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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흔 곡 이상향이 있는 괴산

이우석의 놀고먹기

  • Editor. 이우석
  • 입력 2020.11.02 08: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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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산은 산으로 둘러싸인 땅이다. 한양과 영남을 잇던 길목이던 이화령에서 바라본 괴산
괴산은 산으로 둘러싸인 땅이다. 한양과 영남을 잇던 길목이던 이화령에서 바라본 괴산

탄다, 가을을. 그래서 오갈 데 없는 
괴괴한 마음을 찰떡처럼 알아주는 그곳. 
때마침 단풍도 절정이라지 않나. 

문광지를 노랗게 물들인 은행잎
문광지를 노랗게 물들인 은행잎

●홰나무와 산 

 

국내엔 꽤 다채로운 지명이 있다. 어감이며 뜻이 각각 그럴싸하다. 영광이니 진주, 영양은 뭔가 긍정적 단어를 연상시킨다. 아름다운 바다 여수(麗水)에, 빛이 올라오는 양양(襄陽), 기린 발굽을 닮았다는 인제(麟蹄) 등도 뜻이 상서롭다. 그런데 괴산(槐山)이라니. 덜덜덜. 뜻은 홰나무 산. 어쩐지 듣기에 터프한 이름이다. 인근의 옥천(沃川), 청주(淸州), 단양(丹陽) 등도 꽤 점잖은 이름이다. 국내 시군 명 중에서 가장 독특한 어감이 아닌가 한다. 

문광지(양곡저수지)의 황금빛 은행나무
문광지(양곡저수지)의 황금빛 은행나무

이름에서 예상했듯 괴산은 산세가 좋다. 남동쪽으로 소백산맥이, 서남쪽엔 노령산맥이 흐른다. 당연히 고산준령과 계곡이 많다. 조령산, 주흘산, 백화산 등이 첩첩 괴산 땅을 둘러쌌다. 사람보다 산봉우리와 계곡이 많으니 어쩌면 거리 두기와 언택트(Untact) 여행에 최적화된 곳일지도 모른다. 게다가 괴산은 내륙 중 내륙이다. 한반도 어느 끝에서나 가장 바다와 멀다. 아프리카 대륙 모양을 좌우로 뒤집어 놓은 모양의 충청북도 중에서 나이지리아, 카메룬 정도 위치에 괴산이 버티고 있다. 하지만 예로부터 많은 이들이 산길을 걸어 내륙 괴산을 지났다. 


그래서 괴산은 육로가 발달했다. 문경에서 새도 쉬어가며 넘는다는 새재(조령)를 넘어 괴산에 닿아야 한양에 갈 수 있었다. 길은 또 하나의 주요 고갯길인 이화령(548m)과도 이어진다. 경북 문경읍에서 괴산 연풍으로 넘어간다. 이화령에 내린 비는 서(西)로 흘러 한강이 되고 동(東)으로 흐르면 낙동강이 된다고 한다. 예전엔 산도적과 산짐승이 많은 탓에 여러 명이 함께 넘었던 길. 지금은 인기 높은 산행 코스와 자전거 코스 덕에 여전히 여러 사람이 함께 넘고 있다. 

 

●여의도보다 ‘은행’이 많은 곳 


가을 역시 이화령 길을 타고 넘는다. 문광지(양곡저수지)를 노랗게 물들이고 화양구곡을 붉게 적신 후, 길을 따라 문경으로 내려갈 것이다. 가을 비단길이 괴산에 펼쳐졌다. 괴산의 단풍은 붉고 또 노랗다. 문광지는 호숫가에 늘어선 은행나무로 유명하다. 아름드리 은행나무 300여 그루가 둘렀다. 어쩌면 여의도보다 ‘은행’이 많은 곳이다. 

