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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컷, 그 이후의 이야기

  • Editor. 강화송 기자
  • 입력 2021.02.01 08:4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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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완벽할 순 없으니까. 한 장의 A컷, 그 이후의 이야기.
어쩌면 오히려 더 여행에 가까울 <트래비> 에디터 3인의 조각들.

눈물의 디즈니 성  


입장한 순간 비상이다. 눈물 버튼 고장. 코너를 돌아 디즈니 성을 마주했을 때부터 눈물‘샘’은 마르지 않는 샘처럼 잘도 솟아났다. 올랜도 디즈니 월드에서 세상을 다 가진 듯 웃어야 할 2n년차 디즈니 덕후는 영화 속 캐릭터와 인사할 때마다 세상이 무너진 듯 꺼이꺼이 울어댔다. 헬로우, 흑흑. 아임 유어 팬, 엉엉. 그리고 대망의 마지막 피날레, 불꽃놀이. <토이스토리> OST를 듣는데 내가 눈물을 흘리는 게 아니라, 눈물이 나를 줄줄 흘려 보내고만 있다고 느껴졌다. 그래도 사진은 남겨야 한다며 자꾸만 울렁이는 눈을 비비고 꾸역꾸역 카메라를 들었다. 셔터는 대체 무슨 정신으로 눌렀는지. 초점은 다 나가고 기억조차 흐릿하다. 그래서 이날의 한 줄 요약. 울면서 들어갔고, 울면서 나왔다. 장담한다. 이날 올랜도 디즈니월드에서 가장 많이 운 사람은 나다. 

# 미국 올랜도 Orlando, U.S.A. 

곽서희 기자

왼손도 꽤 쓸 만해  


짬이 매우 빠듯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뮌헨으로 넘어가는 길. 다가온 탑승 시간에 캐리어 바퀴를 전속력으로 굴려 프랑크푸르트 중앙역(Frankfurt Central Station)에 가까스로 도착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기차가 연착됐다. 다시 돌아간다 해도 그렇게 달렸을 테지만, 어쩐지 억울한 맘이란. 플랫폼 벤치에 주저앉아 맥 풀린 다리를 달래며 차오른 숨을 몰아쉬었다. 아마도 좀 늦을 것 같다고. 전광판을 보던 아저씨는 어딘가에 전화를 건다. 곱게 머리를 묶은 여자는 철로에 시선을 응시한 채 손에 쥔 커피를 홀짝거린다. 이 또한 여행이려니, 그나마 힘 있는 왼손으로 카메라를 잡아 쥐었다(똑딱이라 가능했다). 그렇게 별다른 목적도 없이 찍힌 한 장의 사진에는 별다른 게 없다. 기다림이 있을 뿐이다. 다만 막연하지는 않은 기다림. 기차가 도착하면 우리는 모두 떠날 것이기 때문이다. 
# 독일 프랑크푸르트 중앙역 Frankfurt, Germany 

김예지 기자

목욕탕 아닙니다  

세이셸 라디그섬, 앙스 수스 다정 해변을 특별하게 만드는 존재가 있다. 돌이다. 지금으로부터 1억5,000만년 전부터 이곳에 자리한 화강암. 그 앞으로 길게 해변이 펼쳐지는데 수심이 얼마나 낮은지 수십 미터를 걸어가도 여전히 허리에서 바다가 찰박거린다. 그 모든 것을 사진 한 장에 담았다. 그런데 반신욕이라니. 사진을 보곤 누군가 그러더라. 아프리카는 역시 바다도 따뜻하구나, 아니면 화산섬이라 온천이 나오나. 먼저 세이셸은 화산섬이 아니다. 그리고 아무리 아프리카 바다라도 차갑다. 목욕탕 아니고, 깊은 것 아니고, 피부에 좋은 물도 아니다. 고여 있는 바다 웅덩이에 앉아 쉬는 사람들이다. 
# 세이셸 라디그섬 La Digue, Seychelles

강화송 기자

기도의 본질  

발리 사람들은 매일 기도를 올린다. 나뭇잎으로 엮어 만든 바구니에 꽃을 담아 신에게 감사하는 의식을 두고 사람들은 ‘짜낭사리(Canang Sari)’라고 불렀다. 꼭 꽃만 담으란 법은 없다. 과자, 돈, 심지어 담배까지. 바구니에는 저마다 가치 있는 것들이 올라간다. 아침 산책 삼아 나간 바닷가에서 누군가의 아담한 기도를 발견했다. 생각 같아선 볕이 든 쪽으로 살짝 옮겨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신성해서. 결국 어둠 속의 피사체는 초점도 제대로 맞지 않은 채 프레임에 담겼다. 오로지 타이밍의 문제다. 그때가 때가 아니었을 뿐 빛의 방향은 바뀌기 마련이니까. 꿈보다 해몽이라고, 정말로 간곡한 소원은 음지에서 곧잘 빌어지곤 한다. 해가 올 때까지.
# 인도네시아 발리 Bali, Indonesia

