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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해진미로 넘쳐났던 겨울의 장흥

두 남자의 탐식도시

  • Editor. 최갑수
  • 입력 2021.01.01 13: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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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박 3일간 장흥에서 먹고 또 먹었다. 체중이 2kg은 늘어났다. 그래도 다시 먹으라면 가서 또 먹겠다. 향긋한 굴과 진한 맛의 쇠고기와 연하고 연한 주꾸미 샤브샤브. 그리고 조개찜이며 백반이며 짜장면. 지금도 장흥만 생각하면 군침이 돈다.

 

●장흥에서 놀고먹기


장흥은 봄날이었다. 서울은 영하 2~3도 근처를 맴돌고 있었지만, 장흥의 공기는 따뜻했고 말랑거렸다. 드론을 날리기 위해 찾아간 천관사 앞마당의 목련나무는 꽃봉오리가 여물고 있었다. “이러다 꽃 피겠다. 쑥이라도 캐러 갈 날씨다.” 이번 여행에 함께한 ‘놀고먹기연구소’ 이우석 소장이 말했다.


그와 함께 오랫동안 같은 ‘바닥’에서 밥을 벌어 먹고 살았다. 그가 신문사 여행기자로 일할 때 나도 여행기자로 일했다. 브라질, 부탄, 인도 등 해외 취재를 함께 많이 다녔다. 알고 지낸 세월이 벌써 20년이 훌쩍 넘었다. “우리 같이 온 국내 취재는 처음이네.” 그가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그렇군요. 국내는 장흥이 처음이군요.” 이번 여행은 내가 따라붙었다. 고기 중에 제일 맛있는 고기는 남이 사 주는 고기이듯, 취재 여행 중에 제일 재미난 취재 여행은 남이 짜 놓은 스케줄에 숟가락 하나 얹는 것이다. 게다가 이번 여행의 기획자는 놀고먹는 데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이우석. 게다가 여행지는 장흥이다. 그와 함께 장흥으로 왔으니 재미없고 맛없을 수가 없다.

장흥 앞바다. 주꾸미, 낙지, 장어, 바지락, 키조개, 매생이를 품은 풍요로운 바다다
장흥 앞바다. 주꾸미, 낙지, 장어, 바지락, 키조개, 매생이를 품은 풍요로운 바다다

●부드럽지만 쫄깃합니다, 주꾸미 샤브샤브


“뭐부터 먹습니까?” 짐을 풀고 호텔을 나서며 내가 물었다. ‘탐식도시’의 영원한 첫 질문. “주꾸미 샤브샤브부터 먹자.” 이우석 소장이 말했다. “주꾸미는 봄에 맛있잖아요. 지금은 11월인데…?” 내가 말을 흐리자 “장흥은 겨울에도 주꾸미가 맛있다. 따라온나!” 그가 성큼성큼 앞장섰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삭금식당’이라는, 간판 색이 바랜 자그마한 식당 앞. 출입문 옆에는 푸른색 수족관이 놓여 있었는데 수족관 유리 벽에는 화성인처럼 생긴 주꾸미들이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며 아, 여긴 도저히 관광객이 접근하기 힘든 포스의 집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골냄비 안에 담긴 육수는 보기에도 맛이 진해 보였다. 그럴 수밖에. 요리용 집게로 육수를 휘휘 저어 보니 한우 차돌박이와 표고버섯이 잔뜩 담겨 있었다. 그 옆에는 주꾸미가 가득 담긴 플라스틱 바구니가 놓여 있었다. 빨리 먹고 싶다. 보글보글 끓고 있는 육수가 ‘쳐다만 보지 말고 어서 주꾸미를 살짝 담궈!’라고 속삭이는 것 같았다. 상쾌한 미나리 향도 옅게 올라왔다. “자, 이제 먹어 봅시다!” 하고 주꾸미를 육수에 넣으려 하자, “잠깐!” 주인 아주머니가 달려와 집게를 빼앗았다. “처음에는 내가 해 줄게!” “아닙니다, 저희가 해도 되는데요.” “안돼. 니들이 하면 질겨.”


