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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천마을의 이면, 속살속살 걷는 마이산 옛길

전북생태관광 | 진안

  • Editor. 천소현 기자
  • 입력 2020.12.01 09: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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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건너 은천마을 비보림은 200년 동안 마을을 지키고 있다
길 건너 은천마을 비보림은 200년 동안 마을을 지키고 있다

하천이 땅속에 숨어 흐르고,
줄사철나무는 느티나무에 의지해 자라던,
마이산 남쪽 기슭 수줍은 마을 하나,
그 이면에 숨겨진 생태 이야기.   

타포니 지형이 선명한 마이산 암마이봉(뒤)과 숨겨진 나도산(앞)
타포니 지형이 선명한 마이산 암마이봉(뒤)과 숨겨진 나도산(앞)

●비밀의 숲에서 빛나는 마을로 


마이산 남쪽 은천리엔 화재가 잦았다. 풍수로 보니 남쪽 써리봉에서 오는 불의 기운을 막아 줄 비보림이 필요했다. 느티나무, 팽나무, 은행나무, 개서어나무를 심었고, 줄사철나무가 느티나무와 팽나무를 휘감으며 자랐다. 200여 년 전 은천마을 생태숲이 시작된 이야기다. 숲 남쪽에 시내가 스며들어 흐른다 하여 은천(隱川) 혹은 가림천이라 불렸는데 훗날 한자가 바뀌어 반짝이는 은천(銀川)마을이 됐다. 

은천천과 마을숲
은천천과 마을숲

숲은 아이들의 놀이터였다. 첫 연을 날리고, 화살 놀이를 하다가 냇가에서 멱을 감았다. 전병식 이장도 숲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란 아이 중 한 명이었다. 이 마을에서 태어나 50대 중반이 된 그는 젊은 이장이자 에코 매니저다. “에코 매니저가 되면서 인생이 바뀌었어요. 그동안은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더라고요. 우리 마을이 이렇게 예쁘고, 좋은 게 많은 줄 이제야 알았습니다.” 

줄사철나무
줄사철나무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지형, 풍부한 생태자원을 지켜 온 마을이 낮게 흐르는 물처럼 은거하던 시절은 지났다. 오랫동안 방치되어 퇴적물이 가득했던 5,600m2의 숲은 보존사업으로 보송보송한 흙바닥을 드러냈다. 실개천을 파고, 다리도 놓았다. 게이트볼장이었던 곳에는 주차장과 화장실 등 편의시설을 채웠고, 숲속 정자 ‘은림정’은 사면을 막아 아이들을 위한 숲속 도서관이 되어 주라 했다. 태조 이성계가 임실 상이암으로 가는 길에 잠시 들러 목을 축였다는 옹달샘 터도 복원을 고민 중이다. 

마을 주민들이 함께 냇가의 돌을 날라 쌓은 돌담을 쌓았다
마을 주민들이 함께 냇가의 돌을 날라 쌓은 돌담을 쌓았다

조선총독부 시절에 세운 비석이 나무 옆에 남아 있을 만큼 귀하게 여겨졌던 줄사철나무 세 그루는 전라북도 지방기념물이자 은천마을의 깃대종이다. 중부 이남의 500m 이하 산기슭이나 해안 마을에서 주로 자라는 줄사철나무는 마이산을 넘어서지 못하고, 이쯤에서 북방한계선을 이룬다. 마이산 은수사의 줄사철나무 군락은 천연기념물 380호다. 주로 느티나무나 팽나무를 휘감으며 자라는데, 주목이 죽으면 사철나무도 오래 살지 못하니, 오래오래 조화롭게 사는 것이 관건이다. 마을 살이가 늘 그러하듯.

