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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의 섬, 소안도

  • Editor. 김민수
  • 입력 2021.02.01 08:46
  • 수정 2021.02.17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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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을 오가는 여객선 3척의 이름조차 대한호, 민국호, 만세호다. 일제강점기에 수많은 애국지사를 배출한 섬. 
구국의 불길이 타올랐던 항일의 땅, 해방의 섬. 소안도를 걸었다. 

소안항과 비자리 사이 해수 담수호에 설치된 태극기 부표
소안항과 비자리 사이 해수 담수호에 설치된 태극기 부표

●비로소 안심하는 곳


완도 화흥포항에서 소안도까지는 1시간. 뱃길 말미에 노화도 동천항에 잠시 기항한다. 오래 전, 소안도는 제주를 오가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길목과 같은 섬이었다. 제주권을 벗어난 바다가 워낙 거칠고 험했기 때문에 뱃사람들은 이곳 섬에 도착한 후에야 비로소 안심했다고. ‘소안’이란 이름은 여기서 유래됐다. 소안도는 남북의 두 섬이 길이 1.3km, 폭 500m의 사주(沙洲)로 연결돼 있다. 2020년 11월 기준 주민 수는 2,500명이 넘고, 면적은 여의도의 3배 크기에 달한다.

비워지는 계절 속 한적함을 찾은 미라리 해변
비워지는 계절 속 한적함을 찾은 미라리 해변

●365일, 태극기 섬이 되다


소안항에서 멀지 않은 곳에 담수호가 있다. 본디 철새 도래지이자 고니의 월동 안식처로 알려진 담수호에 완도군은 최근 그물에 2,400여 개의 부표를 매달고 가로 18m, 세로 12m의 대형 태극기 문양을 만들어 띄웠다. 2015년 전라남도의 ‘가고 싶은 섬’으로 선정된 소안도를 브랜드화하기 위한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태극 문양을 띄운 데엔 이유가 있다. 소안도는 일제강점기 북청, 동래와 더불어 3대 항일 운동지로 꼽히는 곳이다. 당시 섬 주민들은 독립운동을 하다가 투옥된 애국지사들과 고생을 함께하자는 의미로 한겨울에도 이불을 덮지 않았다고 한다. 그 뜻을 기리기 위해 지금도 소안도에는 365일 하루도 빠짐없이 집집마다 태극기가 걸려 있다. 가구들이 가장 밀집해 있는 비자리와 가학리 사이 사주에는 소안항일운동기념관과 기념탑이 세워져 있다. 그곳에 있는 사립소안학교(항일의 정신적 산실이며 현재는 도서관으로 활용 중이다) 역시 1927년 일제에 의해 폐쇄됐던 것을 2005년 주민들의 기금으로 복원한 것이다. 

미라리 해변으로 이어지는 상록수림터널
미라리 해변으로 이어지는 상록수림터널
일본기는 결코 게양하지 않았던 사립소안학교
일본기는 결코 게양하지 않았던 사립소안학교

●일주도로를 따라서


가학산이 중심에 버티고 선 사주의 남쪽 지역은 일주 도로로 이어져 있다. 그 길을 따라가면 섬의 명소를 차례대로 만날 수 있다. 맹선리 해안가 언덕에는 폭 25m, 길이 300m 규모의 맹선리상록수림(천연기념물 340호)이 자리하고 있다. 숲에는 팽나무, 후박나무, 생달나무를 비롯한 21종 245그루의 나무들이 오랜 수령과 난대성 식생을 자랑한다. 또 숲은 예로부터 방풍림의 기능과 함께 바닷고기들을 숲 그늘 가까운 곳으로 유인하는 어부림의 역할을 겸하고 있다. 동쪽 해안의 미라리 상록수림(천연기념물 339호)은 훨씬 정갈한 느낌이 든다. 소안도가 자랑하는 미라리 해변으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이다. 미라리는 물과 인심, 그리고 마을 사람들의 인물이 좋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 이름답게 해변에는 오랜 세월 바닷물에 씻겨 둥글 매끈하게 다듬어진 맥반석 몽돌이 곱게 깔려 있다. 

섬도 사람도 쉬어 가라는 물치기미의 해넘이
섬도 사람도 쉬어 가라는 물치기미의 해넘이
서중리 고갯길에서 바라본 고즈넉한 마을 전경
서중리 고갯길에서 바라본 고즈넉한 마을 전경

●배추 속에서 보았네


소안도에는 총 15개의 마을이 있다. 비자리는 소안항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로 섬의 중심지 역할을 한다. 할인마트는 물론 식당, 여관, 주유소, 카센터, 병원 등 편의시설과 면사무소에 초등학교, 중학교까지 들어서 있어 육지 읍내를 보는 듯하다. 대개의 섬마을은 중심에서 멀어질수록 예스러운 정취를 간직하고 있다. 진산 해변 부근의 서중리는 어촌 마을 특유의 옛 돌담을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는 마을이다. 해풍의 흔적이 자작한 지붕과 벽체들은 비록 낡고 해졌지만, 주민들의 터전은 부지런히, 적어도 몇 십 년 동안은 끄떡없이 버텨 왔다. 마을을 산책하다가 차가운 겨울 땅을 뚫고 풍성한 이파리를 피워 올린 월동배추에서 문득, 순박하지만 강인한 섬 주민의 삶을 보았다.