주꾸미를 건져 내며 아주머니가 설명했다. “이 주꾸미는 그냥 산 채로 먹어도 좋을 만큼 싱싱한 거야! 그러니 살짝만 익혀 먹어!” 이후 아주머니는 ‘살짝’을 여러 번 강조했다. 주꾸미가 붉은색으로 변할 만큼 익으면 맛이 없는 거다. 그러니 다시 강조하지만 ‘살짝만’ 익혀 먹어야 한다. 하지만 서울에서 온 ‘촌놈’은 그게 잘되지 않아 아주머니로부터 여러 번 핀잔을 듣게 되는데….

용두동 삭금주꾸미의 주꾸미 샤브샤브. 입에서 녹는다
용두동 삭금주꾸미의 주꾸미 샤브샤브. 입에서 녹는다

주꾸미를 육수에 담그던 이우석 소장이 말했다. “뭔가, 괜히 미안한 감정이 든다.” “아, 그렇군요.” 나는 육수 위로 살짝 떠올라 있는 주꾸미의 머리와 부드럽게 빛나는 이 소장의 머리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반짝. “저라도 모자를 쓰고 먹을게요.” 이우석 소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육수 속의 주꾸미 머리는 이미 붉은색으로 변해 있었고 아주머니는 어느새 달려와 집게로 주꾸미를 건져 내며 말했다. “살짝만 익히라니까!”


이후 한눈팔지 않고 주꾸미에 집중했다. 진지하게 주꾸미를 데쳤다. ‘살짝만’ 익히기 위해 주꾸미를 육수에 담그고 마음속으로 다섯까지 숫자를 세었다. “빨리 빼!” 조금이라도 늦으면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5초간 육수 속을 헤엄친 낙지는 부드러우면서도 쫄깃했다. ‘부드럽다’와 ‘쫄깃하다’는 양립할 수 없는 표현이지만 진짜 그랬다. 게다가 탱탱하기까지 했다. 서울에서 먹던 냉동 주꾸미와는 차원이 달랐다. 샤브샤브는 정말이지 꾸밈없는 음식이다. 오직 재료의 질로 정면승부하는 음식이다. 주꾸미를 먹다 가끔 건져 먹는 차돌박이는 주꾸미의 지루함을 덜어 주었다. 그러다가 미나리를 건져 먹었고 상쾌해진 입 안으로 다시 주꾸미를 넣었다.


주꾸미로 충분히 배가 불렀지만 우리는 또 우동사리를 넣어 끓여 먹었다. 주꾸미로만 끝내는 건 주꾸미와 차돌박이와 표고버섯과 미나리가 어울려 빚어낸 완벽한 육수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다. 후루룩후루룩, 우동을 다 먹고는 다시 밥을 비볐다. “그래도 밥은 먹어야지!” 아주머니는 포만감으로 널브러져 있는 우리를 흐뭇한 눈길로 바라보며 전골냄비를 수거해 갔다. 그리고 얼마 뒤 먹음직스럽게 비벼진 밥이 담겨 있는 전골냄비를 내왔다. 맛만 보자. 하지만 바닥이 드러날 때까지 우리는 숟가락을 멈출 수 없었다.

용두동 삭금주꾸미
주소: 전남 장흥군 장흥읍 물레방앗간길 14
전화: 061 864 6161

 

●조개로 정면승부하는 조개찜


주꾸미 집을 나와 2차를 갔다. 그렇게 먹고서도 2차를 갈 수 있다니 지금 생각해도 신기하다. 2차는 ‘사계절 포장마차’라는 조개찜 집이었다. 아, 여기도 보통은 아니군. 역시 관광객이 함부로 접근할 만한 집은 아니야. 예상대로 실내에는 장흥군민으로 가득했다. 외지인인 우리는 북극에 불시착한 펭귄처럼 두리번거리며 자리에 앉았다.


자리에 앉으니 직경 1m는 족히 될 만한 커다란 스테인리스 찜통이 올려졌다. 찜통 뚜껑 위에 은박지로 싼 벽돌 하나를 얹으며 종업원이 말했다. “15분 후에 드세요.” 나는 조용히 휴대폰의 시계 어플을 켜고 타이머를 15분에 맞췄다. 장흥에서는 음식을 먹을 때 주인이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 그래야 맛있게 먹을 수 있다. 


