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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자완스와 가자미찜 그리고 겨울 민어, 인천에서의 하루

세 남자의 탐식도시

  • Editor. 최갑수
  • 입력 2020.12.01 08:41
  • 수정 2020.12.04 14: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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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한 번 가야지.” 지난해 봄, 박찬일 셰프가 충무로 인현시장의 어느 백반집에서 맥주잔을 내려놓으며 이렇게 말했다. “가야죠. 언제나 그리운 곳, 그곳이 인천 아니겠습니까.” 나는 막걸리 잔을 들며 대답했다. “그러고 보니 인천을 제대로 한 번 먹은 적이 없네요.” 레이먼 김 셰프는 소주잔에 소주를 따랐다.

한적한 인천의 오후
한적한 인천의 오후

●세월은 가고 있으니 
우리는 최선을 다해 먹고 마십시다


10월 말 어느 날, 충무로 인현시장의 백반집 앞. 목덜미 사이로 찬바람이 사정없이 파고들었다. “요즘엔 아침마다 손가락이 쑤셔요. 글을 그만 써야 할까 봅니다.” 내가 검지의 두번째 마디를 주무르며 말했다. “난 밥보다 약을 많이 먹는다.” 박찬일 셰프가 말했다. 레이먼 김 셰프가 대답했다. “저도 오래 걸으면 무릎이 아파요.” 오래 걸으면 누구나 무릎이 아프단다. 


하루하루 늙어 가고 있다는 사실이 하루하루 실감 난다. 아침마다 손가락 마디가 뻐근하다. 할 수 있다면 ‘구리스’라도 치고 싶다. 날이 흐리면 무릎이 쑤신다. 워드의 폰트 크기가 ‘12’다(기본값이 10). “아직 13인데 곧 14로 크게 봐야 할까 봐.” 5살 위인 어느 ‘글로노동자(작가)’ 선배가 한숨을 쉬며 말했던 적이 있다. 주량도 나날이 줄어든다. 휑한 을지로 거리를 걸으며 박찬일 셰프가 말했다. “이게 다 술 때문이야. 눈이 침침한 것도, 몸의 마디마디가 쑤시는 것도, 술이 줄어드는 것도 다 술 때문이야.” 레이먼 김 셰프가 말했다. “이젠 옛날처럼 밤새워 마시지 못하겠어요.” 내가 말했다. “너 어제 소주 3병 마셨다면서?” 


11월 어느 날, 박찬일 셰프의 페이스북 포스팅은 이랬다. “삼치회 먹을 철인데, 전 얼린 것보다 녹진하게 그냥 먹는 걸 좋아합니다. 매운 양념을 얹어 김으로 싸지요. 큰 삼치를 업자들은 ‘빠따’라고 부릅니다. 1kg당 만원이 넘어갑니다. 한 마리 잡아서 막걸리와 먹고 싶습니다. 올해 예순인 양반이라면, 삼치 철이 대략 스무 번쯤 남았겠네요.” 그 포스팅을 읽으며 나는 몇 번이나 녹진한 삼치회를 먹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조금은 시무룩해졌다. ‘맛있는 음식이 있으니 먹읍시다. 세월은 가고 있으니 우리는 최선을 다해 먹고 마십시다’라고 댓글을 달려다가 주책인 거 같아서 그만두었다. 대신 어느 철학자의 우아한 문장을 적었다. “사랑도 애인도 언젠간 떠난다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지금 애인과의 근사한 키스에 더 몰입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이 말은 해석하자면 다음과 같다. 언젠가 이도 빠지고 혀의 미각도 옅어질 것이니, 지금 우리는 맛있는 음식과의 근사한 키스에 더 몰입해야 하지 않을까. 여행을 떠날 이유가 떠나지 않을 이유보다 많듯, 맛있는 음식을 먹어야 할 이유도 먹지 않아야 할 이유보다 더 많지 않을까.