밭과 집터를 만들기 위해 캐어 낸 돌은 담이 되었다
밭과 집터를 만들기 위해 캐어 낸 돌은 담이 되었다

●물드는 오후 다섯시


겨울 해는 오후 다섯 시를 넘어가면 서서히 빛을 벗어 버리고 색을 찾아 입는다. 이즈음이 되면 그 즉시 물치기미 전망대를 찾아 나서야 한다. 소안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낙조를 기대한다면 두말할 나위가 없다. 전망대에서는 가까운 보길도, 예작도, 당사도는 물론 먼 곳에서 빼곡히 고개를 내민 추자도의 모습까지 또렷하게 조망된다. 물치기미에서 바라본 겨울 해는 정확히 추자도 너머로 떨어진다. 해넘이가 끝났다고 해서 발길을 돌려서는 안 된다. 수평선과 섬, 바다를 발갛게, 그리고 하늘을 짙푸른 색으로 물들여 가는 여운의 시간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멈춘 듯 아스러지는 시간을 뒤로하면 마지막 작업을 마친 양식선들이 황급히 전복 밭을 빠져나와 물꼬리를 남기며 사라져 간다.

화홍포에서 하루 열두 차례 여객선이 오가는 섬의 관문 소안항
화홍포에서 하루 열두 차례 여객선이 오가는 섬의 관문 소안항

때론 경건함을 섬 여행의 시작점으로 삼아 봐도 좋겠다. 역사는 여행을 풍요롭게 해 주는 요소 중 중요한 하나다. 여객선의 이름, 늘어선 태극기의 경건함 때문에라도 소안도의 특별한 역사는 여행자의 가슴에 재차 새겨지게 된다. 우리가 섬에서 얻고자 하는 것이 있다면, 섬도 우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소안도
가 볼 만한 곳 

배편 | 완도읍 화흥포항 1일 11회 운항 
소안농협 | soannh.nonghyup.com

구계등
화흥포항에서 차량으로 5분 거리에 있는 국가 명승지다. 몽돌해안과 해안을 둘러 펼쳐진 상록수림이 비경을 자랑한다. 구계등이란 명칭은 태풍에 파도가 높아지면 몽돌이 바닷속까지 잠겼다가 나오기를 반복하며 9개의 계단을 만들었다는 데서 유래됐다. 소안도를 들어가기 전이나 나온 후 잠시 들러 본다면 여정이 더욱 풍족해질 것이다. 

소안항일운동기념관
소안항일운동기념관은 소안도 출신의 애국선열들과 항일 투쟁의 역사를 교훈으로 남기기 위해 2003년에 건립됐다. 일제강점기 독립 유공자 20인의 얼굴 조각을 전시해 추모하고 있으며 항일 운동 관련 영상을 상영하고 있다. 사립소안학교에서 사용한 교과서, 신문 기사 등 당시의 유물도 전시돼 있다.

완도소안수협수산물위판장
소안도는 다도해 국립공원의 청정 해역 내에 있다. 그 해역에서 자급하는 다시마를 먹고 자란 전복은 최상의 품질과 신선도를 자랑한다. 식당이 아닌 곳에서 전복을 구매하고 싶다면 비자리 소안초등학교 부근에 있는 소안수협수산물위판장을 추천한다. kg당 마릿수와 가격을 공지하고 있으며 소량으로도 판매한다.

아부산탐방로
물치기미 전망대가 일몰 스폿이라면 높이 110m의 아부산은 일출로 유명하다. 대봉산과 가학산 등반이 부담스럽다면 바다 전망이 뛰어나 소안 8경으로 꼽히는 아부산 탐방을 권한다. 아부산의 이름은 멀리서 바라보면 두 개의 바위가 아기를 업은 모습으로 겹쳐져 ‘아기 업은 산’이라 부른 데서 유래됐다. 

구도
화흥항에서 여객선을 타고 소안도로 향하다 보면 노화도와 다리로 연결된 작고 예쁜 섬을 만나게 된다. 비둘기가 많아 구도라 불리게 된 이 섬은 경지 면적이 거의 없을 정도로 척박하지만, 활발한 전복 및 김 양식으로 높은 소득을 올리고 있다. 소안 바닷길을 오갈 때 놓치기 아까운 촬영 포인트니 카메라는 필수다. 

미라펜션
지난해 예능 프로그램 <1박2일>의 소안도편에 멤버들의 숙소로 등장했던 펜션이다. 과거 미라리 학산초등학교가 폐교된 자리에 세워졌다. 마을 기업에서 운영하는 펜션은 원룸 7개와 투룸 3개로 이뤄져 있고 세미나실, 식당, 운동장 등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다. 운동장을 벗어나면 바로 미라리 해변과 연결되는 등 자연 입지가 뛰어나다.


*섬 여행가 김민수의 끝없는 섬 이야기. 섬이라니, 좋잖아요.  인스타그램 avoltath


글·사진 김민수(아볼타) 에디터 곽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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