12분쯤 지나자 찜솥은 증기기관차처럼 하얀 김을 내뿜기 시작했다. 그사이 우리는 이미 소주와 맥주, 막걸리를 몇 병 비우고 있었다. 이우석 소장이 눈으로 말했다. ‘지금 열까?’ 나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기다려 보자구요.’ 15분이 되자 종업원이 왔다. 그는 벽돌을 내리고 뚜껑을 열었다. 솥에는 가리비와 모시조개, 바지락이 가득 들어 있었다. 도대체 지금까지 우리가 먹었던 조개찜은 뭐였단 말인가. 세상의 모든 조개찜을 초라하게 만들어 버리는 비주얼이었다. 우리는 ‘와’ 하는 감탄사와 함께 일제히 나무젓가락을 쪼갰다. 또 먹어 보자꾸나.

사계절포장마차의 푸짐한 조개찜. 5만원짜리 한 판이면 어른 넷이 푸짐하게 먹는다
사계절포장마차의 푸짐한 조개찜. 5만원짜리 한 판이면 어른 넷이 푸짐하게 먹는다

가리비는 달짝지근한 육즙이 가득했다. 겨자를 살짝 푼 간장에 찍어 먹으니 입 안은 금세 화려한 맛으로 넘실댔다. 사실 조개찜, 조개구이는 내가 좋아하는 음식은 아니다. 먹을 때 번거로운 음식은 딱 질색이다. 게다가 을왕리, 대부도에서 먹었던 조개찜과 구이는 최악이었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고, 맛에 비해 턱없이 비싸기만 하다는 생각을 먹을 때마다 했던 것 같다(누가 사 주니 먹었을 뿐이다).


그런데 장흥의 조개찜은 달랐다. 더없이 간결했지만, 더없이 맛있었다. 갖출 것을 다 갖추고도 겸손한 사람 같았다. 양도 많아서 5만원짜리 한 상이면 어른 넷이 충분히 먹을 정도였다. 자리에 함께한 장흥군청 관광과 전희석 주무관에게 물었다. “장흥 사람들은 맨날 이런 거 먹고 삽니까?” 전희석 주무관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아, 네, 뭐, 그런 셈이죠. 이런 거 말고는 먹을 게 없어요. 맨날 낙지나 먹고 조개나 먹고 그러죠잉.”


조개찜 한 바가지를 먹고 숙소로 들어와 침대에 누웠다. 역시 여행은 우리를 놀라게 한다. 그것이 바로 여행의 가장 큰 매력이다. 물론 실망스럽고 힘들 때도 있지만 역시 여행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일 중 하나다. 이토록 맛있고 푸짐한 주꾸미와 가리비라니! 시계를 보니 10시였다. 슬슬 잠이 왔다. 오늘도 열심히 먹은 기분 좋은 하루였다. 


사계절포장마차
주소: 전남 장흥군 장흥읍 건산리 737-11
전화: 061 863 1159

 

●밥상에서 입은 최선을 다해야 한다


취재를 갈 때마다 언제나 아침이 마땅치 않다. 대개 일정을 아침 일찍부터 시작하는데 24시간 해장국집 말고는 갈 만한 데가 별로 없다. 밥과 국 그리고 몇 가지 반찬이 나오는 백반집이 있으면 더없이 좋겠지만 또 은근히 흔하지 않은 곳이 백반집이다. 


장흥 토요시장에 있는 ‘시골집’은 전희석 주무관이 추천해 준 곳이었다. 전날 조개찜 집에서 어딘가 전화를 걸던 그가 말했다. “내일 시골집 아침은 김치찌개랍니다. 아침 식사는 거기 가서 드세요.” 매일매일 국이 바뀌는 집이라고 했다. 역시 관광객은 알기 힘든 집이군. 현지에서는 현지인의 말을 따라야 한다. 여행자의 첫 번째 원칙.


