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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을 기다린 이과수 폭포에서

이우석의 놀고먹기

  • Editor. 이우석
  • 입력 2020.12.01 08: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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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은 무용담을 많이 떠드는 편인데 오늘은 실패담 하나를 준비했다. 

이과수 폭포를 영접하는 그 순간, 일생일대의 실수를 할 줄은 정말 몰랐다
이과수 폭포를 영접하는 그 순간, 일생일대의 실수를 할 줄은 정말 몰랐다

여행을 하다 보면 가끔 실수를 저지르기도 한다. ‘바람막이’를 준비하라는 조언에 무거운 ‘발 안마기’를 구입해 들고 갈 정도의 어처구니없는 실수는 아니더라도 기억에 남는 바보짓이 있다. 한가득 충전해 놓은 배터리나 카메라 메모리카드, 랩톱 전원케이블 따위야 늘 주인 떠난 빈방에 남아 있다가 인천공항(혹은 도착공항, 때론 호텔)에 들어설 때나 생각나는 물품들이다. 면세점의 가전 코너가 그나마 유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잃어버리도록 고안된 물건과 착각하기 좋은 아이템들은 대부분 여행 현장에서 절실한 것들이 많다. 덕분에 살을 에는 핀란드 겨울에 방한 귀마개 대신 뱅앤드올룹슨 헤드폰을 끼고 다니기도 하고, 공항패션에 신경 쓰다 쓰고 온 선글라스를 일주일 밤낮으로 끼고 다니는 것은 애교 수준이다(안경집을 두고 온 것이다). 몽골 겨울여행에 핫팩 대신 후리가케(밥에 뿌려 먹는 조미료) 봉지를 챙겨간 것은 최악이었다. 하지만 실수가 있어서 더욱 여행은 즐겁게 마련이다. 몇몇 실수는 당장 곤란했지만 곧 추억이 되어 즐거움으로 회자된다. 브라질에서는 일생의 실수를 저질렀다. 굉장히 아쉬웠지만 지금은 그보다 더한 여행의 추억으로 남았다. 

꿈에도 그리던 이과수 폭포. 이 앞에 서기만을 30년 동안 기다렸었다
꿈에도 그리던 이과수 폭포. 이 앞에 서기만을 30년 동안 기다렸었다

인생 영화의 배경으로 떠나다 


커피 맛도 모르던 시절, 브라질을 알게 된 것은 축구 때문이었고 그다음은 영화 때문이었다. 잡지 <스크린>으로 뭔가 대단한 영화가 나왔단 사실을 안 지 1년 후인 1988년 마포 대흥극장에서 단체관람으로 영화를 봤는데 그게 바로 <미션(the mission)>이었다. 그저 떠들썩한 분위기였지만 치르르 영사기 릴이 돌아가자마자 다들 몰입. 그리고 감동(感動). 그 자체였다. 모두 숨을 죽였다.


“두두둥 띠로리로리~.”
엔니오 모리코네(Ennio Morricone)가 지어낸 감미롭고 신비로운 피리소리가 흐르는 가운데, 화면 가득 펼쳐진 아마존 정글의 어두운 녹색은 대번에 마음을 사로잡았다. 특히 멘도자(로버트 드 니로)가 십자가를 메고 이과수(Iguacu) 폭포에서 뛰어내리는 장면은 불에 달군 인장으로 찍은 듯 뇌리에 선명히 남았다.


“콰콰콰.”
온통 하얀 포말로 뒤덮인 물의 낙하. 그리고 자신의 죄를 씻어 내고자 십자가와 함께 ‘갈라진 지구’ 속 아래로 깊이 뛰어드는 사내. 여기에 역설적일 만큼 감미로운 음악이 물의 괴성과 함께 흐른다. 그때 다짐했던 것 같다. 언젠가 반드시 저곳에 가겠노라고.

