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같은 여행, 고령 개실마을
꽃 같은 여행, 고령 개실마을
  • 손고은 기자
  • 승인 2020.12.01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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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실마을 어귀에 목백일홍이 활짝 폈다
개실마을 어귀에 목백일홍이 활짝 폈다

누가 말했다. 행복해지려면 노력해야 한다고. 노력하지 않으면 행복해질 수 없다고.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가족들과 행복을 그리기 위해 개실마을 꽃길을 걸었다. 
꽃이 피면 아름다운 마을. 여기까지 오느라, 당신 참 애썼다.

대가야 시대로 타임슬립
대가야 시대로 타임슬립

●개실마을, 참 정겹다


남의 집에 가는 게 처음이 아니면서도 활짝 열려 있는 대문은 낯설다. 그냥 이렇게 들어가도 되나. “계세요?” 뒤에서 황당한 말이 들린다. “여긴 방이 2개인데 마음에 드는 방으로 드가시면 됩니더.” 개실마을 김민규 사무총장이다. ‘축구 꿈나무 집’ 할머니 집에는 두 칸짜리 한옥 별채가 있다. 손님을 위한 방이다. 창호지를 깨끗하게 바른 문을 열자 아늑하고 따뜻한 공간이 맞이한다. “열쇠는 따로 없는데 그건 걱정하지 마이소. 별일 없는 동네요. 좀 쉬다 나오이소.” 개실마을식 체크인 풍경이었다. 꿈희망여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9월 말이면 개실마을에도 감이 주렁주렁 열린다
9월 말이면 개실마을에도 감이 주렁주렁 열린다

개실마을은 60여 가구가 모여 사는 집성촌이다. 조선 중엽 영남사림학파의 증조 점필재 김종직 선생의 후손 일선 김씨 집안이 350년 넘는 전통을 이어 가고 있는 마을. 꽃이 피면 아름다운 마을이라 하여 ‘개화실’로 불렸는데 시간이 지나 ‘개애실’에서 지금의 ‘개실’로 음이 변했다. 마을 어귀에는 진한 분홍색의 목백일홍이 활짝 피었다. 봄이 되면 벚꽃이 만개한다고 했다. 이런 게 꽃길이지. 인구 100여 명의 작은 마을에 연간 약 5만명이 방문한다. 몇 년 전 개실마을 막내가 환갑을 치렀다고 하니 이 동네 평균 연령은 말하지 않아도 짐작이 간다. 개실마을로 시집와 반세기 이상을 이곳에서 보낸 할머니들은 외지인에게 방을 내어주고 밥을 지어주고 작게 농사를 지으며 시간을 보낸다. ‘웅기’에서 시집온 웅기댁 할머니, ‘창녕’에서 시집온 창녕댁 할머니처럼 석정댁, 하동댁, 덕동댁, 신안댁 등 집집마다 할머니의 연고지가 적힌 문패가 붙어 있다. 

하늘색 도포를 걸치고 머리에 갓을 쓰면 자연스레 선비처럼 뒷짐을 지게 된다
하늘색 도포를 걸치고 머리에 갓을 쓰면 자연스레 선비처럼 뒷짐을 지게 된다

터벅터벅 산책하기에 지루하지 않은 마을이다. 마을에서 빌려주는 하늘색 도포, 선비 옷을 입고 걸어도 좋다. 그렇게 걷다 보면 졸음에 겨운 듯 하품하는 길고양이를 지나게 되고 걸핏하면 울어 젖히는 닭과 오리를 만나고, 가을이 떠나가는 게 아쉬워 자주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귀뚜라미 소리도 듣는다. 마당에는 고추며 오이, 깻잎 등이 누가 누가 더 잘 크나 경쟁을 펼치고 천사의 나팔꽃이 바람에 덩실덩실 춤을 춘다. 담벼락이 낮아 작은 키에 깨끔발을 하지 않아도 훤히 마당이 보인다. 이 집은 고추를 말리고 있구나, 이 집은 호박을 말리고 있구나.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겠지만 서도 보이는 모든 것이 정겹다. 


●인생은 매콤달콤

 
추석을 며칠 앞두고 개실마을에는 창원에서 온 가족 11팀이 모였다. 개실마을은 2007년부터 농촌체험휴양마을로 사업을 시작했는데, 지난 2017년 그랜드코리아레저(GKL)의 꿈희망여행마을 8개 중 한 곳으로 선정되면서 매년 다양한 가족들을 맞이하고 있다. 개실마을의 전통과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만 최소 10개 이상이지만 아이와 어른이 함께 즐길 만한 프로그램을 선정하는 것도 센스가 필요한 일이다. 