둥근 양철통으로 만든 식탁이 4개 그리고 10명 정도가 앉을 수 있는 좌식 테이블이 있었다. 우리는 인원수대로 백반을 시켰다. 물을 따르며 앉아 있는데 군청 환경과 직원으로 보이는 듯한 분들이 6~7명 들어왔다. 주인과는 서로 잘 아는 듯 자리에 앉더니 주방에 놓인 반찬을 알아서 접시에 담아 식탁으로 가져갔다. 그리고는 밥통을 열어 익숙한 동작으로 공깃밥을 꺼냈는데, 그 공깃밥은 곧장 우리 테이블로 왔다. 


“아주머니가 바쁘니께, 그냥 우리가 드릴게요.” 동네 밥집다운 다정한 풍경. 마냥 감사합니다.
반찬은 무려 12가지였다. 김치찌개에는 비계가 튼실하게 붙은 돼지고기가 잔뜩 들어가 있었다. “역시 김치찌개엔 돼지고기지. 누가 감히 김치찌개에 참치 따위를 넣는단 말인가.” 이우석 소장이 말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그건 분명 옳지 않은 일입니다.” 한때 페이스북을 달궜던 ‘김치찌개엔 돼지고기 vs. 참치’ 논쟁이 화두에 올랐지만, 곧 잠잠해졌다. 숟가락질이 바빴기 때문이다. 밥상에서 입은 밥을 먹는 데만 최선을 다해야 한다.

시골집의 아침상. 반찬 12개가 나오는 백반이 1인분에 고작 6,000원이다. 국과 찌개는 매일 바뀐다
시골집의 아침상. 반찬 12개가 나오는 백반이 1인분에 고작 6,000원이다. 국과 찌개는 매일 바뀐다

밥을 먹다가 문득 어제 전호석 주무관이 한 말이 떠올랐다. “계란말이는 꼭 드쇼잉. 무지무지 크고 맛나니께요.” 아주머니 여기 계란말이 하나요! 우리는 서둘러 계란말이를 주문했고 다행히 밥을 다 먹기 전에 계란말이가 나왔다. 아주머니가 갖다 준 접시에는 잘 구운 노란 벽돌 한 장이 올라가 있었다. 묵직하고 단단한 ‘계란 벽돌’은 김을 모락모락 피워 올리고 있었다. “계란말이 먹을 때 눈치 보지 않아도 되겠군!” 하며 이우석 소장이 젓가락으로 한 점을 집어 들었다. “계란 10알은 들어갔겠다.” “더 들어갔을 수도 있을 거 같아요.” “이게 고작 만원이라니!” 찬사가 쏟아졌다. 


아침을 먹고 나와 우리는 각자의 취재를 위해 흩어졌다. 그리고 열심히 일했다. 보림사에도 가고, 이청준 생가며 편백숲 우드랜드도 촬영했다(무작정 먹기만 하는 건 아니랍니다). 점심은 바지락회 무침으로 가볍게(?) 해결했다. 뱃속에는 어제 저녁에 먹은 주꾸미와 가리비와 12가지 반찬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지만 그래도 바지락회 무침 한 그릇이 들어갈 공간은 있었나 보다. 인간의 위장은 참 위대하다.

시골집
주소: 전남 장흥군 장흥읍 토요시장3길 15A
전화: 061 863 2627

정남진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장흥 바다
정남진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장흥 바다

●장흥의 산과 들과 바다를 한입에, 장흥삼합


2일째 저녁은 장흥삼합이었다. 장흥삼합은 한우와 표고버섯, 그리고 키조개 관자를 함께 구워 먹는 것을 말하는데, 한우의 진한 고기 맛과 표고버섯의 감칠맛, 관자의 부드러운 맛이 어우러져 환상적인 맛을 빚어 낸다. 들판과 산, 바다의 기운을 한 번에 맛보는 별미인 셈이다. “장흥은 인구보다 한우 숫자가 더 많아. 인구가 3만5,000명 정도 될 건데, 한우는 아마 5만 정도 될 걸?” 이우석 소장이 말했다. 가격도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서울 반값 정도 된다는 이 소장의 말에 속으로 ‘음, 그렇다면 키조개와 표고버섯은 피하고 한우만 집중공략 해야겠군!’ 하고 생각했지만, 막상 먹어 보니 한우와 키조개, 표고버섯을 3층으로 쌓아 먹는 것이 훨씬 맛있었다. 한우의 고소하고 기름진 맛과 키조개의 부드러운 식감, 표고버섯의 감칠맛이 어우러져 폭발적인 맛을 만들어 냈다. 도대체 이런 조합을 개발한 사람은 누굴까. 지금까지 내가 먹어 본 음식 중에 가장 완벽한 조합이었다.