그리고 다시 11월 어느 날, 1호선 인천역 앞에서 우리는 만났다. 휘황한 햇살에 눈이 부셨다(사실은 눈이 시렸다). 역사를 빠져나오자 전철이 멀어져 가는 소리가 들렸다. 덜컹덜컹. 바람이 낙엽을 휘휘 쓸고 다녔다. “인천에 왔으니 차이나타운부터 가야겠죠. 짜장면 한 그릇 후루룩.” 레이먼 김 셰프의 눈이 반짝였다. 그러자 박찬일 셰프 왈, “인천까지 와서 촌스럽게 차이나타운이라니. 송월동부터 가자.” 저야 뭐 이끄시는 대로 따르겠습니다.

인천의 근대 문화거리. 옛 적산가옥을 새단장해 꾸몄다. 전시관과 카페, 식당, 공방 등이 들어서 있다
인천의 근대 문화거리. 옛 적산가옥을 새단장해 꾸몄다. 전시관과 카페, 식당, 공방 등이 들어서 있다

●낡은 것이 아니라 깊어진 것


참 많이 낡아 있었다. 길옆으로 보이는 건물들을 바라보며 받은 느낌이다. 빈 건물이 많아 보였다. 유리창은 깨져 있었고 건물 밖으로 폐자재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먼지 묻고 퇴색된 간판들. “한때는 여기가 인천에서 가장 번화한 곳이었는데….” 박찬일 셰프가 혀를 끌끌 차며 말을 흐렸다. “마치 우리 모습 같아요.” 레이먼 김 셰프가 말했다. “왜 이래, 레이먼. 넌 지금 전성기잖아. 그리고 난 아직 전성기가 오지 않았거든. 지금 한창 뜨는 상권이지.” 내가 말했다. “징징대는 건 막내의 특권 아니겠습니까.” 흠, 마흔다섯의 막내라, 좀 징그럽지만 막내는 막내지.  

혜빈장 입구
혜빈장 입구

처음 찾은 곳은 ‘혜빈장’. 붉은 간판은 세월에 마모되어 분홍색으로 변해 있었다. “여기도 낡았네요.” 내가 말했다. 혜빈장은 제물량로 고가도로 한편에 자리한다. “60년 동안 문을 연 집이다.” 박찬일 셰프가 간판을 가리켰다. 우리는 문을 열고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드르륵. 어서 오세요. 4인용 자줏빛 테이블이 5개 있고 한쪽에 원형 식탁이 있었다. 식당 안에는 점심시간인지 짜장면과 짬뽕, 볶음밥을 먹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야, 바닥이 ‘도끼다시’다.” 박찬일 셰프가 바닥을 바라보았다. 요즘 보기 힘든 바닥이다. “도끼? 뭐요?” 레이먼 셰프가 물었다. “신세대들은 모르지.” 내가 바닥을 발끝으로 톡톡 건들며 말했다(아, 신세대라니. 순간 우리는 늙었다는 생각이 든다). 옛날 학교 계단과 복도, 사무실과 식당 바닥에 많이 시공됐는데 돌가루와 시멘트를 혼합해 바닥을 다지는 방식이다. 요즘은 ‘현장인조석 물갈기’라고 부른다고 한다.


“형님들, 뭘 시킬까요?” 자리에 앉자마자 첫 물음은 언제나 레이먼 셰프의 역할. “간짜장, 짬뽕, 볶음밥, 난자완스 각 하나씩.” 박찬일 셰프의 거침없는 주문. 나는 언제나 그렇듯이 조용히 젓가락과 물 잔을 각자의 앞으로 대령한다. 주문 후 식사가 나오기 전까지는 식당 내부를 염탐하는 시간. 눈알을 굴렸다. 테이블이며 의자 등 집기가 상당히 청결하게 관리되어 있었다. 바닥도 깨끗했다. 흠, 이런 집은 대개 주방도 말끔하기 마련이지. 한쪽 벽에 놓인 오래된 의자 위에는 커다란 양은주전자가 올려져 있었다. 아마도 보리차가 담겨 있겠지. 문이 약간 열린 주방 안으로는 흰머리 지긋한 어르신이 웍을 들고 열심히 요리를 만들고 있다. 오랜만에 제대로 된 ‘불맛’을 보겠군. 레이먼 셰프가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냈다. 짬뽕이 기대되는군요. 테이블 위에는 간장, 식초, 고춧가루, 후추가 얌전하게 올려진 양은쟁반이 놓여 있었다. 