개실마을의 대표 체험 프로그램은 ‘엿 만들기’다. 제대로 된 엿가락을 뽑으려면 두 사람의 호흡이 중요하다
개실마을의 대표 체험 프로그램은 ‘엿 만들기’다. 제대로 된 엿가락을 뽑으려면 두 사람의 호흡이 중요하다

달콤한 간식에는 호불호가 없다. 그래서 개실마을의 대표 체험 프로그램은 ‘엿 만들기’다. 전통 방식 그대로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앉아 손에 쌀가루를 묻히곤 조청을 꼬아 잡아당긴다. 그러니까 엿을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두 사람의 합동이 필요한 거다. 꾸덕한 조청 덩어리를 한 사람이 오른손으로 당기면 맞은편에 있는 사람은 왼손으로 가운데를 잡고 각자 자신의 방향으로 잡아당기는 작업이다. 황갈색 조청이 점점 하얀색으로 변할 때까지 수십 번 반복한다. 먹기 좋은 크기로 톡톡 잘라 주면 개실마을표 엿 완성. 

개실마을에서는 고추장을 만들 때에도 조청을 넣는다
개실마을에서는 고추장을 만들 때에도 조청을 넣는다

엿은 개실마을에서 제사에 올리는 음식이다. 추운 겨울 달달한 제철 과일을 올릴 수 없던, 음식이 귀하던 시절 조상님을 생각한 정성이었던 게다. 조청을 먹으면 심신이 평온해진다 하여 예부터 임금님 아침상에 조청이 올랐다니 과연 귀한 음식이었다. 개실마을에서 조청은 엿뿐만 아니라 고추장을 만들 때도 필요한 재료다. 소금물에 조청과 고춧가루, 잘 볶은 콩가루를 넣고 저어 주면 이것은 개실마을표 고추장. 넉넉한 크기의 공병에 고추장을 듬뿍 넣어 주는 마음은 할머니표 인심. 특히 떡볶이를 만들 때 쓰면 기가 막히다고. 아마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면 엄마는 지금보다 조금 더 숙성된 고추장으로 몇 번이고 떡볶이를 만들어 주겠지. 이런 생각에 새빨간 고추장에도 아이들은 입맛을 다신다.

경북 덕동에서 개실마을로 시집온 할머니 집. 사람들은 할머니를 ‘덕동댁’이라 부른다
경북 덕동에서 개실마을로 시집온 할머니 집. 사람들은 할머니를 ‘덕동댁’이라 부른다

●여행은 작은 도전의 연속


꿈희망여행의 매일 아침은 밥 짓는 냄새로 시작된다. 고소하게 무쳐 낸 각종 나물과 볶음 반찬, 생선구이와 함께 따뜻한 국까지 여러 가지 찬과 밥이 상에 오른다. 개실마을표 조식이다. 집집마다 각기 다른 할머니표 밥상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한 끼를 차려 내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아는 엄마도, 아이들도 쌀 한 톨 남기지 않고 싹싹 비운다. “밥 더 주세요.” 한마디에 할머니 입가에는 미소가 번진다. 아침부터 눈이 휘둥그레지는 밥상을 받은 가족들은 마당에 모여 저마다 밥상 자랑을 늘어놓는다. 

대가야 생활촌에서 쿠키를 굽고 다육이를 흙에 옮겨 심었다
대가야 생활촌에서 쿠키를 굽고 다육이를 흙에 옮겨 심었다
우륵 선생의 마을, 가얏고 마을에서는 가야금을 직접 연주해 볼 수 있다. 1시간 안에 두 곡이나 마스터하게 되는 마법의 시간
우륵 선생의 마을, 가얏고 마을에서는 가야금을 직접 연주해 볼 수 있다. 1시간 안에 두 곡이나 마스터하게 되는 마법의 시간

부른 배를 두드리며 잠시 이웃 마을인 ‘가얏고 마을’에 다녀오기로 한다. 가얏고 마을은 대가야의 가실왕 시절 악사였던 우륵 선생이 가야금을 만들어 연주했다는 마을이다. 이곳에서는 약 1시간 코스로 가야금 연주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 가야금이 처음인 초보자들도 어렵지 않게 따라 할 수 있는 몇몇 곡을 연주해 보는 시간이다. 모두가 서투르지만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현을 튕긴다. 새로운 것에 대한 작은 도전은 언제나 가치 있는 일이다. 

개실마을 웅기댁 할머니의 정성스런 12첩 반상에 아침부터 밥 한 공기를 금세 비웠다
개실마을 웅기댁 할머니의 정성스런 12첩 반상에 아침부터 밥 한 공기를 금세 비웠다

고령은 대가야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지역이다. 가야는 신라에 패망한 연맹 왕국으로 짧게 기록돼 있지만, 고령군 일대에서 704개의 고분이 발견되면서 나온 여러 유물과 묘제 문화를 통해 당시 가야의 역사를 더 가치 높게 인정하고 있다고. 고령군에서는 대가야의 가치를 기리고 지속적인 연구를 위해 지난해 4월 약 10만 평방미터에 달하는 부지에 ‘대가야생활촌’을 만들었다. 1,500년 전 대가야 시대의 집과 생활상, 각종 문화를 짐작해 볼 수 있는 공간으로 시설비만 500억원 이상이 투입됐다. 각종 전통놀이 체험장과 다육이 화분 만들기, 쿠키 만들기 등 체험 프로그램도 많다. 가족들은 시간이 흐르는 게 아쉬운 눈치다. 카메라를 꺼내 들어 이날의 시간을 자주 저장하던 걸 보니. 