어느새 시간은 30년이 흐르고 마침내 나는 ‘그곳’으로 떠날 기회를 잡았다. 2009년, 여행기자 7년 차였던 어느 초겨울 날. 지구상에서 가장 뜨거운 나라 브라질 상파울루의 여름으로 향하는 항공기를 타고 있었다. 앉은 채로 몸이 굳어 버릴 만큼 기나긴 비행이 끝났다. 9시간 경유를 제외하고도 또 10시간이라면 옆 좌석 승객과 경조사도 챙길 만큼 친해지는 시간이다. 모르는 사람과 밥을 연이어 3번 이상 먹는 경우가 어디 흔한가. 어제 무엇을 했는지 잊을 정도로 길었지만, 일생 기다렸던 특별한 뭔가를 만나러 가는 길이라면 그 정도는 그리 지겹지 않은 법이다. 기내식으로 가득 찬 배를 어루만지며 공항을 나서다 중얼거렸다.

“후후후 드디어 그날이 온 건가.”
상파울루 대성당과 이름조차 낯선 세(Se) 광장, 미항 리우데자네이루의 아름다운 코파카바나, 이파네마 해변, 팡데아수카르 등도 괜찮았지만, 사실 나는 일정표의 가장 마지막 부분에 적힌 이과수만을 기다리고 있다. ‘세계 7대 불가사의’에 선정된 것 자체가 ‘불가사의’한 코르코바두 예수상(1931년 건립)도 어린 시절의 그 강인한 추억만큼은 못했다.


호주머니 속 MP3 플레이어에는 출발하기 전날 부랴부랴 담은 <미션>의 OST가 가득 들어 있었다. ‘이파네마에서 온 소녀(A girl from Ipanema)’는 받아 놓지도 않았다. 


그것만 만지작거려도 행복했다. 며칠 전 구입한 새 이어폰은 뜯지 않은 박스째 그대로 있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보험금 지급 통지를 받아놓은 듯 뿌듯하고 든든했다. 마침내 찰랑찰랑한 보사노바 리듬을 뒤로하고 ‘그 폭포’가 있는 도시, 포즈 두 이과수(Foz do Iguacu)를 향해 날아올랐다. 

폭포는 기대 이상이었지만, 나는 좌절하고 말았다
폭포는 기대 이상이었지만, 나는 좌절하고 말았다

일생의 순간, 일대 실수를 저지르다 


새벽같이 일어나 카페딩요 한 잔을 놓고 어떻게 이 터져 오를 듯한 감정을 추스를까 골몰했다. 설탕과 커피를 함께 주전자에 넣고 끓이는 카페딩요는 시내 어디서나 마실 수 있으며 값도 싸다. 결국 내린 결론은 마지막 날 영화에 나왔던 ‘악마의 목구멍’에 가서 그 멋진 음악과 함께 폭포를 감상하기로 했다. 역시나 절정은 마지막에 장식하는 것이 좋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악마의 목구멍(La Garganta do Diablo)이란 물줄기가 275개나 되는 거대한 이과수 폭포 중에서도 가장 낙차가 크고 수량이 많은 한 물줄기에 붙은 이름이다. 말이 물줄기이지 초당 6만톤의 물이 82m 낙차로 꺼져 든다. 폭도 우기에는 150m에 이르러 아득하게 펼쳐진다. 이곳은 아르헨티나 영토에 해당하는 곳으로 국경을 넘어야만 갈 수 있다. 아르헨티나 쪽 도시는 푸에르토 이과수다.


정글을 통과하는 기차를 타고 또 많이 걸어야 한다. 걷다 보면 물이 지르는 괴성이 점차 크게 들린다. 인내심을 갖고 꾸준히 걸었다. 끝내 코너를 돌아 사람들로 빼곡한 악마의 목구멍 입구가 보였다. 나는 걸어가며 아주 경건한 마음가짐으로 이어폰을 꺼내고 MP3 플레이어를 켰다. 추억, 아니 일생의 그 자리, 그 하얀 물줄기의 머리끝으로 한 발짝 한 발짝 다가가며 첫 번째 곡 플레이 버튼을 누르는데….


“딩딩딩 딩 딩딩딩 딩, 띠리리~ 띠리리~”
가느다란 구리선을 타고 흘러든 음악은 아주 익숙했지만 그래서 더욱 경악스러웠다. 온몸에 힘을 빼는 그 경쾌한 음악은 다름 아닌(!), 영화 <미션 임파서블(The mission impossible)>의 주제곡이 아닌가. 암만 뒤져 봐도 내 MP3 플레이어 속 ‘미션(mission)’ 제목의 파일들은 죄다 화려한 액션이 돋보이는 그 영화의 것이었다. ‘폭포(The Fall)’, ‘가브리엘의 오보에(Gabriel’s oboe)’,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On earth as it is in heaven)’ 등 내가 그토록 갈망했던 그 숭고하고도 경건한 상황에서 함께할 음악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 스마트폰도 데이터로밍도 와이파이도 없던 시절. 이 난감한 상황을 당장 수습할 수 없었다. 마치 20달러 더 싼 면세담배를 사려다 비행기를 놓쳐 버린 게이트 앞 승객처럼 멍하니 서 있을 수밖에.