자, 이제 메뉴를 훑어볼 시간. 벽에 붙은 차림표를 보니 짜장, 우동, 짬뽕, 울면, 간짜장, 군만두, 볶음밥, 짜장밥, 잡채밥 등의 ‘식사부’와 깐풍기, 라조육, 탕수육, 류산슬, 팔보채, 고추잡채 등의 요리부가 있다. “여기 우동도 있구나. 우동도 한 번 먹어 보자.” 박찬일 셰프가 제안했다. “넵, 여기 우동도 하나 추가해 주세요.” 레이먼 김 셰프가 잽싸게 주문을 넣는다. “세 분이서 난자완스까지 5개를 시켰는데 좀 많지 않을까요?” 종업원이 물었다. 아닙니다. 적당합니다.


언제부턴가 중국집에서 우동이 사라졌다. 울면과 기스면도 마찬가지. “매운 짬뽕이 모든 면을 ‘킬’시켜 버렸어. 갑오징어와 시금치, 당근과 양파가 푸짐하게 들어가 있던 중국집 우동이 요즘 중국집에는 없어.” 박찬일 셰프가 말했다. “그러게요. 참기름 향이 그윽하게 올라오던 우동…, 옛날엔 많이 먹었는데 말이죠.” 레이먼 김 셰프가 답했다. “어릴 적 어머니랑 중국집 가면 전 짜장면을 시키고 어머닌 꼭 우동을 시키셨어요. 그러고는 면을 제 짜장면 그릇에 덜어 주셨어요.” 내가 말했다. “어머니가 짬뽕 좋아하셨는데, 너한테 면 덜어 주려고 일부러 우동 시키신 거야 인마.” 박찬일 셰프가 말했다. 어머니는 짬뽕을 싫어하셨어. 

혜빈장의 간짜장과 짬봉과 난자완스. 아직도 변하지 않는 맛이다
혜빈장의 간짜장과 짬봉과 난자완스. 아직도 변하지 않는 맛이다

‘단양춘(단무지, 양파, 춘장)’이 깔리고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간짜장 위에는 커다란 계란 프라이가 용감하게 올라가 있었다. “약간 오버쿡 된 거 같….” 레이먼 김 셰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박찬일 셰프가 이빨로 면을 끊듯 말을 잘랐다. “그래도 올라 있는 게 어디냐. 정중하게 먹어라.” “제가 잘 비벼 보겠습니다.” 나는 나무젓가락을 쪼갰다. 어쨌든 간짜장 위에 올라가 있는 계란 프라이만 보면 기분이 좋다. 


박찬일 셰프의 말에 따르면, 간짜장에 올라가는 계란 프라이는 나름 요리다. “이걸 서양에선 ‘크리스피 에그(crispy egg)’라고 하거든. 팬에 기름을 두르고, 여기에 숟가락으로 기름을 끼얹어가며 익혀야 만들 수 있거든. 달걀이 퍼지지 않게 팬을 기술적으로 돌려야 하는 거야.” “자글자글 튀기듯 요리하는 게 중요하죠.” 레이먼 김 셰프의 추가 설명. 이런 말 할때는 영락없는 셰프다.


