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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과 함께, 성수산 생태 숲 이야기

전북생태관광 | 임실

  • Editor. 천소현 기자
  • 입력 2020.12.01 09: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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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입에 산수국 군락지를 조성했다
초입에 산수국 군락지를 조성했다

‘왕의 숲’이라고 쓰고, ‘숲이 왕’이라고 읽는다. 
생명이 순환하는 숲의 주인은 
이 세상 모든 생명이라는 것, 숲의 말이다.  

에코 매니저와 함께라서 알찬 성수산 생태트레킹
에코 매니저와 함께라서 알찬 성수산 생태트레킹

●‘쓰임’과 ‘살림’ 사이


돌탑마다 소원이 한 무더기다. 예부터 왕이 나오는 자리라 하여 정치인들이 꼭 한 번씩은 들른다는 산이, 성수산(聖壽山)*이다. 고려를 세운 태조 왕건,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의 전설이 서려 있는 곳이기도 하다. 왕에 걸맞은 품격을 갖추기 위해 성수산 초입에는 자연휴양림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그 기간이 임실의 에코 매니저들에게는 생태관광을 준비하고 연구하는 시간이다. 성수산 ‘왕과 함께하는 생태 숲 에코트레킹’은 그렇게 자라는 중이다. 

성수산에는 12만 그루의 편백나무가 있다
성수산에는 12만 그루의 편백나무가 있다

구룡의 전설이 서린 아홉 계곡의 물이 합수해 흘러내린다는 계곡을 거슬러 오르기 시작했다. 앞으로 지어질 방문자센터에서 편백나무 숲까지, 오늘은 한 시간 정도의 산책이다. 코스가 시작되는 데크길 초입에 슬픈 전설을 입은 한 쌍의 나무가 서 있다. “팽나무인가요? 느티나무인가요?” “느티나무는 봄에 가장 늦게 싹을 틔우고 가을엔 가장 빨리 낙엽을 떨어뜨리죠. 이맘때 유난히 노란빛을 띤 나무가 있다면 느티나무입니다.” 이제는 구별할 수 있게 된 것인가. 팽나무는 열매로 새총을 쏘면 팽 소리가 나고 때죽나무는 열매를 찧어 물에 풀면 물고기들이 기절해 떠오른다는데, 실험까지는 보류다.

왕의 기운을 바라며 쌓은 소원들
왕의 기운을 바라며 쌓은 소원들

서순덕 에코 매니저의 뒤를 쫓아 수변탐방로, 구룡천 생태연못, 편백나무숲, 단풍나무숲 등을 이동하는 동안 숲의 사계가 그녀의 입으로 그려졌다. 흐드러졌던 산수국은 흔적으로만 남았지만, 참나무, 도토리나무, 산뽕나무, 층층나무는 여전하다. 허리 아플 때 달여 먹으면 좋다는 쥐똥나무 열매가 필요하다 싶을 때쯤, 회초리로 활용되었던 참싸리 나무가 ‘어허!’ 하고 주의를 준다. 소금나무(붉나무), 생강나무를 사용하는 조상들의 지혜, 고사리와 고비 구별법, 수련과 연꽃 구별법을 배웠고 향이 좋아 꽃차로 이용하는 꽃향유, 딸을 낳으면 한 그루씩 심어서 시집갈 때 농을 짜 주었다는 오동나무의 쓰임도 배웠다. 숲은 자연에게도 인간에게도 잘 살아가는 ‘살림’의 근원이다.

세월의 이끼 위로 낙엽이 털썩
세월의 이끼 위로 낙엽이 털썩

성수산에는 메타세쿼이아, 리기다소나무, 편백나무가 많고 여러 종류의 낙엽송이 있다. 특히 수령 50~60년을 자랑하는 편백나무가 성수산 일대에 12만 그루나 자라고 있다. 피톤치드 가득한 편백나무 숲에선 가만히 앉아서 숨만 쉬어도 이득이다. 휴양림의 조경공사를 맡았다가 에코 매니저로 활동하게 되었다는 심일현 소장이 가장 애틋하게 생각하는 건 은행나무다. “냄새 싫다고 가로수도 다 바꾸는 추세지만 너그럽게 좀 봐 주세요. 은행나무가 알고 보면 멸종 위기종입니다.” 사실이다. 은행나무의 ‘종속과목강문계’에서 지금의 은행나무만이 빙하기 이후 살아남은 유일한 종이다. 인간으로 치면 세상의 모든 포유동물이 사라지고 인간만 남은 것과 같다고. 은행나무의 영생을 기원하며 돌탑을 하나 얹었다.  

한데 모인 성수산 에코 매니저
한데 모인 성수산 에코 매니저

*성수산 | 해발 875m. 성수산의 이름은 백일기도를 끝내고 못에서 목욕하던 고려 태조 왕건에게 하늘로부터 용이 내려와 몸을 씻어 주고 승천했는데 이때 하늘에서 ‘성수만세(聖壽萬歲)’ 소리를 들은 것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성수만세는 임금이 오랜 삶을 누리기를 비는 말이다. 

