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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불구불 걷다 알았네, 군산 청암산 에코라운드

전북생태관광 | 군산

  • Editor. 천소현 기자
  • 입력 2020.11.02 09: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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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몰의 상처를 딛고 건강한 생태자원으로 돌아온 군산 호수
수몰의 상처를 딛고 건강한 생태자원으로 돌아온 군산 호수

구불구불 자라는 왕버드나무처럼, 군산 호수의 지난 운명도 평탄치 않았다. 45년의 봉인을 풀고 시민의 품으로 돌아온 원시림과 습지를 살피기 위해 오늘도 구불길에 동행하는 이들이 있다.  

군산 호수 에코라운드 
군산 호수와 청암산에는 총 18개의 습지군락과 산림군락이 있다. 수변로(13.8km), 청암산 등산로(8km), 구불4길(7.18km) 등 트레킹 코스가 잘 조성되어 있다. 총 486종의 습지 식생 및 야생 동물이 서식하는 지역이니, 상세하게 설명해 줄 에코 매니저와 함께 걸으면 더 풍요롭다. 
주소: 전라북도 군산시 옥산면 옥산리 일대 
전화: 063 454 4252(군산시청 환경정책과)

에코 매니저분들의 지식이 호수처럼 넓다
에코 매니저분들의 지식이 호수처럼 넓다
낮에 핀 달맞이꽃
낮에 핀 달맞이꽃
둑방길에 핀 인동덩굴
둑방길에 핀 인동덩굴

●시민에게 돌아온 군산 호수


불합격입니다! 노련한 에코 매니저 세 분의 심사 결과, 샌들은(아무리 등산용이라도) 탈락이라는 것이다. ‘군산 호수’만 생각했지 ‘청암산’의 존재를 미처 생각 못 한 불찰이었다. 엄격한 심사 결과를 내놓은 이들은 군산 호수가 걸쳐 있는 9개 마을에서 선발된 에코 매니저다.

 

챙 넓은 모자, 등산화, 긴 바지, 주머니 많은 조끼를 갖춰 입은 전문가들을 따라 청암산 에코라운딩에 나섰다. 라운딩이라고 해도, 생태여행의 목적은 ‘한 바퀴 완성’에 있지 않다. 억새풀길을 지나 유실수원, 삼림욕장, 수변생태관찰장, 죽향길, 죽림원을 거쳐 왕버드나무 군락지에서 다시 회귀하는 구불4길(구슬뫼)의 일부 구간을 걷기로 했다. 

군산 호수는 45년 동안 출입이 금지된 곳이었다
군산 호수는 45년 동안 출입이 금지된 곳이었다
구불구불 뻗어 나간 왕버드나무 군락지
구불구불 뻗어 나간 왕버드나무 군락지

출발점은 둑방길, 시간은 80여 년 전이다. 500여 미터 제방만 쌓으면 저수지가 될 천혜의 지형을 파악한 일본은 1939년 일대의 마을을 걷어 내고 저수지를 조성했다. 쌀 수확을 증식시켜 일본으로 가져간 식민지 수탈 정책이었다.

“방학 때 집에 오면 친구들하고 무조건 숲으로 가는 거야. 한창 배가 고플 때니까 마름, 산딸기 등 있는 대로 따 먹고, 구워 먹고, 호수에서 수영도 하고. 그게 그냥 방학의 일상이었지 뭐.” 1960년대까지 호숫가에 남아 있던 마지막 집에 누나와 매형이 살았었다는 임승룡 에코 매니저의 증언이다.

 

이후 1963년부터 저수지는 상수원 보호구역으로 출입이 통제되었고, 45년이 지난 2008년이 되어서야 봉인이 해제되었다. 저수지와 숲은 원시림 생태계를 품은 채 시민에게 돌아왔고, 지금은 군산 호수로 불린다. 그 사이 방문객이 많이 늘어 오히려 몸살을 앓고 있다니, 내년에 생태체험센터가 건립되고 나면 더 체계적인 관리가 가능하지 않을까.

