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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 내가 사랑했던

  • Editor. 강화송 기자
  • 입력 2021.03.01 16:5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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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헤매다 
다시 그때의 기억 속으로.
그 시절 사랑했던 
순간의 기록들.

 

해 질 무렵, 오사카성
해 질 무렵, 오사카성
교토 기온으로 향하는 길목, 산넨자카 니넨자카
교토 기온으로 향하는 길목, 산넨자카 니넨자카

●언젠가 그리워할 오늘 


대학생 시절, 오사카와 후쿠오카를 오가며 일본에 살았던 적이 있다. 태어나 첫 해외 생활은 모든 것이 행복했다. 조용한 츠루하시의 아침 시장을 거치는 출근길이 좋았고, 시큼한 오리 소바 한 그릇을 사 먹는 점심시간도 좋았다. 퇴근길에 다시 들른 츠루하시 시장 골목 어귀, 이자카야 ‘이치엔’에 앉아 튀긴 붉은 생강에 맥주를 마시는 저녁도 좋았다. 검정 야옹이의 꼬리가 살랑이는 어두운 골목을 걷던, 알딸딸한 일본의 밤이 좋았다.

오사카 어느 고등학교, 야구부
오사카 어느 고등학교, 야구부

새로운 곳에서 생활한다는 것, 무엇보다 다른 게 좋았다. 생활했다기보다 여전히 여행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행복을 잴 줄 몰랐고, 순수하게 좋았던 그 시절. 나보다 먼저 일본에서 생활하던 한국 친구들은 가끔씩 일본 생활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곤 했다, 일본 사람들에 대해, 환경에 대해, 문화에 대해서. 항상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때마다 그들이 그랬다. “살다 보면 그게 아닐걸. 너도 살아 봐.” 불행인지 다행인지, 일본 생활은 불편을 느낄 정도로 오래가지 않았다. 서울에서 일본으로, 일본에서 다시 서울로 돌아오기까지, 약 5개월의 짧은 시간이었다. 여행이었나 보다. 그래서 즐거웠을지도. 지금 일본이 그립다. 정확히는 그 시절, 특별할 것 없었던 생활에 매일 행복해했던 내 모습이 그립다. 살다 보니 그렇고, 살아 보니 그립다. 다시 오지 않을 시간.

하루카스에서 내려다 본 오사카 전경
하루카스에서 내려다 본 오사카 전경

●물 없는 바다


어릴 적부터 비린 것이라면 질색했다. 꽁치, 고등어라면 울고 보는 아이. 오메가3가 너무나도 싫은 아이. 어렸을 땐 정말 그랬다.


어른이 됐다. 종종 새벽에 깰 때가 있다. 아직 덜 밝은 서울 하늘은 오사카의 비린 새벽을 떠오르게 만든다. 어둑어둑한 새벽에는 비린 맛이 당긴다. 잠깐이지만 일본에 살며 얻은 확실한 몇 가지의 사실들이 있다. 진정한 일본 생선은 번들거리는 파란색 고무 앞치마를 두른 일본인의 손을 거쳐야 한다는 것. 오사카 후쿠시마구 남서부에 위치한 오사카 중앙도매시장은 세상에서 생선에 대해 가장 진지한 장소라는 것. 세상에서 가장 진지한 생선을 점심으로 먹기 위해서는 새벽에 시장을 찾아야 한다는 것.

일본에서 가장 먼저 사귀게 된 친구는 오사카 중앙도매시장에서 참치를 해체하는 일을 했다. 주말이면 종종 점심을 얻어먹기 위해 이른 새벽부터 오사카 중앙도매시장을 찾곤 했다. 오사카 중앙도매시장은 어느 곳으로 향할지 갈피조차 잡지 못할 정도로 거대한 규모의 수산시장이다. 문제는 새벽이 지나면 볼일 없는 시장이라는 것. 점심쯤이면 빈 스티로폼 박스를 옮기는 인부들과 빈 상자를 가득 실은 터렛 트럭만 가득하다. 그래서 꼭 경매가 진행되는 새벽에 방문해야 한다.

 

동관 1층 수산물 코너에는 물고기가 널려 있다. 도매시장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 물 없는 바다라고 부른단다. 뻐끔뻐끔, 물고기가 누워 있다. 친구 꽁무니를 졸졸 따라 수산시장을 돌다 보면 결국 마지막은 ‘엔도우(えんどう)’다. 엔도우는 중앙도매시장 초입에 위치한 작은 스시집이다. 스시의 역사가 그리 길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1907년에 오사카 대표 어시장이었던 자코바(雜喉場) 시장에 개장한 엔도우의 역사와 전통을 무시할 수 없다.

 

주문은 총 5개의 스시로 구성되어 있는 4개의 플레이트를 고르는 방식이지만, 중앙도매시장 상인이라면 절대 여행자처럼 주문하지 않는다. 맥주와 갈치 그리고 청어. 간결한 주문. 녹차와 붉은 된장으로 끓여 낸 아카다시국이 나오지만, 바다 사나이의 첫입은 항상 맥주부터. 갈치 초밥은 겉면만 살짝 토치로 구워 내 기름이 몽글몽글 올라와 있다. 살코기는 혀에 녹아든다. 으스러트리며 먹는 것이다. 다음은 청어. 청어는 비린 향이 강한 생선이다. 손질 단계에서 뼈를 일일이 뽑아내야 먹기 편하다. 그래서 주방이 바쁠 때는 주문하며 미안한 내색을 비춰 주는 것이 예의라고 한다. 그때는 비린 것이 싫었다. 친구의 성의를 봐서 잘게 썰어 올린 생강과 실파를 가득 올려 한 입. 청어가 입 안에 들어온다. 실파도 생강도 막을 수 없는 향기. 등 푸른 생선의 비린 맛은 청량한 바다 맛으로 끝난다. 비린 맛의 새벽이 지나니 상쾌한 바다 도시의 아침이었다.


나이 따라 변해 가는 것이 입맛인가 보다. 싫었던 것이 좋아지고, 좋았던 것이 싫어진다. 그렇게 좋아하던 자갈치보단 당장 청어 초밥이 먹고 싶다. 새벽에 비릿한 시장의 냄새를 맡고 싶고, 맥주를 마시고 싶고, 미안한 척 너스레 떨며 청어를 주문하고 싶다. 비린 새벽을 마음껏 즐기고 상쾌한 아침을 맞이하고 싶다. 새벽 5시의 오사카 중앙시장 동관 1층 수산물 코너의 모습이 떠오른다. 어제까지만 해도 바다에서 헤엄치던 물고기들이 고무 대야에 가득 담겨 있다. 도매시장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 물 없는 바다라고 부른단다. 헤엄치지 못하는 물고기가 뻐끔뻐끔 누워 있다.  

 

글·사진 강화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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