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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호상의 항공 이야기] 이 시국에 비행이라니요!

  • Editor. 유호상
  • 입력 2021.01.01 13: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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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와이로 가지 않는 하와이행 비행기.
도착지 없이 출발하는 비행기.
사연이 깊은 코로나 시대의 씁쓸한 풍경.

하와이의 거북이 ‘호누’ 도장을 한 ANA의 A380 ©ANA
하와이의 거북이 ‘호누’ 도장을 한 ANA의 A380 ©ANA

●A380이 뜨다 


지난 8월 일본 나리타공항 활주로. 하와이를 상징하는 귀여운 거북이 ‘호누(Honu)’로 도장된 전일본공수(ANA)의 호놀룰루행(NH2030) A380에 사람들이 탑승을 시작했다. 탑승객들은 하와이 전통 셔츠를 입고 비행기 탑승에 앞서 기념 촬영을 하며 즐거워했다. 손에는 하와이 사진, 모형 비행기, 인형 등이 담긴 각종 기념품 패키지가 들려 있었다.

 

이윽고 활주로를 날아오른 비행기에서는 기다리던 기내식이 나왔고, 그 사이 기수는 동쪽을 향했다. 하지만 이 비행기는 1시간 30분 만에 착륙했다. 게다가 그곳은 하와이가 아니었다! 일본 인근을 돌다가 다시 나리타공항으로 돌아온 것이다. 일명 ‘유람비행’이었다. 가장 비싼 일등석은 5만엔(약 56만원), 가장 저렴한 통로 쪽 일반석은 1만4,000엔(약 15만원)이나 했지만 당초 계획했던 정원의 약 150배가 넘는 신청 인원이 몰렸다. 하와이는 전통적으로 일본인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해외 여행지 중 하나다. 그러나 코로나19 때문에 갈 수 없게 되자 ANA에서 생각해 낸 아이디어였다.

 

한편 우리나라에서도 10월 아시아나항공이 오전 11시 인천공항을 이륙해 강릉, 포항, 김해, 제주 상공을 비행한 뒤 오후 1시20분경 다시 인천공항으로 돌아오는 2시간 비행 일정의 ‘A380 한반도 일주 비행’ 상품을 선보였다. 판매 가격은 좌석 클래스에 따라 20만5,000원~30만5,000원이다. 기내식과 특별 어메니티가 제공됐으며 심지어 마일리지까지 적립이 됐다. 특히 평소 접하기 힘든 비즈니스석은 인기가 폭발해 판매 개시 수십분 만에 매진됐다. 이때 운항한 기종 역시 A380이었다. 

©ANA
마치 하와이에 가는 것처럼! 하와이 기념품을 받고 즐거워하는 ‘유람비행’ 승객들
마치 하와이에 가는 것처럼! 하와이 기념품을 받고 즐거워하는 ‘유람비행’ 승객들 ©ANA

●띄워야 산다


‘목적지 없는 유람비행’ 상품은 호주나 타이완 등에서도 인기를 얻었다. 뭘 저렇게까지 해가며 비행기를 타나 싶지만, 여행에 목마른 여행자와 영업을 하지 못하는 항공사 이 둘의 절충안이 이렇게도 나올 수 있다는 것이 흥미롭다.

 

특히 코로나 사태 이후 운항을 거의 하지 못하고 엄청난 비용만 감수하던 항공사에게는 새로운 수익 창출의 기회다. 물론 손실을 메꾸기에는 역부족이다. 비행기는 운항을 못 하면 승객으로부터 들어오는 수입만 줄어드는 게 아니다. 비행기와 관련 시설을 유지하는 비용은 고스란히 들어간다.

 

예를 들어, A380 1대의 공항 주기(주차) 비용만 해도 하루 3,000만원이 들어간다. 수익은 둘째 치고 이러한 비용만 절감해도 감지덕지인 셈이다. ‘끝물인 A380’을 이제야 막 들여온 ANA 항공은 사정이 있다. 인수한 항공사(티마크항공)가 이미 ‘지른’ 것들을 함께 거두어들일 수밖에 없었던 것인데, 그나마 늘 미어터지는 하와이 노선에 투입하면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될 줄은 꿈에도 모른 채. 심지어 3호기도 있다. 아시아나항공 역시 A380을 6대나 보유하고 있다. 처분하기 전까지는 어떻게든 활용해야 할 상황이다.

점점 입지가 줄어들고 있는 아시아나항공의 A380 ©wikipedia
점점 입지가 줄어들고 있는 아시아나항공의 A380 ©wikipedia

●그들의 속사정


이런 표면적인 이유를 떠나 사실 항공사로서는 더 절실한 속사정이 있다. 예를 들어, 단지 수익이 목적이라면 기름 적게 먹는 작은 비행기를 띄워도 될 것을 굳이 초대형 A380으로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법규상 조종사는 90일 이내 최소 3회 이상 항공기 이착륙 비행을 실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운전면허를 따면 이 차, 저 차 다 몰 수 있는 우리와 달리 조종사들은 면허가 기종별로 제한되어 있다. 다른 흔한 기종들은 비록 실제 운항을 못해도 조종사의 비행 경력을 시뮬레이터 등으로 유지하기가 쉽지만, A380의 시뮬레이터는 그리 흔한 것이 아니다 보니 보유하지 않고 다른 항공사에 의뢰해서 쓰는 항공사들이 많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다. 시뮬레이터가 없는데 해당 기종 조종 자격을 상실하지 않게 하려면 빈 비행기라도 띄워야 하는 것이다.

 

조종사 면허의 효력 유지를 위해 기름 많이 먹는 A380을 띄울 때 승객 몇 명이라도 ‘모시고’ 난다면 기름값에 보탬도 되는 것이니 일석이조! 2021년, 올해는 유람 목적이 아닌 진짜 여행 목적으로 뜨는 비행기가 늘어나길 간절히 기대한다. 


*유호상은 어드벤처 액티비티를 즐기는 여행가이자 항공미디어 에디터로 활동 중이다. 인스타그램 oxenholm

글 유호상  에디터 강화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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