간짜장은 짜지도 싱겁지도 않고 달지도 안 달지도 않은 맛이었다. 소스 역시 진하지도 묽지도 않았다. 채소는 살짝 볶아져 아삭했다. 큼지막한 고기완자가 가득 올려져 있는 난자완스는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러웠다. 맛은 시거나 달지 않고 조금 심심한 편이었는데 고기 속까지 잘 익어 있었다. 간장에 찍어 먹으면 적당한 맛이었다. “다음에 또 먹고 싶어 할 만한 맛이다.” 박찬일, 레이먼 김 셰프가 내린 결론이다. 물론 나는 다 맛있었고. 우동이 나왔다. 국물은 보기에도 청량했다. 노란색 면이 담겨 있었고 새우와 오징어, 바지락 등 해물이 풍성했다. 건더기 위를 계란이 얇게 덮고 있었다. “보기 좋네요.” 레이먼 김 셰프가 말했다. “국물엔 과학(조미료)이 적은 거 같아. 조금 심심하다는 사람이 있겠다.” 박찬일 셰프가 말했다. 볶음밥에는 당연히(!) 계란국이 따라 나왔다. 하얀 국물 속에 노란 계란이 실구름처럼 풀어져 있었다. 


우리는 간짜장과 우동과 난자완스에 소주를 마셨고, ‘소주+맥주’도 마셨다. 간짜장을 다 먹었고 우동을 다 먹었고 난자완스도 다 먹었다. 많은 게 아니라니까요. 11월의 어느 배부른 오후 2시. 혜빈장에는 손님들이 계속 들어왔고 주인은 주방에서 고집스럽게 웍을 들었다. 손님들은 요리가 나올 때까지 묵묵히 기다렸다. 계산대에는 주판이 있었다. 문을 열고 나오며 이런 집이 오래오래 남아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어떤 것들은 낡아 가는 것이 아니라 깊어 가는 것이다. 

 

혜빈장
주소: 인천 중구 참외전로13번길 21
영업시간: 매일 11:00~19:30(월요일 휴무)
전화: 032 772 1928
가격: 짜장 5,000원, 짬뽕 6,000원, 우동 6,000원

배다리골 헌책방 거리의 아벨서점
배다리골 헌책방 거리의 아벨서점

●오늘은 뭐가 좋은가요?


밥을 먹고 우리는 배다리까지 걸었다. 박찬일 셰프가 긴 다리를 이용해 성큼성큼 앞장서 걸었고, 배부른 우리는 오리처럼 뒤뚱뒤뚱 뒤따랐다. 배다리에 다다라 우리는 잠깐 ‘개코 막걸리’라는 술집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아쉽게도 문은 닫혀 있었다. 개코 막걸리는 선술집이다. 1987년 문을 열었다. “인천역 건너편 밴댕이 골목에 ‘수원집’이라고 있거든, 거기서 일단 밴댕이회를 안주로 한잔 걸치고 여기 와서 막걸리 한잔 더 하는 거야. 오기 전에 헌책방을 돌아다니자.” “책방이요? 식당이 아니라 책방?” 레이먼 김 셰프의 눈이 동그래졌다. “응. 책방.” 박찬일 셰프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저희들은 매일 먹기만 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박찬일 셰프는 ‘글 쓰는 요리사’라고 불린답니다(우리는 ‘요리하는 글쟁이’라고 부르고 싶지만). 레이먼 김 셰프는 언제나 손에 책을 들고 다닙니다(읽고 있는 시간보다 들고 있는 시간이 많긴 하지만). 최갑수는 시인입니다(믿지 않으시겠지만 사실입니다. 시집도 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쓰지 않습니다. 왜냐고 물으시면 ‘단가’가 안 맞아서라고 말합니다). 개코 막걸리는 문을 닫았다. 박찬일 셰프가 개코 막걸리에 오기 전, 인천역에 내리자마자 달려갔다는 ‘수원집’도 문을 닫았다. 세월이 그만큼 흘렀으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박대구이와 가오리찜이 맛있었는데….” 박찬일 셰프가 입맛을 다셨다. 


모든 것은 결국 사라지기 마련이다. 그걸 알면서도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는 언젠가 먹었던 박대구이와 가오리찜의 맛 같은 것이 기억 속에 희미하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정확하고 자세하게 설명하진 못하겠지만, 그런 것들이 아니라면 무엇이 우리 인생을 굴러가게 한다는 말인가.