겨울 장흥을 대표하는 맛은 굴이다. 알이 크고 향이 진하다
겨울 장흥을 대표하는 맛은 굴이다. 알이 크고 향이 진하다
커다란 양철 솥 위에 주먹만 한 석화를 올려놓고 구운 후 칼로 껍질을 까먹는다
커다란 양철 솥 위에 주먹만 한 석화를 올려놓고 구운 후 칼로 껍질을 까먹는다

그리고 굴. 11월 장흥을 찾았을 때는 굴이 나오지 않았지만, 12월 다시 장흥을 찾았을 때는 굴이 나오고 있었다. 관산읍 쪽에 굴구이 집이 늘어서 있는데, ‘사계절 굴구이’라는 곳에 갔다. 불판 위에 굴을 한가득 올려 놓고 장갑을 끼고 둘러앉아 굴을 까먹는다. 툭, 툭 굴의 입이 벌어지고 향긋한 굴 한 알을 집어 입속으로 가져간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바다가 한가득 밀려오는 느낌이다. 여기에 장흥 막걸리(술도깨비라는 아주 좋은 막걸리가 있다) 한 잔이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내 알 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세상에는 오직 타닥타닥 굴이 익어 가는 소리가 있을 뿐이다.

영춘원의 볶음밥. 고슬고슬하게 잘 볶았다
영춘원의 볶음밥. 고슬고슬하게 잘 볶았다

장흥에서의 마지막 식사는 ‘영춘원’이라는 중국집이었다. 영춘원에 들어서려는데 배달을 다녀온 듯한 오토바이가 입구 쪽으로 드리프트를 하며 미끄러져 들어왔다. 오토바이에서 내린 사람은 주인 아주머니였다. 역시 관광객은 알기 어려운 집이군. 영춘원은 장흥에서 40년째 문을 열고 있다고 했다. 추천 메뉴는 간짜장. 소스를 짜지 않고 부드럽게 볶은 것이 특징이다. 면발도 부드러워 잘 넘어갔다. 면 위에 올라간 잘 ‘튀긴’ 계란 프라이가 압권이었다. ‘국밥’이라고 부르는 짬뽕밥도 맛있다. 계란 노른자를 하나 띄워 나오는데 이것 때문에 국물이 아주 부드럽다. 식사를 마치고 나와 이우석 소장이 말했다. “잡채밥 못 먹은 게 좀 아쉽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영춘원의 간짜장.장흥 사람들이 사랑하는 중국집이다
영춘원의 간짜장. 장흥 사람들이 사랑하는 중국집이다

장흥에서 광주 송정역으로 가 서울행 KTX를 탔다. 창밖으로 스산한 겨울 풍경이 스쳤다. 그 풍경 위로 자꾸만 영춘원에서 잡채밥을 먹어 보지 못한 후회가 함께 스쳤다. 볶음밥을 먹어 보니 잡채밥도 맛있을 것 같았는데…, 요즘 잡채밥 제대로 하는 곳이 드문데…, 다음에는 꼭 잡채밥을 먹어야지…. 잡채밥, 잡채밥, 잡채밥…. 하다가 스르륵 잠이 들었다.  

사계절 굴구이
주소: 전남 장흥군 관산읍 고마리 41-4
전화: 061 867 2088


영춘원
주소: 전남 장흥군 장흥읍 동교3길 38
전화: 061 863 2476 


*두 남자의 탐식도시
탐식도시는 세 명의 남자가 함께였습니다. 최갑수 작가, 레이먼 킴 셰프, 박찬일 셰프. 하지만 코로나로 상황이 여의치 않았습니다. 같이할 수 없었기에 잠시 두 남자의 탐식도시로 찾아왔습니다. 여전히 맛을 느끼고 분석하고 쓰는 사람의 여행 이야기입니다. 아, 이번 여행은 놀고먹기연구소 이우석 소장이 함께했습니다. 

 

글·사진 최갑수  에디터 강화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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