홉 줄기로 자란 상이암 화백나무
홉 줄기로 자란 상이암 화백나무

●왕의 눈으로, 아이의 눈으로  


상이암에 오르니 시선을 압도하는 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설마 이게 청실배나무인가요?” 척척 대답해 주는 에코 매니저가 있으니, 나무만 보면 묻는 습관이 생겼다. 대답은 ‘아니요’다. 아홉 그루 나무를 합쳐 놓은 모양새로 아름드리를 이룬 수령 120년 화백나무라고 했다. 9개의 계곡, 9마리의 용의 상징성과 묘하게 연결된다. 고대했던 청실배나무는 요사채 뒤 산기슭에서 보살처럼 모두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전국적으로 희귀하다는 청실배나무는 과수 농장에서 흔히 보던 땅딸막한 배나무와 달리 키가 크고 잎이 무성한 거목이었다. 진안 마이산 은수사에도 태조가 심었다는 청실배나무가 있는데, 이곳 성수산 상이암에서도 발견되어, 왕의 숲 깃대종으로 지정됐다. 

전국적으로 귀하다는 청실배나무
전국적으로 귀하다는 청실배나무
상이암으로 가는 길 곳곳에 소원이 쌓였다
상이암으로 가는 길 곳곳에 소원이 쌓였다

왕좌에 올라가는 심정으로 바위를 올라갔다. 600여년 전 이성계가 100일 기도를 드린 후 하늘의 계시를  들었다는 자리다. 그래서 상이암(上耳庵)으로 불린다. 과연 발아래로 모든 것이 펼쳐지자 세상의 중심에 선 듯하다. 하지만 이름대로라면 보는 것보다 듣는 것이 더 중요하다. 상이암 대선 스님께 말씀을 청했다. “상이암의 한자를 달리 풀이하면 다르게 보라는 뜻도 됩니다. 저 바위의 다른 이름은 향로봉입니다. 봄이면 정상에 진달래꽃이 만발하는데, 그 모습이 마치 향을 피워 놓은 것 같다고 해서 아이들이 부르던 이름이죠.” 승자의 기록에는 아홉 마리 용이 여의주를 물려고 다투는 구룡쟁주(九龍爭珠)의 기운이 서린 ‘여의봉’이지만, 마을 아이들에게는 그저 빨갛게 꽃이 핀 봉우리였다는 것이다. 어느 이름이 더 좋은가? 

왕건과 이성계가 기도했다는 향로봉과 삼청동(三淸洞)비가 모셔진 비각
왕건과 이성계가 기도했다는 향로봉과 삼청동(三淸洞)비가 모셔진 비각
계곡 옆 대숲
계곡 옆 대숲

그로부터 10분 동안 생과 사, 나와 너, 지옥과 극락은 물론 타 종교를 넘나들며 쏟아지는 질문 공세에 스님은 기다렸다는 듯,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의 말씀으로 모든 번뇌를 수렴했다. 너무 쉬워서 알아듣지 못할 수가 없었던 스님의 가르침으로 각자의 세계관이 심하게 요동친 시간이었다. 

만발한 용담
만발한 용담
에코 매니저 심일현 소장
에코 매니저 심일현 소장

흔들린 세계관 때문인지, 허기 때문인지, 되짚어 내려오는 길이 유난히 어질어질했다. 방문자센터 공사장의 임시 컨테이너가 식당이 되어 주었다. 이종현 에코 매니저가 밤늦게까지 정성 들여 준비한 생태 도시락은 밥버거였다. 돼지고기와 쇠고기를 갈아 손수 만든 패티가 부서지지 않도록 오븐에 구웠고, 두툼한 달걀부침까지 적상추, 청상추 사이에 끼워 넣었다. 소스는 감과 꿀을 넣어 직접 담근 고추장이다. 버거지만 밥이므로 따스한 된장국과도 잘 어울렸고, 후식으로 준비한 당근 빵은 식혜와 궁합이 잘 맞았다. 도시락 구성을 모니터링을 하는 중이라 메뉴와 포장 용기는 아직 고민 중이다. 생태적인 관점으로 바라보면 한 끼니 식사부터 달라져야 한다. 흔들린 세계관에 생태의 관점이 하나 더 들어온 것이다.  

정성 가득한 밥버거 생태도시락
정성 가득한 밥버거 생태도시락

▶임실 성수산 왕의 숲 생태관광지 


현재 성수산은 자연휴양림과 왕의 숲 생태관광지 조성 사업이 한창이다. 공사가 끝나면 넉넉한 주차장을 갖춘 방문자센터와 캠핑장, 산장 등 편의시설이 들어서는 것은 물론, 아침맞이길, 편백나무 힐링공간, 야자매트길, 생태수목원 등으로 자연에 접근하기도 쉬워진다. 왕과 함께 생태 숲 트레킹은 편백나무 숲을 지나 상이암까지 이어진다. 왕건과 이성계의 전설도, 성수산 깃대종인 청실배나무도 거기에 있다. 
주소: 전라북도 임실군 성수면 성수리 산 124 
전화: 063 640 2603(임실군청 문화관광치즈과)

 

글 천소현 기자  사진 김민수(아볼타)  
취재협조 전라북도생태관광육성지원센터 www.jb-ecotour.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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