인천 문화예술인들의 사랑방이었던 신포주점
인천 문화예술인들의 사랑방이었던 신포주점

배다리에서 나와 우리는 개항로를 지나 신포시장에 자리한 ‘신포주점’이라는 곳으로 찾아들었다. 대략 오후 4시쯤 되었을까. 술 마시기 딱 좋을 시간이었다. 신포주점이 있는 지역은 술집이 많이 모여 있는 곳이다. 인천은 우리나라에서 개항이 가장 먼저 이루어진 도시다. 인천역 주변의 신포시장과 배다리 쪽으로 새로운 문물이 들어왔고 새로운 사람들이 밀려들었다. 일제강점기에도 크게 발달해 이 땅에서 가장 번성한 항구도시가 됐다. “중앙동, 신포동이 인천 최고 중심지였지. 지금이야 구시가로 밀려나 버렸지만.” 이어지는 박찬일 셰프의 설명.

 

해방 후에도 인천은 수도권으로 통하는 중요한 항구였다. 공장들이 생겨나 공업지대가 만들어졌고 부두는 언제나 하역 노동자들로 붐볐다. 고단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가장 큰 낙은 한 잔 술이었다. 자연스럽게 저렴한 술집 거리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는데 밴댕이 골목도 그중 하나다. 가난한 예술가들도 이곳으로 몰려들었다. 신포동 일대의 수원집과 다복집, 항아리집, 대전집, 신포주점 등이 터줏대감이었다. 이곳들은 가장 만만한 안줏감인 밴댕이를 뼈째 썰어서 냈고 스지를 탕으로 끓여 냈다. 술꾼들은 초장에 찍은 밴댕이를 씹으며 술을 마셨고 스지탕으로 해장을 했다.

신포주점에서 맛본 바지락찌개와 간재미찜. 주인은 바뀌었지만 맛은 그대로다
신포주점에서 맛본 바지락찌개와 간재미찜. 주인은 바뀌었지만 맛은 그대로다

신포주점은 1968년 김영숙씨가 개업했다. 지금도 개업 당시의 주점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주인은 바뀌었는데 단골손님이 가게를 인수해 운영하고 있다. “옛날에는 특별한 메뉴가 없었어. 그냥 먹고 싶은 걸 말하면 만들어 주곤 했지.” 이런 곳에서는 오늘 뭐가 좋은지, 맛있는지 물어보는 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옛날 신포주점은 박대구이와 보리새우탕으로 유명했지. 아주머니 오늘은 뭐가 좋은가요?” 박찬일 셰프가 아주머니에게 물었고 아주머니는 간재미찜을 내주었다. 간재미찜은 시큼했고 부드러웠다. 젓가락질이 바빴다. 바지락탕도 시켰다. “와, 진짜 신선하네요.” 내가 말했다. “인천이잖아요.” 레이먼 김 셰프가 말했다. 


그렇구나. 한창영초등학교에서 류현진이 야구를 시작했다. 배다리라는 이름은 배로 만든 다리가 있었다는 데서 유래했다. 배다리 헌책방 골목을 나와서는 용화반점에서 볶음밥 한 그릇 하곤 했다. 한때 동인천에서 땅값이 제일 비싼 곳이었는데 지금은 사려는 사람이나 있을까. 박찬일 셰프는 막걸리로 목을 축여가며 인천에 대해 말했다. 우리는 인천에 대해, 그리고 낡아가는 것들에 대해, 곧 사라질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며 술을 마셨다. 
 

