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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503호

  • Editor. 강화송 기자
  • 입력 2020.12.01 08: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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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홍콩 503호’를 벗어나고 싶은
에디터의 홍콩 한 달 살이 이야기.

2017년 7월 여름. 홍콩행 비행기를 탔다. 일로 대략 한 달간 홍콩에 머물 계획이었다. 시작은 제주항공, 좁고 갑갑한 출발이지만 어쨌든 저렴하니 됐다. 홍콩 공항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옥토퍼스 카드를 샀다. 옥토퍼스 카드로는 대중교통 이용뿐만 아니라 편의점에서 간단한 결제까지 할 수 있다. 초콜릿 살 때 편하다. 곧장 친구의 집으로 향한다. 홍콩에는 친한 친구(유학생)가 살고 있었다. 무려 100만원 짜리 월세에서, 그래 봤자 홍콩에선 정말 작은 원룸이다. 사람 딱 1명 누우면 꽉 차는. 그러니까 175(.9)cm 성인 남자 한 명 자리가 100만원 꼴이다. 친구는 나에게 ‘100만원’을 잠시 소개해 주기로 했다.

 

버스터미널로 향해 E23번 버스를 탔다. 2층 버스를 타면 버릇처럼 2층 맨 앞 좌석에 앉는다. 참 오묘한 나라다. 낮인데 늘 저녁 같고 바닥은 항상 젖어 있다. 골목에선 담배 냄새가 나고, 매일 어딘가를 보수 중이다. 길거리를 걸으면 출처 모를 물방울이 얼굴에 계속 튄다. 덥고 습한 여행지라면 보통 슬리퍼를 신는데, 홍콩만큼은 예외다. 모자를 쓰고, 운동화를 신는다. 콩나물시루 속을 헤매는 기분이랄까. 불편한데, 한편으론 또 편하다. 좁아서 가깝고, 가까우니 편하다. 이랬다가 저랬다가. 

내가 버스에서 내릴 곳은 실내다. E23번 노선이 실내에서 유일하게 정차하는 순간은 왐포아역에 도착했을 때다. 7월 홍콩은 보통 비가 내린다. 역시나 비가 내렸다. 

 

비가 많이 거셌다. 역에 마중 나온 친구는 이미 반쯤 젖었다. 운동화가 젖는다. 빗방울이 얼마나 세찬지 무릎까지 젖는다. 저 멀리 비를 맞으며 공사 중인 아저씨가 보인다. 친구 왈, 거의 다 왔다는 뜻이란다. 아저씨는 상의를 벗은 채 비를 다 맞아가며 담배를 물고 있다. 담배가 비에 젖는 건 신경도 안 쓰고 불을 붙인다. 불이 안 붙는데, 계속 붙인다. 홍콩 사람들 특유의 무감각한 표정과 행동. 그래야만 이 좁은 도시에서 살아갈 수 있구나.

친구 집에 도착했다. 오래된 건물이다. ‘ㅁ’자 형태로 이루어진 건물인데 흑인부터 아랍계 사람들까지 정말 다양한 인종이 뒤섞여 산다. 모든 인종이 뒤섞여도 아랍의 향수 냄새가 가장 강력하다는 것을 홍콩에서 배웠다. 알라딘 냄새. 건물 가운데는 뻥 뚫려 있다. 유일하게 해가 들어오는 공간인데, 쓰레기와 담배 꽁초가 잔뜩 쌓여 있다. 비가 내리면 그곳에 물이 차오른다. 거대한 샤워부스가 따로 없다. 쓰레기들이 둥둥 떠다니니 악취도 꽤 심하다. 친구의 집은 503호. 문을 열고 들어가면 방이고, 방에서 문을 닫고 나오면 밖이다. 살면서 본 가장 작은 503호였다. 부엌도 없다. 너무 작아서 묘사도 짧다. 그 기억으로 지금까지 좁은 것을 보면 ‘홍콩 503호’라고 표현한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넌 왜 이렇게 속이 홍콩 503호냐?

시작은 다시 왐포아역으로. 대략 한 달간 ‘하버 그랜드 구룡 호텔’에서 머물기로 했다. 홍콩 503호를 보곤 측은한 마음에 친구를 호텔로 불렀다. 하버 그랜드 구룡 호텔은 영화 <도둑들> 속 등장했던 전지현의 수영 장면 배경으로 잘 알려져 있다. 방에서는 홍콩섬 전경이 보인다. 굳이 야경을 보러 갈 필요도 없다. 비가 내리면 뿌옇게 낀 안개 사이를 헤매는 배가 보인다. 칙칙하고 음습하지만, 홍콩에선 그것이 감성이다. 생각해 보면 이상하게도 홍콩에선 별것도 아닌 일로 센치해졌다. 괜히 한밤중 침대에서 몸을 웅크리기도 했다. 영화 <중경삼림>에 너무 빠져 있었나 보다. 친구에게 중경삼림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자 친구 왈 “침대 죽이네, 이게 사람 사는 방이지.” 역시 사는 것과 여행은 다르다.

 

여전히 비가 왔다. 비에 젖어 호텔에 들어온 지 30분이나 지났지만, 여전히 몸은 젖어 있었다. 서로 귀찮아 먼저 씻기를 거부하던 그때(평소에는 잘 씻는다) 하필 콘지가 먹고 싶어질 건 뭐람. 하버 그랜드 구룡 호텔 앞에는 산책로가 있다. 그 길을 따라 쭉 걸으면 홍콩의 중심, 침사추이가 나온다. 내가 좋아하는 콘지 브랜드는 침사추이와 삼수이포에 있다. 이미 젖은 김에 침사추이까지 친구와 함께 걷기로 한다. 우산을 썼지만, 비가 몰아친다. 비를 맞으면 시원하고, 안 맞으면 덥다. 홍콩 사람들은 비를 맞으며 낚시를 하고, 런닝을 한다. 더워서 비를 맞나 보다. 콘지집에 도착했다. 나는 소고기 콘지, 친구는 플레인 콘지. 콘지는 처음 몇 숟가락 뜨거운 열기만 참아 내면 10분 내로 먹을 수 있다. 그렇게 급하게 먹어야 속이 따뜻해진다. 대신 다음날 입천장이 다 까진다. 비에 젖었고, 입천장이 대였고, 다시 비를 맞으며 호텔로 돌아가는데 재밌다. 


작디작은 홍콩에선 홍콩 503호 같은 것들이 재밌는 것이고, 행복한 것이다. 삼수이포에서 곱창을, 소호에서 커피를 마셨다. 란콰이퐁에서 맥주도 마시고 몽콕에선 옷을 사다 할머니와 실랑이도 벌였다. 그렇게 홍콩에서 한 달을 보냈다. 여전히 홍콩 503호에 머무는 친구에게 얼마 전 연락이 왔다. 요즘은 너나 나나 둘 다 홍콩 503호에 사는 거지 뭐. 맞다. 세상이 너무 좁아졌다. 지긋지긋한 이놈의 홍콩 503호 살이. 

 

글·사진 강화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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