지금은 시민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산책 공간이다
지금은 시민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산책 공간이다
쭉쭉 뻗은 대나무숲 구간
쭉쭉 뻗은 대나무숲 구간

●우리네 삶처럼 구불구불


탐방길은 물과 멀어졌다 가까워졌다를 반복했다. 꽃의 달인 이근자 에코 매니저의 손이 바빠질 때마다 뭔가 신기한 일이 벌어졌는데, 이번에는 그녀의 손에 확대경이 들렸다. 땅바닥에서 아직 여물지 않은 도토리 몇 개가 매달린 가지를 집어 들더니 말했다. “비바람에 떨어진 것일 수도 있지만, 도토리거위벌레가 알을 낳고 일부러 떨어뜨린 것일 수도 있어요. 한번 볼까요?” 과연 깍정이 위에 작은 구멍이 하나 있었고, 쪼개어 확대경으로 보니 아주 작은 애벌레가 웅크리고 있다. ‘와’ 하는 경탄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수많은 ‘와’의 순간들이 있었지만 아쉬운 점을 하나 들라면, 군산 호수의 깃대종인 가시연을 보지 못한 것. 올해는 아예 서식지에서 관찰되지 않았다고 했다. 유난히 길었던 장마 때문이 아닐까, 추측할 뿐이라고. 

도토리거위벌레를 찾는 중이다
도토리거위벌레를 찾는 중이다
귀에 걸면 귀고리가 되는 때죽나무 열매
귀에 걸면 귀고리가 되는 때죽나무 열매

반환점인 왕버드나무 군락지에 도착했다. “왕버드나무가 있다는 건 근처에 마을이 있었다는 거예요. 사람들이 버드나무를 많이 심었거든.” 듣고 보니 주변 터가 넓고 평평했다. 왜 왕버드나무를 심었냐고 묻자 멋진 답이 돌아왔다. “버드나무는 구불구불 자라면서도 물을 향해 한 방향으로 가거든요. 마치 우리네 삶 같죠.” 

죽동마을 생태학습장의 끝은 다시 군산 호수와 만난다.
죽동마을 생태학습장의 끝은 다시 군산 호수와 만난다.

●언택트 생태여행의 모범


이번엔 대숲 이야기다. 군산 호수가 만들어지기 전, 1930~40년대 대나무는 인근 주민들에게 아주 짭짤한 부 수입원이었다. 만경강 하구에서 밀물과 썰물의 차이를 이용한 개매기로 고기를 잡던 어부들이 이곳에서 대나무를 구해 갔기 때문. 대나무를 가득 실은 달구지가 줄지어 넘어갔다는 고개가 군산 호수 남쪽, 회현면 죽동마을이 위치한 사오갯길이다. 저수지가 생기면서 대부분의 길과 마을은 수몰되고, 대나무가 많아 댓골이라고 불렸던 죽동마을이 남아 있다. 마을에서 청암산 정상까지는 불과 1.4km. 대나무 수레 행렬은 사라졌지만, 청암산을 오르는 등산객들의 발길은 꾸준하다. 

다양한 수생 식물을 심어 놓은 연지와 시냇물
다양한 수생 식물을 심어 놓은 연지와 시냇물
나뭇잎으로 만든 왕관이 화려하다
나뭇잎으로 만든 왕관이 화려하다

죽동마을과 군산 호수 사이 습지에는 생태학습장이 생겼다. 만추의 부들은 손끝만 대도 터져 버릴 듯 부풀어 오른 상태. 장난기가 터져 버린 ‘어른이’들의 횡포에 수만개 부들 포자가 연못 위로 풀풀 날리자, 개구리들이 툭 뛰어올라 물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옆에서 끌끌 혀를 차면서도 웃고 있는 얼굴을 청설모에게 들켜 뜨끔했다.

생태학습장의 데크길을 따라 끝까지 걸으니 다시 군산 호수가 펼쳐졌다. 시들어 가는 마름과 어리연이 아쉬운 듯 왕버드나무는 내내 물만 내려다 바라보고 있다. 너무 고요해서 처음엔 눈치 채지 못했는데, 흰뺨검둥오리 세 마리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조용히 연못을 유람 중이었다. 참으로 모범적인 언택트 생태여행이 아닌가. 