신포주점
주소: 인천 중구 우현로 19-2
영업시간: 매일 14:00~00:00
전화: 010 7745 0663

저녁 무렵의 신포시장
저녁 무렵의 신포시장

●오늘도 덤 같은 하루


신포주점을 나와 찾은 곳은 신포시장 민어골목. 이제 우리에게 민어철이 몇 번이나 남았을까. 민어는 여름 보양식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 굳이 여름에 먹지 않아도 된다. 겨울이라고 민어 먹지 말라는 법 있나, 뭐. ‘덕적식당, 화선횟집, 경남횟집’ 등등이 자리한 신포시장 민어골목 한가운데 선 3명의 남자. “형, 어디로 갈까요?” 박찬일 셰프에게 물었다. “글쎄, 어디가 좋으려나. 나도 아는 곳이 없는데. 일단 방송에 안 나온 곳으로 가 보자. 아니다 싶으면 한 잔만 하고 나오자고. 레이먼아, 니가 골라 봐라. 어디가 좋겠냐?” “신포시장이니까 신포횟집이 어떨까요.” 레이먼 김 셰프가 간판 하나를 가리켰다. “오케이. 여기가 아니다 싶으면 모자를 벗고 눈을 두 번 찡긋해라.” 내가 말하자 레이먼 김 셰프가 대답했다. “형님 그건 너무 옛날 방식이고요. 그냥 문자 넣을게요.” 그래라. 우리는 신포횟집에 앉아 있었고, 큼지막하게 썰린 민어가 담긴 접시가 우리 앞에 놓여 있었다. 맥주와 소주 그리고 막걸리. 우리는 각자의 술을 따라 민어회를 먹었다. 레이먼 김 셰프가 내게 말했다. “형님, 꽤 잘 드시는데요?” “니가 사는 거잖아.”

신포횟집의 민어 한 접시. 목포와 신안에서 가져온 민어를 낸다. 겨울 민어도 맛있다
신포횟집의 민어 한 접시. 목포와 신안에서 가져온 민어를 낸다. 겨울 민어도 맛있다

술을 마시는데 주인 할머니가 “서울에서 여기까지 민어 잡수시러 왔어요?” 하고 물어서 우리는 공손하게 “넵!” 하고 소리 높여 대답했다. 그리고 이렇게 저렇게 이야기를 듣게 됐다. 신포횟집은 딱 30년째 이곳에서 민어를 팔고 있다. 할머니가 남의 가게에 세를 얻어서 하다가 마침내 가게를 사서 3년 전에 수리했다. 스물여덟에 시집을 와서 ‘생선을 배웠다’는 것이 할머니의 설명. 올해 74세. “여기 시장에서 내가 제일 나이가 많아. 처음부터 나라고 생선을 알았겠어. 먹고살려고 하다 보니 병어며 준치, 광어, 농어를 알게 된 거고, 먹고살려고 하다 보니 생선을 딱 보면 50점짜리인지 100점짜리인지 알게 된 거지.” 레이먼 김 셰프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죠. 다 먹고살려고 하다 보면 하나씩 둘씩 알게 되는 거죠.”


밤이 깊었고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어 각자가 타야 할 전철역으로, 버스 정류장으로 헤어졌다. 곧 서리가 내리고 날은 더 추워질 것이다. 그래도 맛있는 것들은 더 맛있어지고 우리는 그 음식들을 두고 모여 앉아 서로의 온기를 확인할 것이다. 한 계절이 지났고 또 한 계절이 어김없이 왔다. 올겨울은 어느 해보다 힘든 계절이 될 것이지만 그래도 맛있는 음식이 있고 그 음식을 함께 나눌 사람이 있으니 견딜 만하지 않을까. 


‘즐거웠어. 모두 고맙다. 너희들 덕분에 오늘도 덤 같은 하루를 얻었다. 그나저나 인천 한 번 더 가야지. 오늘 덜 먹었잖아.’ 지하철에서 박찬일 셰프의 메시지를 받았다.  


신포횟집
주소: 인천 중구 우현로49번길 11-16
영업시간: 평일 12:00~22:00, 일요일 12:00~21:00
전화: 032 765 3088
가격: 민어회(大) 12만원

 

*세 남자의 탐식도시는 3명의 남자가 함께합니다. 최갑수 작가, 레이먼 김 셰프, 박찬일 셰프. 맛을 느끼고, 분석하고, 쓰는 사람들의 여행 이야기입니다. 가끔은 술 냄새가 날지도 모르겠습니다. 도저히 그냥은 못 지나칠 먹거리들이 가득하니까요. 도시의 맛을 탐식하러, 지금 세 남자가 떠납니다.

글·사진 최갑수  에디터 강화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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