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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호상의 항공 이야기] ‘까먹지 않는’ 그들만의 비결

  • Editor. 유호상
  • 입력 2021.02.01 08: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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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야 할 일을 깜박하는 실수는 누구나 하기 마련. 
하지만 이런 작은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 사람이 있다. 조종사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체크리스트’를 사용한다.

이륙할 때의 체크리스트에는 특히 많은 절차가 있다 ©WikimediaCommons
이륙할 때의 체크리스트에는 특히 많은 절차가 있다 ©WikimediaCommons

●망각이 초래한 비극 


2016년 4월 어느 밤, 아프가니스탄에 있는 미 공군 기지. C-130J 허큘리스 수송기 한 대가 화물을 싣고 내리며 이륙을 준비하고 있었다. 적재를 완료한 수송기는 화물 도어를 닫고 이륙했다. 그런데 상승하던 비행기의 기수가 자꾸 들리며 속도가 떨어지고 추락 위험 경보가 울리기 시작했다. 조종사들은 당황했다. 기수를 내리기 위해 필사적이던 조종사들은 조종간이 앞으로 움직여지지 않아 이를 수행할 수가 없었다. 이 수송기는 결국 과도하게 기수가 올라가 속도와 양력을 잃게 되자 그대로 추락했다. 정황상 기체 결함은 아니었다. 의아해하던 사고조사위원회는 블랙박스와 음성기록 장치의 분석을 통해 마침내 그 원인을 찾아내게 됐다. 너무나도 어이없는 실수로 인한 사고였다.

 

이 수송기는 비행기 뒤쪽에 대형 화물을 실을 수 있게끔 위아래로 여닫는 문이 있다. 하지만 간혹 부피가 큰 짐을 실을 때는 화물이 뒤쪽의 수평 꼬리날개에 닿기 때문에 조종사들은 조종간을 앞으로 당겨 수평 꼬리 날개를 위쪽으로 올려주고 있어야 했다. 한편 이렇게 짐을 싣는 동안 조종실에서는 두 조종사가 대화 중이었다. “이렇게 잡고 있어야 하는 건 정말 귀찮아. 내게 좋은 아이디어가 있는데, 이렇게 하면 어때?” 그는 야간 비행시 착용하는 야시경의 빈 케이스를, 당기고 있던 조종간과 그 앞 벽면 사이에 끼워 넣었다. 그러자 굳이 손으로 조종간을 당기고 있지 않아도 꼬리 날개가 들린 상태가 유지됐다. “훌륭한데!” 부조종사가 답했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이후 두 조종사는 야시경을 쓰고 정신없이 이륙 절차를 수행하다 보니 자신들이 방금까지 조종간 사이에 끼워 넣었던 야시경 케이스의 존재를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다. 앞으로 밀어지지 않는 조종간 때문에 수평 꼬리날개는 내려올 수 없었고 비행기는 결국 조종 불능 상태가 되고 말았다.

비행기에서 하는 모든 일은 체크리스트를 기반으로 한다 ©WikimediaCommons
비행기에서 하는 모든 일은 체크리스트를 기반으로 한다 ©WikimediaCommons

●비결은 체크리스트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이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 비행기를 운항할 때는 ‘체크리스트’를 작성한다. 비행기는 계기판에 100여 개의 크고 작은 조작 스위치가 있기에 조종 중 어떤 일을 하든 체크리스트로 확인해 가며 대응하도록 하고 있다. 이착륙할 때는 물론 비행 중 어딘가에 이상이 있어 조치가 필요할 때 조종사들은 체크리스트부터 펼쳐 놓는다. 아무리 베테랑 조종사라 해도 마찬가지다. 당황해서 항목과 순서를 빼먹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사소한 경우라 해도 자신의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매뉴얼을 보고 절차에 따라 처리하는 것이다. 그마저도 확인을 위해 기장이 읽으면 부기장이 복창을 한다. 덕분에 정신없거나 당황스러운 상황에서도 조종사는 중요한 절차를 빼먹는 실수 없이 안전하게 비행기를 운항할 수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신참 전투기 조종사들을 사고 없이 빨리 양성하여 투입하도록 처음 고안됐다는 체크리스트의 효과는 지금까지 그 가치가 충분히 입증됐다. 하지만 대부분의 조종사들은 체크리스트를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이유는 문제가 생겼을 때 매뉴얼부터 들여다보는 모습은 어딘가 전문가답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신이 잘 아는 것을 굳이 들여다보면서 하는 것도 지루한 절차라 느끼지 않겠는가.

●우리도 체크리스트


여행이나 출장 때 ‘대형사고’를 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공항에 도착해서 보니 여권을 놓고 왔다든가, 중요한 등록을 하지 않고 왔다든가 하는 경우들. 개인적으로는 이런 실수를 거의 하지 않는데, 여기에는 ‘나만의 체크리스트’ 비법이 있다. 바로 조종사들처럼 체크리스트를 만드는 것이다. 체크리스트라고 해서 꼭 종이로 만들 필요는 없다. 그저 여행을 갈 때 필요한 것들을 순서대로 머릿속에 상상해 본다. 집을 나서서 버스나 전철을 타고 공항으로 가고, 체크인을 하고 면세점에 들렀다가 비행기를 타는 모습을 하나의 흐름으로 시각화해 보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가지고 가야 할 각종 소지품들, 여권, 티켓, 휴대폰, 카메라 등이나 해야 할 일들을 빠트리지 않고 체크하는 것이다.

특히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본인이 지금 어딘가를 갈 때 혹은 무언가를 할 때 최종 목적이 무엇인지를 되새겨 보는 것이다. 공항에 몇 시까지 가느냐에만 신경 쓸 게 아니라 ‘공항에 왜 가지?’를 생각해 보는 것이 핵심이다. 그래야 여권이 필요하다는 것도 떠올릴 테니까. 체크리스트, 꼭 비행기 조종사에게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우리 일상에서도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다.  


글 유호상  에디터 강화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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