그날. 난 멘도자처럼 불법 다운로드의 십자가를 지고 이과수 악마의 목구멍 속으로 꺼져 들었다
그날. 난 멘도자처럼 불법 다운로드의 십자가를 지고 이과수 악마의 목구멍 속으로 꺼져 들었다

눈앞이 캄캄해졌다가 폭포수의 굉음 덕에 다시 주변이 눈에 들기 시작했다. 말굽 모양의 폭포, 지구 속으로 꺼져 드는 세찬 물줄기. 그리고 망연자실한 나머지, 온통 물보라를 뒤집어쓴 나 자신이 보이기 시작했다. 커다란 나무 십자가에 스스로 몸을 묶은 멘도자(로버트 드 니로)가 악마의 목구멍으로 뛰어들기는커녕, <미션 임파서블>의 IMF 요원 이단 헌트(톰 크루즈)가 폭포를 기어 올라올 것만 같은 상황. 올라온 후 “네가 받아들인다면~” 하는 지령이 떨어지고 빌어먹을 내 MP3 플레이어는 5초 후 폭발하게 되는…, 전혀 예기치 못한 상황이 ‘그 폭포’ 위에서 펼쳐졌다.


낙심한 채 터덜터덜 내려왔고 10여 년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다시 가보지 못했다. 돌아온 나는 바로 굿다운로더(그림이나 영화, 음악 파일 등을 불법 다운로드하지 않는 사람들)가 됐고, 누구에게나 적법한 방법으로 저작물을 이용할 것을 전도하고 있다. 


반면 그 충격은 몹시도 커서 아직도 고교시절 꿈을 못 이룬 상태로 TV에서 이과수 폭포만 등장하면 어디서 헬기 사격을 하지나 않을까 불안에 떨고 있다. 아! 그리고 얼마 전 엔니오 모리꼬네도 죽었다. 일생의 순간이 해프닝으로 바뀐 이과수 폭포, 그 거대한 물줄기로도 이 작은 실패담을 씻기란 절대 어려워 뵌다. 

 

▶이과수 찾아가기 | 상파울루 과룰류스 국제공항에서 리우데자네이루 공항까지 약 1시간 20분 걸린다. 버스로는 6시간. 리우데자네이루에선 포즈 두 이과수까지 국내선으로 2시간 가까이 걸린다.


▶유용한 정보 | 브라질의 수도는 상파울루가 아니고 브라질리아다. 세계에서 5번째로 영토가 큰 나라(851만 평방킬로미터)이며 인구는 2억 명이다. 포르투갈어를 쓰며 영어가 통용되지 않는 곳이 많다. 로만 가톨릭 인구가 가장 많다. 환율 1헤알(BRL)은 약 196원. 시차는 정확히 12시간, 그러니까 한반도와 정반대에 있다. 전압은 110~120V, 60㎐에 플러그는 2구짜리를 사용한다. 교통요금 및 호텔비는 타 남미국가에 비해 다소 비싼 편이다. 특히 관광지인 리우나 이과수 물가는 서유럽이나 미국 대도시 수준이다.


▶이과수 폭포 | 코로나19 이후 4개월간 출입이 금지되었던 이과수 폭포는 지난 8월부터 개장한 상태다. 개장 시간 제한(화∼일요일 09:00∼16:00)과 시간당 입장 제한 인원이 있으니 사전에 이과수 국립공원 웹사이트를 통해 입장권을 예매해야 한다.

 

이우석의 놀고먹기 
‘저세상’ 유머 코드와 황당한 상황극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이우석 소장은 오랜 신문사 기자 생활을 마치고 ‘이우석놀고먹기연구소’를 열었다. 신나게 연구 중이다. 인스타그램  playeatlab

글·사진 이우석 놀고먹기연구소장  에디터 천소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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