마을숲에 길이 놓이고 도서관이 생겼다
마을숲에 길이 놓이고 도서관이 생겼다

●다시 세우는 마을 ‘공동의 것’들


조선 중종 때부터 마을을 이루고 살았던 은천리에는 최씨와 박씨, 특히 전씨가 많다. 금강과 섬진강의 상류에서 흘러내리는 맑은 물 덕분에 은천마을 70여 가구는 벼농사도 짓고 인삼도 재배하며 살아가지만 아무래도 아이들은 적고 노인이 많다. 전병식 이장의 머릿속에 고쳐야 할 마을 돌담이 너무나 많은데 늘 아쉬운 건 일손이다. “마을창고도, 교회도, 돌담도 모두 마을 사람들이 깽벌(냇가)에 가서 돌을 하나씩 소달구지 가득 채워 싣고 와서 맨손으로 쌓은 것입니다.” 그랬던 마을이 지금은 군데군데 빈집과 폐가로 휑하지만, 생태관광을 계기로 조금씩 정비해 가는 중이다. 

마을 주민들과 꽃차 한잔
마을 주민들과 꽃차 한잔

창고 벽에 새겨진 ‘불.조.심’ 세 글자를 보니 궁금해졌다. 마을 숲은 불의 기운을 막아 주었던 걸까? 결국, 수호신이 힘을 보탰다. 1919년 마을의 70%가 전소되는 큰불이 나자 다음 해 불과 상극이라는 돌거북상을 마을 숲 입구에 세웠다. 이로부터 태평성대인가 했는데 1988년 누군가 돌거북상을 몰래 훔쳐가 버렸고, 2005년에 전통마을숲복원 사업지로 선정되면서 지금의 모던한 돌거북상이 다시 세워졌다. 얼굴이 할배 혹은 동자 같고, 몸은 거북이인 요상한 모습이라 정붙이는 데 시간이 꽤 걸렸다고. 그래도 마을에서는 매년 음력 1월9일에 거북제를 개최하며 전통을 잇고 있다. 하얀 저고리를 차려입은 제관들이 나서서 왼손으로 꼰 새끼줄을 거북상에 걸고 종이를 태워 소지까지 하고 나면, 온 동네 사람들이 뜨끈한 팥죽 한 그릇씩을 나눠 먹는 것으로, 또 한 해가 살아진다. 

(왼쪽부터) 암마이봉, 나도산, 수마이봉
(왼쪽부터) 암마이봉, 나도산, 수마이봉

●마을 뒷산이 무려 마이산  


전병식 에코매니저에게는 특이한 친구가 있었다. 고등학생인데도 멋지게 바이크를 타고, 클라리넷을 잘 불었던 친구다. 마을 뒤 옛길을 넘어 마이산 탑사로 소풍이라도 가는 날에는 그 친구의 멋진 연주를 들을 수 있었다. 지금 마이산 탑사의 주지 스님인 진성 스님이 바로 그 친구다. 간간이 두 친구의 추억담을 들으며 ‘속살속살 걷는 마이산 옛길’을 넘기 시작했다. 마을 뒷산이 무려 마이산(馬耳山)이다. 국내 유일의 역암 봉우리이자, 타포니(Tafoni) 등 희귀 지질구조를 선명하게 관찰할 수 있는 세계적인 지질명소인 그 마이산이다. 

은천마을에서 마이산 탑사까지 직통인 옛길
은천마을에서 마이산 탑사까지 직통인 옛길

마을에서 마이산 탑사까지는 1.5km. 마을 사람들끼리만 누렸던 것은 지름길뿐만이 아니다. 말의 귀를 닮았다는 암마이봉(687m)과 수마이봉(681m)의 위상에 가려 빛을 보지 못하는 나도산의 존재감을 확연하게 느낄 수 있는 독점 명당이 이 길 위에 있다. 암마이봉, 수마이봉을 따라 ‘나도 커야지’ 하며 몰래 몸집을 불려오다가 어느 여인에게 들켜 성장을 멈췄다는 나도산이 ‘나도 봐 주세요’ 하고 말하고 있었다. “벤치 하나 놔 주시죠!” 이장님께 숙제를 하나 드렸다. 보슬보슬 비가 내려 어깨가 젖어 가고 있었지만, 암마이봉, 수마이봉, 나도산의 ‘3첩 풍경’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머물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길은 짧아도 이야기는 길다. 무명의 묘지들, 마이산 봉우리를 온전히 감상할 수 있는 책상바위, 명상 시간을 가질 후보지, 무속인들이 집을 짓고 살다 철거된 도장골 안쪽의 집터와 기도터 이야기가 릴레이를 했다.