모든 바다와 가장 먼 땅이지만, 대신 우람한 산세를 뽐내는 괴산
모든 바다와 가장 먼 땅이지만, 대신 우람한 산세를 뽐내는 괴산

시월은 은행의 절정이다. 노랗고 노란, 샛노란 이파리를 휘날린다. 하늘을 가린 은행 터널길이 저수지를 기역(ㄱ)자로 꺾으며 얼싸안는다. 물 한가운데로 부교를 띄우면 이곳을 찾은 관광객들은 스스로 모델이 되고 또 사진가가 되어 서로 찍고 찍히며 추억에 이번 가을을 새긴다. 새벽이라면 더욱 좋다. 스멀스멀 물안개가 피어오를지도 모른다. 황금색 가을이 안개에 번지며 몽환적인 풍경을 펼친다. 뜬금없지만 신기한 것이 하나 있다. 이 내륙 중 내륙 괴산 땅에 소금문화관이 있다는 것이다. 문광지 입구에서 왼쪽으로 더 들어가면 염전 체험을 할 수 있는 ‘소금문화관’이 나온다. 괴산 명물 중 하나가 절임배추인데, 엄청난 양의 배추를 절이기 위해 소금을 많이 사다 놓다 보니 이를 활용해 내륙에서 바다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을 지은 것이다. 주변이 죄다 충북, 전북, 경북의 내륙 산간지대인데 이 주변 어린이들이 염전 체험을 하러 멀리 서해안까지 가는 수고 없이 여기서 즐기고 배워 볼 수 있다. 

산막이 옛길은 청량한 가을 공기를 마시며 즐기기 좋은 트레일 코스다
산막이 옛길은 청량한 가을 공기를 마시며 즐기기 좋은 트레일 코스다

산막이옛길을 걸으면 눈부신 단풍을 눈에 주워 담을 수 있다. 어찌나 붉은지 망막이 죄다 물들 지경이다. 이름도 근사한 산막이옛길은 칠성면 사오랑마을과 산막이마을을 연결하던 십릿길이다. 길옆에 큰 산이 가로막아 붙은 이름이다. 산책로는 나무 데크를 깔아 놓아 별 어려움 없이 다녀올 수 있다. 건너 군자산과 괴산호가 있어 가을 단풍이 좋기로 유명하다. 전국 곳곳에 걷기 좋은 길은 많은데 대부분 짧은 코스는 폐곡선이 아니라 출발지로 다시 돌아와야 한다. 산막이옛길은 데크길로 걸어갔다가 돌아올 때 배를 타고 오거나 등산로로 돌아올 수 있어 심심하지 않다.

화양구곡은 중국 고사에 등장하는 ‘이상향’이다
화양구곡은 중국 고사에 등장하는 ‘이상향’이다

●병풍에서 봤던 그 그림 


사실 괴산의 명승 중에는 화양구곡(華陽九曲)이 가장 유명하다. 병풍에서나 봤을 만한 그림같은 계곡이다. 경천벽, 금사담, 첨성대, 능운대, 와룡암, 학소대, 파천 등 저마다 의미 있는 이름이 붙은 절경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어른 열댓이 올라서도 넉넉한 너럭바위 위로 명경 같은 물이 흐르고 그 위에 붉은 단풍 이파리가 떠 있다. 파천까지 걷는 동안 ‘색의 파노라마’가 주변에 펼쳐진다. 

만산홍엽이 드는 가을에 더욱 이름 드높은 화양구곡
만산홍엽이 드는 가을에 더욱 이름 드높은 화양구곡

화양구곡 하면 우암 송시열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참 남긴 것도 많고 뒷말도 많은 인물이다. 팔십을 넘어 살며 후학을 양성한 성리학자이자 노론의 거두였다. 줄곧 명(明)을 추종한 사대주의 대표 아이콘으로도 그 족적을 남겼다. 역사지리인문학서 <땅의 역사(박종인 저)>에 따르면 우암은 주자(朱子)에서 시작하고 주자로 끝나는 주자 절대주의자였다. 화양구곡의 이름도 그렇게 생겼다. 우암은 주자의 ‘무이구곡(武夷九曲)’을 본떠 이곳 계곡에 이름을 붙였다. ‘화양(華陽)’이라는 이름만 봐도 그가 얼마나 중국(송과 명)을 추앙했는지 알 수 있다. 아무튼, 우암은 이 아름다운 계곡을 찾아내 화양서원을 지었고 죽어선 유언으로 만동묘를 세웠다. 

우암의 흔적이 남은 만동묘. 사실은 우리 왕이 아닌 명 황제를 위한 곳이다
우암의 흔적이 남은 만동묘. 사실은 우리 왕이 아닌 명 황제를 위한 곳이다

서원이야 그렇다 쳐도 만동묘가 재미있다. 조선의 정치인인 우암이 명나라 신종과 숭정제의 위패를 모시기 위해 머나먼 한반도 내륙 깊숙한 곳에 명당을 골라 지은 곳이다. 그것도 사약을 받고 죽기 직전이다. 만동묘를 오르는 계단은 좁고 높다. 누구나 옆걸음으로 고개를 숙여 걸음을 살피며 올라가도록 고안했다. 숙이고 숙여 오를 수밖에 없는 그 신기한 계단 위에는 명나라 황제의 위패가 있다.