김예지 기자

아무나 와주라  

1월의 어느 아침. 프랑스 에트르타의 길거리는 우주의 달 같았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완벽한 진공 상태. 낯선 행성에 불시착한 여행자에겐 약간의 소란함이 필요했다. 예쁜 사진 한 장 남길 정도의 부산함. 그것 하나 바랐다. 여기도 아침이긴 하니까, 누군가 주린 배를 채우러 나오지 않을까. 하다못해 산책하는 고양이라도. 움직이는 생명체면 뭐든 좋으니 아무나 프레임에 담겼으면 했다. 인생, 참 아이러니하기도 하지. 바로 전날 같은 시각. 에펠탑 앞에선 사람이 많아도 너무 많아 구도를 방해하는 모든 피사체를 증오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먼발치에서 사람 형상만 스쳐도 감지덕지다. 오락가락한 마음 끝에 남은 건 밍밍한 사진 한 장 뿐. 양념이 좀 필요한데, 영 싱겁다.
# 프랑스 에트르타 Etretat, France 

곽서희 기자

아니 왜 그런 표정을  

얌전한 주황색과 천방지축 청록색이 섞이면, 그게 오키나와 색이다. 대학생 시절 한동안 일본 후쿠오카에서 살며 매달 한 번씩 오키나와를 찾았다. 고야 참푸르(여주 볶음)에 맥주 한 잔이 목적인 여행. 종종 사진도 찍었다. 오키나와가 가장 아름다울 때는 오후 3시다. 아주 옅게 주황빛이 오키나와 전역에 가득한 청록색에 섞이기 시작할 때. 이보다 이르면 사진이 너무 차갑고, 이보다 늦으면 사진이 너무 따뜻하다. 따뜻한데 차가워야 오키나와다. 오후 3시, 오키나와 국제거리에서 뛰어노는 아이를 촬영했다. 그런데 아저씨 애가 좀 뛰고 놀 수도 있지. 아니 왜 그런 표정을. 
# 일본 오키나와 국제거리 Okinawa, Japan

강화송 기자

제발 좀 비켜 줘

사진전 준비를 위해 괌에 머물며 수중촬영에 몰두했다. 날씨가 좋을 때 맑은 바닷속에서 촬영하면 특히 노란색이 강조된다. 운이 좋게도 노란색 꼬리를 살랑이는 열대어 무리가 카메라 앞에 잔뜩 모여들었다. 노란색 나비가 바닷속을 날아다니는 듯한 광경이 펼쳐졌다만, 유별난 것의 방해가 그때부터 시작됐다. 무슨 물고기인지는 모르겠으나, 왜 자꾸만 사진 중앙부에서 어슬렁거리는지. 자연보호구역으로 설정되었던 곳에서의 촬영인지라, 손으로 물고기를 치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몇 장을 촬영했는지 기억도 안 날 만큼 찍어댔다만, 끝내 모든 사진에 나오고만 그 녀석. 
# 미국 괌 Guam, U.S.A. 

강화송 기자

본의 아니게 스쿼트  

로스앤젤레스의 현대미술관 ‘더 브로드(The Broad)’에서 나는 30초째 쪼그려 앉아 있는 중이었다. 꽤 괜찮은 조합 같아서. 파란색 그림 앞에 선 커플(로 보이는 남녀)은 서로 짠 듯 각각 청 상의와 청 하의를 입고 있었다. 뷰 파인더에 눈을 맞추고 셔터를 누를 때만을 기다렸다. 이제 둘이 같이 그림을 바라보기만 하면 되는데. 1분, 1분 30초…. 허벅지는 불타는데 원하는 그림이 나오지 않는다. (체감상) 2분 20초 정도 지날 무렵 에라 모르겠다, 연신 찍어댔다. 결과는 같은 그림, 다른 시선. 근데 막상 지나고 보니 나쁘지 않은 것이, 보이는 게 다 같으면 재미없잖아.
# 미국 로스앤젤레스 더 브로드 Los Angeles, U.S.A.

김예지 기자

날씨가 죄지

그해 홍콩에선 유난히 인내하기 어려웠다. 사실 홍콩이 무슨 죄냐, 날씨가 죄다. 홍콩의 가을은 여름이었다. 11월11일, 빅토리아 피크 트램 대기줄. 빼빼로처럼 빽빽한 사람들 사이로 조금이라도 먼저 타기 위한 몸싸움들이 은근했다. 분명 저 뒤에 있었는데. 갈색 눈의 꼬마가 어느새 내 옆으로 바싹 붙었다. 얍삽한 녀석. 바로 앞 아저씨의 끈적한 겨드랑이 땀이 내 콧잔등을 스친다. 따끈한 분노가 올칵 올라온다. 이 순간 제일 간절한 건 맥주도, 에어컨도 아닌, 열차. 모두가 같은 곳을 바라본다. 카메라를 들었지만 렌즈가 아이스크림처럼 녹아 흐를 것만 같다. 바닥 난 인내심. 대충대충 셔터를 눌렀다. 결국 열차가 오긴 왔다. 달그락거리며, 느─릿하게. 당시엔 미처 몰랐던 사실 하나. 홍콩의 빅토리아 피크 트램은 올해로 133살이다.  
# 홍콩 빅토리아 피크 Victoria Peak, Hong Kong

곽서희 기자


글·사진 트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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