대가야 생활촌을 둘러보는 가족들
대가야 생활촌을 둘러보는 가족들

달빛에 의지하는 개실마을의 밤하늘 아래 저녁마다 작은 파티가 열렸다. 하루는 가족 간의 자연스러운 스킨십과 단합을 도모하는 레크레이션이 진행됐고, 또 하루는 야외 마당에서 바비큐를 구웠다. 매일 함께하는 사이지만 유독 여행의 마지막 저녁은 애틋하다. ‘우리 앞으로 꽃길만 걷자, 이렇게.” 탐스럽게 핀 목백일홍이 더 붉어졌다.  

개실마을에 있는 도자기 공방에서는 머그컵에 그림을 그리는 체험도 가능하다
개실마을에 있는 도자기 공방에서는 머그컵에 그림을 그리는 체험도 가능하다
여행 마지막 날, 개실마을에는 작은 바비큐 파티가 열렸다
여행 마지막 날, 개실마을에는 작은 바비큐 파티가 열렸다

●누군가는 이어가야 할 개실마을 이야기  

 
그랜드코리아레저(GKL) 사회공헌재단은 국내 8개 지역의 농어촌 체험 마을을 꿈희망여행마을로 선정해 대한민국의 보통 가족들과 함께 마을여행을 떠난다. 가족 간의 화합을 다지는 기회는 물론 마을에는 더 나은 관광서비스, 인프라 확충과 솔루션을 제시함으로써 궁극적으로 국내의 작은 시골마을 여행에 대한 이미지를 개선하는 게 목표라고. 

개실마을 김민규 사무총장
개실마을 김민규 사무총장

김민규 사무총장은 점필재 김종직 선생의 18대손이다. 몇 해 전 고령군청에서 공무원 생활을 마치고 개실마을로 돌아와 전통을 이어 가고 있다. 그는 지난 3년간 꿈희망여행마을 사업을 통해 달라진 마을의 모습을 회상했다. “그동안 개실마을은 수백명의 학생이나 단체여행객 중심으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했습니다. 때문에 꿈희망여행에 참가한 가족들처럼 소규모 그룹을 어떻게 맞이해야 할지 잘 몰랐죠. 또 주로 가족들이 개실마을을 방문하거든요. 어른들도 만족하고 아이들도 만족하는 체험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할머니들과 더 따뜻한 밥상을 만들고자 노력했고요. 일례로 꿈희망여행마을을 찾는 가족들이 2박 3일 동안 여행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인화해 주기 시작했습니다. 작은 정성이지만 가족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작은 디테일의 힘을 배웠죠.”


개실마을에서는 농산물 재배나 엿, 고추장, 유과, 떡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 마을에서 평생 지내 온 할머니들이 프로그램 진행을 돕는 선생님이자 동력이다. 하지만 김민규 사무총장은 이제 연로한 할머니들이 걱정스럽다. “개실마을의 사업을 장기적으로 계속 이어가기 위한 고민이 큽니다. 누군가는 계속 이어 가야 할 마을의 문화와 역사가 담긴 사업이니까요. 하지만 도시에서 살던 분들을 마을로 모시기엔 한계가 있어요. 꿈희망여행에서 만난 이들 중 뜻이 맞는 분들이 있다면 할머니들과 또 다른 가족을 만들어 마을 사업을 이어가는 방법에 대해서도 생각 중입니다.” 어쩌면 꿈희망여행이 개실마을에 전한 또 다른 희망일 수 있겠다. 
 

*꿈희망여행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익법인 GKL사회공헌재단의 후원으로 대한민국 국민의 가족이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전국 각지의 농산 어촌 마을로 떠나는 가족여행 프로그램이다. 2020년 9월25~27일에 진행된 이번 꿈희망여행에서는 창원에서 온 11팀의 가족이 2박 3일 동안 고령 개실마을에서 다양한 체험을 통해 가족의 화합을 다졌다. 한편 GKL사회공헌재단은 공기업 GKL(그랜드코리아레저)의 100% 출연으로 2014년 설립된 문화체육관광부 산하의 공익법인이다. 여행 참가 신청은 꿈희망여행 홈페이지에서 받고 있다.   GKL사회공헌재단 www.gklfund.org/gkl_tour

 

글·사진 손고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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