괴산에는 화양구곡 말고도 많은 ‘구곡’이 있다. 선유구곡, 쌍곡구곡, 갈은구곡, 연하구곡, 풍계구곡, 고산구곡 등 7개다. 63개의 곡(曲)이 있는데 현대에 들어서도 서너 개씩 생겨나고 있다는 게 놀랍다. 지금은 3곳의 구곡(27개)이 더해져 무려 90개에 이를 지경이다. 구곡은 그저 지형을 뜻하는 게 아니라 유학자들의 ‘이상향’으로 세인의 머릿속에 각인되어 내려오는 것이기에 더욱 의미 있다. 곳곳에 숨어들 이상향이 많은 괴산은 가을이 깊어 가면 갈수록 더욱 선명한 빛을 발하는 호숫가 은행잎, 계곡 단풍으로 자신만의 빛을 발하는 중이다.  


▶PLUS+
괴산 가 볼 만한 곳 

한지체험박물관 

괴산 한지체험박물관은 좀 특별한 스토리를 지녔다. 신풍마을은 주변에 한지의 재료가 되는 참닥나무가 많았고 과거를 보러 조령을 넘던 선비들이 종이를 많이 필요로 했기 때문에 한지를 만들던 제지소가 많았다. 게다가 물이 좋다. 예로부터 한지장은 물을 찾아다닌다는 말이 있는데 맑은 물이 솟고 원풍천이 흐르는 신풍마을이 딱이었다. 단원 김홍도가 화원 신분으로는 처음으로 연풍현감을 맡아 이곳에 내려와 많은 작품을 남겼다는데 아마도 이곳 종이가 없었다면 그처럼 많은 작품을 생산하기란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곳에 대대로 최씨와 안씨 등 한지장의 양대 가문이 내려왔는데 현재 안치용 한지장(충북도 무형문화재 17호)이 홀로 남아 가업을 잇고 있다. 안 한지장이 관장으로 있는 한지체험박물관은 옛 신풍분교 자리에 지상 1층 면적 1,326㎡ 규모다. 한지의 기원에서부터 현재까지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고, 한지 예술작품이나 한지 생활용품 전시도 볼 만하다. 전통 한지의 제조과정과 한지 소원등 만들기, 자연염색체험 등 체험 거리도 많다.

 

▶괴산 맛집 

올갱이국밥
올갱이국밥

올갱이 국밥
괴산 하면 올갱이(다슬기)다. 40년 넘게 영업 중인 ‘주차장식당’이 올갱이국밥으로 유명하다. 밀가루에 굴려 쓴맛을 없앤 올갱이를 시원한 얼갈이나 우거지와 함께 끓인다.

목도민물매운탕
목도민물매운탕

버섯과 매운탕
능이버섯 등 다양한 버섯을 넣은 전골이 맛있는 읍내 별미식당과 메기 쏘가리 빠가사리 등 민물 매운탕을 잘하는 감물면 목도민물매운탕 식당이 유명하다. 버섯전골은 슴슴하고 시원하다. 메기매운탕은 투실한 메기를 넣고 얼큰하게 끓여 내는데 역시 채소를 많이 넣어 시원하고 칼칼한 국물 맛이 일품이다. 곁들인 반찬도 좋다.


괴산 한우
괴산한우타운은 한우를 사다가 상차림 비를 내고 구워 먹는 곳인데 고기 질이 좋고 상차림도 썩 괜찮다. 최상급 한우 쇠고기를 실컷 먹으려면 역시 비용이 많이 들 터이니 소머리곰탕을 먼저 먹으면 든든하고 맛도 좋다. 8,000원에 그만한 국물과 건더기를 주는 곳도 드물다. 

 

*이우석의 놀고먹기 
‘저세상’ 유머 코드와 황당한 상황극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이우석 소장은 지난 연말 오랜 신문사 기자 생활을 마치고 ‘이우석놀고먹기연구소’를 열었다. 신나게 연구 중이다. 

 

글·사진 이우석 소장(놀고먹기연구소)   에디터 천소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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