▶AFTER TOUR
군산 청암산 에코라운드 


전라북도에서 육성 중인 14개 시도 생태관광지를 여행하며 나누는 뒷이야기.  

Q 천소현 <트래비> 부편집장  A 박종석 센터장(전북생태관광육성지원센터)

나무가지인 척하는 고추잠자리
나무가지인 척하는 고추잠자리

Q 군산=산업도시의 이미지가 워낙 강해서, 청암산 에코라운드는 상상하지 못했던 군산의 모습이었다. 그래도 군산 여행자들이 생태여행을 우선적으로 선택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실제로 에코라운드의 타깃 대상은 타지가 아니라 군산 시민들인가? 


그렇다. 전북 생태관광지로서 군산의 육성모델은 2가지로 압축된다. 첫째는 현재형으로서 도심형(Urban) 생태관광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외부의 방문객들보다 군산 시민들이 자주 가까이에서 생태관광지를 찾아오는 시민형 모델을 의미한다. 참고로 둘째는 미래형으로 근대문화와 서해 고군산군도의 해양생태관광을 연결하는 지점에서 서해라인으로 확장되는 모델을 의미한다. 

생태학습장의 2층 원두막
생태학습장의 2층 원두막
손끝만 닿아도 터져버리는 부들
손끝만 닿아도 터져버리는 부들

Q 45년간 출입이 통제되어 생태계가 잘 보존되었던 군산 호수에 지금은 방문객이 너무 많아 고민이라고 들었다. 생태관광에서는 오버투어리즘을 어떻게 예방하는가? 


도심형 생태관광의 모델이 갖는 경계지점이 ‘수용력’이다. 이는 생태관광지라는 공간에 놓인 핵심 자원을 보존하고 그 주변의 환경적 품위를 지켜 내면서 관광객의 하루, 월간, 년간 수용의 범위를 유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 군산 생태관광지는 많은 시민들의 접근으로 인해 수용력의 범위를 산정해야 하는 입장에 놓여 있다.

 

Q 군산 호수의 깃대종인 가시연이 잘 관찰되지 않는다더라. 기후 변화와 자연재해 등으로 깃대종을 보존하는 일이 쉽지 않을 것 같다. 깃대종 선정과 관리는 어떻게 이루어지나? 


전북 생태관광지는 시군별 핵심자원이나 개체군 등을 ‘생태상징물’ 혹은 ‘깃대종’(대표종)으로 선정해 관리하고 있다. 이때 시군의 깃대종은 생태적 상징성과 일상성이라는 측면에서 선정되는데, 군산의 경우 기존의 ‘가시연’이 상징성은 있으나 일상에서 자주 볼 수 없다는 단점이 있기에 자주 보며 관찰 및 체험을 할 수 있는 ‘왕버드나무’ 군락지로 변경하려는 것이다. 선정된 깃대종의 관리는 해당 시군과 마을, 에코 매니저들의 모니터링으로 진행되고 있다. 

아기자기하게 조성된 회현면 생태공원
아기자기하게 조성된 회현면 생태공원

Q 생태관광자원인 군산 호수와 청암산이 여러 마을에 걸쳐 있어서 복잡할 것 같다. 생태관광도 결국 수익을 창출하는 관광산업이라 수익 배분에 대한 고민이 따를 것 같다. 


생태관광이 수익 창출의 관광산업이라는 프레임을 갖추는 측면에서 재무적 관점과 비재무적 관점의 편익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관광과 차이점이 있다. 전라북도 생태관광은 ‘협동플랫폼’을 구축하고 있는데, 이는 영리 트랙과 비영리 트랙으로 구분된다. 영리 트랙에서 창출한 수익형 부가가치는 일정한 규정을 통해 공동체 기금으로 순환하는 구조다. 군산의 경우 옥산면과 회현면으로 면(面) 단위에서 분과를 구분하고 있기 때문에 예측 가능한 갈등의 요인은 줄어든 편이다. 보다 단단한 협동의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는지는 좀 더 지켜보아야 한다.  

 

글 천소현 기자  사진 김민수(아볼타) 
취재협조 전라북도생태관광육성지원센터 www.jb-ecotour.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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