든히 배를 채우고 송편과 쿠키를 만들었다. 모두 김제 평야에서 난 쌀이 재료다. 송편은 바로 먹을 수 있도록 미리 반죽을 쪄 놓았다. 따끈따끈하게 쪄 낸 반죽을 알맞은 크기로 똑 떼어 내 밀대로 힘껏 밀어 본다. 어찌나 쫀득쫀득한지 설렁설렁 만만히 봤다가는 계속 제자리걸음이다. 두 팔에 힘을 실어 꾹꾹 밀어 낸다. 얇게 펴진 반죽에 달달한 앙금을 눌러 담아 반으로 접고 마무리한다. 꽃, 고양이, 개구리 다양한 생명을 지닌 송편이 아이들의 손끝에서 탄생한다. 다음은 쿠키 만들기. 아이들의 상상력은 크기도 모양도 제각각이라 따로 이름을 써 넣지 않아도 주인을 찾아간다. 버터 향이 가득한 오븐 앞에서 이 세상 하나뿐인 쿠키를 기다렸다.

반은 입으로, 반은 반죽으로 들어가는 송편 앙금
반은 입으로, 반은 반죽으로 들어가는 송편 앙금
함께 기념촬영을 하는 아이들
함께 기념촬영을 하는 아이들

아쉬운 발길을 담아 마을과도 작별 인사를 한다. 하늘과 맞닿은 지평선에는 노랗게 익어 가는 벼가 넘실거리고, 그 앞에는 살랑살랑 바람에 춤추는 알록달록 코스모스가 있다. 또 그 앞에는 제각각의 그림자가 몸을 기울이고 건반 위 손가락처럼 뛰어논다. 풍경과 순간과 마음은 이리도 겹겹이 쌓일 뿐이다.  

예쁜 송편은 먹기도 좋다
예쁜 송편은 먹기도 좋다
김제평야의 벼가 무르익어 간다
김제평야의 벼가 무르익어 간다

 

▶마을 토박이가 소개하는 우리 마을
김제 벽골제마을 김형문 위원장

김제 벽골제마을 김형문 위원장
김제 벽골제마을 김형문 위원장

-벽골제마을만의 특별함이 있다면.

벽골제마을은 꿈희망마을 중 유일하게 숲과 물이 없는 곳이다. 끝없이 펼쳐진 들판이 전부라고 생각하면 섭섭하다. 벽골제, 아리랑문학마을 등 다양한 즐길 거리가 있어 2박 3일 코스도 거뜬하다. 작년에 꿈희망마을로 선정된 이후 마을 주민 모두 힘을 모아 알차게 일정을 기획하고 있다.

-가장 인기가 많은 프로그램은.

단연 벽골제 제방 연날리기다. 높은 제방은 연을 날리기에 제격이다. 동시에 1,300명이 연을 날려 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했다. 그때그때 지역 농산품으로 만든 음식도 인기다. 김제 평야에서 나는 쌀을 이용해 송편 빚기, 쿠키 만들기 등 체험은 물론 쌀 케이크, 쌀국수 등 선물용 특산품도 많다.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은.

휴식이다. 오롯이 쉼을 만끽할 수 있도록 체험 프로그램부터 식단까지 정성을 기울인다. 도심 속 답답한 고층 빌딩에서 벗어나 이곳에 발을 딛는 순간부터가 치유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농어촌체험지도사 15명이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꿈희망여행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익법인 GKL사회공헌재단의 후원으로 대한민국 국민의 가족이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전국 각지의 농산 어촌 마을로 떠나는 가족여행 프로그램이다. 2020년 9월25~27일에 진행된 꿈희망여행에서는 전주 완산구 아동복지센터에서 온 7팀이 2박 3일 동안 김제 벽골제마을에서 다양한 체험을 통해 추억을 쌓았다. 한편 GKL사회공헌재단은 공기업 GKL(그랜드코리아레저)의 100% 출연으로 2014년 설립된 문화체육관광부 산하의 공익법인이다. 관광문화 생태계 조성, 국제사회 동반자로서 책임을 이행하는 해외 공헌사업, 미래 세대를 위한 교육 및 문화 지원 등 활발한 사회 공헌사업을 펼치고 있다. 여행 참가 신청은 재단 홈페이지에서 받고 있다. GKL사회공헌재단 www.gklfund.org/gkl_tour

 

글·사진 이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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