80여 기의 돌탑이 있는 마이산 탑사
80여 기의 돌탑이 있는 마이산 탑사

비 때문이었다. 탑사 앞 가게에서 막걸리와 김치전을 놓고 앉았다. 인생 2막을 시작하면서 금주를 선언한 전병식 이장님은 막걸리 대신 물을 마셨다. 진성 스님은 출타 중이셨다. 서로 바빠 얼굴을 보지 못하지만, 전 이장은 내친김에 안부 전화를 넣었다. 30년에 걸쳐 80여 기의 탑사를 산 아래에 쌓은 이갑룡(1860~1957, 효령대군 16대손) 거사의 불심과 유산이 4대손인 진성 스님께로 이어지고 있다. 오랜 우정, 스님을 향한 이장님의 자랑스러움은 숨겨지지가 않았다. 진성 스님은 종교와 상관없이 국내외에서 다양한 봉사 활동을 이끌어 종단의 존경을 받고 있다. 

은천마을 전병식 이장
은천마을 전병식 이장
전 이장에게 풀은 더이상 ‘웬수’가 아니다
전 이장에게 풀은 더이상 ‘웬수’가 아니다

산바람에도 돌이 패이듯, 작은 힘들이 보태어져 큰 변화가 된다. ‘풀이 웬수’였던 농사꾼에게 풀이 꽃으로 보이기 시작한 변화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암마이봉과 수마이봉이 귀를 쫑긋 세우고 듣고 있다. 나도산도 ‘나도’ 하며 끼어든다. 갈라졌던 길이 다시 하나로 만나듯 선한 영향력을 가진 두 친구도 같은 길 위에서 다시 만나지 않을까.  

▶은천마을 생태숲과 마이산 타포니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지형에 자리잡은 은천마을은 느티나무, 팽나무, 은행나무, 줄사철나무(깃대종)가 어울려 사는 생태숲을 끼고 있다. 숲을 돌아 돌담이 예쁜 마을을 통과하면 1.5km 구간의 옛길을 통해 마이산 탑사까지 직통이다. 쏘가리와 다슬기 화석이 발견되는 마이산의 역암층은 타포니 지형으로 지리적인 가치도 높은 명산이다. 타포니는 암석이 물리적·화학적 풍화작용을 받아 벌집처럼 파인 구멍 형태의 지형이다.
주소: 전라북도 진안군 진안읍 은천2길 6(은천리 마을회관) 
전화: 063 430 2338(진안군청 환경산림과)

▶미래의 방문자센터  
1975년에 마을 사람들이 벽돌을 하나씩 날라서 지었다는 마을창고는 허무는 대신 원형을 보존하면서 리모델링 해, 방문자센터로 이용할 계획이다.

▶인삼향 생태밥상  
인삼튀김, 인삼샐러드가 밥상에 올랐다. 바삭하고 고소한 튀김옷 속 인삼은 알이 크고 굵어서 놀랐다. 역시 진안 인삼이다. 은천마을 생태밥상은 겨우내 음식연구가 고광자 선생님의 도움으로 곧 새롭게 태어날 예정이다. 1인 1만원.

▶인심 좋은 은천 정미소  
보기 드문 장소고, 광경이다. 목재로 만든 근대식 정미소가 아직도 튼실하게 작동하고 있다. 자식들에게 넘기진 않고 하는 날까지만 하겠다는 각오다. 곡식 양이 적다고 돌려세우지 않는 하태선 사장과 안주인 송금순 여사의 인품 덕분에 진안뿐 아니라 완주, 무주에서도 단골이 찾아온다.

 

글 천소현 기자  사진 김민수(아볼타)  
취재협조 전라북도생태관광육성지원센터 www